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화. 비급 강화 (1)
오늘부터 너에게 혈도에 대해 가르칠 막청(莫靑)이라고 한다. 혹여 단순한 점혈법(點穴法)을 배울 것이라 생각하고 왔다면 오산일 터!
처음 본 교육관원은 매우 화가 난 인상을 하고 있었다. 성격도 급한지, 자리에 앉자마자 가르침이 이어졌다.
그는 그 자리에서 점혈법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한참을 떠들다가 내게 서책 세 권을 건네주었다.
<신비점혈법서(神祕點穴法書)를 받았습니다.>
<신비점혈법서(神祕點穴法書)를 익혔습니다.>
그걸 받아들자 당연하게도 내용들이 쏙쏙 머릿속에 들어왔고, 단숨에 익혀버렸다.
그래서 그런지.
-우리가 사용하는 마기의 힘의 근원도 모두 혈자리에 영향을 받는다. 하단전은 경락상으로는 임맥(任脈)이지만 경혈상으로 기해(氣海)라 한다. 왜 기해라고 말하는 줄 아느냐?
그의 질문을.
“선천진기가 바다처럼 이루어져 있다고 해서 붙은 것입니다. 그래서 십이경락(十二經絡)의 근원을 단전에 두는 것이지요.”
간단히 받았다.
그런데 쉽게 내뱉은 대답이 막청의 심기를 건드린 것일까?
갑자기 비웃음과 함께 질문을 해왔다.
- 뭘 알고 그리 대답하는 것이냐? 정확한 기해혈(氣海穴)의 위치도 모르는 녀석이.
보통 일반적인 무공서에 보면 단전은 배꼽 아래, 손가락 한마디에서 한마디 반 정도의 지점에 위치하고 있다.
하지만 설휘는 그의 질문의 의도를 바로 간파했다.
훨씬 더 정확한 의미. 그것도 혈자리에 빗대 설명하라는 의미였다.
“흔히 알기로 기해혈과 관원혈(觀元穴)의 중간에서 임맥의 정반대에 있는 명문혈(命門穴)에 선을 연결하고, 좌우에 있는 충백(衝脈)과 대맥(帶脈)에 대각선을 그어, 그 앞 점선과 마주치는 중심점을 단전이라 합니다.”
‘그럼 그렇지’라고 혀를 차며 듣고 있던 막청의 표정이 딱딱히 굳어졌다.
“하나, 선천진기의 순환은 단전 부위를 중심으로 흐르지요. 임맥뿐만 아니라 충맥과 대맥의 교차점에 있습니다. 이게 왜 중요하냐면, 단전에 내공을 계속 쌓다 보면 어느 시점에는 스스로 활로(活路)를 열어 개안(開眼)을 할 수 있게 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습니다.”
- 허어업!
막후는 자신의 입을 틀어막았다.
그도 그럴 것이, 그가 기해혈의 위치를 물은 이유도 바로 거기에 있었다.
깨달음이 부족하거나 일정 경지에 벽을 느꼈을 경우, 우직하게 내공을 쌓는 수련만으로도 그걸 해결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려던 것.
-가르침을 시작하겠다. 첫 장을 펴라.
얼굴이 시뻘게진 그가 책을 집어 들었고, 그 이후로 다시금 시간이 빨라졌다.
그런데.
<혈도의 이해. 기초를 완벽히 익혔습니다.>
시야가 밝아짐과 함께, 설휘는 방 안으로 돌아와 있었다.
그리고 천천히 고개를 들어 일시를 확인했다.
<12월 1일>
하루. 단 하루 만에 혈도의 이해 초급반을 익힌 것이다.
“다시 어떻게 진행하는 거지?”
주위를 두리번거리던 설휘는 문 앞에 섰다.
<혈도의 이해. 중급과정을 계속 진행하시겠습니까? 승낙/거부>
예상대로 진행하는 글귀가 나왔고, 선택하자마자 시간은 흘러갔다.
<12월 2일>
상단 위에 있는 일시와 함께 막청의 얼굴이 보였다.
- 이걸 받거라. 오늘은 수법에 관해 알려주겠다.
<점혈수법서(点穴手法書)를 얻었습니다.>
<점혈수법서(点穴手法書)를 익혔습니다.>
- 서, 설마 그 많은 양을 모두 다 보았단 말이냐?
- 어찌…… 점혈하는 위치와 힘을 가하는 수법이 이토록 완벽할 수 있다니.
<혈도의 이해. 중급을 완벽히 익혔습니다.>
시간은 멈추지 않았다.
고작 하루 만에 중급과정도 해결했다.
<12월 3일>
- 이건 알지 못했을 거다. 오장육부에 치명상을 입히는 극혈타법 중 하나이니.
<타혈수탈법(打穴壽奪法)을 얻었습니다.>
<타혈수탈법(打穴壽奪法)을 익혔습니다.>
- 모, 모두 알고 있었단 말이냐!
- 이놈! 날 희롱하려 드는 것이냐! 어서 썩 꺼지거라!
그 길로 설휘는 쫓겨났다.
<혈도의 이해. 고급을 완벽히 익혔습니다.>
단 3일 만에 혈도의 이해 교육을 모두 이수했다.
* * *
<12월 4일>
설휘는 은영단원이라면 반드시 배워야 할 추적술을 배우기로 마음먹었다.
▶ 추적술의 이론 <초급>
이번엔 추적술을 선택했고, 다시금 현무각으로 이동했다.
<추적술의 이론에 대해 배웁니다.>
곰보자국 얼굴에 멀대처럼 큰 키의 노인이 멀리서 걸어왔다.
그는 긴 수염을 매만지며 설휘에게 준엄하게 말했다.
- 나는 염휘(廉暉)라고 한다. 이 시간부로 너의 교육을 맡게 되었다. 현 본교에는 갖가지 사건도 많고 이해관계가 얽혀 있지. 그건 비단 마교뿐이 아니다. 강호에도 은원(恩怨)으로 인해 죽고 죽이는 일이 빈번하다. 고로…….
엄숙한 분위기 속에서 그는 조곤조곤 말을 이어나갔다.
- 늘 그렇듯, 암투가 발생하면 누굴 추적하거나 따돌리는 일이 필요한 법. 우리 추종술은 거기에 특화된 무공이다. 우선 받거라.
<추종만보술(追從漫步術)을 얻었습니다.>
<추종만보술(追從漫步術)을 익혔습니다.>
그가 내면 여섯 권의 서책들.
비급을 집자마자 머릿속에 수많은 문장이 아로새겨지기 시작했다.
- 사흘 아니 넉넉잡아 나흘이란 시간을 주겠다. 내용을 모두 훑어보고, 중요한 것은 암기하고 와라. 아무것도 모르는 놈하고는 말을 섞기 싫으니까.
“지금 하시지요.”
염휘의 말에 별 뜻 없이 대답했다.
이미 다 외웠으니 길게 끌 필요는 없으니까.
- 허, 이런 건방진! 곤마께서 데려온 녀석이라 내 잘 봐주려 했더니…….
그의 미간이 찌푸려지더니 이내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변했다.
- 좋다. 물어보마. 추종술의 관찰요소는 무엇이 있느냐?
이놈도 한 성격 하는 것 같다.
뭐 아무렴 어떤가. 뭘 물어봐도 다 대답할 수 있는데.
“흙과 풀, 나뭇가지와 동물입니다.”
- 이유는?
“마른 땅이라도 인위적인 흔적이 남기 마련이지요. 잡풀은 말할 것도 없구요. 설령 도망친 자가 초상승 경공술을 사용했다고 하더라도, 내공이 무한하지 않은 이상 흔적을 남깁니다. 분명 숲이나 산지는 이동경로에 따라 나뭇가지가 꺾여 있을 겁니다. 동물은 사람을 보면 놀라 본능적으로 피합니다. 주변에 있다면 그 방향으로 이동하지 않았다고 쉽게 예측할 수 있지요.”
- 만약 네가 도망간 범인을 찾아야 한다면 무엇부터 할 것이냐.
“기본적으로 발자국을 보겠습니다. 보폭이나 크기를 보고 여인인지 남자인지 분간을 할 수 있으니까요. 그리고 바닥, 나뭇가지의 틈, 돌멩이를 유심히 보겠습니다. 찢어진 옷감이나 실이 나온다면 어떤 복장을 착용했는지 알 수 있으니까요. 그다음 정해진 절차에 따라 목격자의 증언에 용모파기를 그려보겠습니다.”
- 늑후(肋後)에 부딪힌 부위가 검붉게 부어오르며 살갗이 벗겨지지 아니한 시체는 어떻게 죽은 것이냐?
영악한 늙은이.
총 6권으로 되어 있는 추종만보술.
그중 5권째 맨 뒷장에 깨알 같은 글씨로 적혀 있는 시체부검에 대한 이야기였다.
“검붉게 부어오른 부위를 만져 힘줄과 뼈가 손상되어 있다면, 딱딱한 물건에 급소를 부딪쳐서 죽은 경우입니다.”
- 허어!
감탄의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놀라는 게 당연하다.
별첨으로 붙어 있는, 방대한 내용으로 적힌 시체부검서를 봤다고 생각하지는 않을 테니.
- 따라 나오너라. 하나하나 직접 알려주겠다.
그렇게 하루.
<추적술의 이론. 초급과정을 완벽히 익혔습니다.>
그렇게 이틀.
<추적술의 이론. 중급과정을 완벽히 익혔습니다.>
중급과정을 쉽게 익힐 수 있었다.
그리고 사흘이 되는 날.
모두 익히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추적술의 이론. 고급 과정에 대한 이해력이 올라갔습니다.>
<추적술의 이론. 고급 과정에 대한 이해력이 올라갔습니다.>
……
날짜가 계속 흘렀음에도 고급과정을 이수하지 못했다.
이유가 있었다.
추종술에 유용한 별도의 수법을 익히기 위해 추가로 시간을 할애했기 때문이다.
덕분에 이런 좋은 것도 배울 수 있었다.
[백리지청술(百里地廳術)을 배웠습니다.]
백리지청술은 백리 밖에서의 작은 소리도 들을 수 있다고 알려진 수법이었다.
하지만 설휘는 방식만 알 뿐, 구현하지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백리지청술은 초절정에 올라야만 가능한 무공이었다.
며칠 동안 소리의 감각을 더듬고, 몇 번을 지도받았음에도 고작 삼십 장(90m) 정도 들을 능력만 얻었을 뿐이다.
[야백안(夜白眼)을 배웠습니다.]
어두운 환경에서도 밝게 볼 수 있는 지안술.
밤에 계속 불러내 수련했고 배우는 데는 열흘이란 시간이 걸렸다.
[산향수(散向水) 제조법을 배웠습니다.]
자신의 냄새를 지우는 제조법이다.
이건 금방 배웠다.
[화골산의 사용법을 배웠습니다.]
[화골산을 1개 얻었습니다.]
별로 유쾌하지 않았지만, 화골산도 얻었다.
사용하면 흔적을 완벽하게 지울 수 있다지만, 그게 필요할까?
어차피 죽으면 나중에 어떻게 되든 무슨 상관인가.
<추적술의 이론. 고급 과정에 대한 이해력이 올라갔습니다.>
<추적술의 이론. 고급 과정에 대한 이해력이 올라갔습니다.>
그렇게 12월 마지막을 하루 남겨놓은 날.
<추적술의 이론. 고급 과정을 완벽히 익혔습니다.>
관련된 모든 걸 배울 수 있었다.
* * *
설휘는 시야 위 상단에 뜬 일시를 확인하고는 문 앞에 섰다.
그런데 이번엔 반응이 없었다.
늘 뜨던 일정이 사라진 것이다.
“아직 하루가 남아서 그런가?”
예상은 하고 있었다.
<12월 31일>
머리 위에 떠 있는 날짜.
내달 초하루에 뜨던 정해진 일정이 안 나온 것도 그것 때문인지 몰랐다.
“수련이나 할까?”
설휘는 창가로 걸어갔다.
거기에 검을 세워놓았기 때문이다.
검을 챙긴 후 밖으로 나가려던 설휘가 멈칫했다.
서탁 아래에 있는 옥함이 눈에 들어온 것이다.
“한데, 저건 뭐지?”
가로가 두 자, 세로가 한 자 정도의 크기.
별것 아닌 장식품 같다가도 또 뭔가 비범해 보이기도 했다.
결국 설휘는 호기심 때문에 옥함을 열어보았다.
“아무것도 없군.”
텅 빈 공간을 본 확인한 그는 다시금 닫았다.
그런데 웬걸.
갑자기 알림창이 떴다.
<무공을 조합하시겠습니까? 승낙/거부>
“무공 조합…….”
처음 보는 문구. 하지만 그냥 지나칠 수 없는 글귀다.
뭔가 좋은 예감이 들어 승낙을 해보았더니 다시 이게 떴다.
<무공서가 없습니다. 무공서를 넣어주세요.>
“무공서? 어떤 걸?”
설휘는 문구를 보고 잠시 고민했다.
옥함을 닫을 때 무공서를 넣으라고 했다.
그 말은 이 안에 무공서를 집어넣으라는 말인가?
“가만 보자…….”
설휘의 시선이 서탁 위에 있는 문방사우에 눈길이 갔다.
때마침 번뜩이는 생각.
설휘는 급히 서탁에 앉아 벼루에 먹을 갈기 시작했다.
“소희마공을 적어보자.”
자신이 알고 있는 무공들.
하나의 틀린 글귀도 없이 정확히 머릿속에 기억하고 있었다.
이 방법이 맞는지는 모르지만, 워낙 신기한 문구가 뜨니 한번 확인해 보면 될 일.
워낙 방대한 양이라 설휘는 온종일 무공서를 만드는데 시간을 투자했다.
그렇게 하여 ‘소희마공’ ‘소수마공’ ‘일원소마공’ ‘적수마공’ ‘초극마공’ ‘사대극마공 풍’ 모두 6개를 만들었고.
“해보자.”
덜컥.
옥함에 여섯 무공을 집어넣고 닫았다.
그런데.
<무공의 성질이 다릅니다. 상생표와 강화를 참조해 주세요.>
♤ 상생표 : 목(木)→화(火)→토(土)→금(金)→수(水) 순(順).
♤ 강화 : 동일 성질.
“되긴 된다!”
설휘는 쾌재를 불렀다.
안 된다는 문구가 떴지만, 확실한 건 무공서가 만들어진다는 게 아닌가.
‘오행(五行)이라…….’
문득 떠오른 무공은 소희마공과 소수마공이다. 전부 극음의 무공으로 수(水)의 성질을 가지고 있다.
덜컥.
설휘는 두 무공서를 집어넣고 닫았다.
<소신수마공(素身秀魔功) 완성되었습니다.>
“하하하!”
설휘는 웃으며 급히 옥함을 열었다.
그러자 수기로 적은 무공서는 사라지고 금색으로 번쩍이는 책자 하나가 보였다.
그걸 손으로 들자.
[소신수마공(素身秀魔功)을 습득했습니다.]
이게 엄청난 무공이란 걸 알게 되었다.
어떻게?
설휘 [은영단 (진)사령대장]
체력 17만/17만
내공 17만/17만
전투력 84만(↑33만)
익히기만 했는데도 전투력 수치가 대폭 상승해버렸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