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화. 한 달 일정을 정해주세요 (2)
순식간에 한 달이란 시간이 지나갔지만, 나의 머릿속에는 꽤 많은 정보가 주입되어 있었다.
은영단의 교육기관인 현무관(玄武館) 내의 구조.
대표하는 인물들은 누구이며, 어떤 부대가 있는 것인지.
자신의 교육담당인 적파는 쉬는 시간 때, 주의해야 할 것들도 함께 알려주었다.
그중에서도 인상에 남는 기억은 제대로 된 무공을 배웠다는 것이다.
과거에는 홀로 독학하며 수련했지만, 지금은 달랐다.
적파라는 뛰어난 고수에게 직접 가르침을 하사받게 된 것이다.
일원소마공은 인간의 수명을 태워 기를 축적하는, 보통 마공들이 가진 특성과 비슷하나, 사실 태초의 생명에 근원을 두고 있다. 흔히 말하는 정종무공의 일원지기(一元之氣)의 형태와 닮아있다고 보는 게 맞을 것이다.
일원지기란 정종무공에선 오행이 조화롭게 이룬 상태를 말한다.
쉽게 말하면, 과정과 결과의 형태가 마공이라는 점은 같으나 핵심적 기초가 정파의 뿌리라는 점이 달랐다.
오히려 그래서 더 좋았다.
어떻게 이 무공을 익히느냐에 따라 마성(魔性)에 지배당하는 걸 피할 수 있으니.
* * *
설휘가 일원소마공을 중급까지 익히는 데 필요했던 시간은 역시나 한 달이었다.
그리고 성과는 이전보다 훨씬 더 높았다.
<한 달의 수련 성과를 알려드립니다.>
체력이 2만 상승했습니다.
내공이 2만 상승했습니다.
전투력이 3만 상승했습니다.
설휘 [은영단 (진)사령대장]
체력 14만(↑2만)/14만
내공 14만(↑2만)/14만
전투력 45만(↑3만)
“참…….”
설휘는 방 안에 덩그러니 선 채 창가를 바라보고 있었다.
정신을 차려보면 한 달이 지나가 있다.
그렇다고 시간이 통째로 사라진 게 아니어서, 그간 있었던 일도 생생히 머릿속에 떠올랐다.
-너는 대체 뭐 하는 놈이냐!
교육관주 적파의 시시각각 변하는 표정.
첫 달에는 놀라는 얼굴이었으나, 이제는 충격받은 얼굴이 대부분이었다.
그러다 두 달째 교육할 때에는 넋을 잃은 얼굴, 혼자서 실실 웃는 얼굴, 눈만 껌뻑거리는 얼굴만 가득했다.
특히 마지막 날인 오늘, 그는 설휘를 따로 불러 이 말을 했다.
내일부터는 일원소마공의 <고급> 과정을 배울 것이다.
“몸 상태가 너무 좋다.”
설휘는 두 달 동안 수련을 해오면서 어떠한 피로감을 느낄 수 없었다.
예전보다 더 좋아진 느낌이다.
추측건대 이건 일원소마공의 덕분일 것이다.
소원공(小原功)이라 하여 이전 마공들과 달리 순식간에 회복시켜주는 심법이 존재했으니까.
“고민할 것도 없다. 계속 수련이다.”
설휘는 문 앞을 나섰고.
<천력 95년 11월 일정을 정해주세요. (3/36)>
다시금 무공 배우기를 선택했다.
▶ 은영단의 대표마공 <고급>
마지막 단계인 일원소마공을 완전히 깨닫기 위해서.
* * *
일과는 다음과 같은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오전은 가르침과 토론. 오후 실습 훈련.
하지만 적파가 가르쳐주는 내용들은 물먹는 솜처럼 머릿속에 각인이 되었고.
절대 두 번 물어보는 일이 없었다.
하여 거의 온종일을 일원소마공의 실습 훈련에 열정을 쏟았다.
<일원소마공의 이해도가 상승했습니다.>
<일원소마공의 이해도가 상승했습니다.>
시간이 순식간에 지나갔다.
설휘는 으레 자연스럽게 매달 마지막 날에 훈련이 멈출 줄 알았다.
그런데.
“뭐야?”
이번에 시간이 멈췄을 때 그의 눈에 들어온 곳은 늘 있던 방이 아니었다.
현무관 밖으로 나오는 세 번째 출구 즈음에 멈춰 서 있었던 것이다.
“…….”
설휘는 곧장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11월 16일>
상단 위에 멈춘 일시와 머릿속을 채워가는 기억들.
그리고 그 기억 끝자락에서 이유를 쉽게 찾을 수 있었다.
‘3명인가?’
현무관을 나설 때 따라붙은 놈들.
인기척이 느껴지자마자 시간이 자연스럽게 멈췄다.
무공을 익히는 도중 뭔가 특정한 사건이 일어났을 때는 이렇게 시간이 멈추는 듯했다.
“이제 나오지 그래?”
설휘가 물으며 기다렸다.
예상대로 잠시 후, 담장을 넘으며 세 놈이 나타났다.
“영 바보는 아닌가 보네. 낄낄낄.”
얼굴을 천으로 가리고 흑의를 입은 자들이었다.
그중 가장 덩치가 큰 놈이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왜 따라왔는가?”
설휘는 재차 물었다.
“우리끼리 내기를 했거든. 오늘 배운 마공을 누가 더 잘 펼치는지 시험해보기로 말이야. 그래서 현무관 내에 적당한 놈 한 명을 고르던 중에 네가 걸린 거야.”
설휘가 이들에게서 노골적인 인기척을 느낀 이유를 깨달았다.
이놈들은 감시할 목적으로 붙은 게 아니라, 자신을 가지고 놀 요량으로 나타난 것이다.
“잘못 고른 거 아냐? 한 대 치면 쓰러질 것 같이 생겼잖아.”
때마침 빼빼 마른 흑의인이 물었다.
능력 수치에 뜬 정보를 보니, 궁귀란 이름을 쓰는 자였다.
“그러기에 사령대원들은 고르지 말자고 하지 않았나. 그놈들은 전부 애송이들이라고.”
자신을 앞에 두고 뭔가 맘에 안 드는지 자기들끼리 쑥덕이고 있었다.
그 모습이 참으로 가소로웠다.
귀로(鬼爐)[은영단 사황대원]
체력 12만/12만
내공 9만/9만
경지 일류
전투력 18만
덩치 큰 흑의인.
궁귀(宮鬼) [은영단 사황대원]
체력 9만/9만
내공 8만/8만
경지 일류
전투력 15만
빼빼 마른 흑의인.
천서(天西) [은영단 사황대원]
체력 10만/10만
내공 8만/8만
경지 일류
전투력 16만
등이 굽은 흑의인의 수치들.
‘사황대 출신…….’
은영단은 총 3개의 부대로 이루어져 있다.
사황대(邪皇隊), 사적대(蛇的隊), 사령대(死靈隊)가 바로 그것인데, 부대에 따라 부여된 역할과 임무가 모두 달랐다.
사황대라 불리는 곳은 주로 어떤 세력을 일망타진할 때 투입되는 부대이다.
임무 특성상 은영단 중 가장 혈기 넘치고 마성이 짙은 자들이 모여 있을 수밖에 없었다.
‘이거 잘됐군.’
설휘는 되레 기분이 좋아졌다.
일원소마공이란 걸 한번 연습해보고 싶었는데, 적당한 시기에 맞아줄 녀석들이 자진해서 등장했으니까.
“내가 먼저 보여준다.”
“적당히 해. 나도 재미를 좀 봐야 하니까.”
“푸흡. 그럼 땅에 묻고 딴 놈 찾으면 돼.”
또다시 자기들끼리 떠들어댔다.
설휘는 조용히 기다렸다.
그리고 곧 한 놈이 목을 이리저리 흔들며 다가오는 걸 봤다.
덩치 큰 귀로란 놈이었다.
“야. 잘 버텨봐…… 악!”
뻐억!
그가 내뱉은 말은 거기까지였다.
단숨에 거리를 좁힌 설휘가 그의 얼굴에 주먹을 냅다 꽂았다.
얼마나 빨리 후려쳤는지, 그는 바닥에 뒹군 뒤 다시 일어났음에도 눈만 껌뻑이고 있었다.
“마침 나도 궁금했거든.”
철컥.
설휘는 여유롭게 검을 꺼내 들었다.
“무공을 얼마나 제대로 배웠는지 말이지.”
챙! 챙! 챙!
뭔가 잘못됐다 싶었는지 검을 움켜쥔 세 명의 흑의인.
설휘는 그들을 보며 웃어 보였다.
확실히 이들을 상대로는 전투방식을 쓸 필요도 없었다.
그냥 찌르고 베면 될 테니까.
* * *
일원소마공의 가장 큰 장점은 상대의 공격에 대응하는 초식이 있다는 거다.
더욱이 마공 특성상 검을 휘두를 때마다 가속(加速)이 붙는다.
소원공이라는 일원소마공의 심법을 운공해 얻는 이점이다.
‘검을 잡는 위치와 자세를 보라고 했지.’
교육관주는 설휘에게 일원소마공만 가르쳐준 것이 아니었다.
그간 몰랐던 기초적인 검술의 쓰임.
적을 대하는 자세와 방법까지 소상히 알려주었다.
‘오른손 두 명. 왼손 한 명. 동시에 공격한다면 왼손 놈이 우측으로 오겠군.’
설휘는 생각을 정리하며 그들이 공격하기만을 기다렸다.
문득 소수마공을 쓸까 고민해 보았지만, 이내 생각을 접었다.
만에 하나 모두 죽일 수도 있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온다!’
팟.
자리를 박차고 달려오자마자 설휘의 눈이 빠르게 빛났다.
그리고 그들의 위치와 자세, 어깨와 손목으로 이어진 병기까지 모두 눈에 담고는.
검을 위로 퍼 올리며 한 발짝 물러섰다.
쇄애액! 쇄애액! 깡!
두 개의 검이 사선으로 교차하며 허공을 그었다.
그러나 수직으로 내려오던 검은 설휘의 방어로 인해 도중에 막혔다.
단 한 수로 세 명의 사황대원들의 공격을 무마시킨 것이다.
“뭐해? 계속 안 하고.”
“……!”
“……!”
“……!”
그들의 동작이 잠시 멈춰 있었다.
당연히 피투성이가 될 줄 알았던 사내가 공격을 간단히 파훼해버리자, 당황해 순간 멈칫한 것이다.
이윽고 설휘 정면에 있던 귀로가 발을 구르는 동작과 함께 달려들었고.
궁귀와 천서도 시간차를 두며 좌·우측에서 찔러 들어왔다.
그런데도 설휘는 움직이지 않았다.
캉!
그저 정면에서 찔러오는 귀로의 검을 가볍게 한 번 쳐내기.
까앙!
재차 공격하는 귀로의 검을 세게 한 번 쳐내기.
그러자 우측에서 달려오는 놈과 엉켜 쓰러졌고.
쇄애액!
좌측의 검을 우측 횡으로 한 번 이동 후.
뻐억!
검면으로 얼굴을 후려갈겨 버렸다.
“으윽!”
“칫!”
“악!”
세 놈 모두 바닥을 뒹굴며 쓰러져 있었다.
설휘는 우스꽝스러운 모습을 보며 생각했다.
이들이 하수들이나 할 만한 동작으로 쓰러지는 대는 다 이유가 있을 거라고.
상대가 쫓지 못하는 움직임과 반응 속도.
마치 인체의 요혈을 타격해 중심에서부터 균열을 만드니, 힘을 주체하지 못하고 와르르 무너진 것이다.
이것이 일원소마공의 핵심.
적들의 공격에 대비한 초식을 쓰는 것이다.
‘이제 알겠다. 선택제에서 나왔던 간단한 동작들에 담긴 의미를.’
AI는 은영단주에게 피해를 입히긴 했지만, 상처를 주지는 못했다.
하지만 시뮬레이션제는 단순한 피해를 넘어 단주의 허리를 베기까지 했다.
그것이 바로 검술의 핵심.
화려한 초식이 아닌 최소한의 동선.
극도의 효율적인 검법으로 상대를 무너뜨린 것으로 짐작된다.
‘어?’
어느새 자리에서 일어선 세 명의 흑의인.
그들의 눈빛에 살심이 치솟고 있었고, 동시에 검 끝에서 마기가 끓어오르고 있었다.
‘이런. 가만 놔두면 안 되겠군.’
설휘는 재빨리 그들을 향해 달려들었다.
피이이---!
흑의인들의 눈엔 가히 환영을 보는 듯한 움직임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이것이 사대극마공의 보법이란 사실을 이 중에 아는 사람이 없었다.
활이 쏘아져 오는 착각과 함께 설휘가 지척까지 다가왔을 때는 이미 늦었다.
그들은 검을 휘둘러보지도 못했다.
“으헉!”
“컥!”
“컥!”
가슴과 어깨 허벅지를 찔린 그들의 신형이 설휘 앞에서 모래처럼 무너졌다.
‘어?’
설휘는 눈을 껌뻑였다.
아예 불구로 만들어버릴까 생각하던 차에, 멈췄던 시간이 다시 흐르기 시작한 것이다.
눈앞의 이 문구와 함께.
<사황대원 3인조를 혼내줬습니다.>
<보상으로 전투력 1만이 상승합니다.>
다시금 시간이 흘렀다.
자연스럽게 적파의 교육이 계속되었으며.
오늘부로 나의 가르침은 모두 끝났다.
마지막 말과 함께, 설휘는 늘 보던 방 안에서 정신을 차렸다.
“하…….”
그리고 으레 나타나던 보상이 눈앞에 보였다.
<한 달의 수련 성과를 알려드립니다.>
체력이 3만 상승했습니다.
내공이 3만 상승했습니다.
전투력이 5만 상승했습니다.
모든 능력치는 대폭 올라갔고, 거기에다 전투력은 1만이 더 상승했다.
설휘 [은영단 (진)사령대장]
체력 17만/17만
내공 17만/17만
전투력 51만
“정말이지…….”
엄청나게 빨라지는 성장.
머릿속을 가득 채우는 일원소마공의 초식들.
설휘는 고개를 돌렸다.
이렇게 된 거, 더욱 빠르게 전진하기로.
<천력 95년 12월 일정을 정해주세요. (4/36)>
▶ 무공 배우기
▷ 임무 받기
▷ 무사 수행
▷ 주변을 돌아다닌다.
그리고 기존의 형태에서 약간의 변화가 생겼다.
무공 배우기를 선택했는데, 일원소마공을 모두 익힌 뒤라 그런지.
▶ 추적술의 이론 <초급>
▷ 혈도의 이해 <초급>
▷ 교육관주의 지도 <초급>
그 목록이 사라져 있었다.
뭐, 어쨌든 상관없다.
배우는 데 지장은 없으니.
<추적술의 이론. 신비점혈법서(神祕點穴法書)에 관해서 배웁니다.>
설휘는 결심했다.
1년 안에.
배울 수 있는 건 모두 배워보기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