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9화. Part 1. 사령대 조장들(4)
[오늘은 사령대 조장들을 가르칩니다.]
하루가 지나고 아침이 되자 자연스럽게 이 문구가 나타났다.
그와 동시에 설휘는 은영단 사령대가 있는 건물로 이동했다.
‘……있으려나.’
설휘는 내심 초조해졌다.
이들을 가르친 후, 가능하면 빨리 다른 임무를 받고 싶었다.
그래야 불안정한 미래를 대비하는 데 도움이 될 테니까.
<가면을 착용하시겠습니까?>
그리고 문 앞에 선 설휘에게 들려오는 또 다른 선택.
설휘는 이번에도 가면을 썼다.
아직은 그녀에게 드러내고 싶지 않으니까.
끼이이익.
그렇게 문을 열자마자,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늦었습니다. 대장.”
“언제 배웁니까?”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기대되네요.”
요림, 적송, 용진, 소령.
적대감으로 가득 찼던 그들이 웬일인지 모두 자리에 앉아 있었다.
그리고 그때부터였다.
시간이 갑자기 빨라지기 시작했다.
[1일 차. 은영단의 대표마공, 일원소마공 고급과정을 가르칩니다.]
특정 조건을 만족했던 예전의 방식처럼.
* * *
시간의 흐름은 가변적이다.
그런 시간의 흐름을 ‘자각’하는 설휘의 인식도 차츰 적응되어 갔다.
[2일 차. 은영단의 대표마공, 일원소마공 고급과정을 가르칩니다.]
[3일 차. 은영단의 대표마공, 일원소마공 고급과정을 가르칩니다.]
……
……
머릿속에 장면 하나하나 생생히 떠오르면서도, 자신이 한 행동이라 자각이 되지 않는 기억들.
원래 정해진 삶의 법칙처럼 흘러가고 있었다.
그런 시간의 흐름은, 자신의 거처로 돌아옴과 함께 멈췄다.
<한 달간의 성과>
그리고 늘 그랬듯. 성과가 나타났다.
[요림의 호감도가 4% 상승했습니다.]
[적송의 호감도가 6% 상승했습니다.]
[용진의 호감도가 5% 상승했습니다.]
[소령의 호감도가 10% 상승했습니다.]
‘어?’
설휘는 눈앞의 문구를 보며 의아해졌다.
호감도라니.
이건 어떤 의미로 해석해야 하는 건가.
잠시 고민하던 설휘는 상단 우측에 ‘수하들의 호감도’라 적혀 있는 목록으로 시선을 옮겼다.
<사령대 조장들의 호감도>
1조장 요림 14% [호기심]
2조장 적송 16% [호기심]
3조장 용진 15% [호기심]
4조장 소령 20% [↑관심]
‘그래, 이번 임무는 이들의 마음을 얻어야 하는 거다.’
설휘는 호감도를 보고 곧장 알아차렸다.
최근 들어 한 달 일정 안에 새로 등록된 임무 중 ‘사령된 조장들을 가르치기’가 있었다.
그리고 ‘사령대 조장들과 임무수행’은 불가였다.
거기에서 유추해볼 때, 사령조장들의 호감도를 올리면 이들과 같이 임무수행이 가능하다는 것이 예상된다.
그리고 그것은.
앞으로 자신에게 닥칠 미래와 직접적인 연관이 있어 보였다.
“따분해지면 다른 임무나 해버리지 뭐.”
설휘는 천천히 하려고 했다.
아직 할 것이 많았다.
임무 받기도 있고, 무사 수행도 있다.
설휘는 그렇게 그날 하루도 편히 잠을 청했다.
* * *
또 하루의 시작.
문 앞에 선 설휘에게 늘 그렇듯 하루의 일정을 보여왔다.
<천력 96년 10월 일정을 정해주세요. (14/36)>
▶ 가르치기
▷ 임무 받기
▷ 무사 수행
▷ 주변을 돌아다닌다.
설휘는 당연하게 첫 번째를 선택했고.
▶ 사령대 조장들을 가르치기(가능)
▷ 사령대 조장들과 임무수행(불가)
조장들을 가르치기를 선택했다.
그런데 눈앞의 그것은 설휘에게 다시 질문을 해댔다.
▶ 조장 교육실
▷ 현무관 영외
▷ 합동 연무장
갑자기 생겨난 지문들.
하나도 아닌, 무려 다섯 개로 늘어나 자신의 선택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유가 있을 것이다.’
설휘는 천천히 목록을 보며 생각했다.
특별할 사건도, 어떤 계기도 없었지만, 분명 그것이 나타내는 목적이 존재하리라 판단했다.
‘우선 협무관 영외로 가볼까.’
조장 교육실은 기존의 조장들을 교육하는 곳을 가리키는 듯하니, 우선 다른 지문을 선택해보았다.
<현무관 영외로 이동합니다.>
사아아아악-!
하얀빛과 함께 외벽이 둘러쳐진 현무관 주변이 설휘의 눈에 들어왔다.
그중에서 단연 눈에 띄는 것은 느티나무.
수백 년은 됐을 법한 크기의 그것은 거대한 위용을 자랑하고 있었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사람이 있었다.
느티나무 옆에 등을 대며 사색에 잠겨 있던 한 사내가 자신을 발견하고 다가왔다.
“대장께서 여긴 무슨 일입니까?”
“너, 너는…….”
날카로운 눈에 기다란 턱.
그는 사령대 조장 요림이었다.
설휘는 의아하게 바라보는 그를 향해 넌지시 말을 걸었다.
“그냥 주변을 좀 둘러보다 보니.”
“그렇습니까?”
요림은 잠시 시선을 바닥에 두더니 이내 다른 곳으로 돌렸다.
몇 마디 더 물어볼 법함에도 그는 그다지 신경 쓰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이번엔 설휘가 먼저 물었다.
“그런데, 넌 왜 여기 있느냐.”
“그냥 바람 좀 쐴 겸 나왔습니다.”
“굳이…….”
투욱.
요림은 설휘의 재차 던진 질문을 가로막으며 목례를 해 보였다.
“그럼 먼저 가겠습니다. 오늘도 좋은 가르침을 부탁드립니다.”
그런 다음 어디론가 걸어가기 시작했다.
방향을 보니, 현무관 쪽이었다.
‘호감도가 아직 낮기 때문일까?’
설휘는 멀어져 가는 그를 보며 미묘한 생각에 사로잡혔다.
평범한 대화가 불가능한 상황.
호감도는 호기심에 불가한 탓인지 예를 갖추지만, 대화를 지속하려는 의지는 없어 보였다.
사실 자신 역시 그에 대해서 뭔가 알고 싶은 마음도 크게 없었다.
‘그런데 왜 이곳에 보낸 거지.’
여러 구역을 설정한 뒤 물어보던 지문들.
아무런 이유 없이 나타났다 하기엔, 그동안 선택 지문들이 주는 의미들이 가볍지 않았다.
‘어?’
잠시 고민하던 설휘가 고개를 조금 올릴 때였다.
[어느 구역으로 가시겠습니까?]
▶ 조장 교육실
▷ 합동 연무장
▷ 교육관 옥상
▷ 현무관 후원
또다시 뜨는 지문들.
마치 이런 상황을 예견이나 하듯 선택지문은 설휘에게 나타났다.
그리고 이전과 달리 현무관 영외라는 항목은 없어졌다.
‘하나하나 다 해보자.’
그리고 선택한 다음 지문.
이번엔 합동 연무장이었다.
<합동 연무장으로 이동합니다.>
“핫! 핫!”
어두워졌던 시야가 다시 밝아질 때쯤, 가장 먼저 알아차린 건 함성소리였다.
그리고 그 함성소리의 대상이 낯익은 얼굴임을 알게 되었다.
‘적송….’
과묵한 사내의 얼굴엔 땀이 송골송골 맺혀있었고.
그를 보자, 처음 그의 내면을 들었던 기억이 떠오른다.
좀 더 가슴 뛰는 임무가 필요하다고 하지 않았었던가.
“어찌한 일로 오셨습니까?”
잠깐의 수련을 기다려주는 사이, 적송이 동작을 멈추고 자신에게 물어왔다.
이미 알고 있었는지 그다지 놀란 눈치는 아니었다.
“그냥 돌다 보니.”
설휘는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그래서일까.
“전 교육을 받기 전, 가끔 여기서 수련을 하곤 합니다.”
간단한 말을 한 번 한 뒤.
“그럼 수업 준비를 해야겠군요.”
목례 후, 그 역시 발길을 돌렸다.
“하, 참.”
설휘는 왠지 맥이 빠졌다.
간단한 인사 후에는 어떠한 대화를 이어갈 생각이 없는 조장들.
이들과 대화를 하기 위해선 꽤 애를 먹을 것 같은 느낌이다.
[어느 구역으로 가시겠습니까?]
▷ 현무관 후원
[어느 구역으로 가시겠습니까?]
▶ 조장 교육실
▷ 교육관 옥상
▷ 현무관 후원
그리고 자연스레 뜬 지문들.
당연히 이번 지문엔 옥상으로 선택했다.
솨아아아악-
눈앞에 창창한 하늘이 보인다.
그리고 고개를 내려보니 한 사내가 조용히 밑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용진.’
가장 호전적이었던 녀석.
자신이 사령대장으로 부임한 후 제일 먼저 덤벼든 녀석이기도 했다.
그런 녀석의 표정이 어딘가 모르게 침울해 보였다.
‘개새끼들. 우린 맨날 다른 부대의 뒷구멍만 맡아야 한다니.’
그의 속마음 역시 그랬다.
또한, 그것에 비춰보면 자신이 속한 사령대가 은영단 중에 평가가 좋은 것 같지는 않다.
“누구냐?”
옥상 위, 다락에 앉아 있는 자신을 알아챈 용진.
그는 설휘를 보자마자, 곧장 예를 갖췄다.
“아, 대장이셨습니까?”
“날씨 좋지?”
설휘는 말을 돌렸다.
이전과 달리 의미 없이 말을 거는 것보다 자연스럽게 대화를 이어가려 한 것이다.
아니라 다를까. 이전 조장들과 달리 용진의 표정은 조금 부드러워졌다.
“그렇습니다.”
“근데 무슨 일이기에 그리 골몰하는 거냐? 아무도 없는 여기에서 홀로 처량하게.”
“그게 말입니다. 대장.”
설휘의 말에 기다렸다는 듯 뭔가 입을 열려던 용진.
그런데 점점 표정이 굳어지더니. 이내 고개를 돌렸다.
“아, 아닙니다. 다음에 말씀드리겠습니다.”
‘이런.’
역시나 실패였다.
그는 간단한 목례 후, 그렇게 자리를 떠난 것이다.
설휘의 시선은 우측 위로 향했다.
‘호감도가 영향을 미치는 것 같은데…….’
<사령대 조장들의 호감도>
요림 14%[호기심]
적송 16%[호기심]
용진 15%[호기심]
소령 20%[관심]
이 정도 수치로는 어떤 대화를 나누기엔 불가능해 보였다.
그리고 그때쯤.
기다렸던 지문이 떴다.
[어느 구역으로 가시겠습니까?]
▶ 조장 교육실
▷ 현무관 후원
이제는 두 가지 중 남겨진 마지막 하나.
아마도 교육관 3층 복도로 이동하면 소령이 날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가보는 게 좋겠지.”
다른 조장들과 달리 소령은 단순 호기심이 아닌 관심으로 변한 상황이다.
다른 이들의 반응과 다를 수 있었다.
‘사실 보고 싶기도 하고…….’
설휘는 과거 그녀의 모습을 떠올렸다.
그녀의 말 한마디가 운명을 바꾸는 데 얼마나 큰 도움이 되었는가.
지금은 상하관계로 만나고 있지만, 사실 어떤 관계라도 좋았다.
그녀와 직접 조우할 수 있다면.
<현무관 후원으로 이동합니다.>
그렇게 설휘의 눈앞이 천천히 거멓게 변하기 시작했다.
* * *
시야가 밝아졌을 때, 뭔가 이상함을 감지했다.
첫째로는 자신의 실체가 존재하지 않고 허상으로 머물러 있다는 것.
그리고 또 하나는 뭔가 심각한 분위기가 감지되고 있다는 것.
“저년이지?”
“맞는 것 같은데. 얼굴 반반한 계집. 이곳 현무관에 한 명밖에 없잖아.”
소령 주위로 하나둘씩 나타나는 사내들.
복장과 인상을 보건대, 사령대 소속은 아니다.
애초에 현무관 내에서 사령조장인 소령을 함부로 얘기할 수 있는 자들은 몇 없었다.
“강(姜) 조장. 저년이 맞습니다. 저년이 먼저 우리를 공격했습니다.”
그리고 이들의 수하로 보이는 한 청년이 눈에 들어왔다.
한쪽 팔을 부여잡은 채 소리치는 것을 보니 소령에게 적대감이 상당한 것 같았다.
‘사적대군.’
청년의 복장을 본 설휘는 그제야 이들의 부대를 직감했다.
갈색 무복.
이곳 현무관 내 이 복장을 한 녀석들은 사적대밖에 없었다.
“병신. 주제도 모르고 나대면 원래 그렇게 되는 거야.”
이들에게 둘러싸인 소령의 눈빛은 여전히 날카로웠다.
은영단 내 조장으로 추정되는 두 명의 사내 앞에서도 그녀는 기개를 잃지 않았다.
“계속 건방 떨 수 있는지 지켜보지. 소명. 너는 수하들을 불러 이 주변을 차단해라.”
“옙. 강 조장.”
양 갈래 앞머리를 한 녀석의 말에 수하는 곧장 어디론가 사라졌다.
그 모습을 본 소령이 비죽거리며 말했다.
“사적대 조장쯤이나 되는 녀석이 이리 겁이 많아서야. 하긴, 수하를 보니 그 수준이 짐작되긴 하지만 말이야.”
“지껄여라. 네년의 기 산 그 주둥이는 오늘부로 끝날 테니까.”
“그래도 수준 차이가 나는 건 아는가 봐? 둘이서 덤비는 걸 보면.”
“둘이라니. 네년을 상대하는 데 굳이 우리 둘이 싸울 필요가 있나. 옆에 계신 규(奎) 조장이 상대할 텐데.”
옆에 팔짱을 낀 사내가 눈에 들어온다.
주먹코에 각진 턱이 한 번만 봐도 쉽게 기억될 정도의 이목구비다.
“그러잖아도 언제 한번 혼내주려 했는데, 마침 잘됐다.”
그는 허리춤의 검을 잡으며 한 발짝 걸어왔다.
그리고 두 발짝 움직이는 디딤발이 순간적으로 빨라지는 그때.
거짓말처럼 동작이 멈춰졌다.
바로 이것 때문이었다.
▶ 싸움에 개입한다.
▷ 계속 지켜본다.
▷ 모른 체한다.
마치 지금 상황을 의도한 것처럼 나타나는 선택창.
그런데 이상하게도 먼저 질문이 뜨는 게 아닌 선택창이 나타났다.
그리고 이어지는 질문.
[어떤 방식으로 호감도를 올리시겠습니까?]
참으로 묘했다.
이전과 달리 선택창보다, 질문에 더욱 눈길이 갔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