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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육성 시물레이션-15화 (16/379)

15화. 곤마가 제시하는 세 가지의 삶 (5)

무공을 쓴다는 지문을 선택했을 때, 설휘는 이제껏 느껴보지 못한 새로운 경험을 했다.

자의가 아닌 타의로 움직인 자신의 몸은, 과거 적수마공을 수련할 때 익힌 동작을 따라하고 있었다.

그 결과 자신이 이기리라 생각하지 못했던 오마가 일수에 고꾸라졌다.

체력 9(↓10)/205

내공 28(↓882)/2,250

하지만 그를 쓰러뜨리고 난 뒤, 환희보다도 눈앞의 목숨을 걱정해야만 했다.

체력도 내공도 이젠 완전히 바닥이 나버렸다.

“이러고 있을 시간이 없다.”

긴장감이 사그라들자 온몸이 비명을 지르는 것 같았다.

큰 내상을 입은 탓에 숨이 제대로 쉬어지지 않았고, 자리에 서 있을 힘조차 없었다.

그렇지만 움직여야 했다.

혹시나 다른 녀석이 이곳에 온다면, 그땐 정말 죽는 거다.

[<영약> 청리취련(靑梨醉蓮) 1개를 얻었습니다.]

[<영약> 생기속근단(生肌續筋丹) 1개를 획득했습니다.]

[<비급> 은형법과(隱形法科)를 얻었습니다.]

“아.”

오마의 품속을 뒤지던 설휘 눈에 이채가 생겼다.

슬쩍 보더라도 평소 소지하고 다니는 것들과 다른 영약과 비급.

척 봐도, 오마가 이 무관도에 들어와서 얻은 것으로 보였다.

거기다 신(身)이라 쓰여있는 대나무 조각은 무려 6개.

[신(身)의 조각은 도구함에 넣을 수 없습니다.]

‘안 되는구나.’

혹시나 하여 대나무 조각을 넣어봤지만, 도구함은 거부했다.

마치 다음 생에 영향을 주는 것들을 배제하려고 하는 것처럼.

뭐. 아무렴 어떤가.

이것으로 이번 시험을 통과할 수 있는 조건을 다 갖춘 셈이다.

“일단 자리를 옮기자.”

설휘는 급히 몸을 추스르고, 황색 지붕의 건물에서 몸을 뺐다.

물론 도구함에 비급과 영약을 넣는 것도 잊지 않았다.

* * *

긴 밤이 지나고, 해가 떠올랐다.

밤새 숨죽이던 설휘가 있는 이곳은 건물 외곽의 나무숲 쪽이었다.

그는 금창약 1개를 사용하여 체력을 최고치로 회복시킨 후, 더는 사용하지 않았다.

그리고 움직이지도 않았다.

보물을 찾으려다가 괜히 죽음을 맞이하는 상황을 피하고 싶어서다.

‘이런 영약들이 이 주변에 널려 있단 말이지?’

설휘는 앞으로 어떻게 할지를 고민했다.

다행히 오마에게 얻은 영약과 비급은 상세보기가 가능했기에 향후 계획을 좀 더 면밀하게 세울 수 있었다.

[생리속근단]

설명 : 고산의 기운을 영약으로 둥글게 빚어, 사람이 인공으로 만든 영약. 모든 체질에 사용 가능.

효과 : 체력의 한계치를 소폭 늘려준다.

[청리취련]

설명 : 천 년을 묵은 종자가 싹을 틔운 연꽃. 모든 체질에 사용 가능.

효과 : 내공의 한계치를 소폭 늘려준다.

설휘는 처음에 이것들을 활용할까 했지만, 이내 미련을 접었다.

어느 날 다가온 상태창이라는 이 기연은 자신의 회귀할 목숨을 늘려줬다.

다만 영약의 경우, 죽으면 모든 것이 처음으로 돌아가기에 제대로 사용하지 않는다면, 잃게 되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그것과 달리 곧바로 효력을 볼 수 있는 것이 있었다.

바로 비급이다.

영약은 몰라도 익힌 무공은 머리가 기억해 사라지지 않으니까.

[은형법과]

설명 : 120년 전, 교주를 호위하던 호교신주(護敎神主)가 사용했던 은신술.

참조 : 깨달음이 높을수록 은신 능력이 강해진다. 움직이면 해제

제한 조건 : 없음.

[은형법과, 은신술을 익히시겠습니까? 승낙/거부]

설휘가 이것을 선택하자, 단번에 비급의 내용이 머릿속에 들어왔다.

호흡법. 그리고 활용법.

따로 익힐 필요가 없이 모든 것이 머릿속에 각인이 된 것이다.

[은신술을 배웠습니다.]

이것으로 알게 된 것 한 가지.

비급은 얻을수록 좋다는 것이다.

자신을 따라다니는 이것들이 모두 분석해서 알려주니까.

‘빈틈을 발견했을 때 상태창이 발동되었지.’

설휘는 오마와의 싸움이 일어나기 전과 후를 또렷이 기억하고 있었다.

절호의 기회라고 여길 때쯤 상태창이 나타났다. 그로 인해 오마를 죽일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이것을 잘만 활용하면 내게 큰 힘이 될 것이다.’

설휘는 회귀를 반복하면서 점점 확신했다.

자신에게 다가온 많은 기연. 모두 다 남김없이 가져와야 한다고.

거기에 아낌없이 활용할 수 있다면, 자신이 원하던 위치까지 올라가는 것도 꿈이 아닐 것이다.

설휘는 해의 위치를 통해 시간을 계산했다.

그리고 정오쯤 되었을 때.

밤새도록 사탕수수밭에 숨어 있던 설휘가 드디어 움직이기 시작했다.

“어?”

조심스럽게 무관도로 이동하던 입구에서 광채가 뿜어져 나왔다.

분명 자연 현상은 아니었고 그렇다고 누군가 의도적으로 만들었다기엔 너무도 신묘했다.

설휘는 잠시 돌아갈까 했지만, 혹시나 이것 역시 기연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그 근처로 다가섰다.

그리고 그것은 그의 예상을 빗나가지 않았다.

[저장하시겠습니까?]

이 지문은 본 적이 있었다.

딱 한 번 봤지만, 결코 잊을 수 없는 장면이었다.

[어느 지점에 저장하시겠습니까?]

승낙하자마자 떠오른 문구들.

그리고 또다시 펼쳐지는 장면들.

■ 천력 95년, 제2장. 곤마가 제시하는 세 가지의 삶]

[빈 저장 공간]

[빈 저장 공간]

‘저 빈 공간에 지금 이 상태로 기록된단 말이지?’

설휘는 이제 더는 의문을 갖지 않았다.

오히려 어떻게 활용할 수 있을까란 생각이 더 빨리 들었다.

그리고 그 끝에 드는 생각.

[저장하지 않습니다.]

순간적으로 빛은 사라졌고, 설휘는 문으로 들어섰다.

미련은 없었다.

또 이런 기회가 언제 나타날지, 아님 이것이 마지막일지 알지 못하지만.

이번 선택은 기록하지 않는 게 맞았다.

다음 생에, 여기 있는 보물들을 얻으러 자신은 다시 돌아올 예정이니까.

* * *

“음?”

설휘가 대나무 조각들을 내려놓자 호교사자의 눈이 커졌다.

사실, 워낙 눈이 작아 동공이 좀 더 보였을 뿐이지만.

“문제 있습니까?”

설휘가 당당히 말하자 호교사자는 미묘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하지만 별로 말을 섞기가 싫은지 곧장 대나무 죽간을 펼쳐 보였다.

“다음 골라라.”

언(言) 서(書) 판(判)

‘어차피 다 선택해야 하는 거.’

눈앞에 내민 대나무 조각에 설휘는 곧장 하나를 가리켰다.

“언(言)이군.”

호교사자는 내민 죽간을 회수하고는 뒤쪽을 가리켰다.

“저기다.”

자신이 서 있는 방향을 기준으로 4개의 문 중 맨 오른쪽에서 2번째.

첫 번째 시험을 위해 들어가고 나왔던 문 바로 옆이었다.

설휘는 예를 표하고 움직였다.

그러다 문득 머릿속을 스치는 의문.

‘다른 놈들은 왜 안 보이지?’

여기만 입관소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첫 번째 시험을 치르고 나오면 몇 명은 마주칠 줄 알았다.

그런데 자신이 있는 곳에는 아무도 없었다.

‘뭐. 통과만 하면 되니까.’

설휘는 잠시 멈췄던 걸음을 움직였다.

언(言).

이번엔 과연 어떤 것이 자신을 기다리고 있을지 궁금했다.

* * *

문은 지하로 연결되어 있었다.

계단이 있었고, 거길 내려가니 작은 방이 하나가 나왔다.

그리고 문을 열고 들어간 그곳에는 중년인이 책상 위에 다리를 올리고 앉아 있었다.

“참 지랄맞을.”

설휘가 방문을 열자마자 맞은편에서 욕설이 튀어나왔다.

날카롭다 못해 살기까지 느껴지는 인상.

어깨까지 기른 곱슬머리에 너덜너덜한 복장이 왠지 위압감이 느껴졌다.

‘엄청난 고수!’

설휘의 얼굴이 굳었다.

놀라게 한 건 단순히 그의 인상과 복장뿐이 아니다.

은연중 피어나오는 살기가 거북하다 못해 속이 울렁일 정도였다.

‘저건!’

하지만 설휘의 눈길을 사로잡은 건 그런 것들이 아니었다.

어느 것보다 중요한 것을 목도한 것이다.

[ ?? + 1 ]

그의 머리 위에 떠 있는 숫자.

저건 생명이다.

그런데 이전과 달리 그 뜻을 알 수가 없었다.

“뭘 봐, 이 새끼야.”

욕설이 튀어나오자 설휘는 급히 고개를 숙였다.

단순히 뭐라 하는 것뿐인데도, 속이 뒤집힐 정도의 심후한 내력이 전해져왔다.

하지만 설휘도 그냥 있을 수 없어 힘들게 입을 열었다.

“저는 무관도 시험을 치기 위해 왔습니다.”

“…….”

중년인은 대답이 없었다.

설휘는 다시 입을 열었다.

“저는 무관도를…….”

“한 번 더 지껄이면 뒈진다.”

“……!”

순간, 설휘는 입을 다물었다.

정신을 뒤흔드는 살기.

생전 처음 느껴보는 공포에 그만 얼어붙은 것이다.

‘어떻게 해야 하는가.’

설휘는 부동자세로 선 채 고민했다.

이대로 돌아갈 수 없다.

이 시험을 치르지 못하면 곧장 실격이었다. 그런데 시험과 관련 있는 중년인은 대화를 거부하고 있었다.

‘무엇을 해야…….’

설휘는 천천히 방 주변을 돌아보았다.

수납장이 보인다.

재질은 철로 된 것 같은데, 세 칸을 열고 닫을 수 있어 보였다.

천장은 평평한 판으로 막혀 있다.

책상과 의자에 앉아 있는 중년인. 뒤에는 책장이 있었는데 책은 꽂혀 있지 않았다.

그 옆에 서탁이 있었고, 위에 놓인 사기그릇이 보였다.

스윽.

눈치를 보던 설휘는 수납장으로 움직였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옆을 바라보았지만, 중년인은 반응하지 않는다.

아니, 애초에 관심 자체가 없어 보였다.

스르륵.

수납장을 열어보았다. 안에는 구겨진 종이와 글을 쓰다 만 한지가 보였다.

2열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3열에는 마른 붓과 벼루가 있었다.

‘여전히 관심이 없구나.’

혹시나 호통을 칠까, 연신 곁눈질로 보았지만, 그는 자신을 보지 않았다.

이름 모를 책자에 온통 고정된 상태였다.

‘저기도 한 번…….’

이번에 설휘는 서탁 쪽으로 움직였다.

서탁 주변을 살피다 사기그릇을 내려다보았는데. 뭔가 종이 같은 게 있었다.

스윽.

조심스레 중년인의 반응을 확인한 뒤 그것을 꺼냈다.

[첫 번째 문제입니다.]

‘어?’

설휘의 눈이 올라갔다.

상태창이다.

[당신은 지령을 받고 중원인들을 죽이기 위해 비밀 임무를 수행 중입니다. 깊은 산속을 거닐던 중, 사람이 살지 않는 집을 발견했습니다. 이곳에는 당신이 찾던 3명의 중원인이 숨어 있습니다.]

종이에 적힌 내용. 그것이 상태창으로 뜨고 있었다.

그걸 본 설휘는 이것이 이번 시험인 언(言)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이들은 떠날 채비를 하고 있습니다. 이들의 무공은 각각 당신보다 강하거나, 당신과 비슷하며, 혹은 당신보다 낮습니다. 그리고 마침, 주변에는 당신의 상관이 없습니다. 당신은 어떻게 대응하시겠습니까?]

설휘는 시선은 아래로 내려갔다.

▶ 기습을 시도해 적을 사살한다.

▷ 무림인으로 위장해, 그들과 대화를 시도한다.

▷ 집 주변에서 대장이 올 때까지 기다린다.

▷ <지문을 선택하지 않는다.>

선택지다.

그런데 이번에 좀 특이한 것은, ‘지문을 선택하지 않는다’는 지문도 함께 제시되었다는 점이었다.

9…… 8……

설휘는 판단이 잘 서지 않았다.

질문의 의도가 혼란스러웠기 때문에.

6……5……

‘기습을 시도해 사살하는 건 무모해. 그들과 대화를 하는 것도 위험하고. 그렇다면 상관이 올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 더 좋겠다.’

▷ 기습을 시도해 적을 사살한다.

▷ 무림인으로 위장해, 그들과 대화를 시도한다.

▶ 집 주변에서 대장이 올 때까지 기다린다.

▷ <지문을 선택하지 않는다.>

몇 번 머리를 굴려봐도 안전한 것이 좋았다.

무모하게 덤벼들다가는 자신의 목숨이 위험해지기 때문이다.

[‘집 주변에서 대장이 올 때까지 기다린다.’를 선택하셨습니다. 계속 진행됩니다.]

설휘는 세 번째 지문을 선택한 뒤 중년인을 바라보았다.

그 순간.

“씨발, 내가 분명 말했을 텐데.”

피식 웃는 중년인.

설휘는 뭔가 두려움이 일었다.

‘서, 설마. 아니겠지?’

하지만 우려는 곧 현실이 되었다.

어느샌가 중년인의 손에 검이 쥐어져 있었고.

푹!

그걸 눈여겨봤을 때는 이미 늦었다.

“이런 개같은…….”

설휘는 더는 내뱉지 못했다.

자신의 목에 한줄기 선이 선명해지고 있었다.

정말로 중년인이 살수를 펼쳤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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