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화. 칠용대장 고월(1)
신비랑은 확실히 강했다.
설휘의 체력이 바닥이 난 다음에야 겨우 그를 죽일 수 있었으니.
“이런 개 같은!”
특히 죽이기 직전의 저항은 정말 위험했다.
하마터면 목숨을 잃을 뻔했으니까.
[일격 적중! 신비랑에게 치명적인 상처를 입혔습니다.]
신비랑 [태황각 7대 조직 흑금대장]
체력 0(↓320)/15,000
“하아. 하하하.”
인지부조화인가.
설휘의 얼굴은 웃고 있었지만, 손발은 덜덜 떨어대고 있었다.
신비랑의 막고 찌르고 반격하는 변칙검술은 객관적으로 자신보다 뛰어났다.
이 싸움은 운이 너무 좋았다고밖에 할 말이 없었다.
[임무를 달성하셨습니다! 보상으로 설휘 님께 천룡단 1개가 주어집니다.]
설휘의 눈이 번뜩였다.
드디어.
고대하던 보상을 알리는 창이 떴다.
설휘는 도구함을 빠르게 확인했다.
[도구함]
<약재>
연양갱 1(한입 먹음), 철혈독 해독주 1
<영약>
천룡단 1
<장비>
[병기] 월향비 1
[갑옷] 천은신갑 1
[보조무기] 벽력탄 1
<절대비급>
사대극마공 풍(風)
<잡화>
무관도 보물지도(7/7)
‘정말 천룡단이라니!’
꿈이 아니었다.
체력과 내공 각각 무려 1만 이상의 증가.
무관도 보물보다 뛰어난 영약을 얻어낸 것이다.
설휘는 이내 자신의 상태창을 확인하기 위해 고개를 들었다.
설휘 [말단 조직 분대장]
내공 242/7,070
바닥까지 떨어진 체력과 내공.
이제는 별것 아닌 놈들과 만나도 쓰러질 수치다.
괜찮다.
이제 이번 생에선 여한이 없다. 천룡단을 얻었으니.
설휘는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으며 주위를 살폈다.
여전히 이 안은 위험하다.
신비랑과의 싸움을 복기하는 것도, 빈틈창을 분석하는 것도 모두 나중의 일.
지금은 자신이 무엇을 가졌는지 확인하고, 빠르게 여기를 빠져나가는 것이 급선무였다.
[금창약 5개를 얻었습니다.]
[무관도 신(身) 시험의 약도 1개를 얻었습니다.]
[무관도 시험 순서내역표 1개를 얻었습니다.]
[환속영신단(還速英身丹) 1개를 얻었습니다.]
[대나무 조각 신(身)을 7개를 얻었습니다.]
“이게 뭐지?”
설휘가 직접 물건을 집기도 전에 대나무 조각을 제외한 모든 물품이 도구함에 들어갔다.
그중에서 의아했던 건 시험 약도와 시험 순서내역표.
그리고 환속영신단이라는 보약이었다.
○ 무관도 신(身)의 약도
설명 : 무관도 신(身). 보물들의 약도.
7개의 건물에 숨겨진 보물들의 위치가 상세히 그려져 있다.
○ 무관도 시험 순서내역표
설명 : 무관도 시험 순서들이 기록되어 있다.
참조 : 언 - 서 - 판 - 신
‘이거였구나!’
설휘는 약도 순서내역표를 보자, 그제야 이해가 갔다.
시험의 순서. 신의 마지막 시험이라는 증표.
바로 무관도행을 선택받은 자들이란 말이 아닌가.
“이건 뭘까?”
설휘는 다른 것을 열어보았다.
○ 환속영신단(還速英身丹)
설명 : 신강대륙 내 가장 깊은 골짜기에서 얻은 석수로 빚은 영약
효과 : 일정 이상의 체력과 내공을 회복하는 기능이 있다.
“이건 다른 시험의 보상이다!”
설휘는 물품들을 보며 그제서야 의문들이 풀려갔다.
이건 아마도 언, 서, 판 중 3가지 시험을 치고 얻는 보상일 터.
그러니 여기 있는 보물들의 이름과 쓰임. 그리고 위치를 상세히 알 수 있는 것이 아닌가.
“어? 신비랑을 죽였네?”
‘이런!’
너무 안도했던가.
설휘는 등 뒤의 인기척에 반사적으로 검을 들었다.
그리고 돌아선 곳에는 미소를 짓고 있는 여인이 있었다.
“기습으로 죽인 건 아닌 것 같은데…….”
‘아!’
적의 기습을 대비하던 설휘는 일순 굳어버렸다.
여인이 자태를 보자마자 말문이 막혀버린 것이다.
한 폭의 그림이었다.
그저 바라보는 것만으로 모든 걸 잊게 만드는 치명적인 미색(美色)을 갖추고 있었다.
“대단하네요. 이렇게 멋진 실력자가 있을 줄은.”
여인이 칭찬하며 말을 걸어왔지만, 설휘는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저 모든 게 신비롭게 느껴졌고, 몸선이 드러나지 않는 옷을 입었음에도 고운 옷맵시를 입은 자태를 보는 것 같았다.
창백함에 가까운 흰 피부에 눈썹, 말려 올라간 귀밑머리.
그중에서도 커다란 눈은 사람을 하염없이 바라보게 만들었다.
“저기…….”
설휘가 여전히 말하지 않자 여인이 고개를 갸웃했다.
그러다 뭔가 알아챘는지 배시시 웃었다.
“태황각 대원님. 이래가지고는 무관도에서 살아남지 못해요.”
“…….”
“그래도 다시 봤으면 좋겠네요. 신비랑을 죽인 고수니. 전 바빠서…….”
그렇게 낯선 여인은 복도로 걸어갔다.
여전히 설휘는 그녀를 멍하니 지켜만 봤다.
누가 보면 이런 자신을 멍청하다 하겠지만, 실은 딱히 뭘 할 수 있는 것도 없었다.
[State, 상태]
소령 [홍마원 출신]
신체 정상
[Value, 수치]
체력 28,000/28,000
내공 24,000/24,000
전투력 9만
신비랑을 넘어서는 수치 때문에 감히 쫓을 생각이 들지 않았으니까.
* * *
설휘는 사탕수수에 몸을 낮춰 은신하고 있었다.
은신의 의미는 몸을 숨기는 것이다.
그래서 은신의 기본은 은신처를 구축한다는 말이 있다.
‘여기쯤이었지.’
설휘가 이곳에 온 것은 전생의 기억 때문이었다.
이곳 사탕수수에 몸을 웅크려 있다가 시험을 통과할 수 있었다.
‘어떤 방법이 최선일까.’
앞으로의 일을 떠올리자 설휘는 생각이 많아졌다.
현재 자신에겐 두 개의 목숨이 있다.
지금 현생과 죽고 난 다음 생이다.
두 개의 삶을 놓고 어떤 길에 초점을 맞출 건지를 판단해야 했다.
설휘 [말단 조직 분대장]
체력 243/7,708
내공 242/7,070
설휘는 자신의 능력치를 확인한 후, 도구함을 열었다.
그리고 두 개의 영약에 눈길을 주었다.
‘모든 능력을 다 쓰느냐. 아님 후일을 기약하느냐.’
환속영신단과 천룡단.
환속영신단은 급격하게 떨어진 체력과 내공을 회복시켜준다.
거기다 천룡단을 먹게 되면 체력과 내공은 껑충 뛴다.
신비랑을 능가하는 능력 수치를 갖게 된다는 말이다.
허나 엄청난 고수가 나타나거나 협공을 당하는 등의 변수가 생겨 시험을 통과하지 못하게 된다면?
그야말로 그 삶은 최악이 될 것이다.
무관도 통과는커녕, 신비랑도 잡을 수 없는 능력이 될 테니까.
‘결국 후일을 기약해야 하는 건가.’
무엇보다 설휘에게 걸리는 건 새벽의 존재들이다.
무관도를 통과하기 위해선 필시 이들과 맞서 싸워야 한다.
보물을 취득했을 거라 예상되는 자신을 결코 가만히 둘 리 없을 테니.
‘그러고 보니 그땐 정말 어떻게 통과한 거지?’
그 당시 여기서 하루를 보낸 뒤 무관도 입구로 걸어나갔다.
그때엔 어떤 제재도 없었는데.
‘우선 권마투갑이라도 넣고 생각하자.’
무관도에서 얻은 나름 최고의 무기.
착용하는 것만으로도 권풍을 생성할 수 있는 이건 꼭 챙겨야 한다.
검술을 주로 쓰는 자신에게 맞지는 않지만, 몇 번의 위기를 넘기는 데 크게 일조했다.
몸에 착용하고 있는 팔황전신갑은 너덜너덜해진 상태라, 도구함에 굳이 넣을 필요는 없을 것 같았다.
단영검을 넣을지 좀 고민했지만, 그만두었다.
어차피 이 검이 특수한 능력을 갖춘 것도 아니니까.
‘어? 왜 도구함이 열리지 않지?’
상단 위에 떠 있는 [도구함]이란 곳을 건드렸는데도 반응이 없었다.
그러다 뭔가를 느낀 설휘가 고개를 뒤로 훽 돌렸는데.
아니라 다를까.
피풍의를 휘날리는 남자 하나를 떡 하니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여기 숨어 있는 놈도 있네?”
흑의에 팔짱을 낀 채로 긴 눈썹이 휘날리는 사내.
등 뒤에 착용한 대도 한 자루.
발목까지 찬 각반과 붉은색 장갑이 유달리 시선을 끌었고.
사탕수수의 잎을 밟고 떠 있는 그의 경공술은 설휘의 눈을 의심하게 만들었다.
‘망할.’
설휘는 도구함이 열리지 않은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자신의 목숨이 위협받는 상황.
거기다 상대가 적의를 드러낸 이상, 이 싸움은 피할 수 없다.
[State, 상태]
고월 [홍마원 칠용대 대장]
체력 25,000/25,000
내공 22,000/22,000
전투력 6.3만
신비랑과 비슷한 수치.
하지만 이전과 달리 지금 설휘의 몸 상태와는 아주 큰 차이였다.
“뭘 그리 아득바득 살려고 눈알을 굴리나?”
투욱.
고월은 한 장(3m)의 높이로 솟아오른 사탕수수 잎을 툭 차며 지면을 밟았다.
스르릉.
그리고 뽑아 든 대도(大刀).
무식한 크기인데도 그는 너무도 편안하게 자루를 파지하고 있었다.
‘그래. 죽을 때 죽더라도 선공을 날려야 한다.’
설휘는 즉시 단영검 안에 내력을 투입했다.
소희마공.
이 무공의 숙련단계가 기본까지 올라가자, 설휘의 신체반응은 모든 면에서 비약적으로 상승했다.
신비랑의 움직임을 좇을 수 있었던 것도 바로 소희마공의 힘이었다.
“하아아앗!”
설휘는 말이 끝나기도 전에 자리에서 도약했다.
그리고 덜컥. 뭔가에 몸이 걸렸다.
[경고! 고월이 설휘 님의 빈틈을 발견했습니다. 어떻게 대응하시겠습니까?]
▶ 맞대응한다.
▷ 방어한다.
▷ 도망간다.
지금의 실력차가 너무나 월등해서일까.
먼저 공격을 시도했는데, 검을 휘두르기도 전에 자신에게 불리한 상태창이 떴다.
<‘방어한다’를 선택하셨습니다.>
계속 진행됩니다.
‘……!’
달려가던 설휘는 고월의 행동에 머뭇거릴 수밖에 없었다.
한 발을 들어 올리는 특이한 동작.
그리고 다시 바닥을 밟았을 땐, 눈앞에 와 있는 기형적인 신법.
설휘가 처음 경험한, 천영팔황각(千影八荒脚)이라는 무공이었다.
퍼억!
뱀처럼 흐물거리던 고월의 발이 설휘의 가슴을 강타했다.
단번의 그의 몸은 수직으로 꺾이며 바닥에 떨어졌고.
빠아악!
고월은 지면을 밟자마자, 설휘의 고개를 차버렸다.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퍼-억!
그리고 재차 발꿈치로 설휘의 등을 내리찍어버렸다.
<일격 적중! 고월이 설휘 님에게 235의 피해를 입혔습니다.>
설휘 [말단 조직 분대장]
체력 8(↓235)/7,708
내공 242/7,070
설휘의 입가는 허연 침으로 가득했다.
실로 끔찍한 고통이었다.
적을 쓰러뜨려야 한다는 생각이 사라져버릴 정도의 아픔이 몸을 타고 전해져온 것이다.
“너 따위가, 뭘 하겠다고?”
고월은 앉은 자세로 신음을 흘리고 있는 설휘를 바라보았다.
정신을 반쯤 잃은 와중에도 검을 쥐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크악!”
찢어지는 비명이 설휘의 입에서 튀어나왔다.
고월이 설휘가 내밀고 있던 손을 밟아 뭉개버린 것이다.
“억!”
고월은 설휘의 머리채를 낚아채 위로 쳐들었다.
“너 같은 놈은 그냥, 나의 충실한 거름이 되어주면 돼.”
그리고 이리저리 흔들며 말했다.
“밟을 때 밟히고. 때리면 맞고. 죽이면 죽고.”
“…….”
설휘는 무기력하게 그저 듣고만 있었다.
항거할 힘도. 대항할 힘도 없었다.
그저 머릿속에 떠도는 한 가지.
‘그래. 이제야 알 것 같다.’
몇 번의 삶이 반복될 때에도.
죽어가는 와중에서도. 그리고 곧 죽는 순간에도 그는 생각했다.
왜 강해져야 하는지.
더러운 구정물 속에서도 악착같이 딛고 일어서야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멈추지 않으면 죽으니까.
그들의 거름이 되어 더러운 세상을 살아가야 하니까.
[절호의 기회! 고월의 빈틈을 발견했습니다. 어떻게 대응하시겠습니까?]
▶ 공격한다.
▷ 무공을 쓴다.
▷ 도구함을 사용한다.
▷ 상대의 지척까지 다가간다.
‘…….’
설휘는 잠시 빈틈창을 멍하니 바라봤다.
잘못 뜬 게 아닐까 의심됐기 때문이다.
체력과 내공이 거의 바닥을 드러낸 상황.
오른손은 뭉개져 뭘 짚을 수 없는 상태라 죽이기는커녕, 손끝 하나도 건드리기 힘들지 않은가.
<‘공격한다’를 선택하셨습니다.>
3초 전으로 되돌립니다.
늘 목적이 있는 선택만 하는 건 아니다.
끝을 알고 있기에 별 뜻 없이 처음을 골랐고.
“너 같은 놈은 그냥, 나의 충실한 거름이 되어주면 돼.”
상대의 굴욕적인 말에 뭐라도 해야 할 것 같았고.
검이 보여 검을 짚었고,
할 수 있는 게 휘두르는 것뿐이어서 그렇게 했다.
“밟을 때 밟히고. 때리면 맞고. 죽!”
그런데, 충격적이게도 이게 떴다.
[대박검을 사용합니다.]
‘……!’
분노와 좌절, 고통을 단번에 날려버리는 강렬한 무공.
방법을 찾으려 했으나 찾을 수 없었고, 고민했으나 풀 수 없었다.
그런 와중에 다시금 등장했다.
지이잉! 푸슉!-솨아아아아
반딧불처럼 생성된 알갱이들이 검 끝으로 몰려들었고, 그것은 점차 영성(靈性)을 띠며 진기(眞氣)를 움직였다.
본디 무학의 오의를 깨달은 자만이 할 수 있는 수법을 설휘가 펼쳐낸 것이다.
<회심의 일격 적중! 고월에게 2만 이상의 상처를 입혔습니다.>
“컥!”
무방비 상태에서 일격을 허용한 고월은 입에서 피를 토하며 뒷걸음질 쳤고.
털썩.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주저앉았다.
그리고 그의 위.
상식을 벗어나는 피해 수치가 상태창에 기록되어 있었다.
[State, 상태]
고월 [홍마원 칠용대 대장]
체력 3,170(↓21,830)/25,000
더욱이.
대박검은 상대의 체력뿐만이 아닌.
[State, 상태]
고월 [홍마원 칠용대 대장]
체력 3,170(↓21,830)/25,000
내공 9,445(↓12,555)/22,000
적의 내공까지 빼앗아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