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마육성 시물레이션-46화 (47/379)

46화. 청해 무사수행 (2)

“곧 대봉객잔에 도착합니다.”

말을 끌던 마부가 주먹만 한 작은 창문을 통해 도착지를 알려왔다.

설휘는 짧게 알겠다고 대답했다.

그리고 시선 아래에 있는 문구를 다시금 확인했다.

‘저건 방으로 돌아가는 건가……?’

마차로 이동한 지 얼마 있지 않아 새로운 창을 발견했다.

상단 아래.

이전에는 없던 [복귀]라는 글귀가 눈에 띄었다.

순식간에 이 지역으로 이동했던 것처럼, 복귀도 쉽게 가능한 듯했다.

여러모로 편리한 능력이다.

“그러니까 네 말은…….”

설휘는 한참을 떠들어대다 조용해진 석두를 바라보았다.

“아무리 모습을 숨겨도 그 색마 놈을 잡아낼 수 있다는 얘기냐?”

그 말에 석두는 고개를 끄덕였다.

“예. 어릴 때부터 그 녀석과 같이 함께 지내왔습니다. 설사 얼굴이 바뀌었다고 해도 습성이나 행동까지 바꾸지는 못했을 겁니다.”

“음.”

“그리고 말이 나왔으니 하는 얘기인데, 그놈은 정말 죽어야 하는 놈입니다. 매일 저보고 못생겨서 여자를 못 만난다니, 생긴 게 더러워서 보기만 해도 기분이 나빠진다니 하며 얼마나 구박했는지…….”

“아, 그건 아까 셀 수 없이 들었어.”

설휘는 고개를 저었다.

보아하니 색마 녀석이 저놈을 많이 괴롭히긴 했나 보다.

그래도 ‘여자 못 만나면 죄입니까?’라는 물음은 좀 신선했다.

‘적명, 그 새끼도 그랬지.’

재수 없다고, 거치적거린다고 얼마나 팼던가.

생각하니 또 화가 치밀어 올랐다.

지금은 한주먹도 안 될 테니, 임무만 끝나면 가서 쥐어 패버릴까?

이번 환생 때는 건강하게 살아있을 테니까.

다그락 다그닥. 끼이이익.

마차가 멈추며 도착했음을 알려왔다.

먼저 내린 설휘는 자연스레 주변을 먼저 살폈다.

“아…….”

그리고 그 자리에서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수많은 사람이 밀집해 있는 광경을 보고 있으려니 말로는 표현 못 할 묘한 쾌감이 느껴졌다.

물품을 판매하는 상인들과 흥정하는 사람.

구석에서 뛰노는 아이들과 그 주위에 다과를 파는 사람.

여러 갈래 길 사이로 다닥다닥 붙어 있는 건물들과 그 앞에서 채소를 파는 상인들까지.

‘근 30년 만인가.’

아마도 그럴 것이다.

본디 백정의 자식으로 태어나 주인집에 얹혀산 인생이었다.

아비와 어미는 10살 때 죽었고, 힘을 쓰기 시작했을 때쯤에는 허드렛일을 도맡아 했다.

개처럼 구르며 근근이 먹고살던 어느 날.

그들이 찾아왔다.

- 무공을 한번 배워보겠나?

그 말에 홀려 마교로 갔다.

백정 인생이 더 나락으로 떨어질 수 있다는 건, 그때는 미처 몰랐지.

“저기, 설휘 대장님…….”

뒤따라 나온 석두의 말에 설휘는 정신을 차렸다.

그래, 지금은 해야 할 일이 있다.

어차피 앞으로는 수없이 중원을 오고 가고 할 것 같으니.

“가자. 밥 먹으러.”

길 너머에 3층으로 지어진 커다란 객잔이 보였다.

설휘는 석두와 함께 안으로 들어섰다.

* * *

캉! 카카캉!

대봉객잔에는 팽팽한 긴장감이 팽배해 있었다.

평소 견원지간 사이던 두 검문(劍門)이 이곳에서 싸움이 붙은 것이다.

그리고 재밌게도 이들 싸움의 발단은 한 여인의 관심 때문이었다.

“주 소저. 이거 말려야 하는 거 아니에요?”

싸움이 점차 커지자, 연지(燕芝)가 불안한 표정으로 말했다.

평소에 친한 주소혜(朱素慧)와 함께 객잔 안에 들렀는데, 하필 문제의 두 검문의 소공자가 함께 자리해 있었다.

그리고 상황은 그냥 넘어가지 않았다.

평소 그녀를 흠모해왔던 패천문의 매옥상(梅玉霜) 공자가 다가왔고.

몇 마디를 나누던 주소혜가 거기에 불을 질렀다.

“패천문(覇天門)이 청해에서 제일가는 검문인가요?”

그 말에 패천문 소공자인 매옥상이 그렇다고 당당히 말하자.

“구중문(九重門)이 아래란 소문이 맞군요.”

거기서 사달이 났다.

주소혜에게 흘깃흘깃 눈길을 보내던 구중문의 소공자, 마상춘(馬常春)이 소리를 빽하고 질렀던 것.

그와 동시에 수십 명의 사내가 자리에서 일어섰고, 분위기가 단숨에 얼어붙었다.

“내 일찍이 두 문파는 오월동주(吴越同舟)하는 사이라 하지 않았나요?”

“오월동주는 여기서 쓰는 표현이 아니에요.”

“왜요? 둘이 어려움이 생겼으니 힘을 모아 헤쳐나가게 해야죠.”

“저게 어려움을 헤쳐나가는 거로 보여요?”

“내 눈엔.”

연지의 말을 주소혜가 가볍게 받으며 짧게 미소를 지어 보였다.

아름다움에도 꽃이 핀다고 했던가.

그녀는 두 소공자가 관심을 표할 만큼 실로 아름다웠다.

커다란 눈망울과 붉은 입술.

백옥 같은 피부에 가는 목.

화려한 비단옷을 감싼 그녀는 두 사내의 싸움을 보면서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주소혜.

청해에서 가장 부유하다는 만금산장(萬金山莊)의 손녀로, 이름만으로도 이 일대를 주름잡는 여인이었다.

거기다 미모도 출중해 그녀에게 추근대는 남자들로 끊임이 없었다.

개중에 저렇게 칼을 꺼내고 싸우는 사내들도 더러 있었다.

“언젠가 이날이 올 줄 알았다!”

몸집이 작지만 다부진 체격에 남색 의복을 입은 자는 매옥상.

꽤 오랜 역사를 가진 검문이지만, 청해에서만 명성을 떨칠 뿐 중원에는 알려지지 않은 곳이다.

구중문 무사들의 숫자는 대략 오백여 명으로 이루어져 있다.

“나 역시 바라던 바다! 오늘은 지난번처럼 도망가지 못할 것이다!”

키가 컸지만 몸이 빼빼 마른, 청의를 입은 사내가 고래고래 목소리를 높였다.

본래 패천문의 시작은 철방에서부터 비롯되었다.

관군에 무기를 대주며 돈을 번 증조부가 검문을 세웠고, 연을 맺은 작은 소문파를 규합하며 세력을 키웠다.

패천문 무사들은 숫자 역시 구중문과 비슷한 육백여 명이었다.

채채채채챙!

“패천문의 힘을 보여줘라!”

“구중문이 최고라니까!”

거의 백 명에 달하는 숫자가 검을 꺼내 들자 객잔 안은 긴장이 팽배해졌다.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간 사람을 제외하면, 담담히 상황을 지켜보는 사람.

괴성을 지르며 싸움을 부추기는 사람.

더욱이 밖에서 구경하려 창가로 몰려든 사람까지 다양했다.

“관심이 너무 몰린 것 아닐까요. 이러다 사달이라도 난다면…….”

“사달은 무슨. 저놈들은 겁쟁이야. 칼은커녕, 저러다 으르렁거리고는 또 다음을 기약할걸?”

연지의 불안한 표정에 주소혜는 별 감흥 없이 말했다.

그리고 가볍게 술 한잔 따라 먹으려는데, 유독 시선이 가는 쪽이 있었다.

“방금 너. 한 번에 고기 세 점 먹지 않았나?”

쩝쩝쩝.

남자 둘이었다.

그들은 객잔 내에서 유일하게 싸움에는 관심이 없고 음식에만 집중하는 이들이었다.

귀를 열고 조금 집중해서 들어보니 대화도 기가 막혔다.

“제가 그랬습니까? 허허. 이렇게 야들야들한 고기는 처음 먹어보는 거다 보니…….”

“뭐? 세 점을 야채에 싸서 처먹어 놓고, 제가 그랬습니까? 제가 그랬습니까아?”

“아……, 제가 큰 실수를.”

유치한 대화였지만, 오히려 그게 더 주소혜의 관심을 끌었다.

칼부림이 일어나는 곳 앞에서 저렇게 태연하게 대화를 나누는 게 재밌기도 했다.

그렇게 잠시 시간이 흘렀을 때였다.

“어?!”

패천문과 구중문 패거리에서 튀어나온 표창 하나가 그녀의 눈에 잡혔다.

기습 공격과 받아치는 과정에서 튕겨 나간 것이다.

그리고 날아간 곳은.

정확히 음식을 먹던 사내들 쪽이었다.

* * *

설휘와 석두는 객잔에 도착하자마자 주문부터 잔뜩 했다.

그리고 대화는 일절 하지 않았다.

탁자에 음식을 놓을 곳이 없어질 만큼 많아졌을 때에도, 갑작스러운 소란이 생겼을 때에도 둘은 말이 없었다.

그렇게 한동안 둘은 대화도 없이 먹었다.

그냥 미친 듯이.

허겁지겁 움직여가며 먹었다.

그렇게 줄어가던 음식 속에서.

“너.”

설휘가 먼저 운을 뗐다.

“방금 너. 한 번에 고기 세 점 먹지 않았나?”

“아닙니다.”

일순, 석두의 표정이 굳어졌다.

변명했지만 상대의 의심만 더욱 강해지자 그의 이마에 식은땀이 흘렀고.

“머, 먹었습니다.”

결국, 실토할 수밖에 없었다.

“앞으론 주의해라.”

천만다행이었다.

아직 고기를 먹기 시작한 지 초반이라 그가 용서해준 것이다.

그는 겨우 숨을 쉴 수 있었다.

그렇게 다시 음식을 먹었고, 거의 다 먹어갈 때쯤이었다.

“돈은 있나?”

설휘의 물음에 석두에게 두 번째 위기가 찾아왔다.

믿음에 추호의 의심도 없는 눈빛.

“아, 마차를 탈 때 비용을 다 지불해버린…….”

그는 겨우 말을 잇긴 했지만, 살기 어린 설휘의 눈을 보고 이내 확신에 차 말했다.

“제가 깔끔하게 해결하겠습니다.”

“그래야지.”

그때였다.

뜻밖에도 암기가 날아들었다.

저 앞에서 실랑이하던 두 놈 쪽에서 난데없이 표창이 하나 날아온 것이다.

그런데.

팟.

등 뒤에서 날아온 표창을 석두는 너무도 쉽게 손으로 낚아챘고.

설휘의 눈치를 보며 조심히 물었다.

“혹시…… 다 드셨습니까?”

이에 설휘는 큰 한숨과 함께 고개를 끄덕였다.

“아쉽지만 여기까지 먹지.”

“알겠습니다.”

설휘의 반응을 살피던 그는 젓가락을 놓는 걸 확인한 이후에야, 자신의 생각을 행동으로 옮겼다.

“으아아악!”

석두의 처음 행동은 소리를 지르는 것이었다.

그리고 거기에 그치지 않고, 한 손을 들어 난데없이 탁자를 내리치기 시작했다.

쾅! 쨍그랑!

남은 음식들을 담고 있던 접시들은 쏟아지며 깨졌다.

그리고 정확하게 깨진 접시와 부서진 탁자 밑으로, 석두가 굴렀다.

“아이고 나 죽네! 손을 망가뜨리다니! 으아아악!”

그의 행동에 객잔 안의 시선은 일제히 석두에게 쏠릴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한참을 뒹굴던 석두가 일어났다.

너무도 상처 없는 표창을 들고서.

“어떤 새끼냐.”

조용하던 객잔 안.

서로 눈짓을 주고받는 것 같더니 구중문 무사로 보이는 하나가 나섰다.

“어르신들 싸우는데 괜히 끼지 마라.”

칼을 위협적으로 들며 경고하듯 말했다. 하지만 그는 그 이후로 더는 얼굴을 볼 수 없었다.

뻐억!

석두가 전광석화처럼 달려가 주먹으로 갈기자, 엄청난 속도로 날아갔고.

쾅!

나무 벽을 박살 낸 후 실신해버렸기 때문이다.

“다시 말한다. 누가 던졌냐?”

저벅저벅 걸어 나오는 석두.

하지만 누구 하나 입을 열지 못했다.

상식을 넘어서는 움직임과 압도적인 힘.

그가 두 세력의 가운데에 멈춰 설 때까지 모두는 그저 지켜봐야만 했다.

“너냐?”

“아, 아, 아닙니다.”

석두의 질문에 구중문의 매옥상은 입을 덜덜 떨며 말했다.

그 역시 방금 수하 한 명을 골로 보내는 힘을 똑똑히 보았다.

생전 처음 경험하는 위압감 앞에 자존심 따위는 이미 없었다.

“그럼 너냐?”

석두가 이번엔 패천문 마상춘에게 돌렸다. 그 역시 구중문과 다르지 않았다.

“저, 저도 아닙니다.”

“그래? 이 잡것들.”

쾅! 두두두둑.

바닥을 내리찍자 객잔 안이 요동치듯 흔들렸다.

지켜보던 사람들이 저마다 신음을 흘렀고, 그중 몇 명은 도망가는 자들도 있었다.

콱!

그리고 어느새 석두는 마상춘과 매옥상의 머리채를 각각 한 손으로 잡아챘다.

어찌나 기가 드센지 주위를 호위하던 무사들은 그 자리에서 얼어붙어 버렸다.

“너희 둘. 내가 하는 얘기 잘 들어.”

석두는 손으로 잡은 두 머리채를 자신의 눈앞에 가져오며 말을 이었다.

“너희는 내 음식값을 내야 한다. 더욱이 내가 모시는 분의 청정을 깨트렸으니 그만한 보상도 받아내야겠지만, 그건 지금 묻지 않겠다. 알아들었냐?”

“예옙!”

“옙!”

생존에 대한 두 사내의 갈망이, 빠르고 확실히 대답으로 이어졌다.

석두는 흡족했는지 둘의 머리채를 놓았고.

“윽!”

“크윽!”

다시금 원래 있던 자리로 돌아갔다.

하지만 누구도 달려들지 않았다.

거대한 덩치에서 뿜어져 나오는 기세가 모두를 주눅 들게 했기 때문이다.

“해결했습니다.”

석두는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설휘는 담담히 주위를 불러본 후 고개를 끄덕였다.

“나가지.”

그렇게 자리를 일어설 때였다.

“반가워요.”

맞은편, 석두 자리에 웬 처음 보는 여인이 앉으며 말을 걸어왔다.

아름다움에 잠시 그녀를 바라보던 설휘는 이내 시선을 들었다.

[State, 상태 요약]

주소혜 [만금산장 장주의 손녀]

체력 80/80

내공 0/0

별 볼 일 없는 수치.

하지만 설휘가 그녀에 관심을 끌려고 했던 건 그런 이유가 아니었다.

※ 특이사항 : 임무 2개(무사수행)

정해진 임무가 아닌, 무사수행의 임무를 가진 여인을 만났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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