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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육성 시물레이션-48화 (49/379)

48화. 색마, 음무기(1)

설휘는 널찍한 공간 안에서 수련을 하고 있었다.

확실히 재력가 집안답게 침소 옆에 커다란 별채 하나가 딸려왔다.

크기도 넉넉해 개인 용도로 사용하기에는 안성맞춤이었다.

“풍신이란 기술을 익혀야 하는데…….”

한동안 ‘완벽한 동작’이란 사색에 빠져 있느라 잠시 소홀했던 기술.

그럼에도 결코 좌시할 수 없는, 자신에게 내린 기연 중 최고라 할 수 있는 능력을 익히고 싶었다.

◆ 사대극마공 풍. 특성 기술표 ◆

풍신(風神) : → N(중립) ↓↘, A <4.5배속>

기술표에 나온 중립이란 표현은 낯선 말이었다.

거기다 4.5배속이란 말은 무슨 뜻인지 알 방도가 없었다.

그나마 단서라 한다면, AI란 놈은 정말 순식간에 펼쳐 보일 만큼 빨랐다는 것.

“이렇게 해서…….”

설휘는 AI가 했던 그때 동작을 떠올리며 똑같이 움직여보았다.

하지만 어떠한 변화도 없었다.

예전과 달리, 이번엔 어느 정도 의미를 알아도 기술을 쓰기가 어려웠다.

“몸이 앞으로 움직이는 듯 기술이 나간 것 같은데…….”

설휘는 처음부터 다시 시도해 보기로 했다.

AI의 동작을 유추해보건대, 배속이란 건 평소보다 움직임을 더 빨리 가져가야 한다는 의미로 보인다.

표면적인 해석도 그러했다.

가운데 서있다, 라는 중립(中立)의 의미도 그랬고.

“하앗!”

똑같은 동작.

더 빠른 움직임.

그리고 미세하게 변화를 주는 속도의 변화.

설휘는 수십 번, 아니 수백 번 움직임을 달리해 보며 연습에 박차를 가했다.

그렇게 한 시진쯤 지났을까.

잠시 휴식을 취하고 있던 그의 귓가로 사람들의 대화가 들렸다.

추적술 교육 시간에 배웠던 백리지청술의 효과였다.

“그분이 정말 오셨대?”

“자네 뭐하나? 하던 일 멈추고 가야지.”

“어디에 계시다던가?”

힐끗, 창밖으로 내다보니 사람들이 어디론가 이동하고 있었다.

그리고 소란이 잦아질 때쯤, 설휘는 다시금 수련을 위해 검을 들었다.

그런데 때마침 석두가 나타났다.

“대장. 얘기 들었습니까?”

“……무슨 얘기?”

“예. 근처 사람들이 말하기로, 주 소저와 혼인할 사람이 이곳에 온다고 합니다. 무슨 정 공자라 했던가 그런데…….”

“혼인?”

“예. 그래서 그를 보러 다들 몰려가는 겁니다. 대장님도 한번 가보시겠습니까?”

“거길 내가 왜 가?”

안 그래도 풍신 기술을 쓰는 방법도 찾아내지 못한 판국에, 한가하니 쉴 생각은 없었다.

물론 그 말을 듣기 전까진 그랬다.

“그러실 줄 알았습니다. 화산파 출신이라고 하던데 싸움은 못 하겠죠……?”

“화산? 방금 화산 출신이라고 했나?”

“예. 저는 그렇게 들었습니다.”

으득.

설휘는 얼굴이 삽시간에 일그러졌다.

화산파. 본교의 태황각주와 손을 잡고 자신을 죽음으로 몰고 간 문파.

뼈를 갈아도 시원찮을 놈들이 속한 곳에 대해 들으니, 피가 거꾸로 솟는 느낌이었다.

“앞장서라.”

“예?”

설휘는 곧장 단영검을 회수했다.

어떻게 생긴 놈인지 흥미가 동한 것이다.

“얼굴이나 한번 보러 가자꾸나.”

* * *

또르륵.

내원 뒤쪽, 후원 중앙에는 관지정(款識亭)이라 불리는 정자가 있다.

본디 관지란 뜻은 도자기에 시대적 표식을 새기는 걸 말한다. 도기를 좋아하는 장주 주완길이 아끼는 제일 멋진 정자에 이름을 그리 붙인 것.

쪼로록.

내원의 시비 하나가 조심히 차를 따르며 분위기를 살피고 있었다.

그의 앞에는 주완길과 주소혜가 앉아 있었고, 맞은편에는 그 소문이 무성한 정무연(鄭務硏)이 자리에 있기 때문이었다.

화합을 도모하는 자리인 줄만 알았던 시비는, 주소혜의 불편한 목소리를 듣고, 그것만 있는 게 아니란 걸 직감했다.

“여기에 계신 줄 알았으면 좀 더 빨리 찾아뵀을 겁니다. 언질도 없이 이리 찾아올 줄은 소녀도 예상치 못해서 말입니다.”

자리에 앉자마자 주소혜는 짧게 속내를 드러냈다.

하지만 그녀의 면박에도 상대의 표정은 한없이 밝았다.

“죄송합니다, 소저. 너무 보고 싶은 마음에, 무례함을 알면서도 장주께 제가 청했습니다.”

정무연은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상대가 반응이 영 미진 하자, 주소혜가 재차 불편한 언급을 하려는 그때.

“그쯤 해두려무나. 정 공자는 내가 부탁한 일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우연히 합류한 것이니.”

장주 주완길이 끼어들었다.

“그러셨군요. 소녀가 그건 알지 못했습니다. 다음번엔 세심히 살피겠습니다. 우연히 합류했는지, 아니면 의도적으로 행동했는지까지도요.”

“소혜야.”

“괜찮습니다. 장주님. 오늘은 제가 분명 무례한 것이니, 마음 쓰지 마십시오.”

이 정도 반응은 예상했는지 정무연은 태연하게 말을 받았다.

그러고는 미소와 함께 화제를 돌렸다.

“청해에는 2곳의 명승지가 있으니 하나는 해심산(海心山)이요, 또 하나는 만금산장의 후원이라 하던데……. 과연 그 말이 틀림이 없다는 걸 오늘 알았습니다.”

“허허허. 면목이 없습니다. 제가 매사에 좀 과시하는 버릇이 있는데, 그런 식으로 소문이 났나 봅니다.”

“겸손하신 발언입니다. 장주님이야 입신양명하여 만금산장을 지으셨고, 매해 백성들에게 양식을 나눠주어 구휼을 실천하니 뭇사람의 귀감이 되는 분이지 않습니까.”

“허허허. 정 공자께서 노부의 얼굴에 아주 금칠을 하십니다.”

주소혜와 달리 주완길과 정무연은 서로 웃음을 주고받고 있었다.

그렇게 가볍게 차 한 잔을 마신 뒤, 정무연은 느긋하게 주변을 둘러보았다.

조금 떨어진 곳에 사람들이 빽빽이 몰려들어 있었다.

상당히 많은 숫자로 보건대, 아마 자신을 보기 위해 하던 일도 놔두고 온 듯했다.

그렇게 인파 속을 둘러보던 중, 한순간 그의 미간에 내 천(川)자가 그려졌다.

두 명의 사내 때문이었는데, 어찌 된 건지 그들을 본 직후 그의 이마에 미세하게 힘줄까지 돋아나 있었다.

“헌데, 정 문주의 건강은 좀 나아지셨답니까?”

“……예?”

“허어. 작년부터 속이 많이 안 좋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래서 잠시 검문을 비우고 요양을 하시고 있다고.”

정무연은 그제야 이해가 된 듯 ‘아!’하는 반응을 보이며 고개를 숙였다.

“아, 그러셨지요. 아직 쾌차하시려면 시간이 좀 걸릴 듯합니다.”

“예? 한 달 전에 곧 괜찮아지실 거라고 전갈을 주시지 않으셨소?”

“예…… 뭐든 잘되겠지요.”

“……?”

이해할 수 없는 대답에 주완길의 고개가 갸웃거려졌다.

주소혜도 의아한 듯 아비를 바라보았고.

“소저. 오늘은 연락도 없이 왔으니 다음을 기약하겠소.”

갑자기 쌀쌀맞게 말하며 일어서는 그에게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마지막 말 역시.

더욱 의문스러웠다.

“생각지도 못한 인물을 발견해서 말이오.”

* * *

“대장. 저 여인, 제게 관심 있어 보이지 않았습니까?”

정자를 바라보던 석두의 심기가 매우 불편해 보였다.

객잔에서 자신에게 관심을 보였다고 생각해서일까.

하지만 설휘는 그딴 거엔 관심이 없었다.

“석두야.”

“예. 대장.”

“저자가 정말 화산파 출신이 맞느냐?”

“예. 그렇다던데요?”

“누가?”

“……예?”

“누가 저자더러 화산파 출신이라고 말하더냐고.”

석두는 머리를 긁적이던 슬쩍 주변을 둘러보더니 대답했다.

“그게, 지나가다 들은 얘기인데…….”

“그랬군.”

설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다시 물었다.

“예전에 네가 음무기를 만나면 반드시 알아볼 수 있다고 하였지?”

“물론입니다. 제가 어찌 그놈을 잊을 수 있겠습니까.”

“그래?”

설휘는 다시 시선을 정자 쪽으로 돌렸다.

그리고 눈앞에 떠 있는 글귀를 보며 조용히 생각에 잠겼다.

[State, 상태 요약]

음무기 [백혼 장로의 첫째 제자]

체력 40/40만

내공 12만/12만

경지 절정

전투력 168만<+증식(增殖)>

정보가 거짓이 아니라면 정무연은 이미 유명을 달리했다고 봐야 했다.

그의 몸은 음무기가 차지하고 있었고, 버젓이 그의 행세를 하고 있었으니까.

눈에 띄는 것은 그의 전투력.

강하다는 말을 듣긴 했으나, 168만 정도의 실력자 일 줄은 예상치 못했다.

더구나 증식은 처음 보는 능력이다.

설휘 [은영단 (진)사령대장]

체력 70만/70만

내공 120만/120만

경지 초절정

전투력 590만

하지만 이미 초절정에 오른 자신과 비교할 수준은 아니었다.

전투력과 추가 능력에 흥미가 가긴 했으나, 딱 거기까지일 뿐.

자신에겐 한참 모자란다.

‘어떻게 할까…….’

그럼에도 설휘는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바로 주소혜 때문이다.

그녀에게 받아야 할 임무가 무려 2개나 있어 마음에 걸렸다.

혹여 싸우는 와중에 마공을 쓴다면 임무가 사라지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든 것이다.

어차피 신분이 확실한 이상, 그를 보내고 뒤따라가 제압하는 게 더 낫지 싶었다.

“……!”

그러던 그때.

쏘아지는 음무기의 시선을 느꼈다.

‘아닌가?’

다시 자세히 보니, 그의 시선은 미세하게 옆으로 틀어져 있었다.

자신은 아닌 석두에게 향해 있었다.

“대장. 혹시 저놈이라고 생각하시는 것 아닙니까?”

그의 시선을 본 것인지 석두가 말을 걸어왔다.

설휘는 대답하지 않았다.

지금은 그냥 가만히 있는 게 제일이다.

“허어 참. 제가 거듭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그놈은 척 보면 바로 안다고. 제 장담하는데, 저놈은 정말 아닙니다.”

설휘는 그의 말을 한 귀로 흘러버렸다.

그리고 좀 있으니 정무연이 자리에서 일어서는 게 보였다.

‘뭔가 눈치챈 것인가…….’

그리고 정무연과 만금산장의 두 사람이 이쪽으로 걸어오고 있는 것이 보였다.

그렇게 일 장의 거리를 남겨놓고선.

“이곳에 눈에 띄는 분들이 계시군요.”

가짜 정무연은 자신 둘을 보며 말을 붙여왔다.

때마침 장주로 보이는 노인 옆에 있던 주소혜가 말을 받았다.

“제 손님들이에요.”

“손님이라…….”

그 말에 사내는 표정을 와락 구겼다.

이내 그녀를 바라본 그는 싸늘한 목소리로 말했다.

“장난이 좀 과하시군요. 청해에서도 보기 힘든 실력자들을 데리고 오신 걸 보면…….”

“청해에서 보기 힘든 실력자라니. 정 공자의 눈엔 저들이 그리 대단하오?”

“대단하다기보다는…… 좀 다른 의미입니다.”

노인의 물음에 사내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 몸을 돌려 설휘와 석두 앞으로 다가와 말을 걸었다.

“안 그렇습니까? 형장들?”

설휘는 대답하지 않았다.

석두가 알아서 말 상대를 했으니까.

“하하하. 우리가 좀 특별한 사람이긴 합니다! 저희들의 무공을 보시고 만금산장에서도 이렇게 초대를 해주셨죠.”

“아, 그래요?”

사내는 눈매가 작게 가늘어졌다.

하지만 잠시였을 뿐. 다시 본래의 표정으로 돌아와 설휘를 바라봤다.

‘무공을 알아보려 한다.’

설휘는 상대의 눈동자에서 끈적끈적한 마기를 감지했다.

그래서 그 기운을 거부하지 않았다.

어차피 그의 수준으로는 자신의 무공을 알아챌 수 없다.

설휘는 이미 그를 만나기 전부터.

마성이 없는 내공심법을 운기 중에 있었으니까.

“무례하군요. 제 손님에게 무슨 행패죠?”

뭔가 분위기가 미묘해지자 보다 못한 주소혜가 끼어들었다.

그때야 정무연은 시선을 거두고는 그녀에게 예를 표했다.

“오해 마십시오, 소저. 그냥 인사도 할 겸, 어떤 분인지 한번 뵙고 싶었을 뿐입니다.”

그는 밝게 웃어 보였지만, 그 웃음을 진짜로 믿는 자는 없었다.

가짜 정무연은 자신이 잘못했다는 것을 깨달았는지 급히 머리를 숙였다.

그리고 뒤돌아서려 했는데, 그의 발길을 이번엔 설휘가 붙잡았다.

“우리가 못 찾을 줄 알았나?”

처억.

발을 멈추고 서 있던 그의 등 뒤에서.

다시 한번 경고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마성을 숨기고 다른 놈 행세를 한다고 해서 감춰지리라 생각했나?”

“……!”

설휘는 짐작했다.

그의 얼굴에 당혹감이 서려 있다는 걸.

천천히 돌아서는 그의 얼굴을 봐도 그랬다.

“더 꾹꾹 숨겼어야지. 모두를 속일 만큼. 뭐 그래봤자…….”

설휘는 검 자루에 손을 가져갔다.

그리고 마지막 경고와 함께 검을 꺼내자, 시간은 거짓말처럼 멈췄다.

“내겐 들킬 수밖에 없겠지만.”

[절호의 기회! 음무기의 빈틈을 발견했습니다. 어떻게 대응하시겠습니까?]

싸움을 걸자마자 턴제가 발동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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