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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육성 시물레이션-9화 (10/379)

9화. 도구함을 생성하다 (2)

“으윽.”

설휘는 검으로 파낸 벽을 집고 가까스로 올라왔다.

온몸에 악취가 가득했지만, 그의 표정에는 괴로움이 아닌 희열이 맺혀 있었다.

[회심의 일격 적중! 상대는 1,404의 피해를 입었습니다.]

몇 번이고 눈앞에 껌뻑거렸던 글자들.

설휘는 엉덩이를 깐 채 죽어버린 적명을 보고 있었다.

체력 0/1,404

“체력이 없어지면 죽는 거구나.”

상대의 상태창 중에 변한 수치였다.

내공 역시도 0이라 표시되어 있었다.

적명이 죽었으니 어찌 보면 당연한 거다.

“조금 전, 이 현상은 앞으로도 계속 생기는 걸까?”

검을 휘둘렀을 때, 엄청난 힘이 검 끝에서 뻗어져 나갔다.

자의적으로 펼칠 수 있을까 할 만한 기운이 뻗어 나온 것이다.

“어? 내공이 하나도 줄지 않네?”

내공 240/240

설휘는 욱신거리는 몸을 부여잡으며 자신의 상태창을 바라보았다.

어찌 된 것인지 무려 검기를 사용했는데도 내공이 줄어들지 않았다.

“대박검을 어떻게 쓴 거지?”

찰나 간 발동한 힘.

그건 자신도 전혀 영문을 몰랐다.

그저 똥을 피하고 움직였을 뿐인데…….

“모르겠다. 우선 몸부터 씻자.”

온몸에 묻은 오물 때문에 악취가 코끝으로 전해져왔다.

투욱.

설휘는 적명을 똥통에 밀어 넣고는.

파팟.

옷을 찾으러 뒷간을 뛰쳐나갔다.

* * *

“어푸어푸.”

태황각 중심에 있는 호숫가.

사람들의 눈을 피해 이곳에 온 설휘는 몸부터 씻어대기 시작했다.

아무리 씻어내도 냄새는 지워지지 않았다.

배변 때문에 독이 올랐는지 온몸이 근질근질했다.

“드디어…….”

오물을 모두 씻어낸 설휘의 표정이 급격히 밝아졌다.

바로 머리 위.

너무도 반가운 글자가 떠 있었기 때문이다.

황촛불에 비춰본 글자는 정확히 3을 나타내고 있었다.

Coin 3 [세 번의 기회]

“다시 온전하게 살 수 있다!”

설휘는 본능적으로 가슴 옆을 바라보았다.

어깨부터 잘려나간 오른팔이 자신의 상황을 보여주고 있었다.

죽는다고 해도 다시 과거로 돌아갈 수 있다. 그리고 적어도 지금 같은 최악은 아닐 터.

“곤마한테 가볼까?”

적명을 처리했으니, 그에게 가서 임무를 완수한 사실을 알리는 것이 어떨까 싶었다.

임무를 준 그였으니 이제라도 자신의 말을 믿어줄 터.

“아냐. 신중하게 생각해야 해.”

설휘는 고개를 저었다.

아직까진 그를 신뢰할 수 없었다.

정확히 말하면 불가능한 임무를 준 그의 의도를 파악하지 못했다.

교주에게 선택된 제자이니 머리도 비상할 것이 분명했다.

“그래. 차라리 이렇게 된 거, 사마귀에게 가는 게 낫겠군.”

사르륵.

설휘는 옷을 집어 들었다.

이번 삶에서 오른팔을 잃었다.

더욱이 적명까지 죽인 것을 알면 자신의 생존은 위태로워질 것이다.

이렇게 된 거 다음 생을 위해 제대로 판을 짜는 것도 어떨까 싶었다.

태황각주의 약점을 잡을 수만 있다면, 지금 삶을 밑거름으로 써도 아깝지 않을 것 같았다.

그에겐 곤마가 원하는 비밀정보가 있을 테니까.

스윽. 스윽.

설휘는 옷을 입었다.

아무리 씻어내도 악취가 느껴지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가자.”

설휘는 재빨리 태황각으로 몸을 날렸다.

* * *

“누가 왔다고?”

화려한 산수화 그림을 감상하던 태황각주 사마귀가 고개를 돌렸다.

밤이 꽤 깊은 시각에 생각지도 못한 인물이 자신을 찾아온 것이다.

“워낙 긴히 들은 얘기가 있다 하여…….”

“…….”

“죄, 죄송합니다! 지금 바로 돌려보내…….”

“되었다.”

“……예?”

“이 밤중에 날 찾아온 걸 보면…… 무슨 이유가 있겠지.”

사마귀는 눈빛이 싸늘하게 변했다.

뒷짐을 쥐고 잠시 생각에 잠기던 그가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오라고 해.”

그리고 자신의 서탁으로 몸을 움직였다.

드르륵.

잠시 뒤 문이 열리고 설휘가 모습을 드러냈다.

꽤나 단출한 서재였다.

오른쪽 벽에 내걸린 산수화 그림 몇 점.

우측에 서탁과 도자기. 그리고 정면 끝에 앉아 있는 태황각주가 보였다.

“천일관 내 서기관. 태황각주님께 인사 올립니다.”

파박.

설휘는 예전에 학습한 대로 바닥에 납작 엎드렸다.

그러면서 그의 반응은 살폈다.

“…….”

대답은 들려오지 않았다.

하지만 그가 자신에 대해 감정이 좋지 않을 거란 건 누구보다 알고 있었다.

“아주 맛이 간 것이냐?”

예상대로 그의 입에서 비아냥이 흘러나왔다.

“겁이 없이 내 서재에 발을 들여놓다니. 무슨 생각이냐? 거기다…….”

끼이익.

의자에서 일어난 그가 설휘 앞으로 조금 다가오더니 코를 찡그렸다.

“온몸에 구린내가 나는군.”

“그럴 수밖에 없었습니다.”

“뭐?”

불쾌한 표정의 사마귀를 향해 설휘는 그와 시선을 맞췄다.

“흑월대장 적명을 제 손으로 처리하기가 어디 쉽겠습니까?”

“…….”

사마귀는 묵묵히 설휘를 지켜보았다.

일견 놀라운 얘길 듣고도 아무런 표정을 짓지 않았다.

그게 그의 성격이다.

당황하거나 난처할 때 오히려 차분해지는 성정.

“흐음.”

설휘의 눈에 사마귀의 미묘한 눈짓이 들어왔다.

흡사 자신의 생각을 읽어버리겠다고 느껴지는 음침한 시선이었다.

“네놈이 어떻게 죽였는지도 궁금하긴 하다만, 그 전에…….”

저벅저벅.

그는 조금씩 거리를 좁혀왔다.

사마귀와 가까워지면 가까워질수록 설휘의 표정은 벌겋게 달아올랐다.

그가 익힌 불의 마공이 설휘의 숨을 조여온 것이다.

“너. 누굴 만난 거냐?”

투욱.

지척까지 다가와 얼굴을 들이댄 사마귀에 설휘의 눈이 흔들렸다.

“예? 무슨…… 컥.”

설휘의 옷깃이 사마귀의 손에 붙들렸다.

“눈깔 굴리지 마라. 넌 여기서 한마디라도 혀를 잘못 놀리면 죽는다.”

“큽…… 큽.”

“다시 말하마. 누굴 만났느냐.”

설휘의 멱살을 쥔 사마귀의 눈이 뱀의 눈깔처럼 좌우로 갈라졌다.

‘곤마가 다녀간 걸까?’

찰나 간 스쳐간 의문.

하지만 고민은 하지 않았다.

지금은 정답을 찾는 게 중요하지 않다는 걸 알고 있었다.

“제가 누굴 만났는지보다 태황각주께서 뭘 숨기는 지가 중요하지 않겠습니까?”

“뭐라?”

묘하게 꿈틀대는 눈썹.

그는 표정을 이죽거리더니 툭 내뱉었다.

“천일관에 가더니 이놈이 정신이 어떻게 된 모양이구나. 정말 죽고 싶으냐?”

“말은 바로 하셔야지요. 저를 늘 죽이고 싶어 하시지 않았습니까?”

“허…….”

대놓고 핀잔을 주자 오히려 당황한 쪽은 사마귀였다.

“궁금하시다니 말씀은 드리지요. 천마 제자님을 만났습니다. 여기에 저를 보낸 것도 그분이시지요.”

당연히 거짓말이다.

하지만 들켜도 상관없다. 지금은 그보다 더 중요한, 알아낼 것이 있으니까.

“호오…….”

그는 슬쩍 자리에서 일어났다.

잠시간 보였던 그의 분노는 사라지고 오히려 여유로움이 감돌았다.

“하긴, 그럴 수밖에 없지. 그분이 돕지 않았다면 네 따위가 적명을 죽일 수가 없으니.”

‘그거였구나.’

설휘는 그제야 누굴 보았는지 묻는 뜻이 이해가 되었다.

사마귀는 곤마가 천일관에 거주하는 걸 알고 있었다.

그에게 기연을 받았다는 걸 예상했을 테고, 그래서 자신이 적명을 죽일 수 있었을 거라고 판단했을 것이다.

“그래. 제자분께서는 뭘 알고 싶은 게냐?”

천천히 멀어진 사마귀는 한쪽 벽에 걸린 산수화에 눈을 돌리며 물었다.

“화산파 구종명과 언제 어디서 밀담을 나누셨냐고 물었습니다.”

“……!”

‘역시나.’

설휘는 똑똑히 주시했고 결국 보고 말았다.

한순간 그의 몸이 흔들거리는 모습이.

그럴 수밖에 없을 것이다.

정파와 내통한다는 건 이유 불문하고 마교 내 대역죄가 아닌가.

“…….”

침묵은 꽤 길었다.

자신에게 등을 돌린 사마귀는 뒷짐을 쥔 채 한참이 지나서야 입을 열었다.

“제자분께서 그리 묻더냐.”

“예. 그렇습니다.”

“……또 물으신 게 있더냐?”

“다음 약속은 언제 어디서 잡았냐고…….”

“…….”

그는 대답이 없었다. 표정을 숨길 요량인지 뒷짐을 쥔 채 계속 자리에만 서 있었다.

그러니 더 자극을 해줘야 했다.

“태황각주님. 천마 넷째 제자 곤마께서는 오랫동안 이 문제를 고민하고 계셨습니다. 하지만 워낙 위중한 사건이라 좀 더 경중을 가리기 위해 저를 통해 말씀하신 겁니다. 그러니 솔직히 대답하시지요.”

설휘는 쾌재를 부르고 있었다.

저놈은 절대로 모를 것이다. 이건 자신이 회귀하지 못했다면 결코 알아낼 수 없는 정보니까.

“크흠.”

사마귀는 고민을 거듭하고 있는 걸로 보였다.

‘제발 말해라.’

그가 솔직히 대답할지 아니면 무시할지는 모르는 일이다.

혹여나 마교 내 더 높은 자와 손을 잡고 있다면 자신을 죽여버릴지도 몰랐다.

그렇기에 설휘는 더욱 초조해졌다.

뭔가 하나의 단서라도 내뱉어 주기를.

“내달 초. 그믐달 황가산에서 보기로 했다.”

‘걸렸다!’

설휘의 눈이 커졌다.

동시에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몇 번의 회귀 끝에 드디어 사마귀에게서 큰 정보를 얻어낸 것이다.

‘응?’

그렇게 좋아하던 설휘의 눈에 빛나는 뭔가가 포착되었다.

우측 바닥.

정확히는 석 자 앞. 오른쪽으로 두 자 정도의 거리였는데 자세히 보지 않으면 발견하기 힘든 빛이었다.

그것은 미약하게 번쩍이다 사라지고, 또 번쩍이다 사라지고 있었다.

슬금슬금.

엎드린 자세로 있던 설휘는 태황각주의 눈치를 살피며 앞으로 조금 기어갔다.

과거라면 당연히 이렇게 하지 않았겠지만, 지금은 다르다.

자신에게 일어나는 일.

왠지 그것과 연관될 수도 있었다.

더욱이 이렇게 일을 저질러버린 이상 이제 용기가 생겨버린 것이다.

‘아무것도 없는데?’

기다시피 그곳으로 움직인 설휘가 고개를 저었다.

평평한 벽.

그런데도 빛은 조금씩 새어 나왔다가 사라지길 반복했고.

혹시나 해서 손으로 빛이 나는 곳에 바짝 대던 순간.

‘헙!’

설휘의 눈이 커졌다.

갑자기 활자가 눈앞에 떴다.

[태황각주의 비밀 지도. 여지도를 얻었습니다.]

‘여지도?’

[상세보기를 하시겠습니까? 승낙/거부]

‘당연히 승낙이지.’

대답하자마자 활자가 주르륵 눈앞에 펼쳐졌다.

[여지도]

설명 : 태황각주가 선호하는 중원의 명소가 표시된 책. 이곳에 황가산의 약도가 그려져 있다.

화산파 구종명과 처음 조우했던 장소.

한 해 분기마다 여기서 만나 밀담이 이루어진다. 그 외에 짜깁기된 중원 지도가 그려진 책.

‘이런 것도 되는구나.’

설휘는 뜻밖이고 반가웠다.

또한, 그의 눈길을 사로잡은 것은.

[도구함이 생성되었습니다.]

뭔가 특이한 변화가 보였다.

약초 1

연양갱 1

비원교서(여지도) 1

‘약초? 연양갱은 뭐지?’

기이한 생각에 머리를 갸웃거렸다.

“그런데 말이야.”

그때였다.

지금까지 침묵하던 사마귀가 입을 열었다.

“넷째 제자분께서 언제 무공을 가르쳐 줬느냐?”

“예? 아, 그게…….”

설휘가 잠시 머뭇거리다 말했다.

“며칠 전에 가르쳐주셨습니다.”

“언제 만났고?”

“그건 천일관에 가던 그날 뵈었지요.”

“아, 그래?”

사마귀가 눈을 돌렸다.

그런데 어딘가 그의 눈빛이 이상했다.

담담하던 표정이 아니라 뭔가 뜨겁게 솟구친 그런 표정.

“너를 보낸 게 얼마 되지 않았는데…… 너를 신임하여 무공을 가르쳐 주고, 그리고 적명을 죽이게 했단 말이지?”

“…….”

“또 거기다 너를 신임하여 여기에 보내 정보를 염탐하고 그랬단 말이지?”

뭔가 불길했다.

말투와 표정 그리고 시선까지. 그는 점점 설휘에게 다가오고 있었다.

그리고 그 순간.

“억!”

설휘가 뒤로 자지러졌다.

언제 박혀 들었는지 태황각주의 검이 복부를 관통해버린 것이다.

“이 새끼가 아주 날 병신으로 보는구만. 네가 놓친 게 뭔 줄 아느냐?”

“…….”

“곤마께서는 말이야. 누구에게도 무공을 가르쳐주지 않아.”

“윽…… 윽…….”

고통에 꺽꺽대는 설휘를 보며 사마귀가 입꼬리 한쪽을 들어 올려 보였다.

“그분은 교주께 하사받은 무공만 쓰거든.”

비릿하게 웃는 사마귀.

하지만 가슴이 뚫리고 점점 생기를 잃어가는 것과 다르게 설휘의 눈은 더욱 빛나고 있었다.

“뭐냐. 이놈이 뒈지는 와중에도 그런 표정을 짓고 있구만.”

“……모르……냐?”

“뭐?”

설휘는 읊조리며 천천히 말을 이었다.

“모르……겠냐고?”

“……?”

설휘는 숨을 멈췄다.

그리고 사마귀를 보며 이전과 달리 또박또박 말을 이었다.

“넌 내게…… 졌어.”

“이 미친!”

콱!

다시 한번 가슴을 찌르자 설휘의 시야가 아득해졌다.

그리고.

다시 그것이 보였다.

▶ 처음부터 시작한다.

▷ 계속 이어서 한다.

▷ 저장한 지점을 불러온다.

갈망했던.

다른 인생이.

그리고.

<처음부터 시작하기를 선택하셨습니다.>

- ‘사마귀 독대 전’으로 돌아갑니다.

간절히 원했던.

회귀의 삶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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