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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육성 시물레이션-31화 (32/379)

31화. 인공지능 AI (1)

검은 천장이 보인다.

사람의 손이 닿지 않은, 자연적으로 만들어진 공간.

그 안에서 자신이 움직이고 있었다.

‘살아있는 건가.’

질질질.

감각이 무뎌져서인지 판단이 잘 서지 않는다.

그저 등 아래쪽 부분이 쓸려나가는 것 같았기 때문에 짐작만 할 뿐.

‘어지러워.’

잠깐 시야가 트였지만, 이내 설휘는 다시 눈을 감았다.

아직 자신이 살아있다는 사실. 그것만 뇌리에 남아 있을 뿐이다.

“야. 일어나.”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설휘가 다시 눈을 떴을 때, 눈앞에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

거운이다.

그가 자신을 깨우고 있었다.

“정신을 차렸습니다.”

설휘의 눈동자를 유심히 살피던 거운이 말했다.

누구에게 보고하는 것 같았다.

고개를 들고 싶었지만,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잠시 눈을 돌려 자신의 능력창을 열어보았다.

[State, 상태]

설휘 [말단 조직 분대장]

목숨 Coin 2 [두 번의 기회]

신체 측두엽 미세손상. 중절골 통증. 왼팔 마비 등 신체의 24곳이 찢어지거나 다침.

[Value, 수치]

체력 85/26,735

내공 3,500/29,180

전투력 1만 이하

‘많이도 당했구나.’

저릿저릿한 통증과 함께 무뎌진 감각이 이제야 몰려든다.

그제야 설휘는 주변을 조금 볼 수 있었다.

예상대로 동굴이었다.

음침한 공간 안. 좌우 곳곳에 황촉 불이 내걸려 있었고, 구석 한편에 앉아 있는 자들이 보였다.

물론 어둠 때문인지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의식이 돌아왔나 보군.”

조금 떨어진 곳에 있던 인물 한 명이 다가왔다.

어둠이 깔린 곳이지만,

바로 옆. 어렴풋이 새어 나오는 빛에 의해 그의 얼굴을 볼 수 있었다.

‘이, 이자는…….’

어깨까지 내려온 곱슬머리를 보자 설휘는 눈이 부릅떠졌다.

아는 인물이다.

아니, 모를 수가 없었다.

무관도 신의 시험을 끝내고 언의 시험을 치르기 위해 갔었던 곳.

그곳에서 자신을 죽였던 인물 아닌가.

[State, 상태]

귀안마군(鬼眼魔君) [홍마원(紅魔院) 서열 8위]

신체 정상

Coin 1

적대감 : 95%(위험)

천마 첫째 제자와 동맹 관계.

[Value, 수치]

체력 35만/35만

내공 31만/31만

전투력 42만

당시에는 나타나지 않았던 그의 신상정보와 능력들이 주르륵 나타났다.

실로 가늠하기 힘든 능력 수치.

그간 봤던 적들과는 질적으로 다른 인물이었다.

“날 아는 눈치로군.”

설휘의 반응에 장발의 중년인이 재밌다는 듯 보고 있었다.

그리고 들고 왔던 의자를 설휘 앞에 터억 놓더니. 앉으며 말을 붙였다.

“하긴, 그동안 다른 이들의 눈을 속이며 첩자질을 해왔으니, 모르는 게 이상하겠군.”

“…….”

조곤조곤 말하는 그의 목소리에 거역하기 힘든 압박감이 느껴졌다.

설휘는 고개를 들어 그를 봤다.

귀안마군의 얼굴이 아니라 그의 머리에 팽글팽글 도는 글귀를.

[통찰 + 1]

‘통찰?’

독심술 숙련도가 올랐기 때문일까.

다양한 의미의 글귀가 나타나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

그게 어떤 의미인지 아직은 알 수는 없지만.

“내가 묻는 말에 대답을 잘하면, 편하게 죽여줄 수 있다.”

“…….”

“누가 보냈느냐?”

설휘는 고개를 들어 그를 빤히 바라봤다. 그리고 피식 웃으며 말했다.

“……무슨 소리인지 도통 모르겠군요.”

“역시 말로 해서는 안 되는군.”

귀안마군은 설휘의 양쪽 어깨 관절 부근에 손을 올렸다.

이후, 내공을 주입했고.

“으아아아아!”

말로 형용할 수 없는 고통이 밀려들어 왔다.

분근착골.

기혈을 뒤틀어 극심한 고통을 주는 수법.

다행히 귀안마군은 그리 길지 않은 시간 내에 내공을 거두어들였다.

“으허헉.”

설휘는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죽기 직전에 느껴지는 고통보다 더 강한, 인간이 견딜 수 없는 실로 끔찍한 고통이었다.

“다시 묻겠다. 누가 보냈느냐?”

“허억. 허억…….”

“태황각 내에 머물면서 소속도 없이 이 정도 실력을 갖췄다면 뒷배가 없을 리 없지 않나.”

“뒷배. 하아하아…….”

설휘는 겨우 정신을 차렸다. 그러고는 피멍으로 부푼 눈을 들어 피식 웃었다.

“그래, 있긴 있지.”

“누군가?”

“……태황각주다. 그자가 날 이렇게…….”

“으아아악!”

또다시 시작된 분근착골.

이번엔 처음 수법을 펼칠 때보다 조금 더 길었다.

물론 설휘에겐 억만의 시간처럼 느껴졌지만.

으드득. 드득.

설휘의 이빨 몇 개가 부서져 바닥에 떨어졌다.

어깨뼈가 으깨지는 듯한 통증에 정신이 붕괴되는 것 같았다.

차악.

귀안마군은 그런 설휘의 머리채를 올려잡았다.

그는 희번덕거리는 설휘의 눈과 시선을 맞추며 말을 이었다.

“시간도 많은데 벌써 이러면 시시하지.”

“……그 반대…… 아닌가?”

“뭐?”

설휘는 몸을 사시나무처럼 떨어댔다. 그런데도 눈빛만은 또렷했다.

“무관도가 끝나는 시간까지 날 죽이지 않으면…… 입장이 난처해지는 건 내가 아니라 너희들이겠지.”

“……!”

설휘는 보았다.

귀안마군의 표정에 미묘한 변화가 있었다는 걸.

잠깐의 침묵이 일었다.

그 사이 귀안마군은 설휘의 머리채를 놓으며 물었다.

“왜 그렇게 생각하지?”

“곤마께서 날 찾을 테니까. 그러니 너희들은 날 무관도 시험을 통과시키지 못하게 했던 거고.”

“우리가 왜?”

“내가 태황각주의 비밀을 알고 있으니.”

“이거 웃기는 놈이군. 그러니까 네가 태황각주 비밀을 알고 있는 것이 우리와 무슨 상관이란 말이냐?”

“크크큭. 몰라서 묻는 건가. 아니면 계속 떠보고 싶은 건가?”

설휘는 귀안마군을 노려보았다.

그리고 부서진 이빨을 드러내며 또박또박 말을 이었다.

“태황각주가 줄을 어디에 대고 있겠나? 때마침 첫째 제자의 첩자들이 나를 심문하고 있고. 이 정도면 충분히 설명된 것 같은데?”

“……!”

이번엔 확실히 반응이 있다.

눈썹이 미미하게 떨리는 모습을 설휘가 본 것이다.

‘추측이 맞았다.’

이들이 자신을 적대하는 이유는 오로지 한 가지밖에 없다.

첫째 제자 살마에게 위협이 되는 것.

하지만 설휘, 그는 첫째 제자에게 위협이 될 만한 일을 벌인 적이 없다.

있다면 태황각주뿐.

그렇다면 한 가지 가설이 세워지게 된다.

특히 ‘뒷배를 묻는’ 그들의 의도를 유추해본다면.

곤마에게 태황각주 약점을 불던 그때부터, 반대쪽에서도 움직였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그리고 그 끈은 첫째 제자와 연결되어 있었을 것이고.

“웃기는군. 거운에게 싸움을 건 쪽은 너야. 그런데 우리가 왜 무관도 시험을 못 보게 했다고 생각하지?”

“원래는 시험을 보게 할 생각이었지. 거기서 죽을 거라 판단했으니까. 하지만 생각이 바뀌었던 거지. 거운이 첩자라는 사실을 내게 들켰버렸으니까.”

‘무관도. 애초에 통과할 수 없는 시험이었다.’

설휘는 귀안마군을 보며 생각했다.

애초에 시험순서 따위는 중요한 게 아니었다.

신(身)의 시험을 통과하고 두 번째 시험인 언, 서, 판 중 무엇을 골랐어도 눈앞의 이놈, 귀안마수와 마주치게 계획되었을 테니.

무관도에 도착했을 때 자신이 호교사자 앞에 혼자 있었던 이유.

모두 이들과 한패라는 것을 방증한다.

중도에 포기한다고 해도 이들은 자신을 죽이려고 했을 것이다.

증거 있냐고?

있지.

바로 이것.

■ 천력 95년, 제2장-15. [핵심무사 되기] 무관도 시험 탈락 후, 마지막 상대.

저장할 때 뜬 문구.

시험 탈락이라는 것은 통과할 수 없다는 뜻이고, 마지막 상대라는 뜻은 바로 ‘거운’이란 존재를 의미했으니까.

“이쯤 됐으면 솔직히 털어놔 봐. 네놈들, 내 뒷배가 궁금한가? 아님…….”

설휘는 뒤쪽을 바라봤다.

어둠 때문에 슬쩍 다리만 보이는 그를 보며 말을 이었다.

“…크큭, 곤마에게 태황각주의 비밀을 어디까지 털어놓았는지가 궁금한가.”

“……!”

설휘는 보았다.

자신의 말에 당황하는 두 놈.

그리고 갑자기 눈앞을 가리는 신기한 문구.

[무난한 통찰력으로 첫째 제자의 의도를 파악했습니다.]

‘어?’

귀안마군의 머리 위에 있던 글자가 사라지며 이 문구가 떴다.

[통찰 점수를 획득하여, 소유하신 무공 중 하나를 더 높은 무공으로 업그레이드시킬 수 있습니다.<영구적>]

‘무슨 뜻인지?’

설휘가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을 때였다.

“생각보다 더 흥미로운 녀석이군.”

이 말은 거운과 귀안마군이 한 게 아니었다.

어둠 속에서 이제껏 조용히 지켜보던 자.

자리에 앉아 있던 그가 일어서며 말한 것이다.

“하지만 네가 하나 놓친 게 있다.”

설휘 쪽으로 다가오던 그의 모습은 황촉 불에 어깨까지 드러났다.

본교에서도 쉽게 볼 수 없는 홍의(紅衣)에, 깃과 가슴에는 금선이 그어져 있었다.

“무관도 시험이 끝나지 않아도 너를 죽여도 되는 자가 여기 있다는 것.”

‘저자는…….’

설휘의 표정이 점점 굳어졌다.

때마침 수치가 하나둘씩 점점 뜨기 시작했고, 황촉 불빛에 그의 얼굴이 드러났다.

“바로 너를 이곳에 불러낸 사람이지.”

“사, 살마아아……!”

말을 끝까지 내뱉지 못했다.

패애액!

그에게서 용광로처럼 튀어나온 검기를 보자마자 정신을 잃었기 때문이다.

이후, 시야의 흐름은 자연스럽게 문자로 향해 있었다.

익숙한 지문이었다.

▶ 처음부터 시작한다.

▷ 계속 이어서 한다.

▷ 저장한 지점을 불러온다.

또다시 마지막이 된 삶의 갈림길을.

<‘저장한 지점을 불러온다.’를 선택하셨습니다.>

새로 시작할 생각은 없었다.

아득바득 싸워서 여기까지 왔는데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는 건.

그간 목숨 걸고 이루어낸 걸, 전부 다 내려놓으란 얘기였다.

결국, 설휘는 저장 지점에서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어느 지점으로 시간을 되돌릴까요?]

□ 천력 95년, 제2장-1. 곤마가 제시하는 세 가지의 삶

■ 천력 95년, 제2장-15. [핵심무사 되기] 무관도 시험 탈락 후, 마지막 상대.

[빈 저장 공간]

‘첫 번째나 두 번째나. 어차피 같은 선택을 하게 될 것이다.’

이번의 죽음으로 알게 된 사실이 있다.

곤마가 제시하는 삶으로 돌아간다 하더라도 무관도 시험 통과는 불가능하다는 거.

첫째 제자가 직접 개입했다는 사실이 드러난 마당이니, 어떤 식으로든지 거운과 싸울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난이도가 더 높은 다른 삶을 선택하는 것도 지금으로선 관심이 없었다.

‘어차피 싸울 거라면…….’

설휘는 두 번째로 시선이 갔다.

이걸 선택하면 다시 거운과 싸우게 된다.

가능성은 있다고 믿었다.

아직 써보지 않은 전투능력이 있었으니까.

무조건 이겨야 하는 싸움.

이전에 보였던 AI 전투방식을 보건대, 직접 싸우는 것보다 훨씬 강해 보였다.

그리고 뭔지 모르겠지만 통찰이란 것도 새로 얻었고.

‘이번엔 이긴다. 무조건 이겨야만 한다!’

[천력 95년, 제2장-15. 시간을 되돌립니다.]

* * *

선택하자마자 새하얀 빛이 새어 나왔다.

그리고 천천히 주위가 보이기 시작했다.

천일관 지하창고다.

“아, 시간이 없다.”

설휘는 다급해졌다.

지금 막 거운이 천일관 입구를 통과했을 것이다.

급히 상단 위쪽에 있는 문구를 선택했다.

전투방식

설휘는 턴제에서 AI제로 바꿨다.

그리고 급히 도구함을 열었다.

AI 전투방식이 스스로 생각하고 움직인다면, 변수를 만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도구함]

<약재>

금창약 5, 철혈독 해독주 1

<영약>

환속영신단 1

<장비>

[갑옷] 상급단갑 1, 명왕전포 1

[병기]무령도 1, 월향비 1

[보조무기] 백혼탄 1

<절대비급>

사대극마공 풍(風)

<잡화>

무관도 보물지도(7/7), 약도(무관도-신(身)) 1, 내역표(무관도) 1

[무령도를 가져오시겠습니까?]

[월향비를 가져오시겠습니까?]

[백혼탄을 가져오시겠습니까?]

[명왕전포를 착용하시겠습니까?]

설휘는 마음이 바빴다.

사용할 수 있는 건 모조리 꺼내고, 방어구를 착용했다.

[Equipment, 장비]

무기 : 무령도

갑옷 : 명왕전포

“이건 들고, 이건 여기에 놓고. 이건 여기에.”

무령도는 직접 들었고.

월향비는 품속에.

백혼탄은 책장 위에 놓았다.

변수를 만들기 위해서.

AI라는 게 최적의 수를 계산하는 거라면, 이것들을 이용하지 않을까 하는 판단이 든 것이다.

“그런데 통찰은 어떻게 사용하는 거지?”

바닥에 굴러다니는 자신의 검을 집어 들던 설휘.

전생에 얻은 통찰이란 것이 생각이 났다.

그러다 이전과 달리 ‘무공’ 란 옆에 ‘!’로 표시된 것에 눈길이 갔다.

‘아…… 왔다.’

끼이이익.

그때 문소리가 들리고 거운이 계단을 내려오는 소리가 들렸다.

설휘는 목록을 누르려고 했지만, 선택되지 않았다.

<인공지능이 개입하여 전투를 시작합니다.>

이미 싸움이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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