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7화. Part 1. 사령대 조장들(2)
“다들 들었어? 사령대장으로 선출된 자가 이곳에 온다는 거?”
의자에 앉아 경상(經床) 위에 두 다리를 뻗은 사내가 피식 웃었다.
그는 허리춤에 메야 할 검을 바닥에 꽂아놓은 채, 한 자루 붓을 손가락으로 돌리고 있었다
[State Summary, 상태 간단 요약]
요림(姚臨) [사령대 1조 조장]
신체 정상
경지 절정
체력 134만/134만
내공 127만/127만
전투력 285만(+감각)
<관련정보>
설명 : 사령대원으로 선발된 지 가장 오래된 대원입니다.
『 조금 깡마른 체격에 키가 유독 커 보이는 사내다. 특히나 그 녀석의 전투력이 나의 눈길을 잡아끌었다.
‘285만…… 감각?’
확실히 사령대 조장급이 되니, 전투력이 상당하다.
거기다 감각이라는 알 수 없는 능력까지.
나는 다시금 대화에 귀 기울였다. 』
“이번엔 인원 충원이 빠른가 보군.”
벽 뒤에 등을 지고 팔짱을 끼고 있는 사내.
작은 눈과 각진 얼굴에 단단한 아래턱 때문인지 보기에도 힘이 느껴진다.
[State Summary, 상태 간단 요약]
적송(赤松) [사령대 2조 조장]
신체 정상
경지 절정
체력 233만/234만
내공 127만/127만
전투력 310만(+투기)
<관련정보>
설명 : 은영단 6년 차. 사령조장들 중 가장 나이가 많습니다.
『 ‘이 녀석도 투기인가.’
이전 임무 중에 만난 백혈대 대장 허각. 그 녀석의 전투력에도 투기란 것이 붙어 있었다.
왠지 그의 능력이 궁금해진다. 』
“아무래도 이번 인사는 내정된 인물이 아닐까 해. 사령대장이 공석인데다, 곤마 님과 연이 닿았다는 소문이 있으니까.”
창틀에 앉아 밖을 바라보는 여인이 대답했다.
“넌 어떻게 그런 걸 알고 있냐?”
요림이 곧장 묻자, 그녀가 별거 아니란 투로 대답했다.
“같은 부류는 서로를 잘 알아보는 법이지.”
『 창가의 빛이 그녀를 얼굴을 화사하게 비추자, 나는 마치 머릿속이 하얘지는 것 같았다.
그녀였다. 처음 본 순간 숨이 멎을 것 같던 감정을 안겨준 그녀. 그 여인이 이곳에 있었다.
그리고 또한 놀라웠던 건……. 』
[State Summary, 상태 간단 요약]
소령 [사령대 4조 조장]
신체 정상
경지 절정
Coin 사랑+3
체력 36만/36만
내공 122만/122만
전투력 112만(+예지력)
<관련정보>
설명 : 핵심 1지부. 홍마원 본부에서 곤마가 특별히 선발한 자입니다. 설휘 님이 이 여인과 사랑을 하게 되면 목숨 3개를 얻을 수 있습니다.
『 사, 사랑이라고? 나는 심장이 다시 한번 멎는 것 같았다.
사랑을 하는 게 목숨을 얻는 것이라고? 그럼 어떻게? 어떤 식으로 해야 하는 거지?
아니. 애초에 그게 가능한 건가. 』
“낙하산이든 아니든 그런 건 필요 없어. 쓸모 있는 놈이면 따르고, 별것 아닌 놈이면 죽여버리면 되니까.”
때마침 문을 열고 들어오는 긴 머리의 사내.
양 갈래로 늘어뜨린 머리카락 사이로 그의 표독스러운 눈빛이 보였다.
[State Summary, 상태 간단 요약]
용진(龍眞) [사령대 3조 조장]
신체 정상
체력 134만/134만
내공 127만/127만
전투력 277만(+감각)
<관련정보>
설명 : 사령대 조장들 중 가장 성격이 급하고 다혈질인 사내입니다. 성격이 불같지만, 음모를 꾸미지 않는 우직함도 같이 지니고 있습니다. 오로지 힘으로만 그를 굴복시킬 수가 있습니다.
『 나는 느낄 수 있었다. 조장들을 통제하기 위해선 이놈을 우선적으로 잡아야 한다는 걸. 』
<‘프롤로그’가 끝났습니다.>
그리고 또다시 뜨는 문자.
시작합니다.
멈췄던 시간이 이제야 움직이기 시작했다.
* * *
눈앞의 풍경은 사라지고, 설휘는 어느새 그들이 모여 있는 문 앞에 서 있었다.
그리고 자신이 왜 여기로 왔는지 역시 대강 예상할 수 있었다.
‘프롤로그’에서 보인 그들의 대화.
사령대장에게 적의를 보이는 네 명의 조장들.
마치 이들을 어떻게 통솔할 것인가를 시험하는 것처럼 느껴졌으니까.
그 순간, 다시금 눈앞에 글자가 떠올랐다.
<가면을 착용하시겠습니까?>
자신의 얼굴을 가릴지.
아님, 드러낼지부터 요구하고 있다.
아마 이 선택은 갈림길이 될 것이다.
‘소령 때문일까.’
왠지 그런 느낌이 들었다.
그녀를 처음 만난 건 무관도이지만, 죽고 살아나기를 반복하다 보니 정작 그녀와 다시 마주친 건 천일관에서였다.
그리고 그때, 자신은 사무관 밑에서 종사하는 일개 서기였으니까.
<승낙하셨습니다. 가면을 착용합니다.>
설휘의 얼굴에 자연스레 가면이 덧씌워졌다.
그것에는 나름대로 이유가 있었다.
지금 얼굴을 드러내면, 그녀는 분명 자신을 의심하게 될 것이고, 당시에 서기로 있던 자신의 신분에 대해 추궁을 할 것이다.
그리된다면 자신에게 보였던 호감 역시 완전히 사라질 테니.
‘들어가자.’
눈 깜짝할 사이 얼굴에 가면이 씌워지자 설휘는 손을 뻗었다.
방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선 것이다.
‘뭐지?’
설휘는 이상한 기운에 몇 걸음 걷지 못했다.
고요하다.
아니, 이건…….
이들이 움직이지 않는다.
모두가 멈춰 있는 상황에 자신만 움직일 수 있는 건 그로서는 처음 겪는 일이었다.
‘무슨 의미인 거지?’
설휘는 모두가 미동하지 않고, 오로지 자신만 움직여지는 걸 깨닫자 잠시 고민했다.
그리고 멈춰 있는 인물들 모두 유심히 관찰했다.
탁자에 두 다리를 걸쳐놓은 요림.
한쪽 벽에 기대고 있는 적송.
창가에 한쪽 다리를 들고 앉아 있는 소령.
뒤쪽 문을 열고 몇 걸음 앞에 서 있는 용진.
모두 멈춰 선 채 어떠한 미동도 하지 않고 있었다.
<각각 조장들과 대화를 시도해 주세요.>
‘어?’
뒤늦게 설명이 이어진다.
평상시였다면 그냥 대화해도 됐을 상황인데, 이렇게 나오는 걸 보면 뭔가 있는 듯하다.
그냥 대화하라는 건가?
모두 멈춰 있는데 어떻게?
설휘는 우선 이내 가장 가까이에 있는 요림 앞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이거구나.’
<‘요림’의 속마음을 들어보시겠습니까?>
설휘는 지문에 곧바로 승낙했다.
어찌 됐든, 시간의 흐름이 다시 이어지기 위해선 귀를 기울여야 할 때다.
「 사령대에 들어온 뒤, 제대로 된 무공을 익히지 못했어. 맡은 임무라는 게 고작 영외 수색이니 원. 그런 잡무만 하니 다른 부대 녀석들이 깔보기나 하고. 무공을 가르쳐줘야 할 사령대장들은 뭐 하나 제대로 하는 게 없다. 난 야백안이나 산향수 같은 걸 빨리 배우고 싶다고!」
야백안이란 말에 설휘의 표정이 묘하게 굳어졌다.
어두운 곳에서도 환하게 볼 수 있는 지안술.
추적술 심화 과정 때 익혔던 그 무공이다.
‘그럼 일부러…….’
왜 교육관주가 그런 무공들을 가르쳐 준 것인지, 이제야 그 이유가 조금 짐작이 된다.
아마도 가르침을 여기서 보여주고 신뢰를 쌓으라는 것일 터.
‘다른 이들은?’
속마음이 더는 들려오지 않자, 이번엔 벽에 기대고 있는 적송에게 걸어갔다.
그리고 그의 앞에 닿자마자, 그의 속마음이 흘러나왔다.
「 이따위 임무는 지긋지긋하다. 좀 더 가슴 뛰는 임무가 필요해. 누구라도 좋다. 영내 말고 밖에 있는 강자들을 제거하고, 좀 더 특별한 임무가 주어졌으면 한다. 그것만 된다면 이까짓 목숨쯤은 언제라도……. 」
강한 열망이 느껴진다.
누굴 죽이기 위해서가 아닌, 제대로 된 임무가 주어지면 목숨을 거는 집념까지.
설휘는 과묵해 보이는 그의 모습과도 꽤나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이번엔 불만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는 녀석에게로 이동했다.
뒷문을 열고 들어오면서 제일 부정적인 의견을 피력했던 인물.
바로 용진이었다.
「 개새끼들. 우린 맨날 다른 부대의 뒷구멍만 맡아야 한다니. 이번에 들어온 사령대장이란 녀석도 뒷배 있는 놈이 들어오겠지. 내 이번에도 병신 같은 놈이면 가만두지 않겠다. 제기랄. 차라리 다른 제자 밑으로 들어갔으면 이런 수모는 안 겪었을 것 아냐? 」
사령대장에 대한 분노가 여실히 느껴진다.
지금껏 그의 기준으로 병신 같은 녀석들만 들어왔다는 정보도 함께 들었다.
설휘는 고개를 돌렸다.
이제 마지막 남은 한 명의 조장.
절세미모에다 자신의 숨을 멎게 만든, 한 여인.
저벅저벅.
조금씩 그녀에게 다가갈 때마다 설휘의 마음은 점차 두근거려졌다.
과연 그녀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이들과 마찬가지로 사령대장에 대한 불신이 쌓여 있을까.
<‘소령’의 속마음을 들어보시겠습니까?>
눈앞에 보이는 그녀는 정말로 아름다웠다.
이토록 예쁜 여인이 본교에 있었다는 것이 믿기 힘들 정도로.
설휘는 마음을 다잡고 승낙했다.
「 이런 조직에 있는 게 나에게 무슨 이득이 있을까? 어차피 결과는 바뀌지 않을 텐데……. 」
의아했다.
갑자기 전혀 알 수 없는 의미의 속마음.
그런데 그녀의 생각은 거기만 있는 게 아니었다.
「 찾아야 해. 방법을 찾지 못하면, 이 년 안에 우리는 태황각주에게 모두 죽게 될 거야. 」
‘태황각주라고?’
설휘의 눈이 커졌다.
갑자기 그녀의 입에서 태황각주가 왜 나오는 것일까.
그 찢어 죽일 자식이 우리에게 위해라도 가한다는 걸까?
하지만 이어진 그녀의 생각에 설휘는 귀를 의심했다.
「 그 사람도 이 지옥에서 벗어나고 싶은 내 마음과 같겠지? 」
‘누굴 말하는 거지?’
두근.
설휘는 몸을 흠칫 떨었다.
세 번의 속마음.
그리고 그 마지막은 알 수 없는 ‘그 사람’이란 말에 왠지 모르게 가슴이 뛴 것이다.
그렇게 좀 더 기다려보았으나, 그녀의 속마음이 더는 들려오지 않았다.
오히려 다른 문구가 눈 앞을 가렸다.
<완료! 모든 이의 속마음을 들었습니다.>
제자리로 돌아가 주세요.
눈을 돌려보니, 이들 앞에 있는 교탁.
그곳 바닥에서 강한 빛이 솟아올랐다.
설휘는 그게 어떤 의미인지 곧장 깨달았다.
아마도 시간의 진행일 것이다.
아니라 다를까.
빛이 솟아오르는 듯 그곳에 도착하니, 이런 문구가 눈앞에 떠올랐다.
계속 진행합니다.
* * *
눈앞의 문구와 함께 다시 시간은 흘러가기 시작했다.
날 바라보는 조장들.
그들의 속마음처럼 불편하고 불쾌한 시선이 자신을 향해 쏘아진다.
누구 하나 먼저 입을 열지 않을 것 같은 무거운 분위기 속.
설휘가 먼저 입을 열었다.
“내가 누군지는 익히 들어 잘 알 것이다.”
설휘는 이들의 감정에 굳이 동조할 생각이 없었다.
잘 보이는 것. 그게 무의미하다는 건 수없이 겪어봐서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불합격 통보를 받고 소속도 없는 놈들끼리 만든 곳이 비객조였다.
본교에서 가장 밑바닥에 있던 놈들과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며 십 년을 함께 해왔다.
“그렇지만, 난 너희에 대해 모른다. 솔직히 말하면 누군지 관심이 없지.”
더럽고 추접스러운 일.
치졸한 행위와 저열한 대우.
불공평하고 불평등한 일은 너무 많아 셀 수가 없을 지경이다.
“뭘 시킬 생각도, 변화시킬 마음도 없다.”
그렇기에 난 이들을 어떻게 교육해야 하는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이니, 정확히 말하면 이들이 어떻게 하면 날 따라오는지에 대해 잘 인지하고 있다.
“따라오고 싶은 녀석은 따라오고. 하기 싫은 놈들은 그만둬라.”
“네놈이 뭔데 그따위…….”
“말 아직 안 끝났다.”
말이 끝나기도 전에 불쑥 끼어든 용진.
자신이 부임한 걸 가장 못마땅했던 그의 속마음답게 거칠게 항변해왔다.
“그리고 내 말에 불만 있는 놈들은…….”
설휘는 고개를 들었다.
주위를 한 번 돌아본 후, 천천히 용진을 바라보았다.
“주저하지 말고 덤벼.”
건방진 녀석들은 초장에 박살 내야 한다.
그것만큼 기선제압에 확실한 것은 없었다.
“이왕이면 전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