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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는 천재가 가르친다-239화 (239/251)

천재는 천재가 가르친다. 239화

침공

티그리스는 몸을 일으켰다.

“티그리스 경이 깨어나셨습니다!”

트리샤의 말에 사람들이 모두 몰려왔다.

모두 얼굴에 미소가 가득할 거라 생각했건만, 사람들의 표정은 그닥 좋아 보이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 주변도 많이 어수선했다.

“무슨 일이지?”

“길리온 왕국이 어제 아침 기습적으로 선전포고를 했습니다.”

설마 했던 일이 터졌다.

티그리스는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당장 지원을 가야겠군요.”

“거기서 끝이 아닙니다. 흑토지대에 갑자기 혈귀와 키메라들이 나타났다고 합니다.”

티그리스는 진심으로 이해하기 어려웠다.

“페이라가 어떻게 흑토지대에 나타난 겁니까?”

“저희도 모르겠습니다. 아직 정확하게 밝혀진 바가 없습니다.”

페이라는 일주일 전까지만 해도 길리온 왕국에서 반란군을 소탕하고 있었다.

그런데 어떻게 단 일주일 만에 대륙 정반대 방향에서 갑자기 나타날 수 있던 걸까?

길리온 왕국에서 출발한 열차에 몰래 탔다고 하더라도 최소 3주는 걸리는 거리다.

텔레포트를 사용한다고 하더라도 장거리 텔레포트를 몇 번이나 사용할 수 있는 대마법사는 티그리스의 손에 이미 다 죽었다.

물리적으로나 마법적으로나 절대 불가능한 일이다.

일단 원인 분석은 나중이고 중요한 것은 대응이다.

“그럼 팀을 두 개로 나누어야겠군요. 흑토지대로 가는 쪽과 길리온 왕국으로 가는 쪽.”

티그리스는 레인로버를 보며 말했다.

“작전 회의를 좀 해야 할 것 같습…….”

그때, 급하게 기사 하나가 뛰어오더니 입을 열었다.

“급보입니다! 현재 노르베르드에서 긴급 지원 요청이 들어왔습니다.”

“지원 요청?”

“네. 노르베르드 방벽 기준 북쪽 80㎞ 지점. 다수의 키메라 발견. 현재 갈리아 산맥을 넘고 있다고 합니다.”

티그리스의 표정이 차갑게 굳어졌다.

* * *

왕자 모르고트, 이젠 완전한 검은 늑대 기사가 된 바리안은 갈리아 산맥을 넘었다.

바다처럼 끝이 보이지 않는 드넓은 땅 위에 하얀 눈이 소복이 쌓인 절경이 눈앞에 드러났다.

바리안은 마스크를 벗었다.

찬 공기를 깊게 들이마시고 내쉬었다.

눈은 거의 보기 힘든 따뜻한 남쪽에서 평생을 보냈던 탓일까?

바리안은 아직까지도 이 추위와 눈이 제법 신선하고 보기 좋았다.

바리안은 마스크에 묻은 성에를 털어내고 다시 썼다.

‘오늘은 조금 더 멀리 가봐야겠어.’

바리안이 금지된 강 유역 근처를 배회하는 이유는 티그리스와의 약속 때문이었다.

적어도 반년에 한 번 정도는 갈리아 산맥을 넘어 금지된 강 유역을 점검할 것.

다른 사람이라면 홀로 갈리아 산맥을 넘는 것도 불가능했겠지만 바리안이라면 달랐다.

-우어어어어어!

팔과 다리가 세 개 달린 오우거 하나가 바리안의 냄새를 맡고 달려왔다.

넘어질 듯 말 듯 비틀비틀거리며 달려오는 오우거는 생각보다 빨랐다.

‘팔 세 개, 다리 세 개……. 머리는 두 개군.’

바리안은 대충 감상한 뒤 검도 뽑아 들지 않은 채로 오우거를 향해 달려들었다.

오우거는 오랜만에 맛볼 야들야들한 살점에 기쁨을 감추지 못하며 손을 뻗었다.

파직-!

하지만 바리안의 발에서 푸른 전류가 흐르더니 순간적으로 가속되었다.

티그리스가 가르쳐 준 ‘섬뢰’의 가장 기본적인 오러 운용술 역천 작용이 일어날 때의 현상이었다.

바리안은 총알처럼 앞으로 튀어 나가 놈의 가랑이 사이를 정확하게 파고들어 갖고 있던 단검으로 놈의 다리 힘줄을 죄다 끊어냈다.

-우어어어어어어어!

오우거는 비명을 지르며 넘어졌고 바리안은 놈의 시야에서 벗어났다.

바리안은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자리를 빠르게 벗어났다.

오우거가 제아무리 빠르게 회복한다고 한들 최소 1시간은 있어야 한다.

다리 힘줄이 끊긴 채로 이 험지에서 버티는 것?

그것은 절대로 불가능했다.

아마 오크든 오우거든 피 냄새를 맡고 미친 듯이 달려오겠지.

바리안은 괜히 피 냄새를 맡은 몬스터 무리에게 들키지 않도록, ‘인비저블’ 마법이 걸린 망토를 걸친 채 벗어났다.

드드드드드-!

아니나 다를까 땅이 진동하며 메마른 나뭇가지에 쌓인 눈들이 우수수 떨어졌다.

몬스터들이 피 냄새를 맡고 달려오는 모양이었다.

바리안은 나무 위로 올라가 숨을 죽였다.

-구어어어어어어!

-우어어어어!

조금 기다리니 기괴한 모양새의 오크들과 오우거들이 나무를 부수며 달려오고 있었다.

달리다가 넘어져 뒤에서 달려오는 오우거와 오크 무리에게 짓밟혀 죽는 개체가 더러 보일 정도였다.

여기에 있다간 저 밟혀 죽은 오크 꼴이 날 것 같아 바리안은 나무를 타고 재빨리 놈들의 진격 방향에서 떨어졌다.

‘무슨 일이지?’

제아무리 사냥감을 발견했다고 하더라도 오크와 오우거 무리들이 함께 움직이는 경우는 거의 없다.

저렇게 도망칠 때는 딱 한 번, 머리가 10개 달린 오우거가 금지된 강 유역에서 행패를 부릴 때였다.

‘또 이레귤러가 나타난 건가?’

바리안은 회중시계를 열어 시간을 본 후 탐사 노트를 열어 적었다.

마지막으로 오크와 오우거들의 사진을 한 방 찍은 후 품속에 집어넣었다.

‘왜 도망치는 건지 알아내야겠어.’

바리안은 놈들이 온 방향을 향해 달렸다.

혹시 티그리스가 말한 ‘안정된 개체’들이 놈들을 죄다 쫓아낸 것일 수도 있으니까.

바리안은 망토를 벗어 산을 벗어나 평원을 달렸다.

이제부턴 굉장히 조심해야 한다.

나무 하나 찾아보기 힘든 평원이기 때문에 바리안이 몬스터를 발견하기 쉬운 만큼 몬스터도 바리안을 찾는 것이 쉬워진다.

바리안은 안력을 늘려 주변을 살폈다.

‘저건……?’

바리안은 살면서 저렇게 이상한 몬스터를 본 적이 없었다.

아니, 저건 몬스터라고 부를 수 있는 개체인가?

하체는 피처럼 붉은 거미의 모양이고 상체는 인간의 형상을 띤 거미 인간들이 보였다.

놈들은 죽은 오크와 오우거 무리들을 잡아먹고 있었다.

문제는 그 숫자였다.

북동쪽 평원을 붉은색으로 물들일 정도로 어마어마하게 많았다.

‘어디선가 본 것 같은……. 잠깐 설마…….’

바리안은 직접 보진 못했지만 황국에서 보내준 키메라들의 사진을 기억하고 있었다.

저 붉은 몸체는 분명 핏줄 거미의 몸체였다.

저걸 이젠 뭐라고 불러야 할까?

전설 속에나 등장했던 ‘아라크네’라고 불러야 하는 걸까?

바리안은 생각을 멈추고 일단 인비저블 망토부터 써서, 놈들이 어디로 가는지 살펴야만 했다.

잠시 후, 식사가 끝나자 놈들은 평원을 달렸다.

방향은 정확하게 바리안이 서 있는 쪽이었다.

동시에 노르베르드 방벽이 있는 곳이었다.

‘놈들이 노르베르드로 몰려온다.’

바리안은 그리 확신하고 품속에서 텔레포트 스크롤을 꺼내 입에 물었다.

놈들이 험준한 갈리아 산맥을 얼마나 잘 타는지 잘 모르겠지만 최소한 일주일 내론 노르베르드에 도착할 것이다.

그 안에 대책을 세우지 않는다면 노르베르드 방벽은 무너진다.

바리안은 인비저블 망토를 벗고 사진기를 들었다.

바리안을 발견한 핏줄 거미들이 달려들었다.

찰칵! 찰칵! 찰칵!

-인가아아아아안!

핏줄 거미들의 사진을 여러 장 찍어 아공간 주머니에 집어넣은 후, 곧바로 텔레포트 스크롤을 찢었다.

* * *

황국 내에 있던 군사 전문가들과 장군들이 긴급하게 소집되었다.

“황제 폐하, 길리온 왕국의 소행으로 보이는 침공 방향은 총 세 곳입니다.”

제3군단장이 지도를 지휘봉으로 짚었다.

“에이미로 자치령, 흑토지대, 마지막으로 노르베르드. 개중 놈들의 주공 방향은 에이미로 자치령으로 생각이 됩니다.”

에이미로 자치령 쪽은 현재 성기사들과 사제를 중심으로 성전(聖戰)이라는 이름하에 침공을 시작했다.

숫자는 대충 파악된 것만 해도 10만.

최종 국면에 접어들면 최대 30만까지도 보는 전문가들도 있었다.

“그래도 에이미로 자치령과 수인족 자치령 쪽에서 길리온 왕국의 침공에 잘 대비해 놓았습니다. 놈들은 기습적인 공격에 비해 아군에게 큰 타격을 주지 못하고 현재 2차 방어선 너머로 넘어오지 못하고 있습니다.”

길리온 왕국의 공습은 대충 계산되어 있던 바였다.

물론 놈들이 쳐들어오기 전에 황국 측에서 공격을 가하려고 한 계획이 무산되었지만 그래도 덕분에 전쟁 반대를 부르짖던 몇몇 귀족들과 백성들의 입을 다물게 만드는 데엔 성공했다.

“그러나 문제는 흑토지대입니다.”

흑토지대에서 갑작스레 나타난 혈귀.

혈귀는 말 그대로 흑토지대를 죄다 피로 물들일 것처럼 어린아이 노인 구분 없이 죄다 죽이고 있었다.

“정보에 따르면 혈귀가 성수를 이용해 죽은 인간들을 되살려 키메라로 만들어 부린다고 합니다. 이대로 놔둔다면 일주일 내로 1만 명의 군대가 만들어질 것으로 예상됩니다.”

현재 흑토지대는 제2의 빈스모크 백작의 탄생을 우려해 황명으로 각 가문마다 사병의 숫자를 제한해 두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혈귀의 기습 공격에 아예 대응하지 못하고 공격을 받는 족족 밀려나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검은 늑대 기사의 단일 첩보로 만들어진 것이라 정확하진 않지만, 길리온 왕국이 핏줄 거미와 사람들을 상대로 키메라 실험에 성공한 듯 합니다.”

토드 황제에게 바리안이 찍은 핏줄 거미들의 사진이 건네졌다.

“키메라들의 숫자는 최소 1만으로 추정됩니다. 이 키메라들은 현재 노르베르드 방벽을 향해 남하. 최소 닷새 내로 도달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잠자코 듣고 있던 토드 황제의 입이 처음으로 열렸다.

“어떻게 이 키메라들이 노르베르드 지역까지 넘어올 수 있었던 거지?”

“정확하게는 알 수 없으나 두 가지 루트를 예상해 볼 수 있습니다. 첫 번째로 뱀이 지나간 절벽에 몰래 다리를 놓았거나, 아니면 멸지를 지나쳐 지나갔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아직 제대로 확인된 바는 없나?”

“송구스럽지만…… 그렇습니다.”

만약 뱀이 지나간 절벽에 다리를 놓은 것이라면 추가로 길리온 왕국의 병사들이 건널 수 있다는 말이 되고, 멸지를 지나쳤다면 핏줄 거미들이 변이 입자에 면역을 가졌다는 뜻이 된다.

그나마 전자보단 후자가 낫지만, 아직 그 무엇도 정확하지 않다.

티그리스는 눈을 감고 침착하게 생각했다.

아르펨과 로타가 녹록지 않은 상대라는 것은 충분히 예상하고 있었다.

하지만 놈들이 무려 세 방향에서 기습 공격을 가할 수 있을 것이라곤 전혀 예상치 못했다.

‘내 실책이다.’

로타와 아르펨을 거의 다 몰아붙였다고 생각해 어느 정도 마음을 놓고 있었던 것이 작금의 사태를 만들었다.

그렇다면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그것은 티그리스에게 주어진 질문이 아니었다.

레인로버가 입을 열었다.

“가장 지원이 급한 쪽은 우선 흑토지대고 다음이 노르베르드, 마지막으로 에이미로 황자령이군요.”

“예. 그렇습니다. 황녀 전하.”

“반대로 지원 병력의 양만 따지자면 에이미로 황자령이 1순위고 그다음이 노르베르드, 마지막으로 흑토지대고요.”

흑토지대의 기습 공격은 아프긴 하지만 현재 혈귀와 수천에 불과한 키메라들만이 있을 뿐이다.

가장 긴급한 지원이 필요한 곳은 흑토지대지만 역설적으로 지원해야 할 병력의 양은 흑토지대가 가장 적다.

“하지만 흑토지대를 제대로 마무리 짓지 않는다면, 올해와 내년은 굉장히 힘들 것입니다. 실제로 현재 흑토지대가 화마에 휩싸였다는 정보가 시장에 퍼지자마자 농산물 가격이 급격하게 올라가고 있습니다.”

전선의 다각화를 방지하고자 해리 황태자를 보내 사마곤 왕국과 불가침조약을 맺은 것인데 혈귀의 갑작스러운 등장으로 아무런 소용이 없어졌다.

아니, 그나마 사마곤 왕국을 포섭한 덕분에 남쪽은 마음 놓고 있어도 된다고 해야 할까?

토드 황제의 눈이 티그리스에게 향했다.

“티그리스 경.”

“예. 폐하.”

“자네에겐 언제나 고맙고 미안한 게 많네. 그러니 자네에게 한 가지 명령을 내리겠네.”

토드 황제는 회귀록을 10번을 넘게 읽었다.

그렇기에 티그리스에게 있어서 노르베르드가 어떤 의미인지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자네는 노르베르드로 가게. 자네가 황국에 얼마나 큰 헌신을 해왔는지 내가 잘 아네. 자네의 헌신과 봉사로 악독한 길리온 왕국의 공격으로부터 방어할 역량을 우린 충분히 갖췄다고 생각하네.”

황국도 가만히 있었던 것은 아니다.

황금 기사들과 철혈 마법 병단의 숫자를 늘리고 정규군의 숫자 또한 급격하게 늘렸다.

군량을 포함한 각종 보급품에 문제가 없도록 만들었으며, 안정된 마석 보급을 위한 거인들의 무덤을 잇는 철도까지 완성시켰다.

결정적으로 길리온 왕국의 공습이 오자마자 각지에서 병력과 보급품을 보내겠다는 수없이 많은 귀족들의 편지까지 오고 있다.

로타와 아르펨의 공격에 분열되었던 회귀 전의 황국과 달리 지금은 하나로 뭉쳐 로타와 아르펨의 공격에 대응하고 있다.

이젠 티그리스 덕분에 살아남고 번창한 자들이 티그리스를 위해 헌신할 차례였다.

티그리스는 1분간 깊게 생각했다.

그리고 입을 열었다.

“황제 폐하, 저는…….”

* * *

아이린은 열차에 몸을 싣기 전 세계수에게 향했다.

세계수는 고개를 푹 숙이며 발을 꼼지락거렸다.

“아이린…… 진짜 가는 거야?”

“내가 돌아올 때까지 겨루가 널 잘 챙겨줄 거야.”

“정말 돌아올 거야? 정말 돌아올 거지?”

세계수는 불안하다는 듯이 아이린의 손을 붙잡았다.

아이린이 성장한 만큼 세계수도 많이 컸다.

세계수의 본체는 어느덧 아이린의 어깨까지 올 정도로 자랐다.

키가 작았을 무렵에는 아마 아이린의 머리까지 닿았겠지.

아이린은 세계수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당연하지. 널 지켜주기로 약속했으니까.”

“……사실 난 아직도 이해를 못 하겠어. 난 죽는 게 두려워. 분명 그 사람들도 죽는 게 두려울 텐데 왜 싸우는 걸까? 그냥 모두 즐겁게 지낼 순 없는 걸까?”

세계수의 말에 아이린은 자신의 어린 시절이 떠올랐다.

아이린도 그런 생각을 많이 했다.

아빠는 왜 싸우는 걸까?

기사들은 왜 싸우기 위해 존재하는 걸까?

그냥 평화롭게 모두 웃으면서 지낼 순 없는 걸까?

이 축복받은 땅에서 밀을 수확하고 즐거운 수확제를 즐길 순 없는 걸까?

당시엔 답을 내리지 못했지만, 혈귀에게 가족을 잃은 뒤로 아이린은 자신만의 답을 내릴 수 있었다.

“싸우지 않고선 버틸 수 없어서 그럴 거야.”

“뭐? 그게 무슨 말이야?”

“나도 사실 싸우고 싶지 않아.”

아이린이라고 해서 그 무서운 혈귀와 마주하고 싶어서 마주하는 게 아니다.

“놈과 나와의 관계를 정리하지 않고선 버틸 수 없기 때문에 싸우는 거야.”

놈이 앗아간 내 아빠와 오빠, 그리고 가문.

그것에 대한 복수를 이루지 않고선 아이린은 편히 잠들 수 없기 때문이었다.

“그럼 아이린은 혈귀를 죽일 거야? 그럼 혈귀의 가족이 네게 앙심을 품고 싸우면 어떻게 하려고.”

세계수의 순수한 질문에 아이린은 말문이 막혔다.

그런 생각은 단 한 번도 해보지 못했다.

아이린은 세계수의 손을 놓으며 말했다.

“……그래도 복수를 할 거야.”

“아이린…….”

“내가 지금까지 훈련을 한 이유는 혈귀에게 내 가족의 복수를 하기 위함이니까.”

아이린은 울먹이는 세계수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세계수는 평소엔 어른인 척, 강한 척 굴지만 막상 주변에 아무도 없을 땐 약해진다.

“미안해.”

세계수는 아이린을 껴안았다.

아이린도 세계수를 안아주었다.

그러자 아이린의 몸이 싱그러운 연두색으로 빛나기 시작했다.

“어……?”

“난 네가 살아 돌아왔으면 좋겠어. 그리고 내 욕심이겠지만 혈귀랑 잘 화해했으면 좋겠고.”

“……뭐? 화해?”

“아빠가 읽어준 책에 그런 말이 있어. 복수는 복수를 낳는다고. 난 그게 정확히 무슨 말인지 모르겠지만 복수가 좋지 않다는 뜻이겠지.”

세계수가 떨어지자 아이린의 몸에서 녹색빛이 사라졌다.

겉보기엔 아이린의 몸은 달라진 게 없어 보인다.

오러가 늘어난 것도 아니고 키가 커지거나 근육이 늘어난 것도 아니다.

하지만 과격한 육체 변화로 티끌만큼 불편하고 익숙지 않았던 몸의 감각이 완전히 돌아왔다.

“그러니 혈귀를 만나면 싸우기보단 대화를 먼저 했으면 좋겠어. 혈귀도 너처럼 검을 휘두르지 않고선 못 버틸 이유가 있었을지도 모르니까.”

아이린은 세계수의 조언에 섣불리 대답하지 못했다.

그저…….

“고마워.”

가장 대답하기 쉬운 말로 얼버무릴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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