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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육성 시물레이션-10화 (11/379)

10화. 도구함을 생성하다 (3)

나는 왜 태어난 것일까?

나는 왜 사람을 죽여도 아무렇지 않은 걸까?

나는 왜 강해지려고 하는 걸까?

모든 시작은 ‘왜?’였다.

상급자의 명령을 곧이곧대로 따르지 않은 것도.

환경에 대해 불만을 키워간 것도.

천향소 12등을 하고도 ‘부적합 판정’을 받은 것도.

소속도 없이 떠돌아다니다, 칼받이가 된 것도.

모두 ‘왜’라는 의문에서 시작되었다.

그것이 원인이었는지 모른다.

마공이 내포한 성질 중 절대자를 두려워하고 순종하는 행동들.

그에 대한 의문이 마공의 세뇌를 무너뜨리며 마교 내 돌연변이로 취급받는 나의 상태를 만든 건지도 모른다.

그랬기에.

어쩌면 그랬기 때문에 태황각주 사마귀의 노여움을 사게 됐는지도.

* * *

시커먼 벽과 우중충한 천장.

습한 공간은 역시나 자신의 연공실이다.

예상은 했지만 정말로 회귀하여 그때 그 지점으로 돌아온 것이다.

“팔은…….”

설휘의 급히 손을 들었다.

멀쩡하게 붙어 있는 오른팔은 자신의 의사대로 움직였다.

혹시나 하며 불안해하던 설휘의 표정에 안도감이 머물렀다.

“이제 목숨은 2개다.”

설휘는 지금 자신의 상황을 되짚기 시작했다.

과거의 삶에서 획득한 목숨의 수.

그리고 앞으로의 상황을 변화시킬 수 있는 경우의 수가 생겼다.

저주처럼 스며들어온 활자들과 기호. 수식들.

지금에서는 전혀 다른 삶을 꿈꾸게 하는 원동력들이었다.

설휘가 우측에 시선을 둘 때였다.

희뿌옇던 색이 또렷해지며 문자가 보였다.

상태창이다.

‘어? 능력이?’

설휘는 상태창을 살피던 중 몇 가지 수식이 변화했음을 깨달았다.

[State, 상태]

설휘 [말단 조직 분대장]

신체 정상

[Value, 수치]

체력 118/120

내공 250/250

[Skill, 기술]

핵심 무공 : 마천검운, 흑마칠검

공격 기술 :검풍(劍風)

체력과 내공은 소폭 올랐다.

아마도 오른팔이 생겨남으로써 나타난 변화인 듯했다.

“소희마공은…….”

그리고 그중에서 가장 눈에 띈 변화는 기연으로 얻은 무공이 사라진 것이었다.

“이상하구나. 어떤 무공인지 기억이 나는데 말이야.”

처억.

설휘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는 곧 검을 빼 들고는 머릿속에 무공을 떠올려보았다.

그때.

[소희마공을 얻었습니다.]

“어?”

머릿속에 소희마공의 검로를 떠올리자마자 떠오른 문자.

초식도 제대로 펼치지 않았는데 기술의 내용이 추가된 것이다.

[Skill, 기술]

핵심 무공 : 마천검운, 흑마칠검, 소희마공

‘기억하고 있는 건 표시가 되는구나.’

설휘는 고개를 끄덕였다.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기도 하다.

과거 자신이 겪은 일들이 또렷이 기억났으니, 가진 무공도 그러할 터.

설휘의 눈이 이번엔 다른 쪽으로 움직였다.

새로이 생성된 이름.

[Tool, 도구]

약초 + 1

연양갱 + 1

여지도 + 1(new, 신규)

어찌 보면 새로운 능력이다.

설휘는 혹시나 하며 상태창을 보며 이것저것 건드려보았다.

도구라고 하였으니 저 안에 있는 걸 어떻게 활용할 수 있을까 거기까지 생각이 미친 것이다.

그렇게 여지도를 향해 눈짓하던 순간.

[여지도를 가져오시겠습니까? 승낙/거부]

터억.

승낙하자마자 설휘의 손에 뭔가가 집혔다.

태황각주의 기관진식 안에 들어있던 그의 비밀일지.

여지도의 실물을 직접 보게 된 것이다.

촤르륵.

놀랄 새도 없이 설휘는 지도를 펼치기 시작했다. 그리고 몇 장 넘겼을 때.

“하하…….”

설휘의 얼굴이 화색으로 변했다.

화산파 구종명과 조우했던 장소.

사마귀의 기록 내용과 황가산의 약도가 그려져 있었던 것이다.

“가만, 이것들은 뭐지?”

설휘는 품속에 여지도를 집어넣고는 다시 상태창을 살피기 시작했다.

약초에 눈을 두니 상세 설명을 보시겠냐는 질문이 나왔다.

당연히 승낙.

[약초]

설명 : 어디서나 자라나는 일반적인 약초.

효능 : 체력을 2↑ 올려준다.

순간적으로 약초를 가져오겠냐는 말에 거부를 선택했다.

이후, 시선이 밑으로 향했다.

[연양갱]

설명 : 팥을 삶아서 나무 체로 거른 다음 밀과 꿀을 넣고 반죽하여 찐 과자.

효능 : 체력을 3↑ 올려준다.

파앗.

가져오겠냐는 말에 승낙하자 설휘의 손에 뭔가가 잡혔다.

명패 모양처럼 납작하고 기다란, 대신 폭이 좁은 것이 손에 잡혔다.

물렁한 재질과 특이한 포장지로 덮여 있는 형태다.

“이걸 찢고 먹는 건가?”

설휘가 그것을 찢자 거무튀튀하고 말랑한 떡 모양이 보였다.

쩝쩝쩝.

무심코 한 입 베어먹었다.

그렇게 혀를 굴리며 맛을 음미하던 설휘는.

“이건!”

순간 눈을 부릅떴다.

그리고 당황한 표정으로 연양갱을 다시 바라보며 읊조렸다.

“맛이…… 있다!”

별것 아닌 게 담백하고 그윽한 맛.

동시에 그의 눈앞에 문구가 아른거렸다.

[체력이 회복되었습니다 + 1]

체력 119(↑1)/120

“허허…….”

신기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자신이 얻은 기연 중에 이런 것도 다 있다니.

삼분지 일을 베어 먹었으니, 이걸 다 먹으면 눈앞에 뜬 문자대로 체력이 +3이 되는 것 같았다.

“그럼 이걸 다시 넣을 수 있으려나.”

스륵.

뭔가 아깝기도 하고 나중에 아껴먹을 생각을 하자 자연스레 그 생각이 났다.

한동안 연양갱을 보며 눈을 깜빡여 보기도 했고.

눈을 빠르게 움직이기도 하다가.

[도구함에 넣겠습니까?]

연양갱을 도구함이 보이는 곳에 가져가는 순간 문자가 떴다.

“하하. 이렇게 하는 것이구나.”

[도구함에 안전하게 넣었습니다.]

설휘는 주먹을 불끈 쥐며 매우 즐거워했다.

“여기 있었나?”

그렇게 서 있던 와중에 들려오는 목소리.

연무장으로 걸어오는 장발의 남자를 발견할 수 있었다.

그는 이전 삶에서 자신에게 죽었던 인물.

적명이었다.

* * *

- 손맛 좋고.

- 그냥 쳐 봤어. 건방지게 노려봐서 말이지.

- 왜? 한 대 맞으니 억울한가? 꼴에 수하들 몇 명 거느린다고 내게 대접을 받고 싶어?”

설휘는 가슴을 문지르며 천일관으로 걸어갔다.

당연하게도 적명은 이전 기억대로 움직였다.

주먹으로 쳤고, 경고를 했고, 태황각주가 부른다는 말까지 일치했다.

다만 하나 달라진 것도 있었는데.

‘목숨 2개가 사라졌었지.’

자신이 한번 죽인 적이 있어서인지, 그의 머리 위에 떠 있던 목숨이란 단어 자체가 지금은 보이지 않았다.

그렇다면 저런 표식은 단 한 번밖에 얻을 수 없다는 사실이 명확해진 것이다.

“흐음.”

이런저런 생각을 끝마쳤을 때 설휘 앞에는 12층의 천일관이 보였다.

태황각에 가지 않고 이곳으로 발길을 돌린 건 곤마를 만나기 위해서였다.

-뭐, 저는 특별히 할 일이 없을 땐 천일관 꼭대기에 있습니다. 답변이 되셨습니까?

적명을 죽이기 전 물어본 이유는 모두 이 순간을 위해서였다.

적과 내통하고 있다는 확실한 증거.

그것이 자신에게 필요했다.

설휘는 천일관 1층으로 빠르게 걸어갔다.

“뭐냐?”

책상에 편안히 다리를 올린 자세로 사무관 두홍(頭紅)이 물었다.

태평스러운 성격답게 할 일 없어 따분한 표정이었다.

“곤마 님의 부름을 받고 왔습니다.”

“뭐?”

두홍은 흠칫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뭔가 알아내려는지 빤히 쳐다보던 그의 시선이 묘하게 변했다.

‘다 알고 왔어. 이놈아.’

설휘는 당당한 표정으로 그의 시선을 부드럽게 받아주었다.

“무슨 용무로?”

그러자 그는 곧 순순하게 응했다.

“중요한 얘기인데…… 이 자리에서 말해야 합니까?”

“흠.”

스윽.

두홍은 자세를 고쳐잡았다. 그리고 뒤쪽의 어떤 지점을 향해 손가락을 가리켰다.

“저기로 올라가라.”

“감사합니다.”

설휘는 고개를 숙인 후 그가 가리킨 것으로 걸음을 옮겼다.

* * *

천일관 12층 계단 앞.

“곤마 님. 비객조 분대장 설휘가 뵙기를 청합니다.”

장지문을 앞에 두고 설휘가 입을 열었다.

천마 제자를 호위하는 무사들이 자신을 내치지 않을까 걱정이 되었지만.

다행히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누구라고 했나요?”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오자 설휘는 좀 더 크게 목소리를 높였다.

“태황각 내에 머무는 말단 조장입니다. 특별히 배속된 부대가 없어 비객조라 불리고 있습니다.”

“그래요?”

약간의 뜸을 들인 그는 재차 질문을 해왔다.

“그런데 왜 저를 찾아오신 건가요?”

“제자께서 장차 대국을 이루는 데 큰 힘이 될 만한 정보를 가지고 왔습니다.”

“…….”

곤마는 곧장 대답하지 않았다.

자신의 말에 뭔가 불편한 것이 있었는지, 혹은 흥미가 당겼는지는 아직 모르는 일이다.

“들어오세요.”

다행히 허락이 떨어졌고 설휘는 문을 힘껏 열었다.

드르륵.

‘넓다.’

문을 열고 마주한 그곳은 마치 수려한 화폭을 보는 듯했다.

문을 중심으로 우측. 천장에서 발까지 내려오는 대형 창문 여섯 개가 일렬로 배치되어 열 자(3m) 간격으로 24개가 들어서 있었다.

좌측에는 끝없이 펼쳐진 책장과 책이 지하층에 있는 서책만큼이나 많아 보였다.

“재미있는 분이군요.”

여유롭게 걸어오던 곤마가 웃었다.

창을 통해 내리쬐는 빛이 그런 미공자의 미소와 맞닿자 아름다움마저 느껴질 정도였다.

“그래요. 장차 대국을 이루는 데 큰 힘이 될 만한 정보가 무엇인가요?”

설휘는 심호흡을 크게 내쉬었다.

이후, 품속의 서책을 들어 그에게 조심히 내밀었다.

“이게 뭔가요?”

“읽어보시면 압니다.”

설휘가 건네준 책을 집어 든 곤마가 느긋하게 책을 펼쳤다.

그렇게 천천히 한 장씩 읽어가던 중.

“……!”

그의 눈이 확 커졌다.

동공이 흔들리는 것이 직접 보고도 믿지 못하는 눈빛이었다.

“이거…… 확실한 거냐?”

말투가 갑자기 하대로 변했다.

“제 목숨을 걸었습니다.”

“네가 뭔데?”

또한, 불쾌감이 가득한 말투였다.

하지만 긍정인지 부정인지 알 수 없는 모호한 어감에 설휘는 과감히 그를 올려다보았다.

“곤마 님께 줄을 대려고 하는 말단 조장입니다.”

“해서 뭐 하려고?”

설휘는 망설이지 않았다.

만약 그가 이렇게 유사한 질문을 한다면.

할 말을 준비해두고 있었으니까.

“저도 강해지고 싶습니다. 남들처럼…….”

잠깐의 침묵.

의아한 듯 갸우뚱하는 곤마의 고갯짓.

그리고 초조해하던 설휘에게 곤마가 입을 뗐다.

“이게 정말 맞다면.”

탁.

그는 책을 덮었다. 그리고 천천히 다가오며 설휘의 귓가에 속삭였다.

“원하는 걸 들어주지.”

곤마의 답은.

긍정이었다.

* * *

세 시진이 흘렀다.

설휘는 곤마의 방을 맴돌며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잘돼야 할 텐데…….”

습관적으로 설휘는 곤마가 나간 문을 슬쩍 쳐다보았다.

문득 드는 불안감은 쉽게 떨쳐낼 수 없었다.

마교 내 권력 기관들의 업무.

전(殿), 원(院), 각(閣), 당(黨), 루(樓) 등.

본교 기관 내 정치적인 관계는 자신이 알 리가 있겠는가.

그나마 하나 아는 것은, 태황각주의 노선은 넷째 제자 곤마가 아닌 첫째 천마 제자 살마(殺魔)를 따른다는 사실이다.

‘왔다.’

투욱.

발걸음 소리에 설휘는 긴장했다.

어떻게 될 것인지.

혹여나 실패하면 다음 삶은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지 하는 생각이 순간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설휘라고 하셨지요?”

굳은 표정으로 문 앞에 선 곤마.

설휘는 바짝 긴장한 채로 그의 대답을 기다렸다.

[저장하시겠습니까?]

‘어? 이게 왜 갑자기…….’

대답을 기다리던 중 떠오르는 활자.

처음 죽어가던 중에 보았던 ‘저장’이라는 문자.

드디어 그것이 모습을 비춘 것이다.

[어느 지점에 저장하시겠습니까?]

그때 이게 뭘까 했던 문자들이 다시 생성되었고 지점 중 하나를 가리키자.

■ 천력 95년, 제2장. 곤마가 제시하는 세 가지의 삶]

[빈 저장 공간]

[빈 저장 공간]

[저장되었습니다.]

문자가 뜨며 확인을 알렸다.

“세 가지 중에 선택하세요.”

“예……?”

그리고 때마침 곤마가 질문을 했고, 이후에는 그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그는 분명 말을 했지만, 목소리가 아닌 문자가 대신 질문을 한 것이다.

▶ 곤마의 핵심무사 되기

▷ 곤마의 호위무사 되기

▷ 곤마의 비밀무사 되기

설휘는 느꼈다.

이제껏 떴던 지문들과 다른 형태.

지문 하나하나가 지금과 완전히 다른 삶을 살게 되는 방식이란 것.

그 아래로 슬며시 나타나는 새로운 문자가.

선택에 대해 어려움도 같이 알려주고 있었다.

▶ 곤마의 핵심무사 되기

무관도에 입관 후 가신으로 복귀

난이도(★★)

▷ 곤마의 호위무사 되기

녹정관 장로의 개인 지도 후, 곤마의 지척 호위

난이도(★★★)

▷ 곤마의 비밀무사 되기

강호의 특정 인물 암살

난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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