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화. 인공지능 AI (2)
‘아, 비사단과 비룡단!’
AI 전투가 시작을 알리는 순간, 나는 한 가지 실수를 한 것이 떠올랐다.
작정하고 싸움할 생각이었다면 곤마가 준 영약을 얻어낸 다음 섭취한 후, 시작해야 했다.
그래야 싸울 때 조금이라도 유리할 테니까.
“그건 왜 들고 있지?”
하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
이미 거운은 무령도를 가리키며 AI설휘에게 다가왔다.
허리춤에 차고 있어야 할 칼을 꺼냈으니 그리 묻는 것이다.
거기다 평소의 검이 아닌, 거무튀튀한 도를 들고 있는 것도 그랬고.
“수련 중이었습니다.”
‘어? 말을 할 줄 하네?’
기분이 묘하다.
내가 또 다른 나의 대화를 지켜보는 건.
더욱이 선공하지 않고 말하는 것도 신기했다.
“받거라.”
별다른 대꾸 없이 단약을 건네는 거운.
AI설휘는 그걸 받더니, 천천히 입에 가져갔다.
‘오! 먹기도 한다.’
AI는 그저 싸움만 하는 줄 알았다.
그런데 대화도 할 줄 알고, 유리한 판단도 할 줄 아는 듯했다.
“따라와라.”
거운의 말에 AI설휘는 자리에 가만히 서 있었다.
그저 조용히 시선을 내리고 있을 뿐.
나는 기다렸다.
과연 AI설휘는 어떤 식으로 싸움을 할지.
그런데.
“곤마 님께 받은 비룡단도 내놓으시지요.”
“……!”
나는 진심으로 놀랐다.
본격적으로 싸울 줄 알았던 AI설휘가 계속 대화를 걸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대화는 이전 나에게 나왔던 선택지문과 똑같았다.
“뭐라고 했나?”
거운의 불쾌한 표정이 확연히 보인다.
그때와 같은 반응이다.
심기가 거슬렸을 테지.
“전달받지 못하셨나 보군요. 넷째 제자님께서 제게 비사단과 비룡단을 하나씩 주겠다고 분명 말씀하셨지요.”
“…….”
AI설휘는 당시 내가 했던 말과 정확히 일치하게 말했다.
이제 거운의 표정이 굳어진다.
그러다 천천히 품속에서 뭔가를 꺼내는 동작.
주는 척하며 주먹이 날아오는…….
‘어?’
그때였다.
팟.
오히려 AI설휘가 달려나간 것이다.
패애액.
날카롭게 찌르는 기습공격에도 거운은 피해냈다.
몸을 왼쪽으로 틀고 몇 발짝 물러서는 것만으로 대처해냈다.
그런데도 AI설휘는 포기하지 않고 몰아쳤다.
이번엔 단순한 찌르기가 아닌 정식 무공의 초식.
상대를 향해 맹렬히 파고드는 저것은 분명 소희마공 육초식. 소상기변이었다.
피이이이-
도 끝으로 새어 나온 희미한 운무.
그 속에서 몇 번이나 AI설휘의 공격이 펼쳐졌다.
캉! 캉! 캉!
이번에도 거운은 물러서지 않고 방어해냈다.
오히려 나중엔 반격까지 해대자, 이번엔 AI설휘가 주춤하며 뒤로 물러났다.
‘저건!’
나는 순간 눈을 의심했다.
갑작스러운 거운의 반격 때문이 아니다.
어느새 AI설휘가 움켜쥔 도의 위치가.
오른손이 아닌, 왼손에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행동은 전혀 예상치 못한 상황을 만들어냈다.
[대박검을 사용합니다.]
“……억!”
적당히 거리를 두려던 거운의 눈이 부릅떠졌다.
직감으로 깨달은 듯했다.
상대의 도 끝에서 상상도 할 수 없는 기운이 쏘아져 나왔다는 것을.
쩌어엉!
검기가 아닌 도기가 발출되자, 거운은 무려 오 장이나 나가떨어지며 벽에 부딪혔다.
그리고 재빨리 일어났지만.
“크흑!”
왼쪽 어깨를 잡고 고통을 삼키지 못했다.
팔의 절반이.
대박검에 의해 잘려나가버렸으니.
* * *
‘도(刀)를 들고 있어도 대박검이 나가는구나.’
단영검도 아닌데 대박검을 사용했다.
특히 도(刀)로 검식을 펼치는데도 너무도 자연스럽게 구사했다.
‘이 녀석은 모든 걸 계산했어.’
나는 AI설휘가 나보다 그저 조금 더, 혹은 제법 나은 판단을 하는 수준일 거라 생각했었다.
그랬기에, 이전 생에서 거운과 싸울 때 굳이 이런 것에 의존하고 싶지 않았다.
물론, 그간의 성취가 부정당했다는 분노 때문이기도 했지만.
여튼 이제 와서 보자면, AI설휘는 대박검을 너무도 쉽게 구현했다.
뿐만 아니라, 대박검을 펼치기 전의 동작들도 모두 계획되어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도(刀)를 당당히 앞으로 내밀며, 대화를 주고받는 것.
비사단을 달라고 한 뒤, 다시 추가로 비룡단을 달라고 했던 것.
그 순간을 노린 일격 이후, 더욱 상대를 몰아붙이며 소희마공 육초식을 썼던 것.
이 모든 건 마지막 대박검을 사용하기 위한 과정이라고 봐야 했다.
‘실로 놀라운 전투감각까지!’
나는 거운 쪽을 다시 바라보았다.
그는 상당히 피해를 입은 듯 보였지만, 그게 이 싸움의 승패를 좌우할 치명적인 상처인지는 알 수 없었다.
AI로 들어서면서 적의 수치가 눈앞에서 사라져버렸기 때문이다.
“도기를 사용하는 실력자라…….”
거운은 표독스럽게 변한 얼굴로 말했다.
분노할 상황인데도 그의 말투는 이전보다 더 차분해진 것 같았다.
“괴상한 녀석이군. 도로 검식을 쓰질 않나, 검술은 그리 위협적이지 않은데 내기발현을 하질 않나. 대체 어떻게 한 거지?”
“…….”
AI설휘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왼손에 있던 도를 다시 오른손으로 가져갔을 뿐.
“뭐, 차차 알아보면 되겠지.”
팟.
‘그 보법이다!’
나는 곧장 느꼈다.
거운이 예전에 내가 당했던, 거리를 한순간에 좁혀버리는 그 보법을 펼쳤다고.
아니나 다를까, 거운은 눈 깜짝할 사이에 AI설휘의 지척까지 다가와 있었다.
챙! 챙!
두 번의 연속 공격.
쩌어엉!
그리고 세 번째 공격이 끝날 때.
“칫!”
이번에도 거운이 밀렸다.
그건 그의 검이 파르르 떨고 있는 것만 봐도 우세를 점했다는 건, 알 수 있었다.
‘이런 식으로 응용하다니…….’
나는 방금 교전하는 모습을 정확히 볼 수 있었다.
안타깝게도 AI설휘는 거운의 검술 속도를 따라가지 못했다.
특히 세 번째에는 반 박자 늦을 정도로 대처가 미흡했다.
‘폭열공.’
그럼에도 AI설휘는 그 간극을 초극마공으로 메웠다.
마지막 공격 때 검과 의도적으로 부딪쳐 내공의 힘으로 밀어내면서 한숨 돌린 것이다.
‘대체 어떻게 이게 가능한 거지?’
이전의 자신은 똑같은 거운의 공격에 연거푸 당하기만 했다.
오른쪽 어깻죽지, 허벅지 등 몸에 성한 곳이 없을 정도였다.
하지만 AI설휘는 거듭된 전투에도 상처 하나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왠지 모르게 질 것 같지가 않다.
“하앗!”
또다시 거운은 거리 간격을 단숨에 좁히는 보법을 사용했다.
이후, 그는 AI설휘의 가슴을 향해 찌르듯 검을 내밀었다.
‘맞서면 안 돼!’
나는 그가 뭘 할지 알았다.
언뜻 찌르는 듯 보이지만 모두 눈속임.
진짜는 수직으로 방향전환을 한 뒤, 내리긋는 공격이다.
과거의 나는 이 검술에 치명적인 상처를 입지 않았는가.
파파팟.
그런데 AI설휘의 판단은 예전의 나와 달랐다.
거운이 공격을 펼치는 도중, 갑자기 그는 등을 보인 채 반대쪽으로 달려나간 것.
패액!
그러다보니 상대의 검은 아슬아슬하게 AI설휘의 옷깃을 스치는 것에 그쳤다.
거운은 이내 또다시 도망가는 설휘의 등 뒤로 빠르게 달라붙었고.
휘리릭!
그가 재차 검을 휘두르는 그때. AI설휘는 벽을 박찬 뒤, 몸을 공중에서 비틀었다.
원심력을 이용한 반격을 시도한 것이다.
“큭!”
거운이 주춤거리며 다시금 물러섰다.
그의 경악한 시선이 자신의 왼쪽 어깨, 그리고 다시 AI설휘에게 이어갔다.
‘미친!’
그 장면을 지켜보던 나는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엄청난 임기응변이었다.
움직임.
속도가 밀렸음에도, 순간적인 판단으로 모든 걸 극복했다.
‘확실해. 저놈은 모든 걸 예측하고 있었어!’
첫 번째 공격.
AI설휘는 등을 보이며 도망치고 있었지만, 거운의 긋는 동작을 분명 인식했다.
그랬으니 두 번째 같은 근접공격이 들어왔을 때, 보지도 않고 벽을 박차며 피해낼 수 있었던 거다.
심지어 AI설휘는 그 상황에서 반격까지 해냈다.
거운이 아연실색하며 뒤로 물러난 것만 봐도 제대로 먹혔음을 알 수 있었다.
‘이긴다. 충분히 이길 수 있다!’
이번엔 확실히 거운이 당황하고 있었다.
몇 번의 보법을 써서인지 호흡도 불안정했고, 왼팔은 못쓰게 됐으며, 상대와의 교전에서도 밀리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했으니까.
그에 반해 AI설휘는 호흡도 안정적이고 여전히 여유로웠다.
능력 수치가 어느 정도인지 모르지만, 지금으로선 이 싸움에서 질 이유가 하등 없다.
‘어?’
그런데 그때. 생각지도 못한 변수가 생겨났다.
AI설휘가 들고 있던 도.
그 도가.
쩌저저저쩍!
몇 번의 충격을 못 이긴 채, 단번에 쪼개져 버린 것이다.
* * *
‘큰일 났다!’
절망이 드리워졌다.
이런 중요한 순간에 검이 깨져나가다니.
‘대박검의 공력을 이기지 못한 거야.’
나는 그럴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초식도 그렇고, 대박검은 거대한 공력을 견딜 수 있는 검이 필요하다.
당연히 속성에 맞지 않는 무령도로는 버티기 힘들었을 터.
아님, 본래부터 손상이 많이 나 있었거나.
어쨌든, 지금에 와서 후회를 해봐야 이미 늦었다.
“아쉽겠군.”
팔이 잘려나갔음에도 거운의 표정이 다시금 밝아진 게 보인다.
무인이 맞서 싸울 병기가 없어졌으니, 당연히 지금이 기회라고 생각할 터.
“곤마께서 네게 검도 주라고 말씀하셨는데 말이지. 하지만 지금은 내 손에 있네?”
거운이 장포자락에 가려 보이지 않던 검 하나를 허리춤에서 꺼냈다.
그걸 본 나는 내가 무얼 실수했는지 깨달았다.
‘제길. 단영검이라도 달라고 그랬어야 했는데…….’
아쉬웠다.
시작하기 전에 먼저 달라고 했어야 했다.
‘가만, AI설휘가 그 정도도 계산하지 않았을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좀 허황되긴 하지만, 지금까지 펼친 무위를 보면 지나친 생각이 아닐 수도 있었다.
거운이 들고 있던, 곤마가 하사한 영약은 직접 대화를 통해 받아내지 않았는가.
‘그러고 보면, AI가 그렇게 했기 때문에 첫 기습이 성공했을지도 몰라.’
AI설휘가 달라고 했던 비사단과 비룡단.
만약, 거기에 단영검까지 달라고 말했다면 거운이 이 정도로 방심을 했을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내가 오늘 운수가 좋군.”
거운의 눈빛이 변했다.
승기를 잡았다는 생각에 다시 공격에 나서려는 것으로 보였다.
“운수는 무슨. 병신 같은 게.”
‘……헉! 뭐야?’
내가 잘못 들었는가 싶었다.
AI설휘가 갑자기 욕설을 해댄 것이다.
“뱀처럼 기어 나온 첩자 나부랭이. 지금부터 내 말 잘 들어. 네 초식, 네 보법 따위는 느려터져 차마 눈 뜨고 못 볼 지경이다.”
“……뭐?”
“못 믿겠으면 덤벼. 네 머리통부터 박살 내줄 테니까.”
“이, 이, 이…….”
저 녀석이 정말로 나인 건가?
AI설휘의 말을 들으니 기분이 이상했다.
왠지 다른 인격이 자신의 몸에 들어온 느낌이었으니.
“이 새끼가아아아…….”
얼굴이 벌게진 거운이 한달음에 거리를 좁혔다.
가만히 보고 있던 AI설휘는, 그가 검을 휘두르는 즉시 한곳으로 몸을 던졌다.
쿠쿠쿵! 쿵!
옆에 있던 책장이 엎어지며 거운의 공격을 피했다.
계속 엎어지는 책장들.
쿠! 쿵! 쿵! 쿵! 쿵!
“어딜! 도망가!”
도망치는 AI설휘와 계속 쫓는 거운.
그러던 중 마지막 책장 앞에서 거운이 먼저 도착했다.
“……!”
하지만 이건 AI설휘가 의도한 상황이란 걸 난 알고 있었다.
AI설휘는 책장이 엎어지면서 바닥에 있던 벽혼탄을 집어 드느라, 늦어진 것뿐이니까.
“내가 말했지? 네 머리 박살 내준다고.”
“아…….”
“뒈져라. 첩자 나부랭이.”
AI설휘는 초열마공을 운용해 벽혼탄의 불씨를 생성하고, 곧장 거운에게 던져버렸다.
콰앙-!
책장 몇 개를 날려버리는 강력한 폭발음이 터졌다.
벽혼탄이 살상용으로 제조된 벽력탄이 아니긴 하지만, 그래도 폭탄은 폭탄.
거운의 지척에서 터진 위력은, 그를 벽으로 강하게 밀어냈다.
“큭!”
그래도 거운은 주저앉지 않았다.
AI설휘가 바로 던지지 않은 탓에 정통으로 맞지 않았다.
하지만 오히려 그것은 악수가 되었다.
“으헉!”
어느새 날아온 날카로운 암기를 맞고 그대로 쓰러진 것이다.
월향비.
AI설휘의 품속에 암기가 있을 줄 모르고 있었던 것 같았다.
“별 그지 같은 게.”
AI설휘는 허연 연기 속에서 걸어 나오며 투덜거렸다.
거운은 대답하지 않았다.
“어어……어어…….”
철혈독이 묻어있는 월영비. 그것이 한순간에 퍼지자 온몸을 떨어댈 뿐.
스윽.
AI설휘는 바닥에 있는 도를 쥐어 들었다.
날이 다 깨져 한 조각만 자루에 붙어 있는 도.
‘그만.’
나는 AI설휘의 모습을 보고 심각해졌다.
저걸로 찌르면 죽는다. 아니, 지금도 늦었을 수가 있다.
철혈독은 빨리 해독하지 않으면 살 수 없는 그런 독이다.
“이대로 뒈지면 안 되지. 이 몸에게 덤빈 대가를 받아가야 하는데 말이야. 안 그래?”
‘그만해!’
저벅저벅.
그의 걸음 소리가 AI설휘에 가까워질수록 나는 애가 타는 느낌이었다.
저자가 살고 죽는 건 관심 없다.
하지만 넷째 제자, 곤마에게 거운을 꼭 데리고 가야 이 사태를 수습할 수 있지 않겠는가.
“그어어어…….”
AI설휘가 거운 앞에 당도하자, 반쯤 눈이 뒤집힌 거운이 한 손을 들어 올렸다.
하지만 그 모습을 본 AI설휘의 반응은.
웃음. 그것도 살의가 느껴지는 웃음이었다.
‘그만해, 이 미친 새끼야아아!’
<거운을 어떻게 처리하시겠습니까?>
그때였다.
정말 가까스로, 이 순간에 이것이 떴다.
▶ 죽인다.
▷ 기절시킨다.
나는 빠르게 두 번째를 선택했고.
<‘기절시킨다.’를 선택하셨습니다.>
빛이 주변을 감싸며.
시야가 트이자마자 도구함을 열어 철혈독 해독제를 꺼냈고.
“빨리 처먹어. 인마!”
빈사 상태인 거운의 입에 마구 쑤셔 넣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