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는 천재가 가르친다-241화 (241/251)

천재는 천재가 가르친다. 241화

흑토(2)

로건의 합류로 전세는 완전히 역전되었다.

프리하르덴 가문의 기사들 중 최정예라고 불리는 푸른 와이번 기사단은 와이번에 타고 있을 때만 위협적인 것이 아니었다.

푸른 와이번 기사단의 검술은 프리하르덴류의 아류인 ‘혹한’이라는 검술로, 검에 닿는 순간 살점이 얼어붙는 것을 넘어 깨진다.

재생력 하나로 버티고 있는 살덩어리들의 입장에선 상성이 말도 안 되게 불리한 셈.

심지어 와이번의 능력도 만만치 않았다.

와이번은 거대한 앞발과 아가리로 살덩어리들을 짓뭉개고 씹으며 박살을 냈다.

와이번은 하늘을 나는 몬스터들 중에서 그리폰과 쌍두마차를 달리고 있는 최상위 포식자다.

심지어 오랜 기간 기사들과 호흡을 맞춰와 서로 눈만 마주쳐도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있을 정도로 합이 잘 맞았다.

뭉개졌던 전선이 회복되자 대형 아티팩트를 사용할 수 있는 여력이 생겼다.

마법사들은 재빨리 아티팩트에 달라붙어 마법을 사용했다.

쾅-! 쾅-!

기사들과 와이번들이 임시 성벽의 역할을 하고 마법사들이 아티팩트를 사용해 후방을 치는 이상적인 양상이 그려졌다.

살덩어리들은 반항도 하지 못하고 쓸려가는 수준으로 죽어 나갔다.

-물러나라.

-물러나라.

-물러나라.

기사들의 귀에도 들리는 목소리.

그 목소리에 살덩어리들은 싸움을 멈추고 명령대로 도주하기 시작했다.

기사들이 가로막거나 아티팩트로 집중포화를 갈겨도 반격도 하지 않고 그저 도주만 했다.

“우와아아아아!”

처음으로 얻어낸 승리에 기사들과 병사들은 환호성을 질렀다.

“추격하지 마라. 우선 사상자부터 수습하고 전선을 다듬어라.”

로건은 쫓아가려는 기사들을 다시 불러와 전후 정비부터 시켰다.

원래 패주하는 놈들을 뒤에서 치는 것만큼 좋은 양상이 없지만, 현재 아군 상황이 좋지 못했다.

아티팩트들이 박살 나고 죽은 살덩어리들이 고약한 악취를 뿜어내며 대지를 오염시키고 있었다.

어서 살덩어리들을 모아서 불태우지 않으면 알 수 없는 전염병이 돌 수 있었다.

기사들이 전후 정비를 하는 사이, 로건은 로라에게 다가왔다.

“로건 드 프리하르덴이라고 합니다.”

“진심으로 도움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프리하르덴 백작님. 전 로라 드 벨프. 스칼레의 행정관입니다.”

“벨프라면……. 아이린의 어머니 되시는 분이군요. 이렇게 만나뵙게 되어 반갑습니다.”

“저도 이렇게 만나뵙게 되어 반갑습니다. 때만 좋았다면 차라도 나누고 싶지만…….”

“그럴 상황은 아니죠.”

“네. 그나저나 어떻게 이리 빨리 오실 수 있었죠?”

로건은 자신의 와이번, 펠레를 쓰다듬었다.

“이 친구 덕이죠. 소식을 듣자마자 급하게 와이번 기사단들만 모두 데리고 왔습니다. 현재 열차를 타고 프리하르덴 가문의 병사들이 오고 있습니다. 적어도 일주일 안으로 도착할 예정이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잡담은 이 정도로 하고 로건은 본론으로 들어갔다.

“그나저나 혈귀가 보이질 않던데 어디로 갔는지 아십니까?”

“살아남은 기사들이나 병사들의 증언에 따르면, 원래 혈귀는 지금까지 저 키메라들과 함께 움직였습니다. 그래서 살덩어리들의 움직임을 통해 혈귀의 위치를 대략적으로 파악해왔죠.”

하지만 웬일인지 혈귀는 바로 스칼레를 공격하지 않았다.

그게 로라가 이상하다고 여기는 부분이었다.

혈귀의 목적은 벨프 가문의 수도 스칼레가 아닌가?

아니면 벨프 가문의 이름을 이어받은 로라 자신의 목숨이라고 생각했는데 왜 스칼레를 직접 공격하지 않고 멈춰 선 걸까?

“혹시 작전지도가 있습니까?”

“아……. 잠시만요. 존!”

전령은 로라의 부름에 곧바로 달려왔다.

“작전 지도 좀 보여주실래요?”

“아, 잠시만 기다려주십시오.”

존은 곧바로 작전 지도를 펼쳤다.

로건은 지도를 훑더니 입을 열었다.

“열차 쪽은 현재 누가 막고 있죠?”

“열차 노선은 트레인 가드들과 후방에 있는 가문들의 기사들이 담당하고 있습니다.”

“그들의 전력은 어떻게 되죠?”

로라는 부끄럽다는 듯이 고개를 숙였다.

“원래 이런 세세한 사항을 알고 있던 장군과 치안관이 있었는데, 두 사람 모두 지금 어디론가 사라져서요.”

“도주했다는 말입니까?”

“……예. 아마 그럴 겁니다.”

로건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흑토지대 내전을 방지하기 위한 목적으로 사병들의 숫자를 제한한 타격이 컸다.

그 때문에 유능한 기사들이나 군인들은 모두 동쪽 전선으로 몰리고, 서쪽은 모두 텅 비고 말았다.

그래서 이런 명예도 모르는 장군과 치안관이 흑토지대에 자리한 거겠지.

“사마곤 왕국 국경에 위치하고 있던 정규군은 연락이 없습니까?”

“혈귀가 통신 시설을 죄다 망가뜨려 버린 탓에 연결이 두절된 지 하루 정도 됐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움직일 수 없을 겁니다.”

“왜죠?”

“중부지역과 달리 남부지역은 현재 수확철이거든요. 3모작이 가능한 땅이라 현재 군량으로 쓸 식량들을 지켜야 한다고 들었습니다.”

“이런…….”

정규군의 지원을 받기란 힘들어 보인다.

로건은 지도를 뒤집어 혈귀의 입장에서 생각했다.

로건이 혈귀라면 왜 스칼레를 바로 공격하지 않았을까?

혈귀는 분명히 황국의 지원 병력이 오는 것을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들이 흑토지대에 오는 순간 자신은 손쉽게 밀려날 것이란 것도 알고 있고.

그렇다면…….

로건의 눈이 철도로 향했다.

“트레인 가드들과 통신을 해보시죠. 제가 혈귀라면 분명히 능선을 타고 홀로 이동해서 열차 노선을 망가뜨릴 겁니다.”

혈귀, 페이라의 목적은 황국이 길리온 왕국과의 전쟁에 집중하지 못하도록 흔드는 것이 분명하다.

그렇다면 최대한 시간을 많이 끌어야 할 터.

존은 곧바로 스칼레에 있는 통신탑에 통신을 날렸다.

“WA-1 가드 포인트부터 WG-13 가드 포인트까지 트레인 가드들에게 이상이 없는지 확 바람.”

존은 수정구로 이야기를 주고받더니 표정이 굳어졌다.

“……1시간 전부터 WA-4 포인트 가드로부터 오는 연락이 두절되었답니다.”

“1시간 전이라면…….”

“키메라들이 쳐들어왔던 때랑 겹쳐요.”

로건의 표정이 굳어졌다.

“WA-4 지점 위치가 어디지?”

존은 지도를 펼쳐 WA-4를 찍었다.

“스칼레에서 동쪽으로 20㎞ 떨어진 곳입니다.”

로건은 재빨리 펠레의 등에 탑승했다.

혈귀가 노리는 바를 정확하게 알아냈다.

놈은 열차 노선을 노리는 거다.

“1팀은 나를 따라라!”

* * *

페이라는 유일하게 살아남은 트레인 가드의 목을 잡아 올렸다.

“내가 왔다는 걸 알리지만 않으면 살려주겠다고 했는데 왜 반항한 거지?”

트레인 가드의 붉게 충혈된 눈이 페이라에게 향했다.

“……그게 내 임무니까.”

“너희는 돈과 목숨을 좇아 사는 용병이 아닌가? 명예에 죽고 사는 기사들도 지키지 못하는 걸 너희처럼 나약한 것들이 왜 지키려 드는 거냐?”

푹!

트레인 가드의 단검이 페이라의 목을 찔렀다.

그러나 그런 어설픈 공격이 페이라의 피부를 꿰뚫을 수 있을 리가 없었다.

하지만 페이라는 이 대답이 굉장히 마음에 들지 않았다.

“말해라! 왜 나약한 주제에 왜 목숨을 헛되이 버리냐고! 혹시 내게 가족이나 친구를 잃은 것이냐? 아니면 내게 복수할 다른 이유가 있는 것이냐?!”

“크륵…….”

사내는 페이라의 분노에도 씨익 웃으며 피를 토했다.

이미 사내는 한계였다.

우득-!

페이라는 놈의 목을 꺾어버렸다.

마치 실 끊어진 인형처럼 몸이 축 늘어진 사내를 구석에 던져 버렸다.

“마음에 들지 않아.”

페이라는 대검들을 사용해 자신에게 반항했다가 죽은 트레인 가드들의 시체들을 휙휙 던져 모아놓았다.

콰릉-!

그 후 가드 포인트를 통째로 무너뜨렸다.

놈을 키메라로 만들어 평생 고통 속에 헤엄치게 만들 수도 있었지만, 왠지 저놈들은 그렇게 만들고 싶지 않았다.

“사, 살려주십시오! 나으리! 제발!”

페이라는 손이 발이 되도록 빌어대는 녀석들을 쳐다봤다.

놈들 중 하나는 장군의 상징인 지휘봉을 옆구리에 끼고 있었다.

고급스러운 금장식과 은으로된 회중시계를 들고 있는 것으로 봐서 페이라에게 패배했다가 도주한 놈은 아닌 듯했다.

“너희는 어디서 왔지?”

“스, 스칼레에서 왔습니다! 살려만 주신다면 스칼레에 대해 알고 있는 모든 걸 불겠습니다!”

페이라는 웃었다.

“그래?”

페이라의 미소에 장군들과 기사들은 모두 희망에 가득 찬 눈빛을 반짝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나으리! 제발 목숨만은…… 컥!”

페이라의 검이 장군의 허리를 끊었다.

피가 폭포수처럼 흐르며 입을 뻐끔뻐끔거렸다.

“히이이익!”

기사들과 병사들이 모두 기겁하며 바지에 오줌을 지렸다.

“그래. 우리들이 정상이지. 저것들은 별종들일 뿐이야. 안 그런가?”

“이……! 이 괴물!”

페이라는 성수를 꺼내 들었다.

“그래. 너희들이 원하는 영원한 삶을 주도록 하마.”

페이라의 성수가 장군의 허리에 쏟아지자 빠르게 수복되며 도망치는 병사들과 기사들을 먹어치우기 시작했다.

“으아아아악!”

페이라는 뼈가 부서지고 살점이 찢기는 소리를 뒤로하고 열차 선로 위에 섰다.

저 멀리 작은 점이 페이라에게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

페이라는 그 점을 향해 달렸다.

선로답게 길이 잘 뚫려 있어서 달리는 것은 무리가 없었다.

어느덧 페이라의 눈앞에 열차가 제 모습을 드러냈다.

페이라는 붉은 대검을 하늘 높이 치켜세운 뒤 내려찍었다.

콰아아앙-!

열차는 하늘 높이 날며 거대한 폭발과 함께 비산했다.

하늘에서 하얀 밀가루 포대와 소시지, 마석 등이 떨어졌다.

아쉽게도 저 열차엔 사람보단 보급품이 많이 들려 있는 모양이었다.

그래도 상관은 없다.

페이라는 다시 달렸다.

* * *

끼이이이익-!

아이린은 갑자기 열차가 멈춰 서자 책 읽기를 멈췄다.

탕! 탕!

군인들이 문을 두들기며 큰 목소리로 말했다.

“현재 열차 선로에 혈귀 출현! 전원 열차에서 내리십시오!”

‘혈귀?’

아이린은 반사적으로 아공간 주머니에 ‘용살에 대하여’를 집어넣고 흑룡아를 꺼냈다.

베르강의 수제자 고든이었다.

“아이린. 갑시다.”

“네.”

아이린의 심장이 펄떡펄떡 뛰었다.

혈귀가 온다.

아빠와 오빠의 원수.

아이린은 순간적으로 시야가 좁아졌다가 늘어났다를 반복하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혈귀가 아이린이 온다는 걸 알아차렸던 걸까?

아니면 무슨 이유로 열차를 향해 달려오는 걸까?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은 오직 혈귀만이 할 수 있으리라.

고든은 아이린의 표정을 보자마자 입을 열었다.

“괜찮습니까?”

“네.”

아이린의 손잡이가 부서져라 쥐어졌다.

“아주 최상이에요.”

고든은 아이린의 상태가 걱정되었지만, 신경 쓸 상황이 아니었다.

현재 혈귀가 선로를 따라 동쪽으로 쭉 달려오고 있었다.

얼마나 빠른지 혈귀의 전진을 막으려던 트레인 가드들이 연락을 받았을 땐 이미 스쳐 지나간 이후라고 들었다.

“……달이 어둡군요.”

구름이 없는 밤이지만 하필이면 월광이 낮은 초승달이다.

그래도 철혈 마법 병단이 하늘 위로 조명탄을 띄워 시야를 확보했다.

그러나 숲이 너무 우거져서 숲 내부까진 보이지 않았다.

장소가 그리 좋지 못하다.

그때, 황금 기사 하나가 고든에게 다가왔다.

황금 기사단 제3대대장 필립이었다.

“고든. 아이린 경과 함께 근처 가드 포인트로 가서 트레인 가드들을 지킬 수 있도록.”

아이린은 고개를 저었다.

“아뇨. 저도 여기에 있겠습니다.”

팀장은 싸늘한 눈빛으로 아이린을 쏘아봤다.

“아이린 당신이 훌륭한 검술사인 것은 인정합니다. 하지만 당신은 황금 기사들과 철혈 마법 병단의 전술에 대해 아무것도 모릅니다. 예측된 상황이라면 모를까 지금처럼 긴급한 상황에 아이린 경의 개입으로 전술이 흐트러질 수 있습니다. 그러니 제가 필요하다고 요청을 드릴 때까지 안전하게 계시죠.”

“그건…….”

“저는 이만.”

아이린은 뭔가 반박하려고 해보려 했지만, 필립은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하고 곧바로 떠났다.

아이린은 주먹을 부서져라 쥐었다.

대대장의 말은 틀린 게 하나도 없었다.

하지만 분했다.

오래전 혈귀와 싸우던 아빠와 오빠가 죽을 때도 로라와 아이린은 벙커에 들어가 숨을 죽이며 제발 아빠와 오빠가 살아 돌아오길 기도 했을 뿐이었다.

그런데 이번에도 숨으라고?

그건 용납할 수가…….

[넌 분노로 무뎌진 칼날과도 같다.]

아이린은 문득 용살에 대하여 적힌 티그리스의 글귀가 떠올랐다.

[분노는 이룰 수 없는 일을 가능케하는 힘의 원천이 되지만 너는 너무 과하다.]

[분노를 이용해라. 휘둘리지 말고.]

아이린은 심호흡을 했다.

그러자 안 보이던 것들이 보였다.

황금 기사단들은 모두 아우로므의 비늘로 된 방패를 들고 필립과 팀장들의 명령을 들으며 일사불란하게 자리를 잡고 있었다.

철혈 마법 병단들은 탐색 마법을 진행하는 쪽과 명상을 하며 마법을 준비하는 쪽으로 나뉘어 빠르게 준비하고 있었다.

열차에서 내린 병사들과 장군들은 모두 숲 쪽에 임시 방벽을 세우거나 가드 포인트로 들어가 방어선을 구축하고 있었다.

오직 아이린만 아무것도 하고 있지 않았다.

아이린이 단순한 검술가였다면 보이지 않았을 광경.

아이린은 티그리스가 왜 자신에게 우로스 공략 계획을 세우게 했는지 조금 이해가 갔다.

이렇게 잘 짜여진 조직에 아이린이 들어가면 오히려 방해만 될 것이라는 게 한눈에 보인다.

“……고든 경. 가죠.”

포기하는 것이 아니다.

타이밍이 아닐 뿐.

아이린은 발전하고 있었다.

* * *

필립은 오직 혈귀를 대응하기 위한 전술훈련을 수없이도 많이 진행했다.

베오울프는 페이라와 검을 마주했을 때의 전투 데이터를 아낌없이 풀었고, 덕분에 그에 맞는 전투 훈련을 진행할 수 있었다.

그건 철혈 마법 병단 제5팀도 마찬가지였다.

“테오도르. 혈귀의 위치는 파악이 되었소?”

“아직 감지 마법에 걸리는 것은 없소. 적어도 10㎞ 내엔 없는 모양이요.”

“감지되면 무조건 말씀해 주시오.”

테오도르는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로 돌아갔다.

필립은 드래곤의 비늘로 만들어진 방패를 다시 점검했다.

혈귀의 가장 큰 약점은 ‘검술’과 ‘검기’를 구사할 줄 모른다는 점이다.

그저 빠른 반응속도와 파괴력으로 쓸어버리기만 할 뿐.

물론 그 파괴력과 속도가 7성 기사에 준할 정도라는 게 문제이긴 하지만, 대검의 강도가 그리 견고하지 못해 생각보다 쉽게 부술 수 있다고 베오울프가 알려주었다.

그래서 대혈귀 전술의 핵심은 대검을 부술 수 있는 무기와 완력을 갖추는 것.

그러나 제아무리 황금 기사라고 한들 혈귀의 대검을 부술 수 있을 리 없다.

그러니 차선책으로 베르강과 필립은 대검을 부수거나 막을 수 있는 드래곤의 비늘로 만든 방패를 만들어달라고 부탁했다.

드워프들은 베르강과 필립의 요청을 기대 이상으로 충족시켜 주었다.

이 방패엔 무려 ‘반감’과 ‘파쇄’ 인챈트가 걸려 있었고, 혈귀의 대검 공격을 손쉽게 막아냄과 동시에 대검에 유의미한 타격을 줄 수 있도록 해주었다.

‘무조건 상대할 수 있어.’

필립은 황국의 힘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무조건 이길 수 있다.

“전방 10㎞ 지점 혈귀 출현!”

테오도르의 보고에 필립은 곧바로 명령을 내렸다.

“모두 방패 들어!”

황금 기사단은 방패를 어깨 위로 올려세운 뒤 몸을 낮췄다.

“5㎞!”

1분도 채 지나지 않았는데 5㎞를 순수하게 뛰어서 왔다.

인간을 초월한 말도 안 되는 돌진 속도다.

이제야 필립의 눈에 혈귀가 보였다.

하얀 사제복을 입은 거대한 인간.

필립도 190㎝의 장신임에도 불구하고 덩치에서 밀릴 것 같았다.

필립은 제일 앞에 서서 방패를 들었다.

“충격 대비!”

“디버프 마법을 걸어라!”

테오도르의 명령에 온갖 디버프 마법이 쏟아졌다.

몸을 느리게 만드는 ‘슬로우’ 마법부터 시작해 시야를 방해하는 ‘검은 안개’ 마법, 방향 감각을 뒤트는 마법까지.

그러나 혈귀의 속도는 줄지 않았다.

테오도르의 표정이 굳어졌다.

“디버프 면역 성물을 들고 있는 건가?”

길리온 왕국의 지원을 받는 혈귀에게 마법 면역 성물 하나 없으리라 생각지도 않았다.

그저 확인한 것일 뿐이다.

테오도르는 미리 준비해 둔 6서클 마법 다중 익스플로전 마법을 사용했다.

콰과과광!

혈귀의 몸에 작은 익스플로전 마법이 연달아 터졌다.

익스플로전 마법보다 위력은 약하지만 한 번에 12번의 공격을 가함으로써 몸의 균형을 흔들어보려 했던 것이다.

하지만 혈귀의 양손에 들려 있던 네 자루의 대검이 익스플로전 마법을 모두 막아냈다.

놈은 약 300m 정도를 앞에 두고 4자루의 대검을 쏘았다.

“충격!”

필립의 방패에 대검 한 자루가 박혔다.

열차에 치이는 것 같은 충격에 필립은 순간적으로 정신을 잃을 뻔했다.

하지만 두 다리에 힘을 풀지 않았다.

“으아아아아!”

필립은 황금 기사단에 있는 3명의 6성 기사 중 하나.

대검 하나도 감당하지 못한다면 승산이 없다.

필립의 발이 밀려나며 필립에 뒤에 있던 기사가 필립의 몸을 방패로 막았다.

무려 세 명이 달려들어 대검을 기어코 막아냈다.

다른 대검들도 마찬가지였다.

황금 기사 10명이 한 조가 되어 대검 하나씩을 맡아 막아내고 있었다.

“으아아아악!”

하지만 다른 세 자루의 대검 중 한 개의 대검은 막아내지 못하고 오른쪽 열이 박살이 났다.

역시 훈련과 실전은 다르다.

필립은 이를 악물었다.

뭉개진 오른쪽으로 다른 대검들이 파고드는 순간 전열이 붕괴되고 만다.

필립은 방패를 틀어 대검의 경로를 바꾼 후 검을 내리쳤다.

쾅!

대검과 이어진 촉수와 필립의 검기가 부딪히자 강철을 때리는 듯한 소리가 들렸다.

“무슨……!”

촉수가 단단한 것을 넘어 질기다.

분명 베오울프의 말에 따르면 대검과 이어진 촉수 정도는 검기로 충분히 베어낼 수 있는 강도라고 들었다.

그런데 촉수의 10분의 1 정도만 박혔을 뿐 더 이상 들어가지 않았다.

훙!

대검들이 모두 회수되며 혈귀가 멈췄다.

혈귀는 하얀 두건을 쓰고 있어 얼굴이 보이지 않았지만, 왠지 필립은 그가 웃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대단하군. 나를 상대하기 위해 고안된 전술인가?”

혈귀는 대검 네 자루를 치켜세웠다.

“하지만 그건 알아뒀어야지.”

투둑-! 툭-!

붉은 대검 중 두 개가 부서지기 시작했다.

그 파편들은 마치 살점처럼 질척이며 떨어졌고, 그 안에 숨겨져 있던 검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하나는 비교적 짧은 세검 모양의 검이었고, 다른 하나는 화려한 보석 장식이 붙어 있는 대검이었다.

중요한 건 그 검에서 뿜어져 나오는 붉은 기운이었다.

“설마…….”

마나처럼 거칠지 않고 안정되며 차분한 기운.

저건 분명 신성력이다.

“자네들이 성장하는 만큼 나도 성장한다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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