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마육성 시물레이션-58화 (59/379)

58화. Part 1. 사령대 조장들(3)

턴제.

적이라 간주하는 자가 ‘나’의 빈틈을 발견하거나, 혹은 ‘내’가 적의 빈틈을 발견했을 때 뜨는 창(窓).

기회를 잡거나, 위기일 때에 적절히 도움을 받았던 전투방식 중 하나다.

그 때문에 기회나 위급한 순간이 아니면 턴제창은 나타나지 않는다.

파파팟-.

그래서 설휘는 기다리기로 했다.

뒷문에 서 있던 용진이 득달같이 달려드는 걸 보면서도.

‘턴제’라는 조건에 만족할 만한 상황을 만들기 위해 공세적인 동작을 취하지 않았다.

“건방진--!”

그런데 점점 자신의 계획대로 움직이지 않는 기분이다.

용진과 거리가 좁혀지는 와중에도 빈틈창은 뜨지 않았다.

3장(9m)에서 2장.

2장에서 1장 이내로 줄어들어도 여전히 빈틈창은 나타나지 않는다.

‘이젠 손을 써야 해.’

설휘는 마냥 기다릴 수 없었다.

그렇게 허리춤에 손을 가져가려고 움직이던 그때쯤.

띵!

기다리던 빈틈창이 나타났다.

[절호의 기회! ‘설휘 님’이 용진의 빈틈을 발견했습니다. 어떻게 대응하시겠습니까?]

그런데 상태창이 알려준 정보는 예상 밖이었다.

빈틈을 보이려고 했고, 의도한 대로 상태창이 떴다.

그럼에도 자신에게 기회가 왔다.

▶ 공격한다.

▷ 무공을 쓴다.

▷ 도구함을 사용한다.

▷ 상대의 지척까지 다가간다.

고민할 필요 없이 설휘는 시선은 맨 아래로 향했다.

지금 상황에서 이 대응이 가장 적절했기 때문이다.

<‘상대의 지척까지 다가간다.’를 선택하셨습니다. [동][서][남][북] 중 어느 위치로 이동할까요?>

그가 다가오는 방향은 서쪽.

하여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그의 등 뒤. 동쪽을 선택했다.

<‘동쪽 방향’을 선택하셨습니다. 바로 진행됩니다.>

급작스럽게 일어난 순간적인 이동.

설휘는 그 촌극의 시간에서 ‘자신의 위치’와 ‘용진의 위치’를 정확히 인지했다.

하여 팔을 뻗어 상대의 중심을 흩트려놓았고,

콰당!

아주 가벼운 손짓 하나만으로 용진은 바닥으로 고꾸라졌다.

조금 전, 설휘가 있던 그곳에.

“……!”

“……!”

“……!”

자신의 행위가 그들의 눈엔 놀라움으로 다가온 것일까.

엎어진 용진을 보고 있던 조장 셋의 표정에는 당황스러운 감정이 역력했다.

“쯧쯧. 대충 짐작이 가는군.”

설휘는 양손으로 가볍게 옷깃을 툭툭 털어댔다.

동작은 느렸고, 느긋했다.

“평소 사적대와 사황대가 왜 우릴 무시했는지. 생각해 봐. 이런 덜떨어진 너희들이 조장입네 하고 한자리 차지하고 있으니…….”

설휘는 가면을 매만지며 조장들을 하나씩 일별하며 말을 이었다.

“얼마나 같잖게 보였겠나.”

말이 끝나는 순간, 분위기의 흐름은 급변했다.

팟. 팟. 팟. 팟.

탁자에 다리를 올린 요림과, 벽에 기대 팔짱을 끼고 있던 적송.

창가에 있던 소령도 자신을 향해 몸을 날렸다.

심지어, 바닥에 처박혔던 용진마저도 재차 달려든 것이다.

전투방식 <턴제>

그들은 몰랐겠지만 분명 이건.

설휘가 원했던 그림이었다.

전투방식 <시뮬레이션>

이들의 전투력은 수백만.

동시에 넷을 모두 상대하는 건 설휘에게도 위험부담이 크다.

그렇다고 개인 하나하나를 상대하다가는 이들에게 큰 인상을 심어주지 못한다.

그래서 하나가 아닌 넷.

먼저 이들 모두를 도발한 뒤, 자신이 가진 최고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전투방식으로 싸우려고 한 것이다.

그것이 바로 시뮬레이션이었다.

<설휘 님의 모든 능력치를 분석합니다.>

시간이 멈춰지고 일순, 눈앞을 덮는 수많은 그림자가 왼쪽, 오른쪽, 아래를 훑고 지나갔다.

점점 줄어들던 숫자는 곧 몇 명으로 좁혀졌고.

종국에는 홀로 남겨진 그림자 하나만 남아 있었다.

<찾았습니다. 영상을 보여드립니다. (1회)>

그리고 혼자 남은 그림자의 움직임이 다시 시작되었다.

그런데 뭔가 화려한 동작이 펼쳐질 거로 생각한 설휘는 짧게 당황했다.

남은 녀석이 고작 한다는 게.

<15도로 기울여 사선 베기>

<좌로 반보 횡이동, 검 위치는 중평(中坪)>

간단한 두 번의 동작.

거기다 처음 보는 해괴한 언어가 들어가 있었다.

‘15도?’

설휘는 눈앞에서 그려지는 그림자를 주시했다.

그리고 그것이 어떠한 의미인지 곧 유추할 수 있었다.

자신과 일치한 자세로 서 있던 그림자가 베는 방향이 조금 비틀어진 사선 베기였으니까.

‘이게 왜 최고의 방법인 건가.’

설휘는 시뮬레이션이 보여주는 움직임을 보고도 쉽게 이해하지 못했다.

가장 가까운 위치에서 검을 꺼내는 요림.

검기(劍氣)를 발산한 요량인 듯 발검 형태의 자세를 잡는 적송.

이미 암기를 날린 소령.

등 뒤로 빠르게 접근한 용진을 상대로 모두 상대할 수 있다는 말인가.

간단한 사선 베기와 그 후, 좌로 반보 이동하며 검을 가슴 부위까지 반듯하게 내미는 이 두 개의 동작 만으로 말이다.

‘이유가 있겠지.’

그럼에도 설휘는 이 시뮬레이션을 믿기로 했다.

은영단주를 상대로 검증된, 자신이 낼 수 있는 최고의 능력이란 건 틀림없으니.

철컥. 쇄애애액!

설휘가 그림자를 따라 사선으로 베자마자, 멈춰 있던 시간은 다시금 흘러갔다.

이후, 설휘는 그 자세에서 자연스럽게 좌로 반보 이동했다.

시뮬레이션이 보인 2개의 동작을 펼친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놀랍게도 모든 걸 변화시켰다.

“…….”

카캉!

‘15도로 사선 베기’의 첫 동작은 자신에게 쇄도하는 암기 두 개를 쳐내기 위함이었다.

소령이 날린 비표 두 개.

그저 사선 베기 한 번으로 무력화시킨 것이다.

그뿐만 아니었다.

푹! 푸푹!

비표는 정확히 두 방향으로 날아갔는데 하나는 적송, 또 하나는 요림이었다.

갑작스러운 자신의 암기 반격으로 인해 요림은 피하려다 바닥에 쓰러졌고, 적송은 비표에 맞은 듯 가슴을 부여잡은 채 간헐적으로 몸을 떨고 있었다.

‘좌로 이동 후 검을 가슴 높이로 내미는’ 두 번째 동작.

이것 이것도 의미가 있었다.

스윽.

사선베기를 한 첫 번째 동작에서 곧장 옆으로 돌자, 뒤에서 기습을 노리던 용진의 동작이 멈췄다.

어느새 자신을 내려다보며 검을 내미는 걸 보고, 자신의 의도를 간파했다고 여긴 것이다.

한순간에 일어난 좌중의 침묵.

설휘는 이 순간을 놓치지 않았다.

“왜? 뒷구멍으로 들어온 것치곤 제법 쓸만해 보이는가?”

그들의 속마음의 불만을 놓치지 않고 언급하려고 했다.

“아님, 그저 운이 좋아서 이런 일이 발생했다고 생각하는가?”

굳어 있던 용진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자존심이 상한 것일 터.

“그것도 아니면 애초부터 길을 잘못 선택했다고 자책하고 있는가?”

철컥.

설휘는 검을 다시 회수했다.

그리고 한 발짝 걸어, 좌중의 시선을 하나하나 눈에 담고는 담담히 말을 이어갔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난 너희들이 어떤 생각을 가지든 관심 없다. 맘에 안 드는 놈은 내 교육을 받지 않아도 상관없다.”

“…….”

“솔직히 말하면…… 빌어먹을 이따위 쓸데없는 짓거리 빨리 끝내고, 내 살길 찾아가고 싶다고.”

설휘는 뒤돌아섰다.

그리고 몸이 굳어 있는 용진을 한 번 슥 보고는 뒤돌아 말했다.

“그래도 보는 눈 때문에 가르치는 흉내는 내야 할 테니…… 내일 이 자리에 나올 놈만 나와라.”

솔직한 마음이었다.

이들을 어떻게 상대해야 하는지, 이들을 어떻게 이끌어야 하는지는 관심이 없었다.

미친 듯이 강해져도 모자란 시간에 그저 발목 잡힌 기분만 팽배할 뿐이었다.

그렇게 설휘는 문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어차피 오늘 수업은 할 생각이 없어, 밖을 나가려고 한 것이다.

그런데 이게 왠가.

<사령대 조장들의 호감도가 상승하였습니다.>

전혀 생각지도 못한 수치들이.

그리고 그 의미도 알 수 없는 내용들이 눈앞에서 뜨는 게 아닌가.

<사령대 조장들의 호감도>

1조장 요림 10/100(↑10) 호기심

2조장 적송 10/100(↑10) 호기심

3조장 용진 10/100(↑10) 호기심

4조장 소령 10/100(↑10) 호기심

다만, 짐작할 수 있는 것은 있었다.

가능하면 이 수치들을 올려야 한다는 것.

그래야 이들을 데리고 임무를 함께 수행할 수 있는, 의미 있는 길이 열린다는 걸 말이다.

<모두 100% 만족 시 ‘사령대 조장들과 임무수행’란이 열립니다.>

눈앞에 글이 말하는 대로.

* * *

설휘는 거처로 일찍 돌아왔다.

방 안에 들어온 뒤, 쓰고 있던 가면을 벗고는 한쪽 의자에 앉았다.

“뭐 이런 그림이…….”

호랑이가 그려져 있는 가면.

우스꽝스러운 모습에 괜히 웃음이 나온다.

그러다 탁자에 내려놓고는 이내 의자에 기대어 천장을 바라보았다.

“또다시 위기가 찾아올 것이다.”

설휘는 알고 있었다.

늘 그렇듯 순탄하게 시간이 흘러가지 않는다는 걸.

자신에게 내린 이 저주는 위기를 기회로 바꾸는 기연을 내려주지만.

평온한 일상을, 어떻게든 위기로 몰아넣는 기형적인 구조로 되어 있었다.

“될 수 있는 대로 빨리, 이들을 내 편으로 끌어들여야 해.”

그리고 그런 상황에서, 설휘는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고 있었다.

주어진 임무를 최대한 빠르게 처리하는 것.

무관도 시험 때 기민하게 움직여 ‘벽력탄’을 얻은 것도 그랬고, 천일관 두홍과 엮었을 때도 임무를 수행하고 뜻하지 않은 ‘보물’을 얻을 수 있었다.

준비가 되지 않으면 살아날 틈 역시 줄어들 테니.

“다시 확인해보자.”

설휘는 다시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리고 우선 자신의 상태창을 열어보았다.

[State, 상태]

설휘 [은영단 사령대장]

체력 71만/71만

내공 121만/121만

Coin 2개

경지 초절정

전투력 591만

‘목숨은 두 개. 능력은 초절정.’

설휘는 전투력 숫자를 보고도 솔직히 자신이 얼마나 강해졌는지 감히 잡히지 않았다.

항상 버거운 적들만 상대해 왔다.

그러다 보니 자신의 힘이 어느 정도인지 파악하기가 힘들었다.

“도구함에는 어떤 것이 있었지?”

설휘는 상단 위에 있는 문자를 향해 시선을 올렸다.

한동안 열어보지 않았던 도구함을 열기 위해서였다.

[도구함]

<약재>

금창약 3

<영약>

환속영신단 1

<장비>

<잡화>

무관도 각종서류, 비밀교서 지도(2/4), 비밀교서 열쇠

‘비밀교서…….’

이걸 보니 해결할 게 남아 있었다.

교주의 비밀교서.

모르긴 몰라도 당대 최고의 무공들이 그 안에 잠들어 있을 게 뻔했다.

“무사수행도 해야 하는데…….”

설휘가 기거하는 거처에서 생겨난 생소한 경험.

중원 지역으로 가서 별도의 임무를 해결하는 것이었다.

그다지 위험한 임무도 아닐 거라 예상되지만, 생각지도 못한 보상이 나올 확률도 있었다.

“임무 받기는 당분간 피해야 하겠고.”

최근 자신을 고쳐주던 홍 의원을 선택하고서 얼마나 식겁을 했는가.

아까운 목숨 2개가 그냥 날아가지 않았는가.

“그러고 보니…….”

투욱.

설휘는 탁자 위에 검 하나를 올려놓았다.

예오후검.

기형적인 문자가 자루에 음각된 신병이기로, 예전 곤마가 건네준 단영검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능력을 가진 검이다.

소령이 던졌던 비표를 너무도 쉽게 쳐낼 수 있었던 것도. 이 검날의 능력 때문이다.

“추혼기라는 건 뭘까…….”

<특별 능력>

추혼기(追魂氣)(봉인된 저주)

검의 상태를 상세히 보던 설휘는 괜히 궁금해졌다.

이름 그대로 해석하면 공력이 상대를 따라간다는 뜻이 되긴 한다.

“앞으로 할 일이 많으니…….”

투욱.

설휘는 밖을 나갔다.

9월 1일.

첫날이란 시간을 이렇게 쉽게 보낼 수 없었다.

강해질 기회만 있다면 절대로 놓쳐선 안 된다.

「 찾아야 해. 방법을 찾지 못하면, 이 년 안에 우리는 태황각주에게 모두 죽게 될 거야. 」

그때 소령에게서 들었던 속마음.

왠지 모르게 그것이 앞으로도 다가올 자신의 미래란 생각이 들고 있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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