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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는 천재가 가르친다-251화 (에필로그) (251/251)

천재는 천재가 가르친다. 251화

에필로그

전쟁이 끝난 후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이냐 묻는다면 논공행상이다.

토드 황제는 무려 한 달이 넘는 긴 시간 동안 신하들과 논의한 끝에 훈장 수여식을 진행할 수 있었다.

환관이 입을 열었다.

“다음은 황국 최고의 무공 훈장, 금십자 훈장을 받을 사람입니다.”

토드 황제는 아이린의 앞에 섰다.

“아이린 데 벨프는 일어나라.”

아이린은 숨을 깊게 들이마시고 내쉬며 일어났다.

토드 황제가 인자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티그리스 디 노르베르드의 제자 아이린 데 벨프, 여기에 있나이다.”

토드 황제는 환관으로부터 금십자 훈장을 건네받아 아이린의 가슴에 달아주었다.

환관이 큰 목소리로 말했다.

“아이린 데 벨프는 혈귀를 무찌르고 흑토지대를 안정화시킨 공로를 인정하여, 금십자 훈장을 수여한다.”

토드 황제는 아이린을 보며 말했다.

“아이린 데 벨프는 짐의 앞에 무릎을 꿇으라.”

아이린은 한쪽 무릎을 꿇었다.

토드 황제는 환관으로부터 검을 건네받아 아이린의 어깨 위에 올려놓았다.

“아이린 데 벨프에게 백작의 직위를 수여한다.”

아이린은 눈물이 나올 뻔한 것을 간신히 참아냈다.

“백국의 영토는 흑토지대 전 지역이며 흑토지대에서 숨을 쉬고 농작하는 모든 이들은 벨프 가문의 비호 아래에서 살게 될 것이다.”

아이린은 고개를 깊게 숙이며 말했다.

“성은이 망극합니다. 폐하.”

“아이린 데 벨프는 일어나라.”

아이린은 토드 황제에게 백작의 지위를 상징하는 문서와 함께 황가의 상징이 박힌 검을 사사받았다.

“앞으로 고생해 주길 바라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이후 토드 황제는 라칸의 앞에 섰다.

“라칸 드 아센시오는 일어나라.”

라칸은 일어났다.

예전에 처음 훈장을 받았을 때와 달리 굉장히 여유로워 보였다.

“나달 드 아센시오의 아들 라칸 드 아센시오, 여기에 있나이다.”

토드 황제는 라칸의 가슴팍에 금십자 훈장을 달아주었다.

“자네가 헌신한 모든 것에 진심으로 감사하네. 라칸.”

“아닙니다. 폐하.”

토드 황제는 관중들 사이에 숨어 있는 아모리스를 쳐다봤다.

“자네와 ‘그분’이 이 모든 마무리를 지을 거라 들었네.”

“네. 그렇습니다.”

“자네는 남아도 되지 않겠나? 자네가 도와줘야 할 일이 많이 남아 있네.”

라칸은 눈을 감고 생각했다.

“저를 아껴주시는 것에는 진심으로 감사드리지만, 그분 혼자 그 외로운 곳에 보낼 순 없습니다. 그리고 저를 대신할 분들이 이곳에 많이 남아 있기도 하고요.”

“……그렇군. 자네 뜻을 존중하네.”

토드 황제는 라칸의 어깨를 두들겼다.

“진심으로 고마웠네. 라칸. 이건 진심일세.”

“감사드립니다.”

“그런데…… 오늘은 춤을 안 추나?”

라칸은 살짝 고민하더니 입을 열었다.

“사실 얼마 전부터 퀘스트가 나오지 않았습니다. 아마 포인트를 모을 필요가 없다고 시스템이 생각한 모양입니다.”

“……그런 말을 들으니 아쉬우면서도 마음이 한결 편안해지는군.”

그 이후로 토드 황제는 훈장을 계속 내렸다.

혈귀를 무찌르는 데 큰 공을 세웠지만 결국 전사했던 필립은 그의 아내가 대신 받았고.

동부 전선에서 진두지휘했던 마셜 장군 또한 받았으며.

그 외에 많은 사람들이 금십자 훈장을 받았다.

마지막으로 토드 황제는 티그리스의 앞에 섰다.

“티그리스 디 노르베르드는 일어나라.”

티그리스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베오울프 디 노르베르드의 아들 티그리스 디 노르베르드, 여기 있나이다.”

토드 황제는 환관으로부터 훈장을 건네받았다.

그러나 금십자 훈장이 아니었다.

통짜 미스릴로 된 별 모양의 훈장이었다.

“티그리스 디 노르베르드는 사악한 길리온 왕국의 공습을 예측하고 방비하는 데 있어서 공을 세웠으며, 루체트 황국을 구원한 공로를 인정하여 영웅 훈장을 내린다.”

관중들은 모두 놀랐다.

영웅 훈장은 루체트 황국을 세웠던 개국공신들 외에 그 누구도 받지 못했던 훈장이었기 때문이었다.

토드 황제는 티그리스의 가슴에 훈장을 달아주었다.

“자네의 공로를 어떻게 치하하면 좋을지 많은 고민이 많았네. 금십자 훈장만으론 자네의 공을 모두 설명할 수 없으니까.”

“그래서 자네에게 루체트 황국의 위인 칭호와 함께 영웅 훈장을 내리기로 했네.”

토드 황제는 티그리스의 어깨 위에 손을 올리며 말했다.

“자네가 변경령을 이어받는 순간 공작 작위를 내릴 것이고, 노르베르드는 공국으로 인정을 받을 것일세. 이건 해리 황태자와 이야기가 끝난 것이니 알고 있게.”

“성은이 망극합니다.”

토드 황제는 뒤에서 지켜보고 있는 레인로버를 슬쩍 본 후 말했다.

“그리고 결혼식은 언제 잡을 건가?”

“최대한 빨리 잡도록 하겠습니다.”

“손주는?”

“……그것도 노력하겠습니다.”

“몇이나 낳을 건가?”

“……아내와 얘길 나눠보겠습니다.”

토드 황제는 크게 웃었다.

* * *

겨울을 지나 꽃망울 터뜨리는 봄이 되었다.

라칸은 열차에서 내렸다.

짙지만 상쾌한 안개가 라칸의 정신을 맑게 해주었다.

아모리스는 라칸의 등허리를 때리며 말했다.

“뭘 그렇게 멍하니 있어?”

“그냥 냄새가 좋아서요.”

뒤이어 티그리스와 레인로버, 레니, 마지막으로 나달도 내렸다.

레니의 프라이팬에서 제인도 튀어나왔다.

“와, 여기 정말 오랜만이네. 그치?”

레니는 프라이팬을 들고 덜덜 떨었다.

“또 귀, 귀신이 나오진 않겠죠?”

“참나, 귀신 무서워하는 건 여전하다니까. 그러면서 어떻게 얘들한테 매번 제사상을 차리냐?”

“그분들은 안 보이잖아요.”

“참나, 어이가 없네.”

아모리스는 기지개를 켜며 말했다.

“여기 계속 서 있을 거야? 그럼 떼어놓고 간다?”

“아, 안 돼요!”

레니는 후다닥 아모리스의 옆으로 붙었다.

레니는 풀 죽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런데 정말로 가시는 거예요……?”

“가는 게 아니야.”

아모리스는 레니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원래 내가 있어야 할 곳으로 돌아가는 거지.”

“하지만…… 아쉬워요. 조금 더 같이 있다가 가면 안 돼요?”

“이미 충분히 같이 있었잖아. 이젠 헤어질 시간이지.”

티그리스는 발걸음을 멈추었다.

출구 앞에 하얀 노인이 서 있었다.

모리타였다.

“딱 맞춰 왔군.”

* * *

모리타와 티그리스는 나란히 앞장서서 걸었다.

티그리스는 늙어버린 모리타를 보니 마음이 싱숭생숭했다.

숨 막히는 침묵 끝에 티그리스가 입을 열었다.

“모리타.”

“미안하다고 할 필요는 없다.”

모리타는 티그리스가 무슨 말을 할지 이미 다 알고 있었다.

“난 네게 오히려 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다. 네가 날 바로잡아 주지 않았다면 나는 이미 죽었을 테니까.”

모리타는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이 위대하고 아름다운 시대에서 티끌만 한 도움조차 되지 못했겠지.”

“신비의 땅에서 무엇을 봤지?”

“미래 그리고 과거 그리고 현재.”

모리타는 안개의 숲 앞에서 멈춰 섰다.

“그러니 너희는 여기서 멈춰야 한다.”

모리타는 아모리스와 라칸을 쳐다봤다.

“두 분만 저를 따라오시죠.”

레인로버가 말했다.

“적어도 신비의 땅 앞에서 보내 드리려고 했는데…….”

“의미가 없다. 이곳에서 보내나 신비의 땅의 앞에서 보내나. 이 아름다운 세상에서 보낼 시간만 줄어들 뿐이지.”

아모리스는 레인로버를 보며 말했다.

“그래. 모리타의 말이 맞아. 여기에 있어봤자 의미가 없지.”

아모리스는 눈물을 뚝뚝 흘리는 레인로버를 안아주었다.

레인로버는 아모리스의 품에서 말했다.

“진심으로 감사해요.”

“그런 말 하지 마. 나도 너희 덕분에 즐거웠으니까.”

라칸은 티그리스를 보며 말했다.

“티그리스 님.”

“그래.”

“이제 저는 영웅다워졌나요?”

라칸의 말에 티그리스는 코끝이 찡해졌다.

“언제나 너는 내 영웅이었다.”

티그리스는 라칸을 안아주었다.

라칸은 마지막으로 나달을 쳐다봤다.

나달은 굉장히 복잡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돌아올 거냐?”

라칸은 아모리스를 흘금 보더니 입을 열었다.

“저도 모르겠습니다. 돌아오더라도 제법 시간이 흐른 뒤겠죠.”

“그럼 기다리지 않겠다.”

“그런 말 마세요. 가족끼리 해야 할 말은 따로 있잖아요.”

라칸은 나달을 꽉 안았다.

“사랑합니다. 아버지.”

나달은 라칸의 머리칼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나도 마찬가지다. 아들아.”

* * *

라칸과 아모리스는 모리타의 뒤를 쫓아 안개의 숲을 걸었다.

그리고 생각보다 굉장히 빠르게 신비의 땅에 도착할 수 있었다.

체감상 1시간도 되지 않은 것 같았다.

신비의 땅 앞은 마치 거대한 안개의 벽이 가로막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때, 모리타가 멈춰 서서 뒤를 돌았다.

“라칸 님.”

“네?”

“당신에게 선택권을 드리겠습니다.”

라칸은 고개를 갸웃했다.

“무슨 선택권이요?”

“전 얼마 전부터 라칸 님의 시스템이 작동되지 않는다는 걸 알고 있습니다.”

모리타의 말에 아모리스는 크게 눈을 떴다.

“……뭐? 정말로?”

라칸은 더 이상 속일 수 없다고 생각했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네. 우노를 회수한 이후로 아무런 메시지도 뜨지 않아요.”

“그럼 퀘스트도?”

“네.”

모리타가 이어 말했다.

“몇 가지 기능도 작동되지 않겠죠.”

“……맞아요.”

라칸은 현재 탐색 기능부터 시작해서 각종 인터페이스 기능까지 모두 작동되지 않았다.

“그걸 왜 이제야 말해?”

“걱정시키고 싶지 않았거든요.”

“그래서 날 따라오겠다고 한 거야? 시스템의 도움을 못 받으니까? 그런 거라면…….”

“아뇨. 그런 게 아니에요. 아모리스 님을 혼자 보내고 싶지 않았어요. 그리고 제 전생을 보고 싶기도 하고요.”

“그런 게 뭐가 중요하다고…….”

“제게는 중요하니까요.”

아모리스의 눈에서 눈물이 떨어졌다.

“아이씨……. 이제 널 포기하고 그냥 가려고 했는데……. 미련 남게…….”

라칸은 아모리스에게 손수건을 건넸다.

“미안해요.”

“……됐어. 그것보다 왜 이런 얘길 한 거야? 모리타.”

모리타는 입을 열었다.

“제가 본 미래는 총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라칸님이 이대로 뒤를 돌아 가시는 거고, 다른 하나는 아모리스 님과 저를 따라 신비의 땅으로 향하는 거죠.”

“……제 미래를 보셨다고요?”

“네. 맞습니다. 이런 경우는 단 한 번도 없었습니다. 다만 예상하기로 신이 있다면 저를 통해 당신에게 선택권을 쥐여주려고 한 것 같습니다.”

모리타는 안개의 숲 너머에 있는 황국 쪽을 가리켰다.

“다시 되돌아가시면 라칸 님은 행복하실 겁니다. 시스템이 작동되지 않더라도 라칸 님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저 세상엔 많이 남아 있고 당신을 그리워하는 사람들 또한 많이 있으니까요. 당신이 원하는 소설 속 해피엔딩 이후의 삶이 저곳에 남아 있습니다.”

“신비의 땅으로 가면요?”

“그건 저도 모릅니다.”

“제 미래를 보셨다면서요?”

“신비의 땅으로 같이 들어가는 것만 봤었지 그 이후의 일은 저도 모릅니다. 그러니 선택하십시오.”

모리타는 신비의 땅을 가리키며 말했다.

“아모리스 님을 따라 신비의 땅으로 가실 겁니까?”

이번엔 안개의 숲을 향했다.

“다시 친구들이 있는 곳으로 향하시겠습니까?”

모리타의 말에 라칸은 아모리스를 쳐다봤다.

아모리스는 웃으며 말했다.

“라칸, 나는 괜찮아. 원래 나는 내가 돌아가야 할 곳으로 가는 거야.”

“페레이라 님에게로요?”

“……맞아. 원래 나는 이곳에 있어선 안 되는 사람이었으니까. 너무 오래 살았어.”

라칸은 모리타를 보며 말했다.

“그럼 아모리스 님은요? 아모리스 님은 어떻게 되나요?”

“모릅니다. 신비의 땅에서 볼 수 있는 미래는 그게 전부였거든요.”

모리타는 라칸의 눈을 보며 말했다.

“다만 제가 알고 있는 건 당신이 신비의 땅으로 가시면 저처럼 돌아올 수 없다는 겁니다. 안개의 숲으로 갔을 때 신비의 땅으로 가실 수 없는 것도 마찬가지고요.”

라칸은 깊게 고민한 끝에 입을 열었다.

“저는…….”

* * *

한 노인이 안개의 숲을 걷는다.

악령들이 노인을 현혹하기 위해 슬며시 다가오지만, 노인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기백에 화들짝 놀라 도망치고 만다.

노인은 계속 정처 없이 걷고 또 걸어 결국 안개의 숲의 끝에 도착했다.

“……너무 오래 걸렸군.”

노인은 잠시 뒤를 돌아보더니 이내 안개의 벽을 통과했다.

달과 별 그리고 해가 동시에 떠 있는 아름다운 절경에 노인은 발을 멈춰 섰다.

노인은 있을 리 없는 인기척에 놀란 눈으로 오른쪽을 쳐다봤다.

노인의 눈이 크게 떠지며 입이 벌어졌다.

“……모리타? 자네가 어떻게?”

“긴 인생은 즐거웠나? 티그리스.”

모리타는 웃으며 앞장 서 걸었다.

“자네나 나나 주어진 시간이 얼마 없으니 걸으면서 이야기하지.”

티그리스는 홀린 듯이 모리타를 따라 걸었다.

“어떻게 자네가 살아 있을 수 있는 거지?”

“신비의 땅은 시간의 흐름이 뒤섞이기 때문이지.”

티그리스는 천천히 모리타의 뒤를 따라 걸었다.

드래곤의 성산이었던 이곳에 피 흘려 죽어가는 드래곤들이 산더미처럼 많았다.

“마냥 걷는 건 심심하니 세상 이야기나 좀 듣지. 뭐부터 시작해 보는 것이 좋을까? 역시 자네 후손만큼 즐거운 이야기는 없지. 말해보게.”

그때, 티그리스의 앞에 임신한 레인로버의 환상이 나타났다.

티그리스는 멍하니 젊은 레인로버의 얼굴과 웃고 있는 자신을 쳐다봤다.

“……난 레인로버와 아들 둘 딸 둘을 낳았네. 첫째 아들의 이름은 라칸이었네. 내가 제일 존경하는 사내였기 때문이지. 둘째 아들의 이름은 페레이라. 또한 비슷한 이유였네.”

“딸들 이름은 뭐지?”

“딸은 쌍둥이였어. 그래서 샤를로트와 아이린으로 지었네. 내 제자들이지만 존경할 부분이 많은 사람이었기 때문이지.”

“좋군.”

티그리스의 앞에 새로운 환상이 나타났다.

중년의 아이린의 모습이었다.

“아이린은 놀랍게도 세계수를 흑토지대에 옮겨 심었네. 슬하에 자식은 없었어. 하지만 아이린은 엘프들의 대모 역할을 자처하며 수만 명이 넘는 엘프들의 어머니가 되었네.”

“수인족들이 그걸 허락한 게 신기하군.”

“수인족들이 허락할 필요는 없지. 세계수는 세계수의 것이니까. 그 결과 아이린이 그토록 염원하던 흑토지대의 평화가 찾아왔네. 그 누구도 다투지도 않고 싸우지도 않는 세상에서 제일 평화로운 땅이 되었어.”

또다시 새로운 환상이 나타났다.

이번엔 샤를로트였다.

“샤를로트는 프리하르덴 백작이 되었네. 슬하에 아들만 셋을 낳았고 영광스럽게도 첫째 아들의 이름은 내 이름을 땄네.”

“누구와 결혼을 했나?”

“그러고 보니 서른이 넘도록 검술에만 매달리다가 혼사를 놓칠 뻔했었지. 보다 못한 바스티얀 님이 소개시켜 주신 로드엘림 가문의 사내와 결혼했네. 나이가 9살 차이나 났지만 제법 잘 어울렸어.”

다음은 늙어버린 나달이었다.

“나달은 평생 라칸을 그리워했어. 하지만 전쟁 중 부모를 잃은 고아들을 거둬 고아원을 설립하고 그 고아들의 아버지가 되었고, 나달은 새로운 가족을 얻었지.”

“나달은 인퀴지터 생활을 했을 때보다 고아들의 아버지 역할에 굉장히 만족스러워했네. 그리고 아이들 곁에서 편안하게 숨을 거뒀네.”

다음은 왕관을 쓴 트리샤였다.

“트리샤는 사마곤 왕국을 돌아갔어. 왕가의 피를 이은 자가 트리샤밖에 없기도 했고, 전대 국왕과 잘 화해한 게 큰 역할을 한 모양이더군.”

“그럼 사마곤 왕국의 여왕이 된 건가?”

“맞아. 트리샤는 도적들을 과감하게 척살하고 사막에 잠들어 있는 유적지를 개방해 모험가들이 자유롭게 탐사할 수 있도록 했어. 쪼개져 버린 부족들도 하나로 융합했지.”

티그리스는 웃고 있는 리니아를 봤다.

“리니아는 샤를로트가 소개해 준 아처와 만나 결혼을 했어. 딸만 셋을 낳았고 노르베르드 가문의 검술학원 원장으로 일을 했지.”

그 외에 여러 사람들이 티그리스의 앞에 나타났다.

수인족 자치구의 수호대장이 된 네메시스.

라칸의 아이디어를 받아들여 자동차와 비행기를 만들어내는 드워프들.

결혼을 한 후 아이들에게 헌신하는 소라.

무너진 길리온 왕국의 자리에 푸르트 왕국을 세운 에이미로 황자.

“난 많은 이들을 떠나보낼 때까지 살아남았네. 소드 마스터의 육체는 잘 늙지 않으니까. 하지만 그렇기에 나는 많은 이들을 내 눈앞에서 떠나보내야만 했어.”

“사랑했던 이들을 떠나보내는 것만큼 힘든 일이 없었지. 그래서 나는 현명한 아내의 유언을 따르기로 했네.”

티그리스의 눈앞에 병상에 누워 있는 레인로버가 나타났다.

-티그리스. 긴 세월에 지치거든 친구를 만나러 가세요.

모리타는 늙은 레인로버를 보며 말했다.

“그래서 이곳에 온 거로군.”

“맞네.”

어느덧 티그리스는 동굴 앞에 섰다.

“이곳이…….”

모리타는 자리를 비켜주었다.

“들어가게. 자네 친구가 기다리고 있네.”

티그리스는 천천히 동굴 안으로 들어갔다.

걸음걸음마다 기대감이 실리고, 심장은 미치도록 뛰었다.

동굴을 벗어나니 거대한 공동이 드러났다.

하늘 위에 작게 뚫린 구멍으로 찬란한 별빛과 햇빛 그리고 달빛이 쏟아져 들어왔다.

그곳엔 한 여인과 두 사내가 편안한 미소를 지은 채 누워 있었다.

티그리스는 한 사내를 향해 천천히 걸어갔다.

라칸이었다.

라칸은 조용히 잠을 자고 있는 것처럼 누워 있었다.

“내가 왔네. 친구여.”

티그리스는 무릎을 꿇고 라칸의 이마를 쓸어 넘겼다.

티그리스는 라칸의 머리맡에 놓여 있는 한 쪽지를 발견했다.

티그리스는 조심스럽게 읽었다.

[내 친구 같은 형제, 김호수.

존경하는 영웅, 티그리스에게.

김유신과 김사랑은 나의 고향으로 즐거운 신혼여행을 떠나기로 했다.

너도 행복했길 바란다.]

티그리스는 덜덜 떨리는 손으로 쪽지를 내려놓았다.

아모리스의 앞에 작은 티켓 두 개가 찢어져 있었다.

찢어진 티켓을 이어보니 티그리스가 읽을 수 있는 한글이 써 있었다.

-그러고 보니 네 고향은 뭐라고 쓰지?

-아, 그거요? 이렇게 써요.

[지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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