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천마육성 시물레이션 - < 조형근 >
[화면을 선택해 주세요]
▶ 처음부터 시작한다.
▷ 계속 이어서 한다.
▷ 저장한 지점을 불러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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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序)
이상한 일이다.
죽었다고 생각한 그 시점에 이상한 글귀가 눈앞을 가린다.
[화면을 선택해 주세요.]
어깨 하나는 완전히 잘려나갔고,
복부에 꽂힌 창(槍) 때문에 몸엔 감각조차 느껴지지 않는다.
그런데 눈앞에 이건 대체 뭔가.
화면을 선택해 달라는 저 문자는.
대체 무엇을 말하고 있는 건가.
▷▷▷ 잘하셨습니다!! ▷▷▷
▶ 처음부터 시작한다.
“도망가!”
“좌편으로 몸을!”
귓속으로 수하들의 외침이 느껴진다.
아직 살아남은 조원들이 있는 듯하지만, 그게 허튼짓이란 건 곧 알게 될 거다.
우리가 맞닥뜨린 화산파 구종명(究種明)은 강호를 대표하는 초극의 무인.
화경의 고수니까.
자넨 주변만 정찰하면 돼. 부교주께서 직접 움직이실 것이야.
이제는 쓸모없어진 기억들.
임무 투입 전 사마귀(司魔鬼)는 내게 말했었다.
이곳 주변 지형만 정찰하고 본교로 복귀하면 되는 가벼운 임무라고.
솔직히 그놈을 믿지는 않았지만,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태황각주(太皇閣主) 사마귀.
그는 자신의 명령을 듣지 않으면 온갖 더러운 짓으로 보복을 해오는 자다.
하지만 화산파 구종명 같은 고수가 있을 줄은 정말 몰랐다.
▶ 처음부터 시작한다.
▷ 계속 이어서 한다.
솔직히 억울했다.
더 좋은 기회만 있었더라면.
아니, 더 좋은 무공만.
하다못해 더 좋은 상황만이라도 주어졌더라면.
이렇게 허무하게 당하진 않았을 텐데.
하지만 힘이 없었기에.
결국, 이런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다.
▶ 처음부터 시작한다.
▷ 계속 이어서 한다.
▷ 저장한 지점을 불러온다.
‘인생 참 지랄 맞았다.’
그래서 무시했는지 모른다.
흐릿해지는 눈앞으로 계속 떠오르는 문자들이 무엇인지.
나에게 어떤 걸 주려고 했었는지.
그땐 정말 알 수 없었다.
<처음부터 시작하기를 선택하셨습니다.>
사건의 발단.
‘태황각주 독대 전’으로 돌아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