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화. 칠용대장 고월 (2) < 둔 산 >
설휘 [말단 조직 분대장]
체력 4(↓1)(↓1)(↓1)(↓1)/7,708
설휘는 희열을 느끼고 있었다.
고통이 극심함에도, 죽음이 눈앞에 드리워지고 있음에도, 오히려 정신만은 더욱 또렷해졌다.
‘드디어……… 알아냈다!’
대박검의 사용법.
그것은 머리의 움직임이었다.
고월이 자신의 머리채를 잡고 흔드는 가운데서 펼쳐낸 것이다.
“이 무슨…….”
한참 떨어진 곳에서 고월이 복부를 부여잡고 있었다.
똥 씹은 표정이지만, 실은 운이 좋아 살아있는 거다.
체력이 다한 상태로 검을 움직이느라, 검기(劍氣)를 전부 휘두르지 못했으니.
그러고 보니 측간에서도 떨어지는 적월의 똥을 휙휙 피하느라…….
“크크크…… 하하하하! 커억…… 컥. 크크.”
설휘는 생살이 찢겨나가는 고통 속에서도 웃음을 멈출 수 없었다.
이 힘의 사용법을 알아내기 위해 얼마나 헤맸던가.
주먹 사이로 빠져나가는 모래를 드디어 움켜쥐었다.
“그러길래…… 좀 적당히 설쳤어야지.”
설휘는 입가에 피를 닦으며 비아냥댔다.
“이놈이 감히…….”
“넌 이제 이곳을 빠져나가지 못할 거다. 그렇게 다친 몸을 다른 놈들이 가만 둘 리 없지. 크크큭.”
“이 새끼이이이!”
급히 대검을 고쳐잡는 고월.
설휘의 시야는 점점 희미해져 갔고.
투욱.
손에 힘이 빠지며 잡고 있던 검마저 놓쳤다.
‘이제 정말……’
또 다른 수가 있냐고?
아니. 이젠 맞서 싸우기는커녕, 다시 집어들 힘조차 없다.
그런데 왜.
눈앞에 이게 뜨는 것일까.
[절호의 기회! 고월의 빈틈을 발견했습니다. 어떻게 대응하시겠습니까?]
▶ 공격한다.
▷ 무공을 쓴다.
▷ 도구함을 사용한다.
▷ 상대의 지척까지 다가간다.
‘허. 참.’
이미 죽음이 예정된 상황.
무기마저 없는데 왜 눈앞에 나타나는 거지?
‘무기가 없…… 가만!’
순간, 설휘의 머리를 번쩍이며 스쳐가는 하나의 가정.
그는 급히 세 번째 선택 칸, ‘도구함을 사용한다’를 선택했다.
[무엇을 사용하시겠습니까?]
▷ 회복
▶ 장비
설휘는 장비를 선택했고, 보조무기인 벽력탄을 골랐다.
‘해보자!’
너무 많은 피를 흘려 살 수 없음에도 그의 눈만은 번쩍였다.
벽력탄이 아깝다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았다.
그저 저승길 동무로 가는 저놈의 면상을 보지 못하는 게 아쉬울 뿐.
사실, 훗날. 이와 또 유사한 물건을 얻었을 때.
이런 걸 사용하면 어떤 일이 일어날지 직접 경험해보고 싶은 마음이 제일 컸다.
[벽력탄을 사용합니까? 승낙/거부]
결심한 설휘는 벽력탄을 선택했다.
피이이익-
그리고 정말 찰나,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벽력탄을 그에게 던졌고.
튀어나온 바위 옆으로 몸을 웅크렸다.
콰앙!
희미해진 시야를 비집고 불의 고리가 사방으로 퍼져나가는 걸 목격했다.
-화아아아악! 쿠와아앙!
극염(極炎)의 마공을 펼치면 이러할까?
괴이한 문양처럼 퍼져나가는 불의 고리는 그야말로 주변을 불지옥으로 물들였다.
무엇보다 귀를 먹게 만드는 엄청난 충격파.
폭음의 위력이 지축을 흔들 만큼 컸다.
“크아아아!”
그 속에서 고통에 울부짖는 한 남자는 풍압에 못이겨 공중에 치솟았다.
그리고 퍽! 하며 지척에서 떨어진 신형.
설휘는 멍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봤다.
[회심의 일격 적중! 고월에게 3170의 치명적인 피해를 입혔습니다.]
체력 0(↓3,170)/25,000
고월이 죽었다.
벽력탄 위력이 얼마나 강한지 적의 몸이 갈기갈기 찢겼다.
몸통과 팔다리가 분리될 정도로 고월의 시신이 상당히 훼손되었다.
“난 살았어…….”
설휘는 믿기지 않는 얼굴로 그와 자신의 체력 수치를 바라보았다.
벽력탄의 위력이 이 정도였다면 지척거리에 있는 분명 자기는 죽었어야 했다.
그런데 아무런 고통이 느껴지지 않았다.
도구함의 벽력탄은 자신을 보호하면서 주위 모든 것을 섬멸해버린 것이다.
체력 2(↓1)(↓1)/7,708
“아, 회수해야 해!”
설휘는 눈을 번뜩였다.
어차피 자신도 곧 죽는다. 하지만 아직 해야 할 일이 있었다.
그것도 매우 중요한 일이.
“뭐라도 나와라. 제발…….”
앉을 힘도 없어 이미 바닥에 쓰러진 몸이었지만, 설휘는 포복 자세로 필사적으로 기며 앞으로 나아갔다.
눈앞에 떨어져 있는 고월을 찾기 위함이었다.
‘아, 안 돼…….’
체력 1(↓1)/7,708
아, 체력이 마지막까지 떨어진 상태에서, 그와 거리는 한 장이나 남았다.
이대로 죽으면…….
벽력탄이 너무 아까웠다.
그러던 그때 뭔가가 머리를 스쳐갔다.
‘맞아! 연양갱이!’
한 입만 먹고 남겨둔 거.
도구함에 있지 않은가.
[도구함을 여시겠습니까?]
‘빨리…….’
[연양갱을 사용하시겠습니까?]
꺼낼 힘도 없어 곧장 사용했다.
[체력이 회복되었습니다.]
체력 3(↑2)/7,708
“조금만 더…….”
말하기 힘들 정도의 미세한 힘이었지만, 이를 악물며 기어가던 설휘에겐 더할 나위 없는 도움이었다.
체력 1(↓1)(↓1)/7,708
체력이 ‘1’로 떨어졌을 때쯤.
[금창약 5개를 얻었습니다.]
[무령도(武靈刀) 1개를 얻었습니다.]
[천년음백실(千年陰百實) 1개를 얻었습니다.]
[혈빙석태(血氷石苔) 1개를 얻었습니다.]
[상급단갑(上級短甲) 1개를 얻었습니다.]
[무관도 신(身) 시험의 약도 1개를 얻었습니다.]
[무관도 시험 순서내역표 1개를 얻었습니다.]
‘다행히…… 크으윽…….’
그의 품속을 뒤지자마자 눈앞에 뜨는 문자들.
설휘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도구함에 빠르게 넣어뒀다.
그리고 막 다 집어넣었을 때쯤.
‘아! 단영검.’
뒤늦게 손에 검이 있다는 걸 알고 도구함에 넣으려 했지만, 이미 늦은 후였다.
[마지막 목숨입니다.]
익숙한 문장이 눈앞을 가렸다.
경고음과 함께.
▶ 처음부터 시작한다.
▷ 계속 이어서 한다.
▷ 저장한 지점을 불러온다.
예상하던 지문이 떴고.
[어느 지점으로 시간을 되돌릴까요?]
선택했다.
▶ 천력 95년, 제2장. 곤마가 제시하는 세 가지의 삶]
[빈 저장 공간]
[빈 저장 공간]
더는 목숨이 없는.
마지막 남은 생의 시작이었다.
* * *
곤마의 목소리와 함께 주위가 환하게 밝아졌다.
[세 가지 중에 선택하세요.]
이제는 익숙하다.
그의 얼굴도 표정도, 그리고 그가 제시하던 지문도.
▶ 곤마의 핵심무사 되기
▷ 곤마의 호위무사 되기
▷ 곤마의 비밀무사 되기
[‘곤마의 핵심무사 되기’를 선택하셨습니다.]
“그것도 좋지.”
곤마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후, 책장을 가리키며 말했다.
“다만 무관도 입관까지는 엿새가 남았다. 내 1층에 있는 사무관에게 얘기해 둘 테니 천일관 지하 창고에서 대기하도록. 거기에서 쓸 만한 것들은 들고 가도 좋고.”
예전과 했던 몸짓과 말투는 들었던 그대로였다.
삼수원교서란 책을 언급하는 것 역시.
“한 가지.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곤마가 뒤돌아서자 설휘는 급히 그를 불렀다.
자신을 내려다보는 곤마.
이리 가까이서 보니 눈에서 안광(眼光)이 쏘아지는 듯한 느낌이었다.
“우연히 알게 된 정보가 하나가 더 있습니다. 다만, 언급하기 어려운 정보라…….”
“넌 이미 한배를 탄 상황이다. 괘념치 말고 말하거라.”
“예.”
설휘는 호흡을 한 번 가다듬었다.
모험이었지만, 여기서 정확히 해둘 필요가 있었다.
“만약에 말입니다. 다른 제자님께 회유당해 곤마 님을 감시하는 첩자를 제가 발견했을 때 어찌하면 좋겠습니까?
“첩자라…….”
첩자란 말에도 곤마의 반응은 생각보다 덤덤했다.
오히려 설휘가 놀랐다.
곤마, 그 자신에게 위협이 되는 첩자를 언급했음에도 이런 덤덤함이라니.
“뭐, 당연한 거다. 누구나 천마의 제자가 되는 순간. 내가 원치 않았던 사건에 휘말리게 되지. 나 또한 제자가 된 그해부터 그랬고.”
“아…….”
넷째 제자인 곤마.
마교 내 공식 서열 100위 안에 드는 무인이지만 영향력이나 두각을 나타내지 못한 인물.
그런데 대화를 나눠보니 알 수 있었다.
지금까지 버티고 있는 것만으로도 감히 추측할 수 없는 암투를 이겨내고 있는 것이라고.
“설휘라고 했나.”
“옙. 넷째 제자님.”
“만약 무관도로 가던 도중에 그 첩자에 대한 단서를 알게 된다면, 곧장 내게 와라. 그때쯤 난 유원궁(留院宮)에 있을 테니. 물론.”
“…….”
“잡아 올 수 있다면 더 좋고.”
유원궁은 천마 제자들만의 쉼터.
보통 교내의 무인들은 접근할 수 없으며, 이유 없이 접근할 경우 즉살된다고 알려져 있다.
“알겠습니다.”
설휘는 고개를 숙였다.
잡아 오면 더 좋다라…….
* * *
설휘가 천일관 지하 창고로 들어오자마자 한 일은 도구함의 분석이었다.
벽력탄을 쓴 후, 고월에게서 얻은 물품들이 무언지 확인하기 위함이다.
[무령도(武靈刀)]
설명 : 고월의 독문무기. 도신의 길이만 해도 3척 7촌이나 된다.
[상급단갑(上級單鉀)]
설명 : 태현각 소륵(蘇勒) 각주의 애장품. 여러 번 그의 목숨을 지켜주었다.
효과 : 일부 공격을 피해 없이 막아낸다.
[혈빙석태(血氷石苔)]
설명 : 천 년 이상 된 혈빙석(血氷石)에서 피어난 이끼.
효과 : 체력과 내공을 적절히 올려준다.
[천년음백실(千年陰百實)]
설명 : 천 년이 넘게 지하 음지에서 생존한 자생초의 열매. 다양한 기운이 혼합되어 있다.
효과 : 체력과 내공 3천 이상 증가.
‘하나, 제대로 건졌구나.’
천년음백실을 보며 설휘는 감탄했다.
이 정도 효과를 가지고 있다면 무관도에서도 손에 꼽히는 보물이었지 싶다.
설휘는 자신의 능력치를 바라봤다.
설휘 [말단 조직 분대장]
체력 118/120
내공 250/250
모든 능력이 저장된 그때로 되돌아간 상태다.
미미한 양이지만.
이제 곧 경천동지한 변화가 생길 것이다.
“첩자 거운을 잡아야겠어.”
곤마와 헤어지기 전에 설휘가 첩자를 언급한 것은 무관도로 가지 않기 위해서였다.
이젠 우회로를 생각해 볼 때다.
매력적인 보물이 아직 남아있겠지만, 새벽의 존재들의 능력을 안 이상, 너무 위험한 길이었다.
[혈빙석태를 사용하시겠습니까?]
[천년음백실을 사용하시겠습니까?]
아깝게도 이전 삶에서 먹은 영약들은 죽어서 소용없게 되었다.
우선 고월에게서 얻어 죽기 직전에 저장해뒀던 영약을 모두 먹었다.
체력 938(↑820)/940
내공 790(↑540)/790
체력 4,023(↑3085)/4,025
내공 3,889(↑3099)/3,889
이후, 다른 영약에 눈을 돌렸다.
임무를 성공한 후 받은 최고의 보상.
[천룡단을 사용하시겠습니까?]
승낙하자 곧장 수치들이 변화했다.
<체력과 내공이 크게 증가합니다.>
설휘 [말단 조직 분대장]
체력 20,558(↑16,535)/20,560
내공 21,680(↑17,791)/21,680
“와 엄청난…….”
설휘는 이제껏 보지 못했던 수치를 보며 육체적인 한계를 벗어나는 듯한 기분을 느꼈다.
몸속 수십 개의 세맥(細脈)이 제멋대로 타통(打通) 되는 현상이 일어났다.
그로 인해 생겨난 공력(功力)이 하단전을 타고 엄청나게 용솟음쳤다.
“인기척도 들린다.”
타타탓.
천장 위다.
사람 걷는 소리. 물건을 드는 소리.
심지어 누가 냈는지, 사람 기침소리도 들릴 정도였다.
동시에 따라오는 특수한 능력.
<독심술의 숙련도가 올라갑니다.>
[지속스킬] 독심술
흉내내기 ▶ 기초단계
“그래. 이것도 있었지.”
남의 상태를 파악하는 능력.
생존하는 데 큰 힘이 됐던 기연이다.
“이젠 무공을.”
몇 번을 회귀하며 익혔던 무공들을 떠올리자.
<소희마공을 익혔습니다.>
<(적수마공)적열장을 익혔습니다.>
<(초극마공)폭열공을 익혔습니다.>
즉시 문구가 나타났다.
“마지막으로…….”
설휘는 왼손으로 검을 쥐었다.
이전 생에서 결국, 발견해냈던 사용법.
자신에게 최고의 능력을 써 볼 생각이었다.
“머리를 밑으로 그리고 뒤로 움직였다가…….”
방향 모양대로 머리를 움직인 다음, 곧장 검을 움직였다.
[대박검을 발휘합니다.]
“억!”
쿠쿠쿠쿵.
흡사 반딧불처럼 퍼져 나오던 알갱이들의 기운이 검신 끝에 몰려들었고, 응축된 기가 쭉 뻗어나가며 강렬한 폭발을 일으켰다.
그리고 그 기운은 벽을 끝도 없이 뚫어버렸다.
기공(氣功)이 내뿜는 힘 자체가 다른 무공과는 판이하게 달랐다.
“내 장담하지. 이번 생은…….”
설휘의 눈빛에 기광이 서렸다.
모든 능력이 1갑자를 넘어서자 자연스럽게 나타난, 변화였다.
“완전히 다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