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화. 임무 수락(2)
‘어떻게든 빈틈창을 만들어야 한다.’
현재 설휘가 가장 신경 쓰고 있는 부분이 바로 이것이다.
전투력 7만
상대가 강하다는 건 안다.
수치로 계산된 신비랑의 힘은 최대 7만.
말 그대로 맞으면 한 방에 골로 가는 전투력을 가지고 있다.
질 수 있다는 건 안다.
하지만, 후일을 도모하며 물러서는 것도 이젠 신물이 난다.
자신 앞을 가로막던 수많은 강자.
그들이 보였던 멸시와 조롱에서 벗어나기 위해선 더는 물러서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자신에겐 아직 하나의 목숨이 더 있지 않은가.
‘이젠 기록이 되어 있구나.’
첫 임무를 받았기 때문일까.
처음에 몰랐는데 상태창에도 여러 가지 변화가 생겼다.
[State, 상태]
설휘 [곤마의 임무 수행중]
목숨 Coin 2 두 번의 기회
신체 정상
[Value, 수치]
체력 7,306/7,708
내공 3,600/7,070
전투력 3만(New)
Equipment, 장비
무기 : 단영검
장갑 : (오른손)권마투갑
갑옷 : 팔황전신갑
‘능력을 믿는 거다.’
나약했던 과거와는 달리 오직 자신만이 가진 최고의 기연이 있다.
상대의 능력을 알고.
정확히 수치로 계산된 정보로 상황을 판단하며.
상대의 방심을 이끌어 낼 때 강력한 일격을 사용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지 않았는가.
※ 성공보수 : [천룡단 1개]
특히 이번 대결에서 승리하면 과거에는 절대로 가질 수 없던 영약을 얻게 된다.
이 엄청난 보상을 얻게 되는 순간, 도구함에 있는 천마의 무공에 한 발짝 다가서게 된다.
생각만 해도 느껴지는 짜릿함 때문에 그 두려움이 다소 사라지는 것 같았다.
[은신술을 사용합니다.]
각오를 했다면 지체할 필요는 없다.
* * *
투욱.
설휘가 향한 곳은 녹색 건물이었다.
자주색 건물과 달리 여긴 단독으로 지어진 건물로, 높이 면에서는 어느 건물보다도 높았다.
마치 중원의 토루(土樓)를 연상케 하며, 그 높이가 무려 7층으로 된 원형탑 모양의 건물.
층층마다 푸른 기와와 지붕이 겹겹이 쌓인 형태였다.
팟. 팟. 파파팟.
설휘는 빠르게 처마를 밟으며 건물 위로 올라갔다.
무턱대고 그를 따라 들어가는 건 자살행위와 다름없다.
태황각 내에서도 최고의 부대라 알려진 흑금대.
사실상 소속 7개 부대를 대표하는 대장이다.
능력치에서 봤다시피, 지금껏 상대해왔던 자들과는 격이 다른 인물이었다.
‘이곳에 오니 모든 지형이 훤히 보이는군.’
터억.
7층 지붕까지 올라선 설휘는 자세를 낮추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은은한 달빛 아래 무관도 내부의 정원이 한눈에 담긴다.
가장 가운데 혜(匸) 모양의 자주색 건물이 있고, 그곳을 중심으로 3채씩 총 6개의 건물이 앞뒤로 지어진 형상이다.
그리고 앞줄 가운데 자신이 위치한 녹색 건물이 있었다.
“……응?”
청색 지붕을 바라보던 설휘의 눈에 뭔가 포착됐다.
인기척이다.
사사삭. 사삭.
건물 밖으로 나온 사내가 도망치고 있었다.
상대의 움직임을 교란시키기 위해 담 몇 개를 넘고, 주변의 인공연못 안으로 빠르게 뛰어들었다.
‘이미 늦었어.’
자신을 쫓던 자가 그냥 지나가기를 바랐겠지만, 그건 단지 그의 바람일 뿐.
뒤쫓던 자는 조금 늦게 당도했지만, 뒤를 돌아보지도 않고 연못 안으로 뛰어들었다.
“크악!”
비명 소리.
이후, 달빛 아래 연못은 사내의 피로 붉게 물들어갔다.
그것이 이번 혈투의 시작이었다.
* * *
“따라오지 마!”
“덤비면 죽는다고!”
“제기랄!”
사방에서 소란이 일어났다.
풀숲을 헤집고 도망가는 자.
인위적으로 만든 담 사이로 도망치며 몸을 숙이고 있던 자.
벽을 등진 채 반격의 기회를 기다리는 자.
하지만 그 정도의 기지로는 ‘새벽의 존재’들을 따돌리지 못했다.
“악!”
조경 사이에 몸을 엄폐한 녀석의 정수리는 반으로 갈라졌고.
“크악!”
건물을 돌며 적을 떼어내려고 했지만 눈속임은 너무도 쉽게 들통났으며.
“크윽!”
반격을 하기 위해 자세를 숙이고 있던 자는 반격도 못하고 목이 날아가 버렸다.
뿐만 아니라.
뻐퍼억!
콰직!
건물 벽을 관통하며 떨어지는 마인들.
새벽의 존재들은 이 안으로 들어오자마자 거의 모든 무인을 압도하고 있었다.
‘씨발. 이건 사냥이잖아…….’
이 정도면 싸움이 아니라 거의 학살이다.
달빛을 등지고 나타난 12명의 고수는, 기존에 있던 마인들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실력 차가 뚜렷했다.
‘대체 전생에 난 어떻게 살아서 나간 거지?’
그들은 무시무시한 실력을 갖췄고, 상대를 쫓거나 추적하는 데 일가견이 있는 자들이다.
외곽 풀숲에 숨어 보이지 않는 놈들도 찾아 순식간에 쓰러뜨렸다.
과거엔 자신도 숨어 있었는데 운 좋게 살아남은 것이다.
‘은신술 때문인가…….’
그럴 가능성도 있다.
자신의 실력으론 이들의 눈을 피해 살아나가는 건 불가능했다.
아님, 또 다른 이유가 있거나.
“커억!”
“큭!”
콰자지지직!
또다시 부서진 벽 사이로 떨어져 내리는 무인들.
보아하니 이미 보물은 다 털리고 죽임당한 채 지면을 나뒹굴고 있는 거다.
‘나와라 좀…….’
설휘는 잔뜩 몸을 웅크리며 녹색 건물 주변을 살폈다.
혹시나 입구로 나오는 게 아니라 다른 곳으로 뛰어나갈 수 있으니 확인하는 거다.
그렇게 좀 시간이 흘렀을까.
입구를 통해 걸어 나오던 신비랑이 눈에 포착되었다.
거리가 있음에도 다른 자와 달리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머리 위에 <목표>란 글씨가 쓰여 있었기 때문에.
‘따라가자.’
설휘는 움직였다.
두려워할 필요 없다.
어떻게든 한 번만. 한 번만 빈틈창을 띄우면 되니까.
* * *
“커억. 컥.”
가슴을 부여잡은 청년이 벽에 기대며 힘겹게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이미 피가 바닥을 적실 만큼 흥건했다.
거기다 이미 치명적인 상처를 입었는지 신음소리도 점차 줄어들었다.
“왜…… 왜 이러는 건가?”
그와 몇 발짝 떨어진 쪽.
두 사내가 서 있었는데, 이미 승패는 기울어져 있었다.
덜덜 떠는 사내와 그를 너무도 여유롭게 바라보는 자.
“그냥. 변덕이라고 할까?”
흑금대장 신비랑은 팔짱을 낀 채 그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가 바라보는 상대.
놀랍게도 흑화대장 척호였다.
‘아직 나가지 않은 건가?’
자정이 넘었는데도 여기 있는 걸 보면 보물에 대한 탐욕 때문인 것으로 보였다.
그건 그거고 지금 상황을 보면 이해하기 어렵다.
같은 태황각 출신을 상대로 싸우고 있었던 것이다.
“태황각주가 알면…… 분명 책임을 물을 것이다.”
“정말 그렇게 생각해?”
저벅저벅.
그는 척호를 향해 천천히 다가갔다.
“안타깝게도 이미 그분과의 협상은 끝났다.”
“뭐……?”
“보물만 탐하는 녀석들은 언제든 제거해도 된다고, 그리 말씀하셨지.”
“이익……”
척호는 이를 악물며 마지막 내공을 쥐어 짜냈다.
쉬익!
그리고 뻗어낸 마지막 회심의 반격.
하지만 신비랑의 손바닥이 몇 배는 더 빨랐다.
“컥!”
손바닥으로 가슴을 후려치자 척호는 의식을 잃었다.
힘없이 바닥으로 쓰러진 그는 이미 즉사한 상태.
이미 어찌할 수 없을 정도로 큰 실력차였다.
“…….”
신비랑의 고개가 옆으로 돌아갔다.
벽에 기대어 근근이 숨을 이어가던 사내도 숨을 거둔 듯 미동이 없었다.
“일개 부대의 장이란 놈들이 실력이 형편없군.”
스윽 스윽.
신비랑은 즉사한 척호의 몸을 뒤지기 시작했다.
품속에 있는 대나무 조각 4개, 그리고 잡다한 보물 몇 개를 품에 챙겼다.
“흑철검 같은 이런 쓰레기밖에 없나…….”
그의 표정엔 짜증이 가득 들어있었다.
어제 아침부터 들어와 있는 것치곤, 죽은 2명은 생각보다 많은 것을 얻지 못한 모양이다.
“하긴. 딱 이 정도 실력이니.”
그는 다시 몸을 돌렸다.
축 늘어진 또 다른 태황각 7개 부대의 장 중 하나.
그의 몸을 뒤지기 위해서였다.
[State Summary, 상태 간단 요약]
무횡 [태황각 7대 조직 흑일대장]
체력 0(↓1,850)/1,850
내공 0(↓1,250)/1,250
‘같은 출신을 죽이다니.’
방문에 몸을 밀착시킨 설휘의 얼굴엔 긴장감이 감돌았다.
분명 신비랑이 죽인 자는 척호다.
뿐만 아니라 같은 태황각 출신 무횡이란 자도 함께 죽었다.
어떻게 된 일인지 태황각 출신들과 함께 움직이던 신비랑이 모두를 죽인 것이다.
‘그게 중요한 게 아니다. 어찌 됐든, 빈틈창을 만들어야 하는데…….’
좀처럼 상태창이 뜨지 않는다.
꽤 오랫동안 지켜보고 접근도 해보았지만, 이 정도로 떨어진 거리에서는 발현되지 않는다.
짐작건대 그는 미세한 인기척이라도 감지하는 능력이 있다는 것.
‘아, 그래! 벽력탄!’
때마침 머릿속에 떠오른 하나의 방법이 있었다.
바로 보물로 주어진 벽력탄이다.
이것으로 시선을 분산시킨 뒤, 빈틈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해보자. 어차피 지금이 가장 기회야.’
신비랑은 무횡이란 자의 몸을 뒤지고 있었다. 지금이 아니면 더 좋은 기회는 오지 않을 수도 있다.
무엇보다 ‘새벽의 존재들’을 만나면 더욱 곤경에 처할 수 있지 않겠는가.
[도구함을 열 수 없습니다.]
‘이거 또 뭐야?’
도구함을 열어 벽력탄을 꺼내려던 설휘가 눈을 의심했다.
[주변의 적이 설휘 님의 존재를 알고 있습니다. 도구함을 열기 위해선 그의 영향력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이런 씨.’
적이 자신의 인기척을 느끼면, 도구함을 열 수 없는 듯했다.
설휘는 할 수 없이 신비랑이 있던 방에서 조금 떨어졌다.
그렇게 복도의 끝까지 움직이던 중에 생각지도 못한 상황이 벌어졌다.
설휘의 존재가 멀어지자 신비랑이 문 앞으로 걸어 나온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기회를 만들어줬다.
[절호의 기회! 흑금대장 신비랑의 빈틈을 발견했습니다. 어떻게 대응하시겠습니까?]
‘천운이다!’
설휘의 눈이 부릅떠졌다.
곧장 무공을 쓰려는 걸 선택하려던 그는 잠시 주춤했다.
‘거리가 멀다.’
빈틈을 발견했다 하더라도 성공하리란 보장이 없다.
상당히 먼 거리에서 빈틈창이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무공을 쓰는 건 결국 거리가 가까울 때 효과적인 법.
‘할 수 없지.’
▷ 공격한다.
▷ 무공을 쓴다.
▷ 도구함을 사용한다.
▶ 상대의 지척까지 다가간다.
곧장 상태의 지척까지 다가감을 선택했고.
<‘상대의 지척까지 다가간다’를 선택하셨습니다. [동][서][남][북] 중 어느 위치로 이동할까요?>
신비랑이 바라보는 시선과 반대쪽.
남쪽으로 이동했다.
“……!”
한순간 고개를 홱 돌린 신비랑.
하지만 그땐 상대는 이미 늦었다.
아니, 분명 설휘는 그렇게 생각했다.
스칵!
그런데 분명 피할 시간이 없는 그 순간에서도, 신비랑은 방어했다.
자리에서 빠르게 도약하며 몸을 비트는 것만으로, 설휘의 공격을 피해낸 것이다.
하지만 소득은 있었다.
너무도 급히 움직이느라, 뒤로 물러서던 그의 자세가 무너졌고.
[절호의 기회! 흑금대장 신비랑의 빈틈을 발견했습니다. 어떻게 대응하시겠습니까?]
또다시 빈틈창이 떴다.
이번엔 설휘는 뒤를 생각지도 않았다.
곧장 무공을 쓴다를 선택했고.
무공을 쓴다 ▶ 초극마공 ▶ 폭열공(기본)
검을 쥔 자신이 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공격으로 일격을 날렸다.
“……윽!”
<강력한 일격 적중! 신비랑에게 8210의 강력한 피해를 입혔습니다.>
신비랑 [태황각 7대 조직 흑금대장]
체력 6,790(↓8,210)/15,000
내공 9,595(↓2,405)/12,000
설휘 [말단 조직 분대장]
체력 7,426/7,708
내공 2,290(↓2,200)/7,070
폭열공에 당하자 신비랑은 온몸을 휘청이며 물러섰다.
“하압!”
설휘는 상태창을 확인할 새도 없이 미친 듯이 덤벼들었다.
소희검법의 초식을 쓰며 우측.
캉!
이번엔 좌측.
캉!
마지막으로 보법을 밟으며 수직으로 검을 내리그었다.
“큭!”
자세가 무너짐에도 막아낸 신비랑.
하지만 설휘는 그것까지 예상하고 있었다.
두 검이 맞닿은 순간 그의 가슴팍을 발로 차버렸으니까.
“컥!”
뒤로 구르며 신비랑이 급히 일어났다.
신비랑 [태황각 7대 조직 흑금대장]
체력 6,380(↓410)/15,000
“하앗!”
이번엔 달려들지 않고 권마투갑으로 권풍을 생성해 뿜어냈고.
“크읍!”
신비랑은 일어서자마자 몸을 옆으로 움직였지만, 전부 피해내지 못했다.
신비랑 [태황각 7대 조직 흑금대장]
체력 5,740(↓640)/15,000
‘기회를 주면 안 돼!’
설휘는 이를 악물며 달려들었다.
이 기회에 목숨을 걸어야 한다.
반격은 곧 변수를 의미하며, 적을 밀어붙이지 못하면 그 기회만큼 자신에겐 위기로 작용할 것이다.
캉! 캉!
설휘는 소희검법으로 또다시 신비랑을 밀어넣고.
이번엔 찌르기에 검풍을 실었다.
“큭!”
신비랑은 또다시 물러서며 방어해냈지만. 검풍을 소멸시키지 못했다.
평소라면 충분히 방어해냈을 그였지만, 정신없이 몰아치는 상황에 제대로 대응을 하지 못한 것이다.
신비랑 [태황각 7대 조직 흑금대장]
체력 4,620(↓1,120)/15,000
그리고 그때.
그게 떴다.
[절호의 기회! 신비랑의 빈틈을 발견했습니다. 어떻게 대응하시겠습니까?]
‘이겼다!’
설휘는 온몸으로 희열을 느꼈다.
적의 공격을 단 한 번도 허용하지 않고 끝낼 수 있는 기회를 맞이한 것이다.
하지만 거기엔 치명적인 문제가 있었다.
‘어?’
[경고! 신비랑이 설휘 님의 빈틈을 발견했습니다. 어떻게 대응하시겠습니까?]
놀랍게도.
자신의 빈틈 또한 같이 떠버렸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