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화. 비급 강화 (2)
“실로 대단한 마공이다.”
소신수마공의 무공을 살펴보던 설휘는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양손이 도검불침으로 바뀐다고 알려진 소수마공.
한데, 이 소신수마공은 단지 손만이 아니었다.
신(身)이란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온몸이 도검불침이었다.
<소신수마공> 흉내내기
물론 지금 상태에선 불가능했다.
추측건대 적어도 숙련도가 올라 중급 단계까진 가야 구현해낼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지금 상태에서도 할 수 있는 것이 있었다.
흉내내기 수준만으로도 검기와 위력이 흡사한 빙정(氷晶)의 힘을 펼쳐낼 수 있다는 것.
이 정도면 극음의 무공이라는 소수마공을 한 단계 초월한, 무공이라 할 수 있다.
“지금은 사대극마공보다 더 강력하겠는데?”
지금 능력으로는 소신수마공 쪽에 손을 들어주고 싶었다.
사대극마공은 아직 흉내내기 수준에도 못 미쳤으니까.
“더 해보자!”
잔뜩 상기된 설휘가 이젠 다른 무공을 넣어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몇 번을 꺼냈다 넣은 끝에.
또 하나의 마공을 완성시킬 수 있었다.
<초열권마공(焦熱拳魔功)이 완성되었습니다.>
적수마공과 초극마공의 조합이었다.
이전보다 화기의 힘이 더욱 증가되었고, 적은 내공으로도 구현할 수 있게 효율적으로 변했다.
다만 본래 적열장과 폭열공은 권법과 검법이었는데, 이것이 합쳐지면서 권법으로 변한 게 조금 특이했다.
“아, 이젠 안 되나?”
설휘는 일원소마공과 사대극마공. 그리고 조합된 무공들과 같이 넣어보고 빼기를 반복했다.
하지만 이 무공들은 서로 연결되지 않았다.
결국 이 정도로 만족한 설휘는 고개를 들어 무공목록을 펼쳤다.
[무공목록]
<일원소마공> 고급단계
<소신수마공> 흉내내기
<초열권마공> 흉내내기
<사대극마공 풍> 걸음마
4개로 나뉜 무공목록.
문득 이걸 보며 사대극마공을 흉내내기 수준으로 올려야겠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그래야 턴제의 목록에서 뜰 것 같기 때문에.
“또 뭐가 있을 것 같은데…….”
신비한 알림창이 뜨는 방.
설휘는 이제 모든 걸 의심하기 시작했다.
드르륵.
수납장 안. 경상 위에 올려진 장신구. 나무 바닥도 두들겨보았다.
벽도 이곳저곳을 더듬어보기를 몇 번.
곧 포기했다.
찾아봐도 더는 특별한 점이 나오지 않았다.
대충 다 돌아본 설휘는 창가로 시선을 돌렸다.
마침 따뜻한 햇볕이 집 안으로 스며드는 게 보였다.
“새해구나.”
삶은 신비한 경험의 연속이다.
생사의 기로에서 나타난 창(窓)의 글귀는 설휘에게 많은 것을 가져다주었다.
그리고 이 기연은 어두운 밤의 등대처럼 자신의 길을 밝혀주고 있었다.
<천력 96년 1월의 일정을 정해주세요. (5/36)>
▶ 무공 배우기
▷ 임무 받기
▷ 무사 수행
▷ 주변을 돌아다닌다.
설휘는 무공 배우기를 선택했다.
<어떤 것을 배우시겠습니까?>
▶ 교육관주의 지도 <초급>
모든 목차가 사라지고 이제 하나가 남았다.
이건 익히는 데 몇 달이나 걸릴까?
<오늘부터 교육관주의 지도를 받습니다.>
글귀와 함께, 눈앞이 하얗게 변했다.
* * *
현무관.
은영단원들을 육성하고 교육을 진행하는 공간으로, 전원산림이 갖춰진 별장에 위치하는 곳.
교육관주 한 명과 교육관원 삼십여 명으로 구성된 이들은 은영단 산하 3개의 부대를 책임지고 훈육을 담당하고 있었다.
솨아아아--
눈부심이 멎었을 때, 설휘의 시야에 들어온 건 현무관 내 어느 연무장이었다.
그리고 그 중심에서 홀로 서 있는 자는 교육관주 적파였다.
“곤마께서 너를 콕 찍어 육성하라는 말씀을 듣긴 했다만…….”
그와의 거리는 세 걸음 뒤.
허리춤에 검을 찬 자신은 어느새 그의 말을 경청하고 있었다.
“타고난 기재라고 평가받던 은영단원들도 3년은 넘게 이수해야 할 교육을 고작 4달여 만에 끝내다니. 진심으로 놀랍구나.”
천천히 고개를 돌리던 그의 표정이 밝아 보였다.
적의나 살기가 느껴지지 않는 것이, 확실히 자신에게 호의적인 사람처럼 느껴졌다.
‘과연 초절정에 오른 자다.’
설휘는 교육관주 적파의 인상착의를 보며 생각했다.
으레 마인들에게서 흘러나오는 마성(魔性)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물론 동공 사이에 맺힌 녹안(綠眼)이 언뜻 내비쳐지긴 하나, 그건 작은 요소일 뿐.
그에게서 오히려 편안한 기운을 느낄 수 있었다.
그 말은 오로지 힘만 갈구하는 수준을 넘어섰다는 얘기다.
능력수치도 그랬다.
적파 [은영단 교육단주]
체력 660만/660만
내공 560만/560만
경지 초절정
전투력 850만
체력과 내공 외에는 은영단주와 비슷한 수치다.
조금 의아한 것은 체력과 내공에 비해 전투력이 눈에 띄게 높다는 것.
“하나, 그 정도의 능력으로는 곤마 님께 어떤 도움도 줄 수 없다.”
“……무슨 뜻입니까?”
“너는 천마 제자분들의 전력(全力)이 과연 어느 정도일 것 같으냐?”
갑자기 분위기가 무거워지자 설휘는 침묵했다.
왜 불쑥 이런 말을 꺼냈는지 의도가 궁금했지만, 오히려 그것보다는 그가 언급한 전력이란 말에 더 흥미가 갔다.
예전부터 천마 제자들의 힘이 어느 정도인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또한, 이건 앞으로 자신의 삶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컸다.
천마의 제자들은 ‘천마의 선택’을 받은 자들.
강해지면 강해질수록 차기 교주에 오를 가능성에 다가가는 그들의 암투에 자신이 휘말릴 예정이라는 건 자명한 사실이었다.
“알려주시면 기억하겠습니다.”
설휘는 짧게 묵례를 하며 적파의 말을 기다렸다.
잠시 고개를 들어 천장을 바라보던 그가 낮게 입을 열었다.
“첫째 제자. 그의 주위에는 전력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치는 극마고수가 무려 셋이나 있다. 첫째 제자 역시 극마고수이기도 하니, 무려 넷이 존재한다고 봐야겠지.”
“극마고수…….”
설휘는 절대경지에 오른 자들이 극마고수라 불린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무신(武神), 입신(入神)이라 불리는 궁극의 영역.
과거 화산파 구종명이 그 수준에 도달해 있지 않았던가.
“둘째 제자의 극마고수는 둘이다. 하나 무시할 것이 못 되는 것이, 극마 수준은 아니어도 거기에 준하는 고수들이 무려 수십이나 된다.”
초마.
극마를 목전에 두고. 깨달음이나 내공. 체력 등. 특정조건을 통과하지 못해 거기서 성장이 멈춰버린 경지를 뜻했다.
초절정의 벽을 부쉈지만 극마에 오르지 못한 기형적 상황 때문에 자아를 잃고 피에 굶주린 광마가 가장 많이 생겨나는 구간이기도 했다.
“셋쩨 제자 역시 극마고수는 둘이다. 하나, 셋째 제자의 구심점이 되는 고수들은 극마가 아닌, 아직 알려지지 않는 고수들이다. 대체 어떻게 구워삶았는지, 세속에 관여하지 않는다던 은둔고수들 몇몇이 그녀의 뒤를 받치고 있다고 하더군.”
“허면 곤마께서는…….”
설휘는 슬쩍 운을 띄웠다.
말을 직접 꺼내지 않아도 의중을 묻는 건 그 역시 알 터.
“……애석하게도 없다.”
“예?”
설휘는 처음엔 잘못들은 듯 되물었다.
하지만 적파의 반응을 살피니 그게 거짓이 아닌듯했다.
첫째와 둘째, 셋째도 둘 이상이 있는데 곤마에겐 한 명도 없는 것이다.
“허면, 초마에 오른 고수들은…….”
“과연 몇 명이나 있을지.”
“……!”
암운에 쌓인 힘의 구도가 고스란히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이 정도면 열세라는 말도 어울리지 않았다.
그냥 압도적으로 밀린다고 봐야 했다.
“그런데도 아직 곤마께서 건재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경솔한 발언일지 모르나 꼭 물어야 했다.
이런 기형적인 구도 속에서 자신이 어떻게 하면 살아남을 수 있을지 방법을 찾아야 했으니까.
다행히 적파는 예의 같은 것에는 거리낌이 없어 보였다.
“재밌게도…… 그 역시 넷째 제자님의 역량 때문이다.”
그는 잠시 고민과 걱정이 교차되는 듯한 표정을 짓더니, 고개를 한쪽으로 돌리며 말을 이었다.
“……혹 천살성(天殺星)이라고 아느냐?”
“설마, 넷째 제자님이 천살성이십니까?!”
설휘는 목소리가 쩌렁쩌렁 울릴 정도로 매우 놀랐다.
천살성.
천 년에 한 명 나올까 말까 한, 하늘이 내려준 천고의 무골.
무엇이든 익히면 구현하지 못할 무공이 없고, 따로 수련하지 않아도 스스로 무신의 경지에 오르는 기운을 가진 자를 말한다.
더욱이 천살성을 지닌 자가 마공을 익히면 그 누구도 막을 수 없다고 전해졌다.
살육에 미친 기운을 가진 자가 마성까지 얻는 것이니, 어찌 보면 날개를 단 격이다.
“하지만 천살성은 열여섯을 넘지 못한다고 들었습니다.”
설휘는 문득 머리를 스치는 궁금증을 물었다.
천살성의 대부분은 자신의 광기를 이기지 못하고 죽는다. 한데 곤마는 살아 있지 않은가?
“천마께서 곤마 님을 넷째 제자로 선택한 것도 바로 그것 때문이다. 곤마께서는 보통의 천살성과 다르다는 것이지.”
본래는 천살성의 가장 치명적인 점이라고 불리는 건 바로 생명.
타고난 양기가 너무나 강해, 열여섯이 되기 전에 선천진기를 모두 태워 스스로 목숨을 잃는다.
그런데도 곤마는 살아남아 있었다.
“허면 넷째 제자님도 충분히 교주가 되실 수 있지 않겠습니까?”
설휘의 물음에 적파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지. 제아무리 우연에 우연이 겹쳤긴 하나 천살성은 천살성이다. 곤마께서 작심하고 몸 안의 힘을 모두 방출하면, 그 순간 목숨을 잃게 될 거다.”
곤마의 그 힘은 가히 짐작조차 하기 힘들 것이다.
적어도 극마고수의 힘을 분명 상회할 터.
“딱 한 번. 본신의 힘을 발휘한 뒤 죽어가는 운명인 게지.”
“…….”
설휘는 그제야 곤마에게 나타난 수치와 모양을 이해하게 되었다.
특히 ‘∞’ 이것.
이 모양은 무한정 강함을 나타내는 천살성의 힘을 가리키던 것.
‘괴물 그 자체라…….’
곤마.
벌써 죽었어야 할 그가 청년까지 남았다.
다른 제자들이 감히 그와 싸우려고 하지 않는 것도 이해가 갔다.
“이제 무슨 뜻인지 알겠느냐? 너의 실력으로는 곤마 님께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걸.”
“이해했습니다.”
설휘는 수긍했다.
그에 비하면 자신은 하찮은 힘이다.
심지어 초마의 영역에도 오르지 못한 자신이 아닌가.
“허면 그런 운명을 가진 곤마 님의 부대, 은영단의 목적은 무엇입니까?”
그래서 한 가지 확실히 해두고 싶었다.
불나방처럼 한 번 빛나고 사라질 인생이라면, 우린 무엇을 해야 하는지 분명히 알아놓아야 할 터.
“우리의 목표는 정보를 교란시켜 제자들이 스스로 자멸하게 만드는 데 있다. 그리고 남은 제자와 건곤일척의 싸움. 단 한 번의 싸움으로 끝내는 것이다.”
그의 말은 승패를 가릴 수 없는 상황으로 만들고 가겠다는 것이다.
이길 가능성이 없으니, 지지는 않겠다는 전략.
지극히 현실적이면서도 어찌 보면 운명이 정해져 있는 길을 걸어가야 한다는 말이다.
“실망할 것 없다. 삶이란 어떻게 될는지는 아무도 모르지. 그런 의미에서.”
적파는 설휘를 보며 손가락을 들었다.
“사령대장이 되려면 지금 수준으로는 턱도 없다. 나와의 훈련으로 너를 한 단계 더 높은 경지로 이끌어주마.”
“……뭐든지 하겠습니다!”
손에 불끈 힘이 들어갔다.
앞으로 다가올 미래 따위를 걱정할 때가 아니다.
지금은 어떻게든 강해지는 것.
그것이 필요할 뿐.
“자, 그럼 교육을 시작하마.”
설휘를 그의 입술을 바라보며 결연한 의지를 다졌다.
더 높은 경지.
대체 어떤 교육을 받을지 기대하며.
그런데.
“하루 만 번. 가로 베기. 세로 베기. 사선 베기.”
“……?”
“상단 찌르기. 중단 찌르기. 하단 찌르기.”
“……?”
뭐지?
무슨 말을 하는 거지?
그런데 그가 헛말을 한 게 아니었다.
[초절정 고수 되기, 1일 차]
<베기>
가로 베기 [0/10,000]
세로 베기 [0/10,000]
사선 베기 [0/10,000]
<찌르기>
상단 찌르기 [0/10,000]
중단 찌르기 [0/10,000]
하단 찌르기 [0/10,000]
어이없는 요구.
하지만 눈앞에 나타난 글귀는 거기에 순응하고 있었다.
“시작하라.”
이런 어이없는 수업과제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