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화. 새로운 전투유형 (1)
지하 창고에 온 지 반나절, 그동안 설휘가 한 건 대박검에 관한 연구였다.
그에게 있어 당금의 숙제는 이 기술을 얼마나 빠르고 효율적으로 펼쳐내냐 하는 것이다.
“아쉽네.”
대박검 사용법을 알아낸 후, 환희로 들끓었던 감정은 시간이 지나면서 천천히 식어갔다.
왜냐하면, 대박검은 엄청난 힘을 발휘할 수 있다는 장점에 비해, 치명적인 약점도 있었기 때문이다.
바로 발동시간, 그리고 왼손의 사용이다.
오른손을 사용하는 설휘가 이것을 발동시킬 때는 왼손으로 검을 쥐어야 한다는 제약이 있었다.
절체절명의 순간에 왼손으로 검을 이동시키는 게 여간 부담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발동과정이 더 문제인데…….”
검의 위치를 바꾸는 거야 어떻게 한다 해도, 결국 검기를 쏘아내는 방법.
그 과정이 문제였다.
대박검(大舶劍) : ↓↘ → ←, B
위의 표시대로 머리를 숙이는 동작 한 번.
우하단의 움직임 한 번.
앞으로 고개 내밀며 한 번.
이후, 재빨리 뒤로 움직이면서 검을 휘둘러야 한다.
생각해 보면 시간 간격이 너무 길었다.
이런 동작을 취하는 동안 적이 순순히 기다려줄 리 없지 않은가.
“소희마공 초식과 어떻게든 연계하면 될 것 같은데…….”
고개를 움직이는 동작을 떠올리자 한 초식이 생각났다.
육초식(六招式) 소상기변(素狀奇變).
소상의 뜻은 얼음의 형태이며 기변은 변환이라는 뜻이다.
앞을 향해 돌진하는 소희마공의 가장 공격적인 초식.
하단 공격을 하는 듯하며 앞으로 달려나가는 이것을 이용해, 왼손으로 검 위치를 바꾼 뒤.
마지막 ‘←’ 모양의 방향.
이것대로 뒤로 물러서며 휘두르면 대박검이 나가지 않겠는가.
“일단 연습을 더 해보…….”
끼이이익.
순간, 문 여는 소리 때문에 설휘의 동작이 멈췄다.
곧이어 계단을 밟고 익숙한 얼굴의 노인이 걸어 내려온 것이다.
“왜 이렇게 시끄러워?”
천일관의 사무관. 두홍이었다.
이상한 일이다.
몇 번의 생에서도 모습을 보이지 않던 그가 이곳에 직접 들어오다니.
‘이것 때문인가.’
설휘는 그제야 주위가 눈에 들어왔다.
박살이 난 벽과 천장.
널브러진 책들과 곳곳에 파인 바닥 그리고 천장.
대박검 연구한답시고 자신이 벌인 일들이다.
그제야 설휘는 책 정리뿐만 아니라 파손된 것도 복구하라는 그의 언급이 생각났다.
쩝쩝쩝.
호박처럼 찌그러진 두상을 가진 두홍은 검버섯 핀 작은 눈으로 주변을 훑고 있었다.
한 손에는 사과 반쪽.
다른 한 손에는 과도를 들고 나타난 것을 보면, 과일을 처먹다가 온 것 같았다.
“거 참…….”
온 사방에 부서진 주변을 살펴보던 그의 얼굴이 미미하게 떨렸다.
하지만 설휘에겐 그런 것들은 아무래도 좋았다.
그의 얼굴 위. <목숨 + 1>이라는 글자에 눈이 갔으니까.
[State, 상태]
두홍(頭紅)[천일관 담당 사무관]
신체 정상
Coin 1개
의뢰 두홍의 멍멍이가 되시오(0/8)(New, 신규)
→ 업그레이드 전투유형
[Value, 수치]
체력 3,500/3,500
내공 3,200/3,200
전투력 1만
‘목숨 하나. 이걸 놓칠 뻔했군. 근데 의뢰? 이게 무슨…….’
후두두둑.
서 있던 설휘의 고개가 반사적으로 꺾였다.
다짜고짜 두홍이 자신이 씹던 음식물을 내뱉어버린 것.
“이 녀석. 개념이 없구만…….”
여자처럼 톤이 높게 갈라지는 목소리가 신경을 더 긁는다.
후두두둑.
두홍이 다시금 음식물을 내뱉자, 설휘는 괜히 주먹에 힘이 들어갔다.
‘아냐. 지금 죽이면 안 돼…….’
그러나 이성의 끈을 잡으며 다시 생각했다.
예전이라면 몰라도, 지금 이런 놈의 모가지 꺾는 것은 매우 쉬운 일.
하지만 생각을 잘해야 한다.
이자를 죽인 후 일어날 일들.
혹시라도 일정이 틀어지는 변수가 생기면 안 된다.
이번 생은 거운을 죽이는 것이 1차적인 목표가 아닌가.
“죄, 죄송합니다. 원래대로 해 놓겠…… 윽.”
설휘의 머리가 위로 홱 꺾였다.
이번에도 두홍이 무엇인가를 뱉었다.
근데 음식물이 아니라, 끈적끈적한 침과 누런 가래가 같이 딸려 나왔다.
“너 참 잘 걸렸다.”
“…….”
“요즘 너무 무료해서 심심했거든. 왔다 갔다 하는 놈들이 계속 내 성질을 건드려서 말이야.”
그는 한 걸음 다가왔다.
그리고 침이 쭈욱 흘러내리고 있는 설휘의 귓가에 대고 말했다.
“우리 좀 가깝게 지내볼까? 히히힉.”
‘아. 그냥 죽여버릴까?’
순간, 설휘의 눈동자에선 살심이 차올랐다.
하지만 그를 인내하게 만드는 문구.
의뢰. 두홍의 멍멍이가 되시오(0/8)
→ 업그레이드 전투유형
이게 너무나 궁금했기에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었다.
* * *
강자존.
마교 내 뿌리 깊은 규율로, 모두가 이것을 따라야 한다고 명시되어 있다.
그러나 이 율법에도 체계가 있다.
상급지단과 달리 하부지단의 경우엔 오로지 상관 이 부하들의 생사여탈권을 가지는 것이 일반적.
하지만 그런 부류에도 해당하지 않는 조직이 있다.
바로 소속부대가 없는, 흔한 잡조직으로 분류되는 자들.
설휘의 조직.
비객조가 그런 곳이다.
체계상으로는 소속 각주의 명을 받는다고 하지만, 실은 하급지단 내 부대의 장이라면 누구나 그를 부릴 수 있는 권한이 있다.
그러니 두홍이 자신을 괴롭힌다 한들 굳이 제지할 이유도, 그럴 명분도 없는 것이다.
“이놈은 최대한 잔인하게, 누가 봐도 끔찍하다는 말이 나오게 죽여야 한다.”
설휘는 아침부터 뒷간을 청소하고 있었다.
두홍.
이 새끼는 미친놈이 맞다.
어젯밤에 불러내서 새벽까지 뒷간을 청소하게 만들더니, 오늘 아침에는 뒷간의 똥을 비워내란다.
“하. 몇 번을 회귀해도 똥 인생을 벗어나지 못하는구나…….”
설휘는 온몸에 천을 두르고 뒷간 아래에서 열심히 똥을 퍼 올리고 있었다.
발 지지대와 똥간의 거리는 깊어서, 십여 번이나 퍼 나를 때쯤에야 겨우 바닥이 보였다.
두홍의 멍멍이가 되시오(1/8)
다행스럽게도 어제 뒷간 청소를 하면서 의뢰 하나는 채웠다.
그리고 이번 똥만 퍼내면 청소는 완전히 끝난다.
이번 걸 끝내면 앞으로 6개만 하면 되지만, 그게 말이 쉽지 고역이었다.
“전투유형이 대체 뭘까. 분명 엄청난 걸 줄 테지?”
아무리 힘들어도 주어지는 보상에 자꾸 눈이 갔다.
이제껏 지금 눈앞의 창들은 어떤 형태로든 자신에게 많은 기연이 안겨다 주었다.
그렇다면 이번에도 뭔가 특별한 능력을 안겨다 줄 터.
“………오늘 아침을 너무 허겁지겁 먹었나.”
끼이이익.
판자문이 흔들리는 소리에 설휘의 눈이 올라갔다.
똥간 안에서 퍼내는 와중에, 열린 문으로 사람이 들어오는 걸 본 것이다.
[State, 상태]
이벽(易劈) [천일관 3층 담당 관리인]
신체 정상
[Value, 수치]
체력 2,400/2,400
내공 2,890/2,890
전투력 8천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능력치만 보이고 있을 뿐.
“사, 사람이 있습니다!”
설휘는 급히 외쳤다.
이곳 똥간은 천일관 담당자들만 쓰는 곳이라 딱 하나다.
피할 곳도, 벗어날 공간도 없다.
“……오. 네가 두홍이 말한, 이번에 천일관으로 온 놈이구만.”
천장 위로 슬며시 노인의 얼굴이 보였다.
꼬질꼬질하고 팔(八)자모양인 콧수염이 눈에 띄었다.
“하하. 그렇습니다. 임무를 수행하는 중이지요.”
“고생한다. 그래. 열심히 하거라. 나는 급해서……”
슥슥.
그는 손짓을 하면서 허리춤에 손을 가져갔다.
‘야이 씨발아.’
욕이 절로 나왔다.
망할 관리자가 하의를 훌러덩 벗어 재꼈고, 곧이어 끔찍한 하체가 보였다.
꾸우우웅.
이놈도 미친놈이었다.
머리 위, 입 구(口)와 닮은 구멍으로 두 개의 반달이 보이자마자 무엇인가 폭포수처럼 튀어나왔다.
뿌지지지지익!
‘씨바- 설사아아아아아악!’
물줄기였다.
뚝뚝 끊어지는 진똥이 아닌, 끈적임과 물기가 서려 있는 설사.
그리고 터져 나온 건더기 하나가 설휘의 입가에 달라붙었다.
‘죽인다! 죽여야 한다! 죽여야 해!’
설휘의 눈에선 살심(殺心)이 미친 듯이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하지만 최우선으로 고려해야 할 뒷일이 그의 행동을 가로막았다.
천일관 담당자들의 죽음.
당연히 태황각에서 조사가 나올 것이고, 그게 곧 자신임이 밝혀질 것이다.
설령 나중에는 몰라도 지금 당장은 아니었다.
거운을 쓰러뜨리고 그를 포획한 뒤. 곤마의 신임을 받아내야 하지 않겠는가.
쪼로로록.
물줄기가 떨어져 내렸다.
마무리였다.
이벽이 설사를 다 터트린 뒤, 오줌으로 이 사달의 끝을 마무리 지었다.
“아. 시원하다.”
스스슥.
엉덩이 속을 대충 문지른 그가 자리에서 일어서며 말했다.
때마침 온몸에 똥물을 뒤집어쓴 설휘 머리 위로 구겨진 황지 한 장이 툭 떨어졌다.
탕!
이벽은 그렇게 문을 닫고 밖으로 나갔다.
“일단 죽도록 팬다.”
바닥에 떨어진 똥물.
끈쩍끈쩍한 액체.
그리고 이벽의 몸에서 채 소화되지 않은 청경채 한 줄기가 설휘의 목에 휘감겨 있었다.
“그리고 머리를 똥물에 처넣고, 밟는다. 죽을 때까지. 그래. 그게 좋겠어.”
머릿속에 두 명을 끔찍하게 죽이는 장면이 그려지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되지 않았다.
지독한 냄새는 지금 처한 설휘의 현실을 너무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었으니까.
“으아아아아악!”
머리끝까지 치솟은 그의 분노가 비워진 똥간 안에서 더 크게 울려 퍼졌다.
* * *
설휘는 호수로 가서 정말 미친 듯이 씻었다.
이렇게 박박 씻어도 되나 싶을 만큼, 피부가 찢어질 정도로 씻었다.
“오. 정리가 다 된 것이냐?”
천일관에 들어오자 두홍이 자신을 반겼다.
하지만 그에게 시선이 가지 않았다.
옆에 있는 개 같은 녀석 때문에.
“깔끔히 했겠지요. 허허허.”
이벽이었다.
그는 두홍의 옆에 앉아있었다.
자신에게 치욕을 안겨 주기 위해 둘이 짜고 이 일을 벌인 것이다.
마치 태황각주 사마귀와 오천각주 당초인처럼.
“말끔히 해결했습니다.”
곧장 면상을 후려갈겨 주고 싶은 욕구가 미친 듯이 치솟았지만, 참아야 했다.
바로 이것 때문에.
두홍의 멍멍이가 되시오(2/8)
대답과 함께 올라가는 숫자.
총 8개 중에서 2개를 완성했다.
“잘했다. 그럼 물 좀 받아 놔라. 목욕 좀 하게. 옆에 계신 분 것도.”
“물론입니다. 그럼 지금 바로 받아오겠습니다.”
설휘는 급히 머리를 숙였다.
그리고 뒤돌아 나가려는데 콧수염 노인, 이벽이 한마디를 덧붙였다.
“손은 박박 씻었나? 냄새가 나면 안 되니까.”
“…….”
설휘는 대답하지 않았다.
잠자던 내공이 미친 듯이 날뛰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젠 억누를 수 없었다.
차라리 이 두 놈을 죽이고 다시 과거로 회귀하는 게 더 나을 것 같았다.
설령 미래에 대한 준비가 없다고 해도.
그렇게 뒤돌아서려는데.
“오셨습니까!”
악어처럼 느긋하게 있던 두 노인이 갑자기 자리에서 입구 쪽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설휘의 시선이 자연스레 그곳으로 쏠렸고.
곧 사색이 되었다.
‘어떻게 저 여인이 여길…….’
[State, 상태]
소령 [홍마원 출신]
신체 정상
무관도 시험 때 봤던 그 여인.
엄청난 미모를 가진 소령이 천일관에 방문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