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재는 천재가 가르친다. 246화
악몽(1)
검은 티그리스의 공격이 여신의 방패에 튕겨져 나가며 균형을 잃는다.
네메시스는 그 틈을 놓치지 않았다.
검은 티그리스가 다시 네메시스의 단검에 찔려 사라진다.
이렇게 죽은 검은 티그리스의 숫자만 10명.
매튜 왕자는 검은 티그리스가 죽어 나갈수록 미쳐갔다.
“아니야! 아니야! 아니야!”
매튜 왕자의 입에서 다시 검은 연기가 뿜어져 나온다.
그러나 이번엔 지금까지 봐왔던 검은 티그리스의 모습이 아니었다.
티그리스보다 한 뼘은 더 크고 몸에서 뜨거운 아지랑이가 피어올랐다.
“아니라고! 내, 내가 꿈에서 본 티그리스는 이렇게 약하지 않아.”
놈이 달려든다.
“더 빠르고!”
놈의 돌진에 땅이 부서지고 주변 공기가 삽시간에 달아오른다.
쿵-!
라칸은 괴물의 공격을 여신의 방패로 받아쳤다.
괴물은 검을 휘둘렀으나 반사된 충격을 감당하지 못하고 몸이 조각났다.
“더 강하고!”
그러나 금세 매튜 왕자는 검은 티그리스를 만들어냈다.
놈이 여신의 방패에 다시 부딪혀 온다.
검은 티그리스가 박살이 나고 찢겨 나갈수록, 새롭게 탄생한 검은 티그리스의 모양새는 본연의 모습을 잃어갔다.
이젠 저게 티그리스라고 보기에도 어려운 것들이 여신의 방패를 향해 날아왔다.
쿵-! 쿵-! 쿵-!
라칸은 쑥쑥 빠져나가는 마력에 정신을 잃을 것 같았다.
일리야드의 등불이 초대형 마력 저장고에 들어 있는 마력을 쭉쭉 빨아들여 라칸의 몸에 마력을 주입해 주고 있지만, 소모되는 양이 더 많았다.
“더 무서워!”
마지막 그림자 괴물은 아예 티그리스의 모양새가 아니었다.
그저 커다란 대검을 든 불의 거인이나 마찬가지였다.
라칸은 사력을 다해 마력을 다 짜냈다.
콰아아앙-!
굉음과 함께 주변에 먼지가 자욱하게 깔렸다.
이번에야말로 부서질 생각했던 여신의 방패는 굳건했다.
매튜 왕자는 두려운 눈빛으로 라칸을 쳐다봤다.
“이건 말도…….”
빈틈만을 노리고 있던 네메시스가 매튜 왕자의 뒤로 그림자를 타고 이동했다.
네메시스의 단검이 매튜 왕자의 심장을 매섭게 노린다.
섬?-!
“네메시스 피해요!”
네메시스의 생존 본능이 도망치라고 말을 하지만 네메시스는 멈추지 않았다.
이미 검을 빼기엔 너무 늦었기 때문이었다.
네메시스는 매튜 왕자의 심장에 단검을 박아 넣었다.
훙-!
그러나 살점을 가르고 뼈를 부수는 감각이 아닌 허공을 가르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매튜 왕자는 놀랍게도 네메시스의 공격을 피해냈다.
“흐! 흐흐흐흐! 너, 너무 뻔하다고 생각하지 않아?”
“젠장할!”
매튜 왕자의 손이 네메시스의 팔뚝을 잡았다.
그리고 놈은 네메시스의 얼굴에 입김을 불었다.
“후~”
매튜 왕자의 입에서 나온 검은 연기가 네메시스의 얼굴에 직격했다.
네메시스는 보지도 않고 그림자를 타고 뒤로 이동했다.
“네메시스 괜찮아?!”
트리샤는 네메시스의 상태를 확인하려 했다.
“다가오지 마!”
네메시스의 입에서 매튜 왕자처럼 검은 연기가 뿜어져 나왔다.
“이, 이게 뭐지?”
네메시스는 입에서 흘러나오는 검은 연기를 매만졌다.
끔찍할 만큼이나 차갑고 무겁다.
그 검은 연기 속에서 우악스러운 손 하나가 뻗어 나와 네메시스의 목덜미를 잡아챘다.
“컥!”
검은 연기 속에서 트리샤나 라칸도 처음 보는 사내가 튀어나왔다.
하지만 네메시스는 이 사람이 누구인지 아주 잘 알고 있었다.
네메시스가 어렸을 적 자신과 언니를 납치했었던 밀렵꾼이었다.
네메시스가 단검으로 밀렵꾼의 심장을 찌르려 했지만, 밀렵꾼은 이미 알고 있었다는 듯이 네메시스의 팔을 막고 씨익 웃었다.
-흐흐흐. 비싸게 팔리겠어.
트리샤의 검이 밀렵꾼의 등허리를 갈랐다.
검은 연기로 사라지는 밀렵꾼.
“콜록! 콜록!”
네메시스의 기침에 섞여 다시 검은 연기가 뿜어져 나왔다.
그 검은 연기는 한데 모이더니 다시 밀렵꾼이 튀어나왔다.
밀렵꾼은 실실 웃으며 활시위를 당겼다.
화살이 네메시스의 심장을 향해 날아간다.
트리샤가 화살을 막아냈다.
저릿- 저릿-
화살이 얼마나 강한지 손이 다 저릴 정도였다.
“저게 뭐야? 네메시스?”
“……전에 나랑 언니를 납치했었던 밀렵꾼.”
“뭐?”
네메시스가 수인 해방 전선 ‘리베르’에 들어간 이유가 바로 저 밀렵꾼 때문이었다.
어렸을 적 저 이름 모를 밀렵꾼이 숲에서 놀고 있는 네메시스와 언니를 납치했었고, 다행히 어른들의 도움으로 살아 돌아올 수 있었다.
하지만 그 일 때문에 어렸을 적 극심한 트라우마에 걸려 매일같이 악몽을 꾸곤 했다.
저런 하찮은 밀렵꾼들 따위에게 당하지 않을 정도로 강해지자 더 이상 꿈에 나오지 않았지만…….
이상하게도 저 밀렵꾼을 보면 네메시스는 무기력하게 납치당해야만 했던 어린 시절로 돌아가는 듯했다.
쩡-!
검은 티그리스가 트리샤를 기습했다.
라칸이 여신의 방패를 사용해 간신히 막아냈다.
매튜 왕자는 다시 검은 티그리스를 만들어내며 말했다.
“이, 이제 두, 둘이다.”
트리샤는 입술을 씹었다.
저 유약해 보이는 겉모습에 현혹되었다.
그래도 녀석은 아르펨의 권속.
뭔가 숨기고 있는 한 수 정도는 있을 것이라 예상하고 있었어야 했는데…….
“매튜 왕자님을 지켜라!”
“모두 방진을 구축해!”
심지어 뿔뿔이 흩어져 있던 성기사들과 사제들도 몰려들어 매튜 왕자를 둘러쌌다.
좀 전처럼 기습 공격하는 것도 이제 불가능한 상황이다.
“이제 어떻게 하지?”
그때, 하늘에서 귀곡성이 울려 퍼졌다.
-히히히히히!
매튜 왕자는 기겁했다.
“이, 이게 무슨 소리야?”
원혼들이 하늘 높이 솟구치더니 폭포처럼 쏟아졌다.
그들이 노리는 것은 성기사들과 사제.
사제들은 급히 기도 마법을 펼쳤지만, 땅에서 솟구쳐 올라온 원혼들을 막아내지 못했다.
“으아아아아악!”
사제들과 성기사들이 미쳐 날뛰며 서로에게 칼질을 했다.
트리샤는 이게 어떤 상황인지 단번에 알아차렸다.
“아모리스 님이다.”
아모리스와 샤를로트가 빗자루를 타고 날아와 옆에 붙었다.
“버티느라 고생 많았어.”
아모리스는 번뜩이는 낫을 들고, 샤를로트는 검을 들었다.
“이제 우리가 뭘 하면 되지?”
* * *
레인로버는 숨을 가쁘게 몰아쉬었다.
고산지대라서 그런지 숨만 쉬고 있어도 숨이 차는 듯한 느낌이다.
“저긴 것 같죠? 베르강 경?”
“네. 그런 것 같습니다.”
레인로버는 길리온의 왕국의 수도 바로 앞에 있는 여신의 산맥 꼭대기에 도착했다.
동부 전선에서 열차를 타고 이동해도 무려 이틀 정도 되는 거리를 하루하고 반나절 만에 도착한 방법은 아주 무식하면서도 간단했다.
그냥 달리는 것이었다.
베르강은 무려 7성 기사이기 때문에 마음먹고 달리면 열차만큼이나 빠르게 이동할 수 있다.
그렇다면 레인로버는 어떻게 했을까?
레인로버는 미쉬타의 등에서 내려왔다.
“고생했어요. 미쉬타.”
-오히려 레인로버 황녀님이 더 고생하셨죠.
미쉬타의 등에 업힌 채 계속 달리는 것이었다.
물론 위아래로 계속 흔들리는 탓에 멀미가 나서 죽을 뻔했지만, 이 정도 멀미는 참을 수 있었다.
레인로버는 망원경을 들고 수도를 내려다봤다.
레인로버가 주목한 것은 수도 정중앙에 위치한 하얀 신전.
“저 신전 아래에 게이트가 있다는 게 사실이겠죠?”
“기록 보관소에 따르면 그렇습니다. 아마 페이라도 저 게이트를 타고 이동했을 가능성이 있겠죠.”
“그럼 흑토 지대에도 게이트가 있다는 말인데…….”
“그건 일단 나중에 생각하도록 하죠. 숨은 다 고르셨습니까?”
레인로버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다시 달리도록 하죠. 산을 내려가는 거니 얼마 안 걸릴 겁니다.”
* * *
티그리스는 성전 지하를 부수며 내려갔다.
미로나 다름이 없는 이 지하를 헤맬 바에는 부수고 들어가는 편이 훨씬 나았으니까.
멈칫-
그렇게 지하를 부수며 내려가던 티그리스의 검이 멈췄다.
주변을 둘러보니 인간의 사체들이 가득했다.
문제는 이 사체들이 종류별로 잘 정리되어 있었다는 것이었다.
“…….”
사람의 팔과 다리 그리고 몸통과 머리가 마치 박물관에 온 것처럼 선반에 차곡차곡 정리되어 있었다.
이 미친놈들이 무슨 짓을 벌였는지 티그리스는 보지 않고도 알았다.
이 녀석들은 성전 지하에서 키메라 실험을 한 것이다.
물론 티그리스도 성전 지하에서 키메라 실험을 하고 있다는 것은 익히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하지만 직접 목격하진 않았다.
티그리스는 진심으로 분노할 수밖에 없었다.
티그리스가 이 시체들을 죄다 태워 버리려 했던 순간 시체들의 몸에서 하얀 연기가 흘러나왔다.
그 하얀 연기는 원혼으로 변했다.
-으아아아아아아!
귀곡성이 실험실 내부를 가득 메우고, 원혼들은 벽과 문을 뚫고 사방으로 퍼져 나갔다.
티그리스는 원혼들을 따라 시체 보관소 문을 열었다.
문을 열고 나가자 넓은 키메라 실험실이 나타났다.
“으아아아아아악!”
“살려줘어어어!”
“성기사들은 당장……! 으아아아악!”
원혼들이 실험실 내부를 휘저으며 숨어 있던 사제들과 성기사 그리고 연구자들의 몸에 빙의해 죽이기 시작했다.
모조리 불태우고 서로가 서로를 죽이는 모습은 마치 지옥과도 같았다.
떠돌던 원혼 하나가 티그리스를 쳐다보더니 방 하나를 가리켰다.
티그리스가 그 방문을 열자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이 나타났다.
이들이 그저 악령이었다면 티그리스의 몸에 빙의하려 시도를 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들은 모두 한 혼령술사에 의해 통제받는 원혼들.
이들의 주인이 누구인지 고민하지 않아도 아모리스란 걸 알아차릴 수 있었다.
-따라와요.
원혼은 티그리스를 안내했다.
티그리스는 원혼을 따라 복잡한 지하 내부를 이리저리 이동했다.
지하에 있던 성기사들과 사제들이 분투하고 있었으나 갑작스러운 기습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
그 때문에 티그리스는 검을 휘두를 필요도 없었다.
얼마나 달렸을까?
티그리스는 지하에 자리한 거대한 자연 동굴을 마주했다.
자연 동굴 내부엔 절벽이 있었고 그 아래로 작은 지하수 폭포가 떨어지고 있었다.
원혼은 폭포를 가리켰다.
폭포 위엔 티그리스도 익히 알고 있는 성배가 매달려 있었다.
‘설마 이게 전부 다 성수?’
지하수 끝에는 성수를 위로 끌어 올릴 수 있는 거대한 물레방아가 있었다.
끼익- 끼익-
티그리스가 온 지도 모르고 물레방아를 열심히 돌리는 다리가 4개씩 달린 괴물들.
그들의 등은 채찍을 맞은 흉터로 가득했다.
티그리스의 검에서 은빛 검강이 일렁였다.
저 성배를 부수기만 하면 길리온 왕국의 패배로 끝이 난다.
성배가 부서지면 성수를 기반으로 만들어진 모든 키메라들은 자멸하고 말 것이고, 성기사들과 사제들 또한 무한 치유 능력이 사라질 것이다.
티그리스는 검을 휘둘렀다.
그러나 방향은 성배 방향이 아니었다.
폭포가 갈라지며 폭포 뒤에 숨겨져 있는 작은 방이 드러났다.
쾅-!
그 방에는 새하얀 사내 하나가 미소를 지으며 서 있었다.
아르펨이었다.
* * *
본래 혼령술사와 성직자는 상성 자체가 맞지 않는다.
사제의 기도 마법이 한번 펼쳐지면 혼령들은 고통을 이기지 못하고 제령당해 버리니까.
실제로 혼령들이 처음 나타났을 때 당황해서 그렇지 사제들이 본격적으로 기도 마법을 사용하자 원혼들은 맥없이 제령당했다.
“매튜 왕자님을 지켜!”
사제들이 신성 배리어 마법을 사용한다.
혼령들이 배리어에 부딪히자 몸에 황금빛 불이 붙으며 고통에 몸부림을 친다.
성기사들 또한 신성력이 가득 담긴 원혼들을 베어 넘기자 원혼들은 비명을 지르며 죽어 나갔다.
“이대로만 버티면…….”
서걱-
신성 배리어가 부서짐과 동시에 사제의 목이 붉은 호선을 그리며 날아간다.
그 틈을 비집고 샤를로트와 트리샤가 들어가 양들 사이를 뛰노는 늑대처럼 학살을 했다.
그르르르-
잘려 나간 살점이 금세 부풀어 오르며 재생한다.
“징그러운 놈들!”
아모리스는 구멍 난 배리어의 틈을 비집고 들어온 원혼들을 보며 말했다.
“걱정 마. 이제 저 녀석들도 자기들이 얼마나 짜증 나는 놈들인지 알게 될 거야.”
재생하는 녀석들의 몸으로 원혼들이 파고든다.
“아아아아악!”
원혼에 몸을 빼앗긴 성기사들과 사제들이 난동을 부린다.
옆에 있던 성기사들이 목을 베어 넘기지만, 다시 목이 재생하며 성기사들을 공격한다.
점점 몸을 빼앗기는 성기사들과 사제들이 더 많아지더니 급기야 원혼들이 성기사들과 사제들을 둘러싸는 형국으로 변하고 말았다.
“이대로 조금만 더……!”
네메시스의 심장을 향해 검은 화살 하나가 날아왔다.
네메시스는 기겁하며 막아내려 했지만, 라칸의 여신의 방패가 더 빨랐다.
검은 화살은 그대로 밀렵꾼에게 돌아가더니 놈의 목을 뚫고 사라졌다.
“방심하지 마세요! 아직 매튜 왕자는 죽지 않았어요!”
검은 티그리스가 트리샤를 기습한다.
트리샤는 간신히 검을 막아냈지만, 완력을 이겨내지 못하고 결국 뒤로 쭉 미끄러졌다.
아모리스는 어처구니없다는 듯이 검은 티그리스를 쳐다봤다.
“저건 또 뭐야?”
라칸이 아모리스의 옆에 붙어 설명했다.
“매튜 왕자의 능력이에요. 악몽을 현실 속으로 불러오는 그런 능력인 것 같아요.”
“그런데 왜 저기서 티그리스가 나온 건데?”
“매튜 왕자의 악몽이 티그리스 교관님인가 봐요.”
아모리스는 성기사들의 틈에 숨어 덜덜 떨고 있는 매튜 왕자를 쳐다봤다.
“그러니까 한마디로 저놈만 죽이면 끝이란 거 아니야?”
아모리스는 매튜 왕자를 향해 손을 뻗었다.
원혼들이 모두 매튜 왕자 쪽을 쳐다보더니 달려든다.
성기사들과 사제들이 혼신을 다해 막지만 원혼들의 양이 말도 되지 않았다.
매튜 왕자의 손톱에서 피가 줄줄 흐른다.
“아니야. 아니야. 아니야. 난 죽고 싶지 않아. 난 죽고 싶지 않아!”
매튜 왕자의 바로 옆에 있던 성기사가 원혼 하나를 놓치며 그대로 빙의당했다.
훙-!
성기사는 곧바로 매튜 왕자를 향해 검을 휘둘렀다.
갑작스러운 배신에 그 누구도 반응하지 못했고, 매튜 왕자는 자신의 목을 향해 날아오는 검을 보더니 비명을 질렀다.
“난 죽고 싶지 않아!!!”
매튜 왕자의 입에서 터져 나온 검은 연기가 폭탄처럼 터져 나왔다.
* * *
아르펨은 티그리스의 앞에 섰다.
티그리스의 손가락이 꿈틀거렸다.
당장에 아르펨의 목을 날려 버리고 싶은 생각이 머리끝까지 솟구쳤지만 섣불리 검을 움직이기 힘들었다.
이유를 찾자면 많았다.
첫 번째로 놈이 무슨 수를 숨기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지금까지 티그리스에게서 도망치고 숨어 다닌 주제에 뻔뻔하게 모습을 드러내는 건 뭔가 숨겨져 있는 한 수가 있다는 뜻이다.
두 번째로 지금의 티그리스는 아르펨을 죽일 수 없다.
레비스 때처럼 천공의 사슬로 심장을 꿰뚫은 후 영혼을 봉인해 버리는 방법을 사용한다면 가능은 하다.
하지만 세 번째 이유 때문에 불가능하다.
“오슬로는 계속 숨겨둘 생각인가?”
“어이쿠 들켰군.”
오슬로가 폭포를 뚫고 걸어 나왔다.
오슬로는 생각보다 많이 성장해 있었다.
오슬로의 심장엔 6개의 고리가 돌고 있었다.
심상에 대한 깨달음만 있었다면 곧바로 7성 기사가 될 수 있었을 정도로 육체의 완성도는 높았고 오러의 양 또한 충분했다.
“동부 전선은 어떻게 하려고 오슬로를 여기에 데려온 거지? 포기한 건가?”
키메라들이 강력하다고 하나 동부 전선엔 나달이 가 있다.
그 외에도 테호를 비롯한 강인한 수인족 전사들과 길리온 왕국과의 전쟁만을 대비해 양성한 5개 군단이 합류해 있는 상태이다.
오슬로가 이곳에 있다면 동부 전선은 무조건 무너지게 되어 있다.
“음……. 그쪽 전선은 별로 상관이 없다. 길리온 왕국이 무너져도 별 상관이 없기도 하고. 중요한 건 바로 여기에 있지.”
아르펨은 티그리스를 가리켰다.
“자네 하나면 충분해.”
오슬로가 티그리스를 향해 덤벼들었다.
티그리스는 오슬로의 공격을 받아냈다.
날카롭고 빠르며 묵직하다.
하지만 미숙했다.
티그리스는 검을 받아친 뒤 오슬로의 목을 올려 쳤다.
한 동작이나 다름이 없는 완벽한 움직임.
오슬로는 막을 새도 없이 죽음을 맞이했다.
하지만 티그리스나 아르펨이나 전혀 동요하지 않았다.
오슬로는 다시 폭포를 뚫고 걸어 나왔다.
“소용없다. 아르펨. 오슬로가 수백 번 다시 태어나도 나를 이길 수 없어. 물론 그 전에 네 목을 날리는 게 빠를 거다.”
아르펨은 피식 웃었다.
“그래. 바로 이게 내가 지금까지 패배한 이유다. 넌 나에 대해 너무 많은 것을 알고 있다. 펠렌이나 페이라, 오슬로…… 뭐, 기타 등등. 내 권속들의 능력에 대해 너무나도 잘 알고 있지. 아마 내가 누군지도 알고 있겠지.”
“하지만 나는 너에 대해 모른다. 너를 이해했다고 생각한 순간 너는 내 예상을 벗어날 정도로 성장해 있더군.”
아르펨은 성배를 가리켰다.
“그래서 도저히 거부할 수 없는 미끼를 이용해 너를 이곳에 부른 것이다.”
“그러니까 이곳은 네가 판 함정이다 이 말 아닌가?”
“왜? 별거 없어 보이나? 하지만 곧 생각이 바뀌게 될 걸세.”
티그리스는 아르펨의 시선을 따라 천장을 쳐다봤다.
천장 곳곳에서 검은 연기가 새어 나왔다.
아르펨은 티그리스의 표정을 보더니 웃었다.
“왜? 저 악몽의 안개는 처음 보는 건가 보지? 저게 도대체 무슨 능력일까 예상도 안 가는 모양이야. 그럼 절반은 성공했군.”
콰광-!
오슬로가 검기를 날려 동굴 천장을 부수기 시작했다.
진득한 검은 연기가 폭포처럼 쏟아져 흐르더니 동굴을 빠르게 메우기 시작했다.
“기대해도 좋아. 오늘 자네는 자네가 생각하는 최악의 상대를 만나게 될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