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마육성 시물레이션-34화 (35/379)

34화. 천마제자들 (2)

설휘가 도착하기 일각 전.

“보십쇼. 내 여기 있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하하하.”

한 남자가 정자에 홀로 앉아 있는 곤마를 보며 말했다.

둘째 사형. 마후(魔侯)다.

천마제자 중 말수가 많고 서글서글한 성격이라는 인물.

“곤 사제. 잘 있었나?”

마후는 곤마 앞으로 다가와, 그의 어깨를 툭툭 치며 말을 걸었다.

“그간 무탈하셨습니까?”

“나야 늘 즐겁게 지내지 않나. 곤 사제도 별일은 없고?”

“예. 사형.”

곤마는 예의를 갖추며 인사했지만, 속마음은 복잡했다.

둘째 사형은 이렇게 잘 웃고 웬만해선 화를 내지 않는다고 알려졌지만, 그건 그를 모르고 하는 소리다.

마후는 독사다.

그것도 뱀처럼 교묘하게 상대방을 파악해 숨을 조여 죽이는 지독한 독사.

별생각 없이 말하고 있는 듯하나, 그의 모든 행동은 치밀한 계산에 의해 움직인다.

마교에서 신비집단으로 불리는 기기아대(奇奇阿隊)를 부리는 것을 봐도 쉽게 알 수 있다.

“오랜만.”

“예. 사저. 오랜만에 뵙습니다.”

연색 자수가 외투에 수 놓인, 화려한 의복을 갖춘 여인이 짧게 손짓해왔다.

셋째 제자 아령(牙靈).

청순한 인상에 백치미까지 더한 미녀이지만, 실은 간계와 색정에 능한 사갈 같은 계집이다.

소림 현경각주를 파계시키고 본교로 초빙해 혈승이란 별호를 갖게 만든 장본인.

평소에 별생각 없이 내뱉은 한마디를 기억해두었다가 꼭 갚고야 마는 성정까지.

어찌 보면 조종술에 능하다고 말해야 했다.

어떻게 구슬렸는지 마교 내 암습과 훈육을 담당하는 모든 교육기관의 협력을 끌어냈고.

은마원(隱魔院), 원로원들이 속한 은둔고수들의 지지까지 받을 정도이니.

“대사형. 반갑습니다.”

곤마는 마지막 칠 척 장고의 무인에게 예를 갖췄다.

그저 보기만 해도 숨을 죄어올 정도의 강한 살기를 띠고 있다.

대사형 살마.

본교의 천마 제자 중 가장 강한 자.

그것도 압도적으로 강하다.

일설에 의하면 그가 스무 살이 되던 해.

첫 살행에서 백대고수라 알려진 무당파 태상장로 혜선진인의 목을 날렸다.

그것도 그의 제자들이 지켜보는 무당산 산문 입구에서.

그리고 서른 살이 되던 해.

점창파 세 명의 장로들과 네 명의 호법, 여덟 명의 일대제자를 죽였다.

기습이 아닌 정면대결을 통해 점창파 모두를 고혼으로 만들어버린 것이다.

특히 이들의 목을 썰어 5단 삼각탑을 쌓아 정파를 조롱했던 사건은 한때 무림에서 가장 유명한 일화였다.

그리고 나이 마흔이 된 현재는 극마(極魔)의 벽을 뚫었다.

명실상부 천하를 대표하는 고수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수준이다.

“건방진 놈.”

평소 살마는 자신을 무시로 일관했다.

그런데 오늘은 적대감이 노골적으로 느껴졌다.

곤마는 그 이유를 알고 있었다.

태황각주의 뒷배를 쫓는 과정에서 부딪힌 인물들.

유력한 용의자가 대사형의 부하들이었고, 대사형 역시 자신이 파견한 고수들이란 걸 눈치챈 것 같았으니.

어색하던 분위기가 무르익던 그때.

갑자기 누군가 걸어왔다.

유원궁을 지키는 무사였다.

“급히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무슨 일이냐?”

“설휘라는 자가 넷째 제자님을 뵈러 왔다고.”

“뭐?”

조금은 어두운 표정으로 변한 곤마. 잠시 고민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오라 해.”

궁내 무사가 사라지고 곧 구질구질한 몰골의 사내가 어깨에 뭔가를 짊어지고 나타났다.

“네가 여기 왜 왔지?”

곤마는 물었다.

하지만 사내는 대답하지 않았다.

“네가 여기 왜 왔느냐고 묻잖아!”

거듭 목소리를 높이며 곤마가 던진 물음에, 사내는 무슨 이유인지 쭈뼛쭈뼛 선 채 대답하지 않았다.

그 때문인지 다른 사형들이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저, 그게…….”

“사제. 왜? 누군데?”

둘째 사형이 관심을 가지고 물었고. 곤마는 사내를 바라봤다.

그렇게 있던 사내, 설휘의 표정이 변했다.

표적을 찾은 사람처럼, 눈을 번뜩이더니 이내 마후를 향해 소리친 것이다.

누구긴.

“나다. 이 씹새끼야.”

* * *

‘지, 질러 버렸다!’

설휘의 얼굴이 시뻘겋게 물들었다.

▶ 나다, 이 씹새끼야.

미친 짓. 이 미친 짓을 정말로 저질렀다.

질러버릴까라고 잠시 고민하다가 될 대로 되란 식으로 고른 것이다.

그렇다고 완전히 미친 거냐면 그건 또 아니었다.

설휘가 이제껏 죽고 살고를 반복하던 삶 속에서 얻어낸 교훈이 있었다.

바로 ‘최악의 수가 사실 최고의 한 수다’가 아니었던가.

그래서 고른 것이다.

이제 죽으면 되살아나지도 못하는 목숨 1의 상황에서.

‘아, 뭐라고 말 좀 해라.’

설휘는 목덜미에 식은땀이 흘러내리는 기분이 들었다.

미친 척하고 질러버린 이 시점에서, 제자 중 누구도 선뜻 말을 걸어오지 않는다.

그러니 대화 없이 칼이라도 날아올 것 같은 불안감이 더욱 커졌다.

스윽.

침묵이 일던 가운데 마후의 표정 변화가 보였다.

입꼬리는 미묘하게 올라가는데, 눈매는 그대로인 상태에서 자신을 쳐다보고 있었다.

“저, 그게 말입니다. 그게……헉!”

어스름한 빛이 쏘아지는 환각 현상에 설휘는 그만 자리에서 넘어졌다.

그리고 방금 뭐가 어떻게 된 거지? 라는 의문과 함께 따라오는 공명음(共鳴音)이 현 상황이 어떠했는지를 알려주고 있었다.

까아아아아앙!

검이 보였다.

자신의 목젖까지 뻗어있는 기형검이. 그리고 그걸 막은 또 하나의 검도 보인다.

“크큭. 욕먹은 건 난데 왜 사매가 나서?”

먼저 암수를 펼친 건 셋째 제자였다.

그리고 그녀의 공격을 막은 건, 놀랍게도 자신이 쌍욕을 박은 마후였고.

“사형. 비켜요.”

하지만 아령은 양보할 생각이 없는 듯했다.

그녀를 지칭한 욕설이 아니었지만, 같이 있던 자신도 모욕을 받았다고 생각한 듯 보였다.

“그렇게는 못 하지. 우리 귀여운 넷째 사제의 수하가 죽는 걸 사형으로 어찌 가만히 있겠어?”

마후는 굳은 얼굴의 곤마를 한 번 쳐다보더니 아령에게 눈짓으로 정자 기둥을 가리켰다.

“대사형을 봐. 그릇이 크니 이 녀석의 욕설에도 관심조차 없잖아?”

그의 말대로 살마는 정자에 기댄 채 조용히 침묵하고 있었다.

그는 곤마처럼 당황하거나, 아령처럼 화나 보이거나, 눈앞의 마후처럼 흥미로워하지 않았다.

마치 ‘신경 쓸 가치조차 없다’라고 생각하는 듯 팔짱을 낀 채 다른 곳을 바라보고 있을 뿐.

찌릿.

마후와 아령은 서로를 응시했다.

그러다 결국, 아령이 천천히 검을 손목으로 회수하며 한 발짝 물러섰다.

촤르르르륵.

‘아…….’

설휘는 탄성이 절로 흘러나왔다.

신병이기라 불리는 자검(自劍)이다.

그것은 살아있는 뱀처럼 손목을 타고 아령의 소매 속으로 기어들어 갔다.

어쩐지 검날이 심하게 휘어진 것 같더라니.

‘나. 사, 살 수는 있는 거지?’

설휘는 자신의 목을 더듬으며 생각했다.

방금 아령의 살수.

움직임은커녕, 칼이 목을 찌르는 순간에도 아무것도 보지 못했다.

그런 공격을 막아내는 마후.

대체 얼마나 강한지 상상도 되지 않는 광경이다.

“하하하! 사제. 네 수하 참 재밌군. 나를 보며 욕 한 번 시원하게 박는 게.”

“죄, 죄송합니다. 둘째 사형. 그리고 셋째 사매. 제 손으로 처리하겠습니다.”

“어허. 내 말 못 들었나? 죽이지 말래도.”

‘어쩌면 좋은 녀석일지도…….’

설휘는 적어도 지금은 그렇게 느꼈다.

이 녀석이 자신을 두둔하지 않았다면, 벌써 죽어도 몇 번을 죽었을 터.

괴짜이긴 해도, 태황각주처럼 사람을 개처럼 부리지 않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때마침, 눈앞에 펼쳐지는 활자를 보고는.

마후에 대한 좋은 생각을 싹 지워버렸다.

[지문의 선택으로 ‘3개의 보상’이 주어집니다.]

<첫째 보상. 천마제자들의 성격유형을 알 수 있습니다.>

‘+3’이라는 숫자.

그 의문이 풀리는 순간, 그 녀석 머리 위에 이런 게 떴기 때문이다.

마후 <자기애성 성격장애 악성 ‘소시오패스’>

△ 자신의 성공을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습니다. 겉으로는 매력적이고 사교적으로 보이나, 모두 착취하기 위한 계산된 행동입니다.

△ 자극 욕구가 강하고 위험한 일을 즐깁니다. 자신을 잘 위장하며 본심을 완벽히 숨깁니다.

△ 죄책감 감정 기능이 없는 대신 고도로 인지력을 개발하여 암계에 능숙합니다.

‘뭐 이런…….’

주르륵 뜨는 설명은 읽어가는 순간에도 불쾌했다.

성격장애란 말이 불쾌함으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그래. 욕설 한번 시원하게 하려고 온 건 아닐 테고. 여기 온 이유가 뭔가?”

마후는 바닥에 앉아 있는 자신을 향해 무릎을 굽히며 물었다.

이런 눈빛. 어디서 본 적 있다.

자극적인 흥미와 쾌락이 점철된 눈빛. 과거 태황각주가 이런 눈빛을 가지고 있지 않았던가.

‘어떻게 말해야 하나…….’

설휘는 첫째 제자의 눈치가 보였다.

하지만 이 정도 상황이 흐르면 대답하지 않을 수도 없었다.

이자의 흥미를 끄는 것이 자신이 사는 길임을 알았으니.

“넷째 제자님이 말씀하신 대로, 첩자를 잡아 왔습니다.”

“첩자?”

“예.”

마후가 곤마 쪽으로 고개를 돌린다.

시선을 받은 곤마는 미묘한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어떤 첩자를 말하는 것이냐?”

“일단 이걸 보십시오.”

설휘는 이미 바닥에 내려놓은 포대를 찢기 시작했다.

곧 포대에서 기절한 거운이 모습을 드러냈다.

“이자는…….”

곤마의 눈빛이 파르르 떨렸다.

자신이 모를 수 없는 자.

근래에 간단한 수발을 든다고 자주 얼굴을 비쳐 왔던 인물.

천광이 보냈다는 2급 호위무사가 이자였던 것이다.

‘망할, 첫째 제자가 날 봤다!’

혹시나 하여 슬쩍 옆을 바라봤는데, 관심조차 아까워하던 살마가 자신을 보고 있었다.

그리고 천천히 고개를 들어 자신을 바라봤다. 점점 더 고요해지는 눈으로.

자연스레 나타나는 성격유형.

살마 <반사회성 성격장애 ‘사이코패스’>

△ 개인의 이익을 위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자기중심적이며 독선적이고 자신밖에 모릅니다.

△ 타인의 고통에 무감각하며, 남에게 해를 가해도 전혀 양심의 거리낌 없습니다.

△ 이자는 피에 굶주린 살인귀로, 오로지 강한 자만 인정합니다.

△ 자신을 불편하게 만드는 모든 것을 파괴하고자하는 욕구(시기심)로 가득 차 있습니다.

△ 타인을 죽이기 전 살려달라는 희망을 파괴하는 즐거움에만 정서적으로 반응합니다.

‘이놈은 진짜 미친놈이다!’

미친놈은 본교에서도 드글드글하다.

하지만 저 정도로 ‘살인에 대한 열망’에 사로잡히진 않는다.

“첩자라…….”

마후가 거운을 잠시 내려다보더니 아령을 보며 물었다.

“사매. 심문해볼래?”

“싫어.”

“한번 해봐. 첩자라잖아. 혹시나 누가 연계됐는지도 알 수 있을 거고.”

“귀찮은 거 시키지 마.”

마후와 아웅다웅하는 아령으로 설휘의 시선이 옮겨졌다.

그녀 역시 성격유형이 머리 위에 떠 있었다.

아령 <연극성 성격 장애>

△ 충동적이고 과시적이며, 필요 이상으로 극단적인 행동을 보입니다.

△ 자신이 관심의 대상이 되지 않은 상황을 불편해하며, 감정이 빠른 속도로 변합니다.

△ 지나치게 감정적이며 과장된 감정을 보입니다.

△ 욕구를 충족시키려 감정 및 생리 반응조차 스스로 완벽하게 조작할 수 있습니다.

△ 인간을 조종, 통제하기 위한 심계를 행하는 것이 본능적입니다.

△ 인간을 착취하며 기생하는 형태로 살아가며, 결핍을 찾아 유혹하는 기능이 최적화되어있습니다.

‘대체 제대로 된 인간이 있기나 한 거냐…….’

“설휘라고 했지?”

고문해줘! 고문해달라고! 외치는 마후 목소리 틈으로 곤마가 질문을 해왔다.

거운의 존재 때문인지, 자신이 욕설한 것에 대한 난처함은 사라진 듯 보였다.

설휘는 급히 무릎을 꿇어 예를 표했다.

“예. 넷째 제자님.”

“이자가 왜 첩자라고 생각한 거지?”

다시금 모여드는 제자들의 시선.

설휘는 그 시선을 차분히 받으며 대답했다.

“이자는 저를 무관도 시험에서 떨어뜨리기 위해, 제자님께서 주신 영약과 보검을 의도적으로 건네주지 않았습니다.”

“의도적으로?”

심기가 조금 불편해진 곤마의 반응에, 설휘는 재차 고개를 숙였다.

“예. 아시겠지만 저는 절박했습니다. 그래서 그에게 영약과 보검을 달라고 했습니다만, 돌아오는 건 구타와 목숨 위협이었습니다. 그 와중에 그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무슨 말을?”

설휘는 이곳에 오면서 생각해놓은 대답을 이어갔다.

“어차피 너는 무관도 시험을 통과하지 못해. 운 좋게 나오더라도 내가 널 죽일 거니까. 나약하고 쥐새끼처럼 숨어 지내는 넷째 째자 곤마의 미래처럼!”

“……!”

“……!”

“……!”

당연히 거짓말.

하지만, 도발은 제대로 먹힌 것일까.

곤마가 화났다는 걸 누구라도 알아챌 만큼 그의 얼굴이 구겨져 있었다.

그리고 설휘는 그 표정을 보지 않더라도 분명 그럴 거라고 미리 생각했다.

곤마 <경계선 성격장애>

△ 불안정한 대인관계와 자아감이 떨어져 자기 파괴적 행동을 보입니다. 하여 버림받지 않기 위해 필사적인 노력을 다합니다.

△ 정서적 불안감은 나약한 자신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공허함을 주기적으로 느끼지만, 스스로를 대단하다고 느끼다가도 스스로를 평가절하하는 행동을 합니다.

△ 모두에게 버림받는 행동을 당한다고 인지할 때는 엄청난 공격성향을 보입니다.

△ 불안정한 대인관계와 자아감이 떨어져 자기 파괴적 행동을 할 때 무서울 정도로 힘을 발산합니다.

△ 버림받음에 대한 편집적인 의심이 있으며, 분열을 일으키면 격노하여 상대를 죽이려는 경향성이 있습니다.

△ 의존성이 높으며 불신과 맹신을 오가는 양극적인 정서 반응 형태를 보입니다.

곤마의 손은 떨리고 있었다.

자신의 가장 약한 점을 제대로 찔렸는지, 감정을 조절하기에도 벅차 보였다.

“그렇다면.”

때마침 끼어든 마후의 시선이 거운으로 이동했다. 그리고 다시 설휘를 바라보며 물었다.

“누구의 첩자라는 것도 알고 있나?”

기다렸던 질문.

하지만 말할 수 없는 질문을 그가 했다.

<둘째 보상. 증거품을 드립니다.>

설휘는 이번에 뜬 문구를 보며 곧장 깨달았다.

앞서 나왔던 3가지의 지문

그리고 ‘+3’, ‘+2’, ‘+1’의 기호들.

이것은 단순히 보상을 주려 한 게 아니라.

<귀안마군(鬼眼魔君)의 밀지가 거운의 품에 들어갑니다.>

천마 제자들의 정보.

다들 궁금해하는 부분에 대한 증거품.

상황에 따라 맞춤보상을 해주기 위함이라는 거.

왜냐하면, 귀안마군은 무관도 판(判) 시험의 담당자이며, 이전의 삶에서 거운이 끌고 갔던 동굴에서 마주쳤던 자.

거운. 그리고 첫째 제자와 함께 있었던 인물이 바로 그였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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