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는 천재가 가르친다-249화 (249/251)

천재는 천재가 가르친다. 249화

악몽(4)

리니아의 검이 점점 변하기 시작했다.

리니아의 검에서 시작된 가시들이 리니아의 손을 타고 올라가 어깨까지 깊게 파고들었다.

리니아는 고통스러움에 눈썹을 찌푸리고 신음을 흘렸다.

그러나 그녀가 겪는 고통만큼 검격은 놀랍도록 날카로워지고 강해졌다.

아르펨이 리니아에게 준 능력은 아주 간단하다.

아프면 아플수록 더욱 빨라지고 강해지는 ‘눈물을 먹는 꽃’이라는 능력이었다.

티그리스는 리니아가 흘리는 검은 눈물과 피에 심장을 도려내는 것처럼 아파왔다.

-오라버니. 날 왜 버렸어요?

리니아의 검이 티그리스의 검을 물어뜯는다.

-나도 많이 아팠는데…… 나도 아빠를 잃어서 정말 많이 힘들었는데…… 왜 날 보듬어주지 않았나요?

이런 말을 리니아가 한 적이 없다.

리니아는 티그리스보다 너무나도 어른스러워서 자신의 아픔을 홀로 삭였으니까.

이건 티그리스가 악몽 속에서 리니아로부터 들었던 말들이었다.

-오라버니가 미워요.

리니아의 검에 붙은 가시가 티그리스의 얼굴을 스치고 지나간다.

처음으로 티그리스의 얼굴에 생채기가 났다.

-그러니 오라버니도 저만큼 아파야 한다고 생각해요.

리니아의 검에 붙은 가시들이 티그리스의 몸에 달라붙어 살점을 뜯어낸다.

티그리스는 아르펨의 말을 인정하기로 했다.

이건 티그리스를 위한 최고의 함정이다.

지금의 리니아는 티그리스가 도저히 베어내기 어려웠다.

리니아의 눈물 젖은 검이 티그리스의 목을 향해 날아온다.

티그리스는 그 검을 손으로 막아냈다.

드래곤의 비늘로 만들어진 건틀릿 사이로 리니아의 핏물과 함께 작은 가시들이 스며들며 티그리스의 손바닥을 엉망진창으로 만들었다.

티그리스는 리니아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리니아.”

리니아는 티그리스를 물끄러미 쳐다봤다.

“내가 내 손으로 너를 보내야만 했던 그날, 넌 한 줌의 재로 변해 사라져 널 내 가슴속에만 묻어야만 했다.”

리니아의 가시가 티그리스의 갑옷 속을 비집고 들어와 티그리스의 왼손을 으스러뜨렸다.

그러나 티그리스는 신음조차 내지 않았다.

오히려 고통을 더욱 깊숙하게 음미했다.

리니아가 겪은 고통과 슬픔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니까.

“아버지를 잃었을 때도, 노르베르드를 잃었을 때도, 어머니를 잃었을 때도 나는 잘못을 내게서 찾지 않고 적에게서 찾았다.”

“하지만 너만큼은 달랐다. 네 죽음은 오로지 나로 시작해 나로 끝났기 때문이었다.”

티그리스의 목소리가 떨린다.

“너를 좀 더 아껴주고 사랑해 주었더라면 너와 내가 이런 비극을 맞이하지 않아도 되지 않았을까? 네가 나와 가족의 기억을 잊어버리고 싶을 만큼 아파했다는 것을 미리 알았다면 너를 이리 보내지 않았을 것이라 자책하고 또 자책했다.”

리니아의 가시가 티그리스의 목을 타고 얼굴까지 올라온다.

“그래서 너를 떠나보낸 이후로 나는 밤을 두려워했다. 매일 밤 내가 너의 심장을 가르는 악몽이 나타나 나를 괴롭혔으니까.”

“하지만 나는 더 이상 밤을 두려워하지 않게 되었다.”

번져가던 리니아의 가시가 멈춘다.

“살아 있는 너를 다시 만나 맛있는 것을 나눠 먹고 예쁜 거리를 함께 걸으며 함께 미소 지은 평범하지만 소박한 하루하루가 후회로 점철된 내 악몽을 몰아내 주었다.”

“난 네 덕분에 이 지옥 같은 죄책감과 악몽 속에서 구원을 받은 거다.”

리니아의 메마른 입술이 열린다.

-그럼 이제 나를 잊은 거야? 난 이렇게 아팠는데.

“아니, 평생 잊지 않을 것이다.”

티그리스는 리니아의 이마에 입을 맞추었다.

“내 손에 죽어갔던 너를 평생 떠올리며 너를 평생 사랑하겠다. 너를 소중하게 대해주겠다. 너를 아껴주겠다.”

티그리스의 손을 으스러뜨리고 상처 입혔던 가시가 점점 사라져 간다.

“그러니 너는 더 이상 나의 악몽이 아니다. 넌 내 후회도 아니다. 내 과거도 아니다.”

“리니아, 너는 나와 함께 지금을 살고 있다.”

리니아의 고개가 작게 끄덕인다.

리니아는 검은 연기와 함께 사라졌다.

티그리스는 손에 남아 있는 고통을 포션으로 지우지 않고 뒤로 걸어갔다.

어느 정도 걸어가니 천공의 사슬이 보였다.

티그리스는 천공의 사슬을 찾아 당겼다.

“크아아아악!”

아르펨이 딸려 나오며 티그리스의 앞에 나동그라졌다.

티그리스는 아르펨의 머리를 짓밟으며 검을 목에 올렸다.

티그리스의 목소리가 짐승처럼 으르렁거렸다.

“저번처럼 너를 절대 놓치지 않으마. 로타도 그리고 우노도, 다신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네놈들에게 잃지 않도록 하겠다.”

아르펨은 킬킬 웃었다.

“왜? 우리가 그리도 두렵나?”

울컥-

아르펨의 말뚝이 조금 밀려 나왔다.

다시 보니 티그리스가 박아 넣은 것보다 더 밀려 나와 있었다.

“두렵겠지. 여기서 나를 놓치면 언제 또 내가 나타나 너와 너를 사랑하는 사람을 지옥으로 끌고 갈지 모르니까.”

티그리스는 아르펨의 말뚝을 발로 밟아 더 집어넣으려 했지만, 이상하게도 들어가지 않았다.

“소용없는 짓이다. 이미 이 사슬에 익숙해졌거든.”

티그리스는 이해할 수 없었다.

레비스도 천공의 사슬에서 벗어날 수 없었는데 어떻게 아르펨은 밀려 나올 수 있다는 건가?

“놀란 눈치로군. 아마 천공의 사슬로 내 영혼을 영원히 속박해 둘 생각인 모양인데, 그건 불가능할 거다. 난 너와 같은 평범한 인간이 아니야. 난 성좌다.”

아르펨은 하늘을 쳐다봤다.

“내 본질은 저 하늘에 있다. 그리고 로타 그 녀석처럼 영혼을 반으로 나누지도 않았어. 그러니 날 이런 하찮은 성물 따위로 속박해 두려고 하는 건 오만한 생각이다. 티그리스.”

아르펨은 재밌다는 듯이 웃었다.

“그러니 너는 평생 두려움에 떨어라. 아니, 이 악몽에서 영원히 썩어라. 네 정신과 육체가 마모될 때까지 네 악몽에 시달리다가 죽는 것이다.”

그때, 하늘에서부터 검은 안개가 걷혀가기 시작했다.

무너진 동굴이 그대로 드러났다.

아르펨은 당황했다.

“이게 어떻게…….”

-치치직- 치직- 티그리스 님! 매튜 왕자를 샤를로트가 죽였습니다! 이제 아르펨을 끌고 올라오시면…… 치직-

티그리스는 수정구를 품속에 집어넣었다.

“그렇게 된 모양이군.”

그때, 티그리스의 뒤로 날카로운 살기가 느껴졌다.

티그리스는 검을 들어 공격을 막았다.

오슬로였다.

“아르펨 님을 놔줘.”

오슬로의 눈에 살기가 가득 담겨 있었다.

“난 아르펨 님이 없으면 안 돼.”

* * *

넌 검술사가 되어라.

이 말 한마디에 오슬로의 미래는 정해졌다.

그때의 감정을 어떤 말로 표현할 수 있을까?

정확하게 말로 표현할 수 없어, 단순하게 좋다 싫다라고 구분한다면 좋은 축에 속했다.

처음엔 누군가에게 검을 배우진 않았다.

아르펨은 실전에서 배우는 것만큼 좋은 것은 없다며, 곧바로 전쟁터로 보냈으니까.

얼마나 죽었는지는 세보지 않아 알 수 없었다.

처음엔 우왕좌왕하며 검을 어떻게 쥐어야 하는지도 몰랐지만, 살기 위해 몸부림을 치다 보니 검을 어떻게 쥐는지 어떻게 휘둘러야 하는지 본능적으로 알게 되었다.

어느 정도 근육이 붙고 실전 경험이 많아지자 아르펨은 그제야 검술 스승을 붙여주었다.

검술 스승의 이름은 잘 기억나지 않는다.

길리온 왕국의 유명한 성기사라고 하던데, 아무튼 그 사람에게 기초적인 검술 지도를 받았다.

그 이후 다시 전쟁터에 보내졌다.

장소는 흑토지대였고 그때 페이라를 처음 만났다.

페이라는 검술을 배우지 않았음에도 강했다.

그러나 페이라에게 배울 것은 별로 없어 보였다.

그래서 오슬로는 검술 스승에게 배운 것을 실전에 적용하는 데에만 집중했다.

전쟁이 끝난 후 오슬로는 다른 검술 스승을 만났다.

빈스모크 가문의 가주 루카스였다.

루카스에겐 검술도 많이 배웠지만 다른 것도 많이 배웠다.

감자 심는 법, 물 주는 법, 토마토 기르는 법…….

오슬로는 왜 검술이 아닌 농사를 짓는 것인지 의문이 들었다.

루카스는 오슬로의 질문에 잠시 생각하더니 입을 열었다.

-너와 달리 내게 있어 검술은 목적이 아니라, 나의 이상을 실현하기 위한 도구니까.

그게 무슨 의미인지 오슬로는 당시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의 마음을 오늘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서걱-!

오슬로의 목이 잘려 나갔다.

그리고 눈을 떴다.

오슬로는 입에 물려 있는 산소마스크를 떼어내고 플라스크 문을 엶과 동시에 검을 쥐고 달렸다.

티그리스를 마주했다.

티그리스는 검을 횡으로 그었다.

티그리스의 검강이 오슬로의 가슴을 노리고 날아온다.

감히 따라 할 엄두도 나지 않는 아름다운 궤적이다.

평소였다면 조금이라도 따라 해보기 위해 맞받아쳤겠지만, 지금의 오슬로는 다르다.

‘막지 못해.’

오슬로는 그 검강을 피했다.

하지만 완전히 피하지 못해 왼팔을 내어주고 말았다.

그러나 괜찮다.

오슬로는 수많은 전쟁터를 오가며 사지 중 하나 이상이 결손된 채 전쟁을 치러본 경험이 풍부했다.

개중 오직 외팔이만이 사용할 수 있는 경신술과 검술도 익혔다.

당연히 모두 베낀 것에 불과하지만 적재적소에 알맞은 검술과 경신술을 사용할 수 있기만 한다면, 그 어느 때보다 치명적이라는 것을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오슬로는 외팔이 용병이 사용하던 이름 모를 경신술을 사용하기로 했다.

무작정 일직선상으로 달려가는 경신술로 오슬로가 익힌 모든 경신술 중에 제일 빠른 것이었다.

실제로 오슬로는 눈 깜짝할 새에 티그리스의 앞에 도착했고, 검을 올려 쳤다.

베었다고 생각한 순간, 오슬로는 세상이 빙글빙글 돌고 있었다.

티그리스는 오슬로의 검째로 목을 베어버렸다.

오슬로는 다시 플라스크에서 눈을 떴다.

그리고 박차고 다시 나아갔다.

또다시.

또다시.

또다시.

점점 티그리스와 마주하는 순간이 짧아졌다.

티그리스가 자신의 육체가 담긴 저장고에 빠르게 다가오고 있었다.

오슬로는 티그리스의 일방적인 전투를 복기했다.

생각하고 또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조금이라도 더 빨리 티그리스의 검술을 베껴야만 했다.

안 그러면 아르펨이 죽는다.

오슬로의 마음에 처음으로 간절함이 담겨서일까?

티그리스가 점점 이해되기 시작했다.

티그리스가 보는 시선과 근육의 움직임 그리고 생각까지.

티그리스는 주변 사물의 모든 것을 이해하며 검을 내지르고 있었다.

오슬로는 지금까지 오직 자신과 적 그 두 가지만 놓고 전투에 임했다.

하지만 오슬로는 점점 메아리치는 동굴의 소음과 산산이 부서지는 바람과 작은 벌레의 움직임도 느껴지기 시작했다.

이런 것을 애초부터 느끼지 못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을 고려하며 검을 휘두른 적이 없었다.

‘도대체 무엇을 위해 이런 검술을 사용하게 된 걸까?’

티그리스의 검은 결과만 놓고 보면 단순하다.

무엇이든 마음만 먹으면 벤다.

그러나 그 과정은 전혀 단순하지 않았다.

세밀한 바람의 각도와 오슬로가 든 검의 경도 그리고 취약점, 오슬로의 근육의 움직임과 숨을 쉬는 타이밍까지 모든 것을 계산하지 않고선 이런 검로가 나올 수 없었다.

오슬로의 검과 티그리스의 검이 부딪혔다.

쩡-!

빈 플라스크 병들이 산산조각이 남과 동시에 동굴이 무너졌다.

그러나 오슬로의 검이 잘려 나가지 않았다.

티그리스의 입이 열렸다.

“넌 왜 소드 마스터가 되려고 하는 거지?”

오슬로의 대답은 그의 눈길이 닿는 곳에 있었다.

“아르펨이 나보고 소드 마스터가 되라고 했어. 그래서 될 거야.”

티그리스는 회귀 전의 오슬로를 알고 있다.

회귀 전의 오슬로는 지금처럼 감정이 풍부하지 않았다.

동시에 목적이 없었다.

그저 갑자기 폭우가 내리거나 돌풍이 불고 번개가 치는 것처럼 순수한 자연현상에 가까웠다.

과거엔 베르강의 검술을 닮아 그랬다고 생각했지만, 지금와서 생각해 보니 오슬로에겐 별다른 목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저 시키는 대로 사는 인형에게 무슨 목적이 있겠는가?

하지만 지금의 아르펨은 달랐다.

놈에게 목적이 생겼다.

“그럼 넌 왜 아르펨을 구하려고 하지?”

“나도 잘 몰라.”

오슬로의 검과 티그리스의 검이 다시 부딪히며 플라스크에 담긴 오슬로의 예비 육체들이 나뒹굴었다.

“하지만 내가 소드 마스터가 된 이후에 앞으로 내가 뭘 해야 할지 알려줄 사람이 필요하다고 생각해.”

오슬로의 검이 변화한다.

푸른색에 불과했던 검기가 티그리스의 검기처럼 은색으로 물든다.

서걱-!

티그리스의 검이 오슬로의 목을 가른다.

플라스크 속에 담겨 있던 육체 중 하나가 눈을 뜨더니 곧바로 티그리스를 향해 달려들었다.

“그러니 아르펨을 내놔.”

오슬로의 심장에 7번째 고리가 생겼다.

쩡-!

오슬로의 검에 깨끗한 은색으로 물든 검강이 덧씌워지며 티그리스의 검을 받아냈다.

천장이 무너지고 땅이 가라앉는다.

그러나 오슬로는 당황스럽지 않았다.

하늘에서 떨어지는 돌조각이 언제 오슬로의 어깨에 부딪힐지, 오슬로의 디딤발이 어떤 각도와 타이밍에 부서질지 모두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오슬로는 처음으로 감탄했다.

“네가 보는 세상이 이거구나.”

마치 처음으로 눈 뜬 아이처럼 세상 만물이 다르게 보였다.

세상이 너무나도 아름답다.

뻥 뚫린 하늘에서 쏟아지는 달빛에 바람의 움직임이 미묘하게 달라지는 걸 아는가?

저 깊은 지하에서 드래곤처럼 꿈틀대는 지맥의 변화로 땅이 변화하는 것은 알고 있는가?

오슬로는 모든 것을 객관적인 시선에서 세세하게 느낄 수 있었다.

그러자 티그리스의 검로 또한 다르게 보였다.

티그리스는 이 모든 것을 계산한 최적의 검로로 오슬로의 목을 향해 검을 내지르고 있었다.

오슬로 또한 티그리스의 검이 움직임에 따라 부서진 바람과 디딤발의 진동을 계산하여 검을 맞받아쳤다.

그렇기에 오슬로는 자신의 검강과 검을 가르고 들어오는 티그리스의 검을 이해할 수 없었다.

‘어째서?’

분명 티그리스의 검과 오슬로의 검은 서로 튕겨져 나가야만 했다.

마치 물이 아래로 떨어지고 사람이 폐로 숨을 쉬는 것처럼 너무나도 당연한 이치였다.

하지만 티그리스의 검은 그 현상을 부정하며 갈라냈다.

오슬로의 목이 티그리스의 검에 닿는다.

‘이해하고 싶어.’

무엇이 다른가?

지금 보고 느끼고 듣는 이 세상은 모두 티그리스와 동일할 터.

‘좀 더 보여줘.’

왜 자신은 가르지 못하고 티그리스는 자신의 검강을 가를 수 있는가?

그때, 오슬로는 처음으로 티그리스의 심장에 돌고 있는 8번째 고리를 느낄 수 있었다.

“아.”

세상은 이리도 넓구나.

오슬로의 목이 날아간다.

오슬로는 눈이 다시 뜨이기를 기다렸다.

하지만 자신의 얼굴이 차가운 바닥에 널브러지는 것만을 느낄 수 있었다.

‘왜……?’

오슬로는 저 멀리 웃고 있는 아르펨을 쳐다봤다.

아르펨은 이제 겨우 하나 남은 자신의 멀쩡한 육체의 심장을 짐승처럼 물어뜯고 있었다.

아르펨…….

나는…….

* * *

아르펨은 오슬로의 기억을 먹어 지웠다.

그러자 오슬로가 느끼고 보았던 모든 경험들이 아르펨의 뇌 속으로 파고들었다.

동시에 잘려 나간 팔이 재생했다.

아르펨은 심장에 간당간당하게 붙어 있던 천공의 사슬을 떼어냈다.

쩡-!

티그리스의 검이 아르펨의 목으로 향한다.

아르펨은 티그리스의 검을 막을 생각도 하지 않고 그저 쳐다만 봤다.

그러다 티그리스의 검로가 비틀려 오른팔로 향하자 아르펨은 그제야 뒤로 물러나 피했다.

“오슬로에게 감사 인사라도 전해야겠군.”

아르펨은 땅에 떨어진 검을 주워 들었다.

그리고 목에 가져다 댔다.

“다른 권속들은 내게 기억은커녕 아무런 정보도 전해주지 못했는데 말이야.”

아르펨의 검이 목을 파고든다.

“오슬로는 마지막에 너를 이해한 듯하군. 그러나 녀석이 아직 이해하지 못한 게 있는 것 같아. 이 아름다운 세상도 시간의 흐름 앞에선 모두 덧없어진다는 걸 말이야.”

아르펨의 검이 동맥을 끊으며 피가 솟구친다.

“그러니 영생을 산다는 것이 얼마나 축복받은 일인지 모르는 걸 거야.”

티그리스가 달려든다.

티그리스의 표정이 너무나도 담담하다는 것에 아르펨은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아르펨은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기운이 두 개라는 걸 느꼈다.

하나는 티그리스가 있는 정면이었고 다른 하나는 하늘이었다.

아르펨은 뻥 뚫린 밤하늘을 쳐다봤다.

그곳엔 달빛을 온몸으로 받으며 커다란 말뚝을 들고 달려드는 여인이 보였다.

‘저건…….’

어째서 느끼지 못한 걸까?

흥분해서 감각이 무뎌진 걸까?

저 여인은 위험하다.

티그리스보다 더.

아르펨은 칼을 빼내 티그리스의 검을 막으려 했다.

완벽한 자세도 아니고 막을 수 있는 검로도 아니다.

티그리스의 검이 아르펨의 검강과 검을 가르고 덜 잘린 놈의 목에 파고든다.

‘이 말도 안 되는……!’

아르펨의 목이 잘려 나가며 붉은 호선을 그린다.

그리고 아모리스는 부적을 덕지덕지 붙인 말뚝을 놈의 이마에 박아 넣었다.

쿵-!

아르펨은 소리 없는 비명을 질렀다.

아모리스는 귀를 파며 말했다.

“아이씨 왜 이렇게 징징대.”

아모리스는 피식 웃으며 부적이 붙은 상자를 꺼내 아르펨의 머리를 담았다.

“다 이기지도 않아놓고 티배깅을 했으면 뒤져야지.”

아모리스는 영혼의 비명을 지르는 아르펨을 무시하고, 상자 문을 닫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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