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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육성 시물레이션-52화 (53/379)

52화. 설휘를 고쳐주던 의원(2)

백혈대를 이끄는 대장 허광(許廣)은 잔뜩 독이 올라 있었다.

사건의 발단은 이랬다.

이른 아침, 야산에서 수련 중에 우연히 자색 빛을 띠는 자생초(自生草)를 발견했다.

뭔가 범상치 않다고 느낀 그는, 그것을 홍 의원에게 감정을 맡겼다.

그랬더니 이 사달이 났다.

확인해볼 게 있다고 하고선, 갑자기 도망가버린 것이다.

‘내가 순진했었다.’

혼자 독식하려는 생각이 문제의 발단이었다.

상관에게 보고했을 경우, 좋은 영약일수록 자신의 손에 들어올 리 만무했다.

그렇다고 무턱대고 먹을 수도 없는 것이, 이것이 가진 성분 때문이었다.

혹여나 독이 있거나, 양기나 음기가 지나치게 강하다면 바로 복용하는 건 위험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홍 의원 손에 쥐여주는 무식한 짓을 저질렀다.

‘영약일 것이다. 그것도 매우 귀한.’

값어치를 따지는 것이 의미가 없을 정도의 보물.

그렇지 않다면 홍 의원이 저리 다급히 도망칠 이유가 없을 터.

‘빼앗지 못해도 무조건 죽여야 해.’

본교 내에 있는 물적 자산은 모두 청단의 소유.

상부에 보고하기로 되어 있는 규율을 자신이 어겼기 때문에, 반드시 살인멸구하여 증거를 없애야 한다.

기회는 오직 백몽전 영 내에서만 가능했다.

다른 전각을 가거나, 원 내의 하부지단으로 가다가 무사들 눈에 띈다면 문제가 커질 것이다.

또한, 의원이란 특수직 때문에 정당한 이유와 증거 없이 죽인다면 문책을 피할 수 없기 때문이다.

“절대 저놈을 이 산에서 빠져나가지 못하게 해야 한다. 알겠냐!”

“옙! 대장!”

그의 외침에 수하들의 일제히 대답했다.

하지만 그중에 대답하지 않은 자도 있었다.

대열 중 가장 후미에 쫓아오던 수하였다.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

가장 후미에서 따라오던 설휘의 머릿속은 복잡해졌다.

임시방편으로 수하 한 명을 제거한 뒤, 역용술을 펼쳐 대열에 합류하기는 했다.

그런데 막상 뭔가 하려니 이들의 전투 능력이 심상치가 않아 보인다.

[State Summary, 상태 간단 요약]

허광 [백몽전 백혈대 대장]

체력 120/120만

내공 181만/181만

경지 초절정

전투력 488만<+투기(鬪氣)>

상부지단의 대장급 인사치고 확실히 평범한 놈이 없었다.

하긴, 이해는 갔다.

상부지단의 주축이 되는 7개 전각.

그중 하나가 백몽전이다.

일개 부대를 이끄는 녀석이라 해도 과거 적명 같은 놈과 비교가 안 되는 건 당연했다.

‘한 놈이라면 어떻게 해보겠는데…….’

문제는 허광이란 대장이 아니라, 그가 데리고 있는 수하들이었다.

죄다 전투력이 수십만에 해당하고, 심지어는 앞서 있는 놈 중에는 100만이 넘어가는 수치도 더러 있었다.

과거에는 감히 대적하리란 생각조차 못 할 자들이다.

‘응?’

한참을 달려가던 중에 갑자기 대열이 멈췄다.

예상치 못하게, 세 가지 갈림길이 나온 것이다.

“대장, 어떻게 합니까?”

허광 옆에 있는 녀석이 묻는 소리가 들린다.

왼쪽은 습지, 가운데는 언덕, 오른쪽은 동굴이었다.

“일조와 이조, 삼조는 왼쪽, 오조와 육조는 동굴. 나머지 1개 조는 나와 함께 산을 오른다.”

“옙!”

“옙!”

허광의 손짓 한 번에 수하들은 물살처럼 갈라졌다.

척 봐도 엄청난 훈련을 거친 무인들의 기세가 느껴졌다.

‘내가 육조구나.’

마지막 대열에 있던 설휘는 우측으로 이동하는 대원들을 보고 생각했다.

동시에 우연히 대열에 합류한 판단이, 옳았음을 확인했다.

[!]

임무를 받을 대상.

멀리 떨어져 있던 저 표식은 어느새 가까워지고 있었다.

다행스럽게도 자신이 움직이는 동굴 방향 쪽을 향해 있었다.

“잠시 대기하라.”

누군가의 명령에 육조 일행은 동굴 초입에서 멈춰 섰다.

어둠 때문이다.

피이이이-

대략 14명의 수하는 이런 상황에 익숙한지 차분하게 대열을 유지했다.

몇몇은 품속에 화섭자를 꺼낸 뒤, 들고 온 횃불에 불을 피워냈다.

주위가 밝아지자, 조장으로 보이는 녀석이 말했다.

“양쪽으로 2열씩 나눈다. 그리고 또 갈림길이 나오면 2명씩 들어간다.”

그는 한 발짝 뒤로 물러선 뒤 말을 이었다.

“나는 여기 대기하고 있겠다. 어차피 이 안에 있다면 도망칠 곳은 없다. 샅샅이 수색하는 것에 집중해라.”

역시나 능숙한 대응이었다.

그리고 자신은 자연스럽게 우측으로 섰다.

‘이쪽이 아냐…….’

이번엔 위치에서 갈렸다.

좌측에서 투명한 표식이 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일단 대열을 이룬 그들의 행동에 따르기로 했다.

* * *

“허억. 허억.”

홍취서(紅翠誓)는 바닥에 주저앉아 있었다.

재수 없게도 영약을 들고 튀다가, 놈들에게 걸려버렸다.

분명 은밀히 빠져나가려고 했는데, 주변이 있던 허광 수하의 눈을 피하지 못한 것이다.

“이게 어디 보통 영약이어야 말이지.”

그는 자신을 죽음으로 인도할지도 모르는 약초를 품에서 꺼냈다.

어둠 속에서도 자색 빛이 은은하게 비춰주고 있었고, 반 촌 길이의 둥근 타원형의 잎이 층층이 겹쳐 꽃 모양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자용초(紫龍草).

강호에서도 쉽게 볼 수 없는 이것은 내공을 폭발적으로 늘려주는 희대의 영약이다.

쓰임은 다르지만, 효능만 봤을 때 소림의 대환단과도 비교할 수 있을 정도였다.

“죄송합니다. 곤마 님…….”

홍취서는 곤마를 떠올리며 고개를 떨궜다.

어차피 자용초 같은 영약은 자신이 담을 수 있는 그릇이 아니다.

그만한 가치가 있는. 그리고 충성하는 주군에게 바치고 싶었다.

하지만 재수 없게도 영외 문턱을 넘지 못하고 포위당해버렸다.

- 너는 저쪽. 이쪽은 내가 가겠다.

소곤거리는 소리가 이미 그들이 지척까지 왔다는 걸 알려준다.

이젠 선택의 시간이다.

여기서 자결할 건지, 그것도 아니면 최후의 발악이라도 할 건지.

그것도 아님.

“갈 때 가더라도 이건 없애야…….”

“거기까지.”

홍취서가 자용초를 입에 가져가려고 할 때였다.

어느새 나타난 사내 하나가, 동혈 입구에서 말을 걸어왔다.

분명 여기와 조금 떨어진 곳에서 인기척이 났었는데…….

“지금부터 조금만 움직여도 죽는다. 그냥 죽는 게 아니야. 아주 고통스럽게 죽일 거야.”

홍취서의 눈이 흔들렸다.

발각되어 버렸다.

이젠 스스로 자결을 하는 것밖에 방법은 없다.

하지만, 그러다 실패하면?

아마도 죽을 때까지 고통을 느끼다 가겠지.

스슥.

‘어……?’

그런데 어떠한 선택도 결정하진 못한 홍취서 앞으로 미세한 인기척이 들렸다.

앞이 잘 보이지 않아, 어떤 상황인 건지 그는 알 수 없었다.

그러던 그때.

“여기서 보는군.”

어둠 속에서 사내가 말을 걸어왔다.

홍취서는 다른 자라고 확신했다.

앞선, 사내와 목소리가 달랐으니까.

* * *

설휘는 동굴에서 누구보다 빠르게 움직였다.

교육관주에게 배운 무흔귀신보가 큰 힘이 되었다.

적당한 기회를 보던 그는, 무리에서 빠져나오자마자 홍 의원이 있는 곳으로 전력질주 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렇게 눈앞에 홍취서와 마주할 수 있었다.

“걱정마. 난 아군이니까.”

믿지 않는 걸까.

어둠을 밝히는 야백안 능력으로 보니, 홍 의원의 얼굴은 여전히 경직되어 있었다.

자신을 못 믿는 게 어쩌면 당연했다.

화르륵.

설휘는 진기를 태워 손끝에서 작은 불길을 일으켰다.

그러자, 홍취서는 곧장 자신의 얼굴을 알아봤다.

“다, 당신? 당신이 어떻게 여길…….”

“왜긴 왜야. 도움을 받았으니 도와주는 게 당연하지.”

‘왜 안 나타나는 거지?’

설휘는 고개를 갸웃했다.

이때쯤 보여야 할 임무창이 활성화되지 않는다.

잠시 고민하던 설휘는, 벽에 기대고 멍하니 앉아 있는 그를 향해 다시금 되물었다.

“그런데 뭘 도와주면 되지?”

“예?”

“뭘 도와주면 되냐고.”

홍 의원이 의아한 듯, 고개를 갸웃거리다, 이내 다시 입을 벙긋거렸다.

그러자 임무가 떴다.

[‘홍 의원’에게 임무를 받았습니다.]

○ 임무 : 총단 의원, 홍취서가 백혈대에게 쫓기고 있습니다. 그에게 믿음직한 신뢰감을 심어주세요.

성공 시 : 백몽전주, 만겁수라(萬劫修羅)의 관심.

보상물품 : 자용초[영약-최상급]. 교주의 찢겨진 비밀교서 지도 일부(1/4).

‘백몽전주? 최상급 영약…….’

보상물품을 보던 설휘의 시선이 묘하게 흔들렸다.

백몽전주 만겁수라.

총단에 영향력을 행사할 정도로 큰 입지를 가지고 있는 인물.

그런데 그의 부대인 백혈대를 처리하면 오히려 역정을 내야 하는 게 맞지 않나?

“잠시 여기서 기다려.”

설휘는 슬쩍 뒤를 바라보았다.

천천히 다가오는 인기척이 느껴진 것이다.

좁은 동혈에서 나오자마자, 역용술로 얼굴을 바꿨다. 때마침 자신을 향해 백혈대원 놈 하나가 걸어왔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의 등장과 함께 임무 공지란 글자도 보이기 시작했다.

[임무 공지란이 활성화되었습니다.]

[Mission Notice, 임무공지]

▼ (펼치기)

▽ (펼치기)

○ 절대적인 무력을 보여주지 않으면, 홍 의원은 자용초를 건네주지 않을 겁니다.

○ 시간이 조금이라도 지체될 경우, 더욱 강한 상대가 나타날 것입니다.

설휘는 재차 경고창을 바라봤다.

○ 홍 의원이 죽으면 이번 임무는 실패로 돌아갑니다.

○ 적들에게 자신의 존재를 들키지 않아야 임무를 완료할 수 있습니다.

“안에 없나?”

횃불을 들고 지척까지 다가온 녀석이 물어온다.

설휘는 슬쩍 고개를 옆으로 움직이며 말했다.

“난 더 안쪽으로 들어가려고. 여긴 네가 가볼래?”

“뭐, 그러지.”

별 의심 없이, 사내는 좁은 동혈으로 몸을 쑥 집어넣었다.

그리고 거기까지가 그들의 마지막이었다.

“아…… 컥!”

“큭!”

한 놈의 가슴에 검을 쑤셔 박고, 그놈의 검으로 다른 한 놈의 복부에도 찔러 넣었다.

치치칙.

설휘는 횃불을 발로 끈 뒤, 뒤를 돌아보며 말했다.

“나가자.”

발각되는 건 시간문제다.

임무의 참조란에 적힌 것처럼 최대한 빨리 이 동굴 밖을 빠져나가는 게 급선무였다.

* * *

[경고! 백혈대원 6조_8이 설휘 님의 빈틈을 발견했습니다. 어떻게 대응하시겠습니까?]

‘이게 뭐야.’

순탄하게 입구 쪽으로 나오는가 싶었다.

분명 앞쪽 시야에는 보이지 않았는데, 빈틈창이 뜬 것이다.

‘뒤에서 접근한 거야.’

▶ 맞대응한다.

▷ 방어한다.

▷ 도망간다.

설휘는 목록을 보고 잠시 고민했다.

방어나, 도망 같은 수동적인 자세는 오히려 더 큰 화를 불러일으킬 수 있었기에.

최대한 빨리 제거하는 방법으로 맞대응하는 것이 옳았다.

예상대로 선택하자마자 번쩍임과 함께, 등 뒤쪽에서 빠른 일격이 날아왔다.

그런데 예측한 방향과는 달랐다.

자신 쪽이 아니라, 홍 의원 쪽으로 날아든 것이다. 하지만 늦은 반응에도, 설휘의 검이 그를 압도했다.

캉!

적의 칼을 단영검으로 한 번 쳐낸 뒤, 두 번의 맞댄 공격으로 틈을 만들었고.

패애애액!

검기를 쏘아 적의 복부에 꽂아 넣었다.

“아…….”

뒤따라 오던 홍 의원은 간헐적인 신음을 흘렸다.

자세히 보진 못했더라도 조금 전, 상당히 위험한 상황에 놓였었다는 건 짐작했다.

그리고 앞서가던 사내가 그 모든 걸 제거했음도.

“이제 입구에 한 놈만 더 처리하면 된다.”

설휘는 다시 앞으로 걸어갔다.

오던 길을 생각해봤을 때 그의 짐작으로, 아마 입구 쪽에 조장으로 보이는 자.

그놈만 제거하면 이곳을 빠져나갈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럴 수 있다고 믿었다.

“조력자가 있었군.”

하지만, 입구에 도착하자마자 설휘는 알 수 있었다.

화르르륵!

이미 육조 전원은 모두 이곳에서 대기하고 있었고.

화르르륵!

뒤쪽에도 남은 세 명이 자신을 향해 걸어오고 있었다.

‘빌어먹을.’

재수 없게도.

모두에게 포위되어 버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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