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마육성 시물레이션-44화 (45/379)

44화. 폭풍성장

[1일차]

적파가 제시한 수련과제 달성은 아침부터 밤까지 이어졌다.

베기, 동작에 따라 삼만 번.

찌르기, 위치에 따라 삼만 번.

총 육만 번에 달하는 동작을 구현하기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까웠다.

단순히 횟수만 채운다면 어렵지 않았다.

하지만 동작이 완벽하지 않으면 수치가 올라가지 않았고.

힘을 제대로 싣지 않거나 시선, 자세의 위치가 조금이라도 틀리면 목표 개수에 반영이 되지 않았다.

- 고작 이 정도도 하지 못하느냐!

적파의 호통과 함께 하루가 끝이 났다.

[2일차]

오늘은 마음을 단단히 먹었다.

연무장에 들어설 때부터 횟수가 눈에 보이기 시작했고.

나는 쉬지 않고 검을 베고 찔러댔다.

그렇게 한 시진.

그렇게 또 한 시진.

반나절이 지날 때쯤 나도 모르게 욕설이 튀어나왔다.

“씨발, 이걸 어떻게 하루 만에 하라는 거야!”

결국, 하루 종일 겨우 반을 채우는 데 그쳤고, 방에 들어오자마자 곯아떨어졌다.

[3일차 - 6일차]

다른 선택들과 달리 이번 수련은 시간이 빠르게 흘러가지 않았다.

오히려 동작 하나하나를 펼칠 때, 평소보다 시간이 늘어지는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문득 밥 먹고 똥 싸는 시간을 빼면 좀 더 채울 수 있을까란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나마 지금은 7할 정도를 채웠다는 게 위안.

아직 갈 길이 멀다.

기분 탓인지 몰라도 온몸이 쑤시는 게 빨리 침상에 누워 쉬고 싶다.

[8일차]

이제 동작을 할 때마다 횟수가 하나씩 정직하게 오른다.

역시 동작도 중요하지만, 눈빛이 중요했다.

적을 죽이겠다는 투기.

모두 상대해주겠다는 강직함.

이런 것들이 횟수에 반영되는 것 같다.

[13일차]

씨발. 왜 굳이 하단을 찔러야 하는 거야?

[14일차]

요강을 하나 구해 와서 연무장 구석에 비치했다.

똥 싸는 시간이 너무 아까웠기 때문에.

밥 먹는 시간도 줄였다.

많이 먹으면 많이 싸야 하니까.

[16일차]

죽어! 어디든 찌르면 좀 죽으라고 씨발놈들아.

[17일차]

“와아아아아!”

나도 모르게 함성이 튀어나왔다.

해냈다.

드디어 6만 번이라는 횟수를, 아주 정확한 동작으로 채워 넣은 것이다.

[휘두르기가 생성되었습니다.]

<휘두르기>

옆으로 휘두르기(1/10,000)

앞으로 휘두르기(1/10,000)

뒤로 휘두르기(1/10,000)

씨발---것.

정말이지.

눈앞에 이놈에게 욕을 안 하려야 안 할 수가 없다.

수련과제가 6만 번에서 9만 번으로 늘어났다.

[18일차]

생각해보니 3만 번 정도 늘어났다고 못 할까 싶었다.

며칠 동안 자세 때문에 애를 먹긴 했지만, 동작을 익히고 나자 횟수 채우는 건 그리 어렵지 않았으니까.

[19일차]

전심전력을 다해 8만 번까지 채웠다.

1만 번.

불가능의 수치는 아니다.

분명 이걸 하다 보면 초절정고수가 되어 있겠지?

[21일차]

그냥 한다.

왜 하는지, 뭘 하고 있는지 생각하지 않는다.

죽지 않으면 언젠가 성공하겠지.

[25일차]

자정까지 아슬아슬하게 백 번을 남기고 채우지 못했다.

괜찮다.

하필 급똥 때문에 시간이 늦긴 했으나, 내일은 분명 완성하겠지.

[29일차]

“와아아아아아!”

해냈다.

드디어……

[2만 개로 늘어납니다.]

뭐지?

방금 뭐라 했냐?

[마지막 날]

자정 즈음에 나는 방 안에 들어왔다.

한 달 동안 애써 수고해준 보상시간을 기다리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곧 자정이 넘자 보상이 떴다.

<한 달의 수련 성과를 알려드립니다.>

없음.

“……하하.”

나는 땅에 머리를 처박았다.

콱! 콱! 콱!

그렇게 몇 번 박다가.

“으아아아아아!”

마지막 일격 때 바보같이 정신을 잃었다.

* * *

미친 듯한 수련과정이 한 달은 더 지났고, 그럼에도 설휘는 멈추지 않았다.

숫자를 채우려 노력하고 또 노력했고. 그렇게 두 달이 넘었을 때도 반절이 겨우 넘었다.

석 달째.

시간을 빨리 줄일 방법을 알게 됐다.

휘두르기를 연속 동작으로 하면 횟수를 채우는 게 가능하다는 점이다.

이를테면 베기를 할 때 휘두르면서 찌르는 연계동작.

또는 찌를 때 휘두르며 베는 연계동작으로 횟수를 더욱 빠르게 채워 넣을 수 있었다.

그렇게 넉 달 차에 접어들 무렵.

횟수를 모두 채우자 또 하나의 주제가 생겨나기 시작했다.

[일원소마공]

1초식 흑회선결(黑回線結) (0/10,000)

2초식 비연참영(飛燕斬影) (0/10,000)

3초식 신마탈혼(神魔奪魂) (0/10,000)

하지만 설휘는 초식을 따라 하지 않았다.

수련이 더 힘들어졌거나 쉬고 싶어서가 아니었다.

얼마 전부터 따라다니는 의문 때문이었다.

‘왜 똑같은 동작을 구현할 수 없는 거지?’

세욕을 할 때나.

칼질을 할 때나.

밥을 먹을 때나.

심지어 자기 전에도 떠오르는 그 생각 때문에 도통 뭔가에 집중할 수 없었다.

뒤이어 나온 일원소마공의 초식 채우기에도 관심이 없어진 건 그 때문이다.

저잣거리에 왈패들도 알 법한 기본 초식.

그러나 어디에 의미를 두느냐에 따라 생각의 관념이 완전히 달라진다.

몇 번의 찌르기를 하더라도 ‘완벽히 같은 동작’이 붙는다면 수련의 강도는 완전히 달라지기 때문이다.

그리고 현재.

‘완벽한’이란 가정이 설휘의 머릿속을 어지럽히고 있었다.

“횟수를 좀 더 늘려보면 어떨까.”

완벽이란 생각이 문제라면, 접근 방식을 바꾸면 되지 않을까.

수만 수십만으로 부족하다면, 수천만 번을 해보면 되지 않을까.

그렇게 하다 보면 똑같은 동작이 나오지 않을까.

맞는 답인지는 모른다.

적어도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보단 낫지 않을까.

휘릭 휙! 휘휘힉!

그렇게 하루. 하루.

설휘는 검을 휘두르고 베고 찌르기를 반복했다.

손에 물집이 잡히고 터지고 굳기를 수십여 번.

몸이 움직이는 한, 동작을 반복했다.

그렇게 다섯 달이 지나는 동안에도 수련은 반복되었다.

이제 설휘에겐 횟수는 의미가 없었다.

하루 종일 손 가는 대로, 오로지 같은 동작만 펼칠 뿐이었다.

* * *

이른 아침.

적파는 의자에 앉아 턱을 괸 채 보고서를 읽고 있었다.

그의 앞에는 백발 수염의 교육관원 하나가 기합이 잔뜩 든 자세로 서 있었다.

“……내용에도 보다시피 가히 발군이라 할 수 있습니다. 감히 추측건대, 적어도 몇 년 안에는 모두 초절정 고수가 되어 있을 겁니다.”

눈치를 살피던 백령(白齡)이 보충설명을 했다.

적파가 보고서를 다 읽어가는 걸 보고선 입을 연 것이다.

“모두 훌륭한 점수를 받았군.”

탁자 위 보고서에는 몇몇 인물들의 평가뿐만 아니라 신상내력이 기록되어 있었다.

나이는 물론이고 출신과 내력.

무공과 특기, 관심사 같은 그런 것들이다.

사락.

적파는 보고서 몇 장을 짚고는 한쪽으로 정리하며 말했다.

“요림(姚臨)과 적송(赤松), 용진(龍眞)이야 익히 알려진 자들이니 그렇다 해도, 소령이 이리 두각을 나타낸 건 뜻밖이군.”

“소령은 비상한 머리를 지닌 아이인지라 범인의 눈은 충분히 속일 수가 있었을 겁니다. 무관도를 통과한 것도 그런 것이구요.”

“확실히 곤마께서 혜안이 깊으시군요.”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적파는 백령이 동의하는 모습을 보며 자신도 고개를 끄덕였다.

보고서에 담긴 이들은 곤마가 직접 선발한 네 명의 천재들.

단순히 무공이 강한 것이 아닌, 각기 자신의 분야에서 특별한 재능을 가진 자들로 추린 자다.

이들의 소속인 사령대의 본래 조직 특성이 그러하다.

추적을 전담하는 대원들로 특출한 장기가 있으면 더욱 임무수행을 잘할 수 있었다.

“그나저나 앞으로 차기 사령대장이 될 놈은 요즘도 명상에 빠져 있더냐?”

“그렇습니다.”

“딱히 수련은 하지 않고?”

“……예.”

“흐음.”

적파는 굳은 얼굴로 턱을 쓸어내렸다.

기초적인 삼재검법을 수련했으면, 자연스럽게 다음 단계로 수련해야 한다.

그런데도 그는 딱 거기에 멈춰있다.

급기야 최근에는 온종일 명상에 잠겨 있다는 보고가 들려왔다.

“개인적인 사견이오만…….”

백령이 슬쩍 말을 떼자 적파는 시선을 들었다.

“아무래도 그자를 사령대장으로 앉히는 게 맞을지 영 맘에 걸립니다.”

“……이유는?”

“기본적인 베기, 찌르기, 휘두르기를 벌써 몇 달째 반복하지 않았습니까? 빨리 초식을 몸에 숙달한 후, 변수에 대비한 수련법으로 넘어가야 하지 않습니까. 관주님도 그걸 가르치려고 하신 게 아닙니까?”

“그래 보였나?”

“소인이 보지 못한 게 있습니까?”

“두 가지를 놓쳤네.”

“무슨…….”

백령이 눈을 껌뻑이고, 적파는 다시 한번 턱을 쓸어내렸다.

그리고 그와 다시 시선을 맞추며 입을 열었다.

“첫 번째는 횟수. 그 아이는 단순히 만 번의 동작만 반복한 게 아니야. 내 다른 이에게 전해 듣기로, 그보다는 훨씬 더 많은 횟수를 채웠네.”

“그거야 맘먹고 하다가 보면…….”

“둘째는.”

적파는 백령의 말을 힘 있게 끊었다.

그리고 잠시 뜸을 들인 후 말을 이었다.

“한 동작을 할 때마다 진기를 순환시켰네.”

“예?!”

그 말에 백령의 눈이 부릅떠졌다.

이제야 알게 된 것이다.

진기의 순환. 내기를 순환시켜서 검 끝에 힘이 제대로 전달되는 수법.

이는 검 끝에 힘을 실리게 하는 방식으로, 동작의 속도와는 별개의 문제다.

왜냐하면 한 번의 동작은 빠를지 모르나, 그다음 동작 때는 반드시 준비시간이 필요했으니까.

“그걸 그 시간에 전부 해냈단 말입니까?”

“모르지. 아직까지는.”

드르륵.

적파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과제를 내준 것보다 월등히 많은 수련을 자처하던 이가 스스로 멈췄다면 뭔가 생각을 가지고 있을 터.

직접 가서 확인해 보는 것이 가장 빠를 것이다.

“확인해 보러 가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도 물을 겸.”

문으로 걸어가던 그의 입술은 묘하게 실룩거리고 있었다.

* * *

적파가 도착했을 때, 연무장에 앉아 눈을 감고 있던 설휘를 발견했다.

그리고 지척까지 다가갔을 때.

“오셨습니까.”

설휘가 말했다.

그는 여전히 눈을 뜨지 않은 채였다.

“내 두 번째 내준 과제는 끝난 것이냐.”

“아직 하지 않았습니다.”

“왜지?”

“그냥…… 의미가 있을까 생각했습니다.”

“허…….”

어이없는 대답이다.

교육관원들이 이 광경을 보았다면 불같이 화를 내는 적파를 예상했을 터이지만, 웬일인지 그는 담담하게 대화를 이어갔다.

“그래서 무슨 생각을 하느냐.”

“완벽한 동작이란 게 존재할까라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예상치 못한 대답에 그의 눈빛에선 약간 이채가 일었다.

“그래서…… 답은 찾았느냐.”

“예.”

“호오. 들어볼까?”

설휘는 그제야 감았던 눈을 뜨며 말했다.

“답은 불가능하다-였습니다.”

“…….”

답을 찾았다는 것과는 전혀 맞지 않은 대답.

그럼에도 적파는 화내거나 실망한 기색 없이 질문을 던졌다.

“그럼 답을 찾았다고 말한 이유가 무엇이냐?”

“불가능한 걸 어찌하면 가능하게 할지를 고민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불가능한 걸 가능하게 한다고?”

“그렇습니다.”

설휘는 시선을 들었다.

그러자 그와 마주친 적파의 표정에 약간의 당혹감이 스쳐 지나갔다.

뭔가 심현한 눈빛으로 변한 그를 보고 있었다.

“애초에 완벽한 건 없지만, 조금 넓게 생각해보면 틀린 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결국, ‘완벽’이란 답에 의미를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틀린 답일 수도, 맞는 답이 될 수도 있다는 말이지요.”

“너 지금…….”

적파의 온몸에 털이 곤두섰다.

지금 이 아이가 아는지 모르겠지만, 그건 심어(心漁)의 경지다.

완벽에 가까워질수록, 역설적으로 완벽에 멀어지는 것.

새로운 세계를 개안하면 무인들이 겪게 되는 일종의 깨달음이었다.

그리고 그건 더 높은 경지로 나아가는 길이다.

적파가 삼 년 내에.

설휘를 그 경지로 인도하기 위한 계획을 세웠는데, 말을 들어보니 이미 이룬 것이 아닌가.

“뒤돌아 앉아 보거라!”

“……왜 그러십니까?”

“어서!”

적파의 외침에 설휘는 갸웃했다

하지만, 진지한 그의 표정을 보고는 급히 몸을 돌렸다.

“가부좌를 틀거라.”

설휘는 그의 지시를 따랐다.

“네 머릿속에 반복되는 동작을 쉬지 말고 떠올려 보거라.”

뒤이어진 그의 지시 역시 충실히 이해했다.

투욱.

그리고 등에 손을 올리던 적파를 보았고.

돌아보기도 전에 스스로 그 이유를 깨달았다.

‘아……!’

바스락거리며 잘려나가는 옷들.

심지어 명왕전포까지도 사라지고 있었다.

동시에.

<축하

합니다! 초절정 고수되기를 달성했습니다.>

한 줄기 빛과 함께 눈앞에 축전이 날아들었다.

<체력이 ↑50만 올랐습니다.>

<내공이 ↑100만 올랐습니다.>

<전투력이 ↑500만 올랐습니다.>

이제껏 보상과 차원이 다른 결과물이 눈앞을 가득 메운 것이다.

설휘 [은영단 (진)사령대장]

체력 67만/67만(↑50만)

내공 117만/117만(↑100만)

경지 초절정

전투력 584만(↑500만)

거기에 그치지 않았다.

눈앞의 놈이 신이 난 듯이 춤추고 있었고.

[초절정 고수가 된 기념으로 뒷자리를 반올림해드립니다.]

설휘 [은영단 (진)사령대장]

체력 70만/70만(↑3만)

내공 120만/120만(↑3만)

경지 초절정

전투력 590만(↑6만)

때론 놀리는 듯 기교를 부렸다.

[본래 전투력은 떨어져야 하나, 넉넉히 넣어드렸습니다.]

어쨌든 상관없었다.

몇 달 동안 개같이 굴러왔으니.

이 정도 보상은 당당히 받아내는 게 맞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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