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마육성 시물레이션-28화 (29/379)

28화. 새로운 전투유형 (3)

“여기서 주먹을 이런 식으로 했네.”

“아닐세. 여기서는 고개를 숙인 뒤 요롷게. 요롷게 내질러야 한다고 했다니까.”

아침부터 두 노인의 열띤 토론이 한창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이른 새벽, 중원을 염탐하던 정보요원 하나가 천일관에 들려 중원의 권법을 알려줬는데, 서로 자신의 동작이 옳다고 우기고 있었던 것이다.

“거참. 내 말이 맞다니까. 명색이 중원을 대표하는 아미파(峨嵋派)의 무공인데 그리 허접스럽겠나? 날 잘 보라고.”

이벽이 지켜보는 가운데 두홍은 대뜸 앞으로 걸어갔다.

이내 두 주먹을 허리춤에 파지한 그는 호흡을 가다듬으며 자세를 취했고.

곧 우렁찬 기합소리를 내며 주먹을 뻗었다.

“으헉! 억! 어어억!”

“핫. 핫. 하하핫!”

맞은편, 두홍의 기합소리에 따라 신음소리가 동시에 터져 나왔다.

십(十)자 나무에 팔 벌린 자세로 묶여 있던 설휘가, 인간고목(人間枯木)이 되어 그의 공격을 알차게 받아내고 있었기 때문이다.

“후우--.”

두홍이 몇 번 정권을 찌른 후, 뻗었던 주먹을 회수하며 숨을 골랐다.

당연히 누가 봐도 마무리 동작으로 보였다.

그런데.

“자. 이제 시작해볼까?”

“……!”

뱀처럼 가는 눈을 번뜩이던 두홍은 갑자기 손바닥을 펴고는 그 동작에 맞춰 따라 소리를 냈고.

“다다다다다닥!”

“커커커커커컥!”

그의 힘찬 함성이 앞서가고 설휘의 비명이 빠르게 따라붙었다.

권법이라 했지만, 그는 거기에 그치지 않았다.

손가락을 이용한 찌르기.

손동작을 이용한 혈도 짚기.

손바닥을 이용한 후려치기.

치고 때리고 꼬집고 후려치는 것을 반복하는 미친 듯한 기격술(技擊術)까지.

짝!

“악!”

정보요원이 가르쳐준 무공에도 없는 뺨때리기로 마무리한 뒤, 두홍은 이벽을 바라보았다.

“후우. 어땠나?”

그의 자랑스러운 얼굴과 달리 이벽은 오히려 냉소를 드러냈다.

“그게 아니지. 본디 동물의 동작으로 만들어진 형의권(形意拳) 3초식은 복부를 난타한 후에 하초 때리기로 마무리하는 것이지.”

“그런가? 자네가 한번 1초식부터 보여주게.”

“기다리고 있었네.”

두홍이 자리로 돌아가자 이번엔 이벽이 앞을 나섰다.

그리고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 설휘와 마주쳤고. 이벽은 그 모습을 가볍게 무시했다.

“간다아아아-!”

마치 대여섯 살짜리나 내뱉을 유치한 말투로 주먹을 휘두르는 이벽.

“슈슈슈슈슉!”

“끄끄끄끄끄끅!”

엄청난 속도와 힘이 복부를 난타했고.

목소리도 점점 괴상해졌다.

“호도도도독 도도도도독!”

“코코코코콕. 크오오오옥!”

설휘의 비명도 그의 저렴한 목소리와 비슷하게 변했다.

그러던 와중에 그것이 나왔다.

3초식 마무리.

“팍!”

“악!”

이벽의 주먹이 인간고목의 낭심을 내리친 순간, 설휘는 저승사자와 손뼉을 치는 경험을 해버렸다.

“끄어어억!”

그저 아프다는 감각과는 성질이 다른, 말초적인 고통.

‘깨… 깨진 건…… 아니겠지?’

아랫도리에 대한 안위를 덮을 만큼 머릿속은 온통 시커멓게 정지된 상태.

“어땠나?”

이벽이 묻자 두홍은 엄지를 치켜세웠다.

서로 마주 본 그들은 이내 흡족한 얼굴로 변했다.

‘여기서 마무리 짓자.’

설휘는 이성이 왔다 갔다 하는 가운데서도 오로지 거기만을 생각했다.

이젠 전투유형 따윈 아무래도 좋다.

전투유형이고 머고, 당장 이들을 족치지 않으면 제 명에 못 살 것 같았다.

두홍의 멍멍이가 되시오(7/8)

가치관이 붕괴하는 가운데에서도, 설휘의 상단 위 문구는 변화가 없었다.

어제까지 인간 이하의 대우를 받으며 겨우 채운 7개.

마지막 1개.

인간고목이 되어 이들의 주먹을 받아내면 8개가 완성된다.

그래야 하는데……

“거기서는 이렇게 하는 거라니까.”

“아닐세. 방금 보았지 않나. 여기서는 후려쳐야 한다니까.”

‘그래. 다 죽여 버리자.’

설휘는 저들의 말을 듣고 반쯤 이성이 나가버렸다.

여기까지가 한계였다.

“거기서 거기가 아니라니까. 직접 보여줘야 아나.”

“내가 시범을 보여줄게.”

두 노인의 티격태격할 때쯤이었다.

‘어?’

내공을 끌어올리던 설휘의 눈이 커다랗게 변했다.

그토록 고대하던 나머지 수가 채워진 것이다.

[의뢰를 완수했습니다.]

두홍의 멍멍이가 되시오(8/8)

‘아……!’

설휘는 자신도 모르게 신음이 새어 나왔다.

지옥과 같았던 6일의 삶.

기대했던 전투유형에 대한 보상이 눈 앞에 펼쳐지는 순간이었다.

<이제부터 설휘 님은 ‘전투방식’을 선택하실 수 있게 됩니다.>

그래. 그게 뭐냐고.

억겁의 시간을 기다리게 한 그 보상이 대체 뭐냐고.

<전투방식은 평상시 언제든 설정을 변경할 수 있습니다. 맨 상단을 선택해주세요.>

문구와 함께 상단에 뭔가 뜨기 시작했다.

[전투방식]

그걸 누르니.

▶ 턴제 싸움 (상세보기를 눌러주세요.)

▷ AI 싸움 (상세보기를 눌러주세요.)

이런 게 떴다.

그런데 지금 이런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돌이킬 수 없는 실수를 저지른 놈들이 눈 앞에 있는데.

“이번엔 나부터 하겠네.”

이벽이 좌우로 목을 까닥이며 걸어 나왔다.

걸어오면서 주먹을 슈슉 휘두르는 그의 모습을 보고, 설휘는 미친놈처럼 웃기 시작했다.

“크크큭. 귀싸대기 450대…….”

“……?”

“이유 없는 볼짝 때리기 28대, 장난스럽게 코뼈 부러뜨리기 5회, 주둥이에 주먹 날리기 10회, 감정 담은 허리 차기 80대, 엉덩이 차기 연습 76대. 하반신과 상반신 지근지근 밟기 90여 회.”

“……이놈이 뭐라는 게야?”

두 팔이 묶인 설휘의 독백에 이벽의 눈이 날카로워졌다.

그럼에도 설휘는 계속 말을 이어나갔다.

“꼬집기 30회, 낯짝 후려치기 60회. 복부 차기 40여 회…….”

“이 자식이?”

설휘의 주절거리는 소리에 이벽은 본능적으로 주먹을 쥐었고, 곧장 설휘의 얼굴로 뻗었다.

“억!”

터억.

그런데 움직이는 도중 막혔다.

순식간에 줄을 끊어버린 설휘가 그의 손을 잡아버린 것이다.

“네놈들이 6일간 나에게 했던 것들이다. 난 한 톨의 남김없이 셈한 뒤, 고스란히 돌려줄 예정이고.”

“어. 어, 어…….”

삽시간에 굳어가는 이벽.

때마침 설휘의 발이 밑으로 움직이며 그의 낭심 사이를 파고들었다.

뻐억!

“크아아---악!”

설휘는 확신했다.

꽉찬 두 개가 두부처럼 으깨지는 느낌.

이건 볼 것도 없다.

깨진 거다.

“으아아아아아악-!”

이벽이 내지르는 비명의 진실됨이 그것을 증명해주고 있었다.

“이 새끼가……!”

한순간, 그의 뒤에서 두홍이 급히 덮쳐 오고 있었다.

설휘는 가소로웠다.

빠르지도 않은 데다, 주먹을 뻗는 동작이 너무 단순해 보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똑같이 보답해줬다.

뻐억!

“으허허허---헉!”

‘이런.’

감촉은 있었다.

하지만 이벽처럼 꽉 찬 느낌이 아닌, 약간의 허전한 감촉이 달랐을 뿐.

설휘는 비명을 지르는 그의 몸에 올라타 다시 한번 두홍의 낭심을 밟았다.

뻐억!

“이거지. 이거지.”

산산이 부서지는 느낌.

이건 깨지지 않고선 결코 납득하기 힘든 발끝의 감촉이다.

“크아아아아아아악-!”

천일관 뒷문이 보이는 가운데, 바닥에서 뒹군 두 명이 고래고래 고함치기 시작했다.

하지만 영원할 것 같은 그들의 비명은 오래가지 못했다.

설휘가 장소를 옮기기 위해 둘의 머리채를 단단히 부여잡고 움직이고 있었기 때문이다.

“얘들아. 이제 똥통으로 가자.”

격정의 분출을 담은 말 한마디를 덧붙이면서.

* * *

이제껏 겪어온 가장 끔찍한 사건을 묻는다면, 설휘는 두말할 것 없이 대답할 수 있었다.

“암살을 위해 똥간에 잠입했을 때.”

숨도 못 쉴 지독한 악취. 질척질척하고 차가운 오물들.

그 속에 푹 잠겨있다 보면, 소중한 뭔가를 잃어버리는 것 같았다.

이를테면 인간의 존엄이라든가.

“이제 너희들도 알게 될 거다. 어떤 기분인지.”

설휘는 이 둘에게 그런 것을 가르쳐 주고 싶었다.

인생 최악의 치욕. 악몽이 어떤 것인지를.

두홍의 멍멍이라는 의뢰를 수행하는 내내 그것만 생각하며 버틸 수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그날이 온 것이다.

똥간에 도착했을 때 약간의 소란이 일었다.

설휘의 손에 머리채가 잡혀 끌려가던 두홍이 뒷간 앞에서 느닷없이 기습 공격을 해온 것이다.

모르긴 몰라도 깊숙한 똥간 안에서 타고 올라온 역한 냄새가 그의 이성을 자극했을 터.

바바바바박!

그래서 발로 몇 번 차버렸는데……

사건이 터졌다.

끄르륵.

어딜 잘못 맞았는지, 쓰러지자마자 거품을 물더니 숨을 거둬버린 것이다.

“뭐 제대로 해보지도 못하고…….”

설휘는 좌절했다.

굳이 죽일 생각은 아니었지만, 이렇게 죽어버리니 허망했던 것이다.

그러다 무언가 머리를 번뜩였고.

“아, 그래. 한 놈이 더 있었지!”

다시금 대상을 찾았다.

“사, 살려주시오.”

두홍 옆, 똥간 아래에 선 이벽이 겁에 질린 채 빌고 있었다.

“물론이지. 넌 특별한 대우를 해줄 거야.”

스르륵.

설휘는 그의 멱을 잡고서, 곧바로 똥통에 빠트렸다.

퍼엉. 푸드득!

“어푸! 어푸! 으아아악!”

진득한 변들 사이에 빠져서, 이벽은 끔찍한 비명을 질러댔다.

설휘의 의도대로, 인생 최악의 악몽을 겪고 있는 모양이었다.

“흐흐흐. 숨쉬기 힘들지? 쉬어도 쉬는 줄을 모르겠지? 안다, 알어. 내가 그 기분 알지.”

설휘의 친절한 공감에 이벽은 발악을 했다. 입안에 하필 뭔가가 들어갔다. 눈은 오염될까봐 무서워 뜨지도 못하고 있었다.

“끄아아악! 개새끼야아아!”

“오. 저런? 아직 정신을 못 차렸네? 거기 말이야…… 좀 추울 거거든? 내가 따듯~한 덩어리들을 좀 부어 줄까?”

흠칫!

이벽의 몸이 굳었다.

안 그래도 지독한 악취의 덩어리에 잠겨 있는데.

여기서 설휘가 말하는 따듯한 덩어리가 뭘 말하는 지는 추측하기 어렵지 않았다.

펄럭펄럭. 푸득푸득.

“대. 대협! 아닙니다! 제가 잠시 미쳤었나 봅니다!”

옷을 풀어 헤치는 소리가 들리자, 이벽이 급히 말투를 바꿨다. 끈끈한 똥이 눈에 들어올라 필사적으로 질끈 감은 채.

“요쪽으로 눌까~ 저쪽으로 눌까~.”

“아, 제발. 자비를 내려…….”

똥벽을 박박 긁고 있는 이벽이 소리 높여 울부짖었다. 하지만 상대는 기어코 할 생각이었나 보다. 그의 호소는 철저하게 무시당했다.

“요기다!”

푸드득. 푸득!

방귀인지, 무엇인지. 미세한 소리가 나고, 우레 같은 소리가 똥간 아래를 강타했다.

- 뿌지지지직.

“으아아아악!”

이벽은 소리 지르며 빠르게 몸을 비틀었다. 하지만 끈적거리는 덩어리들은 그를 놓치지 않았다.

철퍽. 철퍽. 투욱. 툭.

“으악! 으아아아-!”

뜨끈한, 뭔가 단단히 썩은 냄새에 그는 비명을 질렀고, 그러기를 한참. 악에 받친 욕을 내뱉었다.

“대체 얼마나 싸는 거냐! 이 돼지 새끼야! 왜 끝이 안 나!”

‘진짜 싸는 줄 아나보네.’

철퍽. 철퍽.

썩을 대로 썩은 음식 잔반을 퍼붓고 있던 설휘는 피식 웃었다.

그는 그렇게 이벽의 비명소리를 노래 삼아 들으며 눈앞에 뜬 전투유형을 살피기 시작했다.

[전투방식(2)]

설휘는 상단 위에 생성된 표식을 보았다.

그걸 우측으로 밀어 선택하면 이전처럼 턴제란 글자와 ‘AI’라는 알 수 없는 문자가 보였다.

설휘는 글귀 옆에 있는 ‘상세보기’를 선택했다.

<턴제>

◇ 서로 빈틈을 주고받는 전투방식.

‘사용자(설휘)’가 빈틈을 보이거나 위기를 느낄 때 시스템 창이 발동. 시간이 멈추며, 공격유형에 따라 선택이 가능하다.

<장점>

기회가 왔을 때 놓치지 않으며 가장 효율적인 공격을 할 수 있다.

전투 중 도구함을 사용할 수 있다.

<단점>

적에게 빈틈을 드러냈을 때 일반적인 상황보다 더 큰 피해를 볼 수 있다.

전투에 임하는 집중도가 떨어진다.

적의 숫자가 많을 때는 발동하지 않거나, 시간이 멈추지 않을 때가 있다.

“이제껏 싸웠던 게 이거였구나.”

설명은 설명을 듣자 이해가 되었다.

그동안 떴던 빈틈창.

위험할 때나 기회가 있을 때마다 자신에게 알려준 고마운 녀석이다.

다만 조금 의외였던 건, 빈틈을 보였을 때 오히려 더 큰 피해를 볼 수 있었다는 말이다.

거기다 전투에 임하는 집중도가 떨어진다니?

“그만 싸-! 그만 좀 싸라고---!”

철벅. 철벅.

밑에서 악에 박친 이벽의 소리가 들려왔지만, 설휘는 가볍게 무시했다.

썩어서 찐득해진 음식 쓰레기를 다 비우고, 그는 이제 다른 곳으로 시선을 옮겼다.

< AI >

◇ 인공지능이 개입하여 싸우는 전투방식.

‘사용자(설휘)’가 시스템에 모든 걸 위임하여 관조하는 방식.

<장점>

‘사용자(설휘)’의 몸 상태 무기뿐만 아니라 상대의 약점 등 가용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분석해 최고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다.

‘사용자(설휘)’의 잠재력을 끌어낼 수 있다.

전투 경험이 쌓이면 전투능력이 더 향상된다.

<단점>

결과가 나오기 전까지 도중에 개입할 수 없다.

다수의 적을 상대할 때 판단이 느려질 수도 있다.

도구함을 사용할 수 없다.

“뭔가 굉장한 것 같은데?”

대충 무슨 뜻인지 이해한 설휘의 얼굴이 밝아졌다.

물론 인공지능이니 시스템이니 하는 용어는 모르겠지만, 문맥상 어떤 존재가 도와준다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었다.

“네가 인간이냐! 왜 이렇게 많이 싸는 거냐고--!”

설휘는 밑에서 고래고래 들려오는 소리에 귀를 닫고 두둥실 떠 있는 창에 시선을 올렸다.

“이걸 선택하면 되는 건가.”

전투방식 <턴제>

위에 걸 한 번 더 선택하니.

전투방식

원하는 대로 계속 방식을 바꿀 수 있었다.

“그럼 싸움은 어떻게 하는…….”

“야이 개새끼야---!”

파파팟.

분노와 모욕이 초인적인 힘을 주었던 것일까. 설휘를 향해 벽을 짚으며 올라오는 이벽.

혹시나 몰라 발을 부러뜨려놓았는데도, 벽을 밀어내는 방식으로 올라온 것이다.

그리고 그때.

설휘는 궁금증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인공지능이 개입하여 전투를 시작합니다.>

위기를 느끼자마자 AI가 발동되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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