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화. 임무 수락(1)
설휘는 황색 지붕 건물로 이동했다.
대충 해의 밝기를 가늠해 봤을 때, 지금쯤이면 1층 입구 문 쪽에서 두 명이 싸우고 있을 터.
과연 예상대로였다.
“더럽기로 소문난 태황각 출신도 무관도에 온다는 소문을 듣지 못한 게 천추의 한이군.”
청년은 맞은편 사내에게 향해 독설을 내뱉고 있었다.
그리고 대화는 예전처럼 흘러갔다.
“너무 좋아하지 마라. 너를 만나기 전, 얻은 게 하나 있지. 그걸로 저승길에 반드시 너도 함께 데려갈 거다.”
“허세는.”
사내는 곧장 청년에게 달려들었다.
그 이후는 똑같았다.
투덕거림과 함께 사내, 척호란 자가 청년의 정수리를 주먹으로 찍어버리는 것까지 그대로였다.
물론 여기까지만 그랬다.
[절호의 기회! 흑화대장 척호의 빈틈을 발견했습니다. 어떻게 대응하시겠습니까?]
척호가 잠시 비틀거리긴 했지만, 그렇다고 주변을 경계하지 않은 건 아니다.
그럼에도 이전보다 훨씬 더 빨리 뜬 선택지문.
▶ 공격한다.
▷ 무공을 쓴다.
▷ 도구함을 사용한다.
▷ 상대의 지척까지 다가간다.
아마도 이전 삶과는 차이가 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자신의 능력치는 그때와 달리 월등히 높으니.
<‘상대의 지척까지 다가간다’를 선택하셨습니다. [동][서][남][북] 중 어느 위치로 이동할까요?>
그다지 고민할 필요는 없었다.
설휘는 그의 뒤, 서쪽을 선택했다.
핏!
그러자 거의 즉각적으로 척호의 등 뒤로 이동했고.
“헉!”
뒤늦게 알아챈, 척호의 당황한 표정이 그의 눈에 보였다.
“아서라. 죽이려 했으면 벌써 죽였다.”
설휘는 그런 상대를 개의치 않고 쓰러진 청년의 옷깃을 슬쩍 들어보았다.
천은신갑이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역시 다시 나타나는구나.’
예상대로였다.
자신이 죽을 때 착용했던 천은신갑은 지금, 이 순간 정확히 재현되어 있었다.
도구함에 넣은 것들과 달리, 물건들은 회귀를 하면 과거의 흐름대로 다시 나타났다.
“칫!”
투욱.
척호의 어깨가 축 처졌다.
눈치를 보니 이미 전의를 상실한 표정이다.
아마도 느꼈겠지.
자신보다 월등히 위라는 것을.
“원하는 게 뭐냐?”
척호가 물어왔다.
“그냥. 대화 좀 하고 싶어서.”
설휘는 죽은 청년이 가지고 있던 신(身)의 대나무 조각 2개와 천은신갑을 회수했다.
이후 고개를 들어 척호를 바라보니, 이전에는 눈여겨보지 않았던 그의 능력치가 보였다.
[State, 상태]
척호 [태황각 7대 조직 흑화대장]
신체 가벼운 내상
[Value, 수치]
체력 2,311/2,902
내공 1,120/1,630
“너, 태황각 출신이지?”
“……그렇다.”
“흑화대장이고?”
“…….”
상대가 선뜻 대답하지 않는다.
설휘는 대나무 조각 2개를 척호에게 던졌다.
“어……?”
그걸 본 척호의 표정이 미묘하게 변했다.
당연한 반응이다.
시험 통과에 쓰이는 죽간 2개를 이유 없이 건넸으니.
설휘 그 자신은 이미 조각을 다 채운 상태라 나머지는 필요하지 않았다.
“묻는 말에만 대답하면 그걸 주지.”
그 말에 척호는 잠시 고민하는 듯 침묵하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물어봐라.”
“언. 서. 판. 남은 3가지 시험에 대해서 좀 알고 있는 게 있나?”
설휘가 척호를 죽이지 않은 이유.
바로 이 시험에 대해 좀 더 알고 싶었기 때문이다.
자신을 무관도로 안내한 거운이란 사내가 설명해줄 리는 없으니, 직접 나서서 알아봐야 했다.
“너는 이곳이 어떤 곳인지도 모르고 들어왔나?”
“그냥 시험 치면 되는 곳 아닌가?”
“……허.”
설휘의 반응에 이번엔 척호가 어어 없다는 듯 웃었다.
“어떻게 시험 내용도 모르고……. 하긴, 그러고 보니 이해가 가는군. 너 정도의 실력자가 처음부터 신(身)을 고르고 들어온 이유를 보면.”
설휘가 영문 모를 표정을 보이자 그는 조금 더 진지하게 말을 이었다.
“날 살려줄 건가?”
“……대답만 잘하면 그럴 생각이야.”
“……음.”
척호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한 번 더 바라봤다.
그리고 이내, 사내는 마음을 정한 듯 입을 열었다.
“좋다. 그럼 나도 알고 있는 것만큼 말해주마. 무관도의 각 시험에는 정해진 순서가 있다. 그 순서를 지키지 않으면 통과하기가 불가능하다.”
“순서…?”
“그래. 신. 언. 서. 판. 총 4가지의 시험. 당연하게도 어떤 순서로 시험을 치러야 하는지 나는 모른다. 내가 아는 건 그저 무관도 시험의 마지막이 여기라는 거.”
“뭐? 마지막 시험이라고?”
설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듣도 못한 얘기다.
신(身)을 고르면 시험이 끝이라니.
아니 그러면, 전생에서 이 시험을 끝낸 후, 언(言)을 골랐던 시험은 뭔가?
“나도 이곳에 들어와서야 알게 되었지. 신이 제일 마지막 시험이라는 것을. 그 이유는, 주최자가 보물을 미리 독점할 수 없게끔 만드는 구조이기 때문이야.”
‘아!’
이제야 조금 알 것 같았다.
신(身)이라는 시험.
여긴 보물들이 넘쳐난다.
하지만 처음부터 실력자들은 들어오지 않았다.
그 이유가 바로 이 시험을 마지막에 치르게 하기 위함이었던가.
‘오마도 대장급들은 내일 새벽에 들어온다고 말했지.’
이 안에 있는 보물들을 이용해, 강한 자들을 쓰러뜨리게 만든다.
무공이 약한 자들도 목숨을 걸고 싸우게 만드는 장치가 바로 무관도 신(身)의 시험이다.
그야말로 살육전.
강한 자가 많은 것을 얻는 것이다.
“좋아 네 말을 믿기로 하지. 그럼 넌 그냥 지금이라도 도망가는 게 어때?”
“……자정까지 내가 원하는 보물을 얻지 못하면 그럴 생각이다.”
“……?”
척호는 고개를 들어 의아해하는 설휘를 응시했다.
“내일 새벽, 3개의 시험을 모두 마친 놈들이 들어온다. 그 안에 그들과 싸울 수 있을 만한 보물을 찾지 못하면 퇴소할 생각이야.”
‘오마가 말했던 그놈들인가.’
척호 역시 그들의 존재를 알고 있는 듯했다.
그러니 궁금증이 일어 물었다.
“얼마나 강하기에?”
“마교의 5각 9당 내에서도 가능성을 인정받은 자들이라면 이해가 편하겠군. 우리 태황각에선 흑금대장 신비랑이 나온다. 태황각 7개 부대를 대표하는 후기지수 중 하나지.”
그때였다.
갑자기 눈앞에 창이 생성된 것이다.
<중요 임무를 발견했습니다.>
‘신비랑을 제거한다’의 의뢰를 받아들이시겠습니까?
※ 성공보수 : [천룡단 1개]
‘뭐야?’
갑자기 뜬 상태창.
중요 임무라면 예전 적명을 처리할 때와 같은 모양이다.
‘왜 신비랑은 목숨이 없지……. 천룡? 설마 내가 아는 그 청룡단인가!’
설휘는 눈을 의심했다.
자신의 생각대로라면, 이건 단순한 영약이 아니다.
[천룡단의 상세보기를 하시겠습니까?]
설휘는 당연히 승낙했다.
○ 천룡단
설명 : 천축 출신의 후학사(後學士)가 만든 것으로 전해지는 고급 영약.
체력과 내공을 동시에 다량으로 올려준다.
효과 : 체력 1만 6천↑, 내공 1만 7천↑
‘어, 엄청나다!’
그걸 본 설휘의 눈에 희열이 담겼다.
무려 1갑자 이상의 내공과 체력이라니.
예전의 자신으로서는 상상도 못 할 굉장한 영약을 얻을 기회이다.
‘이건 선택해야 해.’
고민할 필요도 없었다.
이건 무조건 가지고 가야 했다.
<중요 임무를 승낙했습니다. 태황각주가 신임하는 ‘신비랑’의 존재가 활성화됩니다.>
○ 태황각 흑금대장
설명 : 태황각 7대 조직 중 가장 무공이 강한 흑금대의 수장.
태황각주 사마귀의 임무를 받고 무관도에 투입.
<상태창이 활성화됩니다.>
[State, 상태]
설휘 [말단 조직 분대장]
신체 정상
[Value, 수치]
체력 7,306(↑300)/7,708
내공 3,600(↑270)/7,070
전투력 3만(New, 신규)
독심술 숙련도가 올라갔기 때문일까.
자연스럽게 자신의 상태와 전투력이란 새로운 창이 떴고.
[State, 상태]
신비랑 [태황각 7대 조직 흑금대장]
신체 정상
무공수위 : 절정에 근접(New, 신규)
[Value, 수치]
체력 1만 5천 / 1만 5천
내공 1만 2천 / 1만 2천
전투력 7만(New, 신규)
1만을 넘는 상대의 능력치가 떡 하니 보였다.
‘까다롭다.’
정확히 말하면, 미친 수치다.
하지만, 전생이라면 엄두도 못 냈겠지만 지금 능력으로는 어떻게 싸워볼 만하다.
그럼에도 확실히 밀리는 건 사실이다.
운 좋게 싸워볼 수 있지만, 찰나의 방심 한 번에 죽을 수 있는 그런 능력치였다.
“또 궁금한 거 있어?”
슬슬 자리를 뜨려는 척호.
설휘는 마지막 궁금증을 물었다.
“시험 내용에 대해서 아는 게 더 있나?”
그는 한 번 주변을 경계하고는 말을 이었다.
“내가 아는 건 판(判)은 판단. 듣기로 제한된 시간이 지나면 독을 푼다고 들었다. 정해진 시각까지 버티면 합격, 아니면 뒈지는 거지.”
“……언은?”
“누군가 문제를 낸다고 하더군. 그것도 맘에 드는 답변이 아니면 뒈지고. 그리고 서(書)는…….”
“…….”
“이건 자세히 모르지만 책을 하나 준다고 하더군. 그리고 그 책에 나와 있는 대로 문제를 내고…… 대충 글로 써서 제출하는 거야.”
“…….”
“그럼 이만. 난 최대한 보물을 확보해야 하거든.”
그는 슬금슬금 이동하더니 그 길로 시야에서 사라져버렸다.
설휘가 준 대나무 조각 2개를 챙기는 것을 보면, 아직 삶의 희망을 포기한 것 같아 보이진 않았다.
‘그나저나…… 거운 이 새끼…….’
척호가 떠나자 설휘는 넷째 제자의 가신으로 있는 첩자를 생각했다.
아마도 그는 알고 있었을 것이다.
시험순서를 모르면 탈락한다는 것을.
그가 자신이 합격하지 않도록 이미 수를 쓴 것이다.
“기필코 강해지고 말 테다. 반드시…….”
[도구함을 여시겠습니까?]
설휘는 천은신갑을 도구함에 넣었다.
운 좋게 보물 지도가 들어온 이상.
시간을 계속 지체할 수 없었다.
* * *
설휘의 보물찾기는 계속되었다.
황색 지붕에서 얻은 보물들도 거의 다 건졌다.
허나, 운 나쁘게도 쓸 만한 보물이 나오지 않았다.
병기류는 검이 아닌 것들이 많이 나왔고, 금창약보다 떨어지는 치료약도 있었다.
그나마 하나 건진 게 있었는데.
[벽력탄을 얻었습니다.]
뜻밖에 월척을 얻었다.
[도구함]
<약재>
연양갱 1(한입 먹음), 금창약 2, 철혈독 해독주 1
<장비>
[갑옷] 천은신갑
[병기] 월향비 1
[보조무기] 벽력탄 1(New)
<절대비급>
사대극마공 풍(風)
<잡화>
무관도 보물지도(7/7)
아직 남은 보물은 많았지만 설휘는 곧장 포기했다.
지금은 준비해야 하는 시간이다.
점점 날이 어두워지는 이때.
줄어든 내공을 운기조식으로 최대한 회복하는 게 지금은 더욱 중요했다.
‘이럴 때 강력한 내공심법이 있었으면 좋으련만.’
스스슥.
그렇게 한곳에 숨어 꽤 운기를 했고, 효과가 있었다.
자신의 수치가 점점 오르는 것이 보였다.
그리고 자정이 넘었을 때.
달빛이 비치는 지붕 아래에서, 설휘는 자신의 상태를 점검했다.
[Value, 수치]
체력 7,426(↑120)/7,708
내공 4,490(↑890)/7,070
생각처럼 많이 오르지 않은 게 아쉬웠지만 어쩔 수 없었다.
이제 척호가 말한 고수들이 대거 들어올 것이다.
맞이할 준비를 해야 했다.
적색 지붕에서 몸을 낮춘 그때.
누군가가 보였다.
‘저놈이다.’
설휘는 그중 하나가 흑금대장이란 걸 직감했다.
그 이유는 사내의 머리 위에 글자가 또렷이 떠다녔기 때문이다.
<목표>
바로 신비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