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마육성 시물레이션-51화 (52/379)

51화. 설휘를 고쳐주던 의원(1)

음무기는 서탁을 앞에 두고 빛에 의지해 붓을 끄적대고 있었다.

그런데 여느 평범한 글쓰기는 아니었다.

사내는 몸이 불편한지 조심스레 한 자씩 한 자씩 써 내려가며 심호흡을 했고.

간혹 글자가 삐딱해질 때마다, 그의 눈에서 굉장한 경련이 일며 옆에 서 있던 장한의 눈치를 봤다.

“계속.”

그의 지시에 다시 그는 붓을 세웠다.

그리고 한지 위에서 조심스레 붓을 놀렸다.

그렇게 꽤 시간이 흘렀을 때였다.

“여시미 하거 이슴니다…….”

음무기의 몸은 오른팔과 입만 남기고 모두 점혈된 상태였다.

설휘의 시선에, 그는 발음이 줄줄 새면서까지 열심히 대답했다.

“그래, 열심히 해야지. 석두. 저놈 턱은 좀 끼워 넣어주거라.”

“옙!”

석두는 우렁차게 대답하며 음무기의 턱을 잡았다.

한순간, 음무기의 눈빛이 살벌하게 변하자 석두가 이를 드러내며 말했다.

“너 그러다 남은 한쪽도 터진다?”

“아니, 아니니다…….”

“그래도 한 대 맞자.”

짝!

석두가 잽싸게 싸대기를 갈기자, 그는 목이 홱 꺾였다.

흡족해진 석두는 음무기의 턱을 두 손으로 잡고 안으로 밀어 넣었다.

음무기는 짧게 신음한 뒤 고개를 떨어뜨렸다.

그의 침울한 모습에 설휘가 말했다.

“불쌍한 척하지 마라. 사람들의 정기를 빨아먹고 다니는 녀석이 말이야.”

“그러려고 한 게 아닙니다. 제가 배운 게 그것뿐이라…….”

“쓰읍.”

설휘가 다리를 들어 올리자, 그는 황급히 목을 쑥 집어넣었다.

그리고 누가 뭐라 하지도 않았는데 열심히 붓을 놀렸다.

잠시 뒤, 붓글씨를 내려다보던 설휘가 다시 물었다.

“언제쯤 되겠나?”

자신이 내린 지시는 바로 역용술서의 재편.

음무기가 비급을 들고 있지 않으니, 서책으로 만든 걸 익힐 생각이었다.

그래서 이런 노력을 해가며 받아내려고 한 것이다.

“금방 끝날 것 같습니다.”

“그래?”

설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다 또 뭔가 생각이 난 듯 재차 물었다.

“그런데 정 공자란 놈으로는 왜 변신했나?”

“그게…….”

“잔대가리 굴리지 말고. 똑바로 말 안 하면 또 맞는다.”

“새…… 새 삶을 살고 싶었습니다!”

“……뭐?”

설휘가 어처구니없다는 듯 바라봤다.

“저도 더는 이 짓거리를 못 해 먹겠다 싶어서. 그냥 아무도 모르게, 적당한 놈으로 골라 그의 삶을 살고 싶었습니다.”

“지랄하네. 흡정공을 익힌 놈이 군중들 속에서 제대로 살 수 있을 것 같아?”

“그러니까요. 그러니까…… 더 해보고 싶었습니다.”

이번엔 나름 진지했는지, 눈가에 눈물이 맺혀 있었다.

설휘는 그런 표정이 왠지 모르게 불편해져 화제를 돌렸다.

“역용술서는 왜 가지고 튀었나?”

“예? 그게 무슨 말입니까?”

“역용술서. 네놈이 백혼장로에게 받은 그거.”

“그건 잠영투체술(潛影投體術)인데요?”

“잠영 같은 소리 하지 말고…… 너. 방금 뭐라고 했냐? 잠영투체술?”

설휘의 눈이 커졌다.

음무기의 입에서 생각지도 못한 무공이 튀어나오자 당황한 것이다.

‘아! 그것 때문이었나.’

설휘는 이제야 기억이 났다.

음무기에게 공격을 받을 때, 체구 작은 아이로 변신했던 것.

역용술이 그것도 되나 싶었지만, 실은 잠영투체술을 쓴 것이다.

본디 잠영투체술은 몸만 작아지는 게 아니다.

주먹만 한 공간일지라도 몸이 빠져나갈 수 있게 구현된 체술법.

<보상으로 ‘교주의 찢어진 비밀교서 지도(1/4)’와 ‘비밀교서 열쇠’를 드립니다.>

그리고 그건 이것과 연관되어 있었다.

들고 있어봤자, 적들이 많아서 들어가지도 못한다고 생각했던 교주의 비동.

이 무공을 익힌다면 그저 불가능하지는 않을 테니.

* * *

음무기를 데리고 밖으로 나오자, 만금산장의 사람들이 마중 나와 있었다.

특히 가장 앞에 주완길과 주소혜가 있는 걸 보니, 색마를 취조한 후 곧장 이곳을 뜰 거로 생각한 듯 보였다.

“무슨 감사 인사를 드려야 할지…….”

주완길은 이전과 달리 정중한 예의를 차리고 있었다.

색마를 잡은 것도 잡은 거지만, 정 공자로 알려진 그와 자신의 딸이 혼인할 뻔한 상황이 일단락되자 큰 안도감이 들었으리라.

“고마워할 필요 없소. 내 일을 한 것뿐이니.”

설휘는 별 감흥 없는 표정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석두 어깨에 업혀 자지러진 상태로 있는 음무기를 힐끗 바라보았다.

[역용술을 익혔습니다.]

[잠영투체술을 익혔습니다.]

설휘는 그가 내민 무공서를 익히지마자, 잠시 당황했다.

무공을 살펴보니, 그가 익힌 역용술은 단순히 얼굴만 바꾸는 술법이 아니었다.

남녀를 구분할 수 있는 목젖 모양이나 목소리를 바꿀 수 있었고, 심지어 머리카락까지 원하는 대로 기를 수 있었다.

불가능한 게 있다면 오직 몸의 골격과 사물을 보는 눈.

그것 말고는 모든 게 구현 가능했다.

그리고 음무기는 불가능한 두 개 중 잠영투체술 안에 있던 역근공(易筋功)이란 기법으로 하나를 극복했다.

근골의 변화를 이루어내는 것뿐만 아니라, 장시간 그 형태를 유지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오직 바꿀 수 없는 건 눈동자뿐.

음무기가 정 공자, 정무연으로 다른 사람들 눈을 속였던 것이 이해되는 순간이었다.

“무사님. 또 한 번 들르실 수 있나요?”

잠시 음무기에 시선을 두던 중에 주소혜가 말을 걸어왔다.

설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겠소. 어차피, 와야 할 이유도 있고.”

“예? 이유…….”

“……뭐, 그런 게 있소.”

설휘는 그녀의 머리 위에 떠 있는 임무를 다시 한번 확인했다.

※ 특이사항 : 임무 2개(무사수행)

무사수행을 선택했을 때 와서 받아가야 할 것이 두 개나 있다.

당연히 이런 건 챙길 수 있을 때 챙겨둬야 한다.

“그럼.”

“식사라도…….”

주완길이 다급히 물어왔지만, 설휘는 고개를 저었다.

여유를 부릴 시간이 없다.

아직 남겨진 굵직한 임무가 4개나 더 있다.

즐기는 시간은 나중에 무사 수행 때 원 없이 하면 되니.

“가자.”

설휘는 가볍게 묵례를 하며 석두를 불렀다.

그리고 상단 아래를 바라봤다.

마치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복귀]라고 단순히 떠 있던 글귀에서 불빛이 깜빡이고 있었다.

그렇게 그걸 선택하자.

[거처로 돌아갑니까? 승낙/거부]

설휘는 너무도 편한 능력에 흡족해하며 승낙을 눌렀다.

* * *

정신을 차려보니 거처였고, 도착하자마자 정보창이 눈앞에 나타났다.

그런데 이전처럼 활자와 수치만 보인 게 아니었다.

- 누가 음무기를 잡아 왔단 말이냐?

- 설휘라. 곤마 휘하의 그리 뛰어난 무인이 있다니.

- 내 언젠가 그 아이에게 큰 변고가 생겼을 때, 절대 좌시하지 않을 것이다.

[설휘님에 대한 사마백혼의 호감도가 최상이 되었습니다.]

한 번도 보지 못했던 사마백혼 장로의 감격에 젖은 얼굴을 또렷이 볼 수 있었다.

동시에 이어지는 수치들.

[체력이 1만 상승했습니다.]

[내공이 1만 상승했습니다.]

[전투력이 1만 상승했습니다.]

체력 71만(↑1만)/71만

내공 121만(↑1만)/121만

전투력 591만(↑1만)

별로 한 것도 없는데 체력, 내공, 전투력이 상승하는 기쁨을 누렸고.

[임무 중 11일이 지났습니다. 남은 17일 동안은 자유롭게 행동하실 수 있습니다.]

스스로 행동할 수 있는 자유시간까지 받아냈다.

‘계산해보면 이동하는 데 5일쯤 걸린 건가?’

설휘는 11일이란 날짜를 보고 생각했다.

이동하는 데 5일.

음무기 잡는 데 1일.

도착하는 데 5일.

11일이란 숫자는 이렇게 계산하면 딱 맞아떨어졌다.

‘사천 같은 더 먼 지역은 이동 기간이 더 길어질 텐데, 며칠 사이에 임무를 해결하지 못하면 어떻게 되는 거지?’

청해까지 오 일이라면 사천은 10일 정도 될 듯하다.

그러면 거기서 임무를 해결하기 위해 쓸 수 있는 기간은 고작 10일 남짓.

그 안에 임무를 해결하지 못할 수도 있지 않을까?

‘직접 부딪쳐보면 알겠지.’

뭐, 고민해 봤자 지금으로선 알 방법이 없다.

남은 17일을 잘 활용하는 것밖에.

“자, 이제 수련이다!”

설휘는 몸이 근질근질했다.

역용술과 잠영투체술을 익힌 상황. 이것들을 어떻게 쓸지 펼쳐보고 싶었다.

더욱이 중요한 풍신도 있지만, 또 하나.

소신수마공과 초열권마공.

이것도 사용해보고 싶었다.

위력이 얼마나 강할지, 생각만 해도 손이 불끈 쥐어지는 상황이었다.

* * *

17일이란 시간은 정말 순식간에 지나갔다.

설휘는 그 시간을 일각 일각 쪼개 정말 알차게 보냈다.

<역용술>

변신하는 시간은 약 세 호흡 정도.

다시 본연의 얼굴로 돌아올 땐 다섯 호흡 정도가 필요했다.

그리고 농담이 아니라, 정말로 완벽히 다른 얼굴로 변신할 수 있음을 확인했다.

며칠 동안 사용해본 결과 몇 가지 제약도 알게 되었는데, 그중 가장 큰 문제가 본신의 힘을 전부 발휘할 수 없다는 것.

내공소모보다 심력소모가 필수적인 술법이라 그런지 무공을 펼칠 때 집중도가 떨어짐을 느꼈다.

과거 음무기가 자신과 싸울 때 본연의 얼굴로 돌아온 것은 아마 이 이유 때문이리라.

<잠영투체술>

몸이 줄어들고 늘어나는 경험은 역용술보다 더욱 짜릿한 기분을 느끼게 했다.

체구는 구 척까지 늘릴 수 있고, 이 척만큼 작아지게 만들 수도 있었다.

그로 인해, 움직임이 좀 느려지긴 하는 제약이 있다.

<소신수마공>

소희마공과 소수마공의 조합으로 나온 무공.

이 무공을 쓸 때 설휘는 세 번이나 놀랐다.

하나는 검기와 흡사하다는 빙검을 원하는 대로 생성해 낼 수 있다는 것.

하지만 내공소모가 극심해 많이 쓰지는 못할 듯했다.

또한, 위력에 놀랐다.

절정고수 서너 명은 단번에 제압할 정도의 파괴 범위. 거기에 속도까지 더해지자 입이 다물어지지 않을 정도의 힘이 담겼다.

단순한 검기보다는 월등히 강한 힘이었다.

셋째로는 호신강기로 빙원결갑(氷原結鉀)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그것도 평소에 운용할 수 있을 정도로 내공 소모가 많지 않았다.

설휘는 흥분했다.

아직 흉내내기에 불과한 무공이니, 고급단계까지 간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하고.

앞으로 더욱 성장해야겠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초열권마공>

권법은 잘 쓰지 않지만, 이걸 써보고는 느꼈다.

검이 없으면 무조건 이 무공을 사용하겠다고.

단순히 화공을 뿌리는 정도가 아니라, 불길이 마치 살아있는 듯이 주변을 잠식하며 파고들었다.

이것 역시 흉내내기보다 더 높은 경지로 성장시켜야겠다고 다짐했다.

<사대극마공 풍>

설휘는 풍신의 힘을 쓰는 수련에 거의 열흘을 보냈다.

정말이지 필사의 노력을 했고, 거의 제한된 시간의 마지막 날 풍신을 펼칠 수 있었다.

“드디어 배속의 의미를 알아냈다!”

풍신으로 외담을 부숴버린 설휘는 그제야 풍신의 기술을 얻었다.

하지만 동시에 위험도 인지했다.

미세한 동작의 차이만으로도 풍신이 발휘되지 않았다.

급박한 상황에서 풍신을 쓰려 하다 실패했을 때는 어김없이 빈틈이 생겼다.

성공했을 때도 마찬가지.

적의 위치를 정확히 잡지 못하면, 기술을 쓴 후에 곧장 반격을 당하리라.

“후아아.”

설휘는 마지막 운기조식을 끝마치며 문 앞으로 걸어갔다.

17일을 모두 보냈으니 다음 일정.

임무를 받을 순간인 것이다.

<천력 96년 3월 일정을 정해주세요. (7/36)>

▶ 임무 받기

▷ 무사 수행

▷ 주변을 돌아다닌다.

눈앞에 문구가 뜨자, 설휘는 임무 받기를 골랐다.

잠시 청해에 다녀올까 생각이 들었지만, 지금은 쉬는 것보다 성장에 대한 욕구가 더욱 강했다.

<누구에게 임무를 받으시겠습니까?>

▶ 곤마(천마 넷째제자)

▷ 흑구(은영단주)

▷ 적파(은영단 교육관주)

▷ 설휘를 고쳐주던 의원

‘매 끼니 식사를 대접하는 하인’이란 목록은 사라진 상태였다.

잠시 고민하던 설휘는 이것을 골랐다.

<설휘를 고쳐주던 의원에게 임무를 받으시겠습니까?>

승낙과 거부를 묻는 지문이 떴고, 당연히 승낙을 고르자.

<총단 백몽전(白夢殿) 영내, 羅山(나산)으로 이동합니다.>

일순, 서 있던 거처의 건물이 무너지더니, 지면이 오르고, 주변에 나무가 솟아올랐다.

‘아…….’

설휘는 이름 모를 산 중턱에 서 있었다.

어둠 주위로 솟아 있는 보름달.

주위에 빼곡하게 들어선 나무들과 풀잎들.

중턱 아래에 내려다보이는 광대한 습지까지.

그리고. 그곳에서.

예상치 못한 상황이 접해버렸다.

<‘홍 의원’에게 임무를 받으세요.>

<경고! ‘홍의원’이 백혈대(白血隊) 107명에게 추적당하고 있습니다. 그들보다 더욱 빨리 접촉하세요!>

임무를 받으란 말과 함께, 나오는 경고창들.

주변을 둘러보던 설휘는, 자신이 어떻게 해야 하는지 곧장 깨달을 수 있었다.

“……!”

저 멀리, 좁쌀처럼 보이는 뭔가가 산기슭을 해치고 달려가고 있었고.

[!]

그의 머리 위에 저 표식이 달려 있었다.

더욱이, 조금 떨어진 곳에서 수십 명이 쫓아오는 모습까지 눈에 들어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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