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화. Part 1. 사령대 조장들(5)
설휘는 선택을 쉽게 내리지 못했다.
일촉즉발의 상황이 아님에도, 결정을 주저하고 있었다.
‘호감도.’
이것은 그녀와 어떤 식으로든 연관이 있다.
그리고 지금 자신이 선택하는 것에 따라 결과가 달라질 것이다.
‘조금 더 지켜보는 게 좋겠지?’
그렇게 고민하던 설휘는 이내 결정을 내렸다.
호감도라는 의미에 비춰봤을 때, 지금 개입하면 별다른 소득이 없을 것 같았다.
그렇다고 모른 체한다고 해서 호감도가 올라갈 것 같지 않았다.
무엇보다 소령의 무위 실력을 보고 싶었다.
앞으로 같이 해야 할 임무들이 있을 터인데, 이참에 파악해두면 도움이 되리라.
<‘계속 지켜본다’를 선택하셨습니다.>
선택이 끝나자마자 상황은 빠르게 움직였다.
평범한 발걸음을 내딛는 것처럼 보이던 규 조장이란 놈이 급히 신법을 펼친 것이다.
패애애액.
동시에 좁혀지는 두 사람의 거리.
촤라락.
소령 역시 예상한 것처럼 보이지만, 설휘가 보기엔 이미 늦은 것 같았다.
허리춤에 찬 검을 꺼낼 시간도 없어 보였기 때문이다.
그때였다.
파앗.
상대를 향해 내지르는 그녀의 간단한 손동작.
그와 함께 암기 하나가 가공할 속도로 규 조장을 향해 뛰어갔다.
파랏.
하지만 상대 역시 여간내기가 아니었다.
그 정도 술수는 예상했는지, 일시적으로 방향을 변환시켰다.
그럼에도 속도는 줄지 않았고, 소령과의 거리를 더욱 가까이 좁혔다.
허나, 설휘는 소령이 당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냥 암기가 아냐!’
승표(繩鏢)다.
비표나 표창같이, 무기 끝에 긴 은사를 달아 던지고 회수할 수 있게 만든 암기.
이 암기의 특징은 단발성이 아니다.
바로 지금처럼.
휘리리릭.
소령이 은사를 다른 손으로 잡고 옆으로 빠르게 휘두르는 동작을 취하자, 규 조장의 눈빛이 약간 흔들렸다.
그 역시 예상치 못한 것이다.
파팟.
상대가 일순간 물구나무 모양으로 몸을 뒤로 뒤집더니 검을 휘둘렀다.
은사로 되어 있는 승표의 줄이 단숨에 끊어졌고.
철컥.
그사이 소령은 검을 꺼내며 득달처럼 달려들었다.
그때쯤.
이것이 떴다.
▶ 싸움에 개입한다.
▷ 계속 지켜본다.
▷ 모른 체한다.
[어떤 방식으로 호감도를 올리시겠습니까?]
‘뭐, 아직은 더 지켜보는 게 좋겠네.’
지금, 이 상황만으로는 규 조장이란 녀석의 능력을 알 수가 없다.
수치도 뜨지 않는 데다 제대로 싸움이 붙지도 않았으니까.
설휘는 다시 이전과 같은 선택을 했다.
<‘계속 지켜본다.’를 선택하셨습니다.>
쩌엉!
두 검의 맞부딪침.
쩌어어엉!
그리고 또 한 번의 맞부딪침.
“익!”
두 번의 공세에 밀려난 건, 놀랍게도 규 조장이란 녀석이었다.
그러자 소령은 멈추지 않았다.
쇄새애애액!
검신에 희미하게 생성된 녹기(綠氣). 더욱 검술에 가속이 붙는 걸 보니 일원소마공을 펼치는 듯했다.
상 하단의 구분이 없고, 상대가 들고 있는 검의 위치. 이동 동선을 예측하는 검술이라.
한 번 기회를 잡으니, 상대의 반격을 허용하지 않고 매섭게 밀어붙였다.
‘상당한 실력인데?’
설휘는 여유롭게 감상하고 있었다.
예상한 것보다 소령의 검술 실력은 매우 빼어났다.
생각을 벗어나는 검술이 아니기에 더욱 그랬다.
기초적인 검술을 완벽하게 익히는 자들에게 보이는 빼어남이 아닌가.
과거와 비교하면 이 정도로 강해질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하지만 의아함이 같이 들었다.
소령의 실력은 의심의 여지가 없어 보이지만, 상대는 사적대의 조장이다.
실력으로 치면 사황대가 제일 위고, 사령대가 제일 밑인데도, 저렇게 계속 밀리는 것이 의아했다.
그렇다고 실력을 감추거나, 최선을 다하지 않은 것처럼도 보이지 않는다.
그때였다.
“큭!”
날카로운 검술에 허벅지를 연거푸 베이며 규 조장의 자세가 무너졌고.
퍼억!
소령의 발길질에 뒤로 나뒹굴었다.
볼썽사나운 모습을 보며 소령이 미간을 찌푸렸다.
“무슨 의도냐. 네 녀석은 이 정도 실력이 아닐 텐데?”
“끄으으…….”
허벅지를 매만지며 고개를 든 사내.
하지만 대꾸가 없었다.
아니, 그런 상황이 아니었다.
▶ 싸움에 개입한다.
▷ 계속 지켜본다.
▷ 모른 체한다.
[어떤 방식으로 호감도를 올리시겠습니까?]
다시 나타난 질문.
설휘는 이번엔 뭔가 께름칙한 느낌을 받았다.
‘뭘까? 무슨 꿍꿍이가 있는 거지?’
상황이 이상하다.
규 조장이란 녀석이 당한 것이 의도인가 아닌가가 중요한 게 아니다.
방금 허벅지의 혈자리와 하퇴 주변의 근육이 찔려, 일어나기도 버거운 상황이다.
그럼에도 나름의 한 수가 있는 것일까?
강 조장이라고 하는 동료는 나서지도 않는 것도 찜찜했다.
4…… 3……
아래에 짧게 움직이는 시간.
설휘는 고민하다 이내 선택했다.
‘뭐, 문제가 생기면 또 나타나겠지.’
<‘계속 지켜본다.’를 선택하셨습니다.>
이전처럼 두 번째를 선택했고.
‘뭐야?!’
설휘는 곧장 일어나는 상황에 경악했다.
파악.
한순간 소령에 지척한 규 조장의 신형.
움직이지 못한 다리를 움직인 것도 그렇고, 이 정도로 빠른 움직임도 놀라웠다.
거기다.
“하앗!”
목, 가슴, 배를 연타로 치는 장법(掌法)에 그녀는 거짓말처럼 바닥에 주저앉았다.
그리고 순간, 보였다.
이들의 능력치가 선명히 보였다.
규연(奎硏) [사적대 4조 조장]
체력 332만/332만
내공 335만/335만
전투력 224만(+근접전 4%)
강석(姜石) [사적대 3조 조장]
체력 210만/299만
내공 230만/299만
전투력 240만
‘미친!’
욕이 절로 나올 수밖에 없었다.
이들에 비해 소령의 능력치는
소령 [사령대 4조 조장]
체력 36만/36만
내공 122만/122만
전투력 112만(+예지력)
절반도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퍼퍼퍽!
그 순간, 계속된 상대의 일방적인 공격.
소령은 재빨리 정신을 차리고 뒤로 물러섰지만, 장법은 물론 어깨, 팔꿈치, 주먹으로 이어지는 공격은 가히 전광석화였다.
강력한 발력(發力)과 기격(技擊)을 보건대, 마공이라기보다 체술에 가까웠다.
내상보다는 외상을 더 입히려는 의도인 거다.
‘왜! 왜 뜨지 않는 거야!’
설휘는 초조해졌다.
더는 지켜볼 수만은 없는 상황.
다른 부대의 드잡이질. 그것도 자신을 향해 웃어주던 여인의 얼굴이 망가져 가고 있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지문은 여전히 뜨지 않았다.
“커헉!”
결국 소령은 마지막 장법 한 번에 쓰러지고는 더는 일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쉽게 일어나지 못할 거다. 혈도는 물론, 몸속 진기를 뒤흔들어 놓았으니까.”
“커. 커컥.”
이번엔 내가기공이다.
그러니 필사적으로 저항했던 소령이 더는 일어나지 못하는 것일 터.
더욱이 진탕되는 가슴을 부여잡고 상당히 고통스러워하고 있었다.
“어, 어떻게…….”
힘겹게 꺼낸 한마디를 규 조장이란 녀석이 비릿한 웃음으로 받았다.
“어떻게 내가 움직일 수 있냐고? 이위대법(移位大法)이라는 게 있다. 인위적으로 혈도의 위치를 바꾸는 거지. 우린 너희같이 적 꽁무니만 따라가는 부대와는 질적으로 다르다고.”
“크. 크읍…….”
소령은 고통을 참으며 주저앉은 채로 그를 노려보았다.
조금씩 호흡이 돌아오자 이를 악물며 말을 내뱉었다.
“이 사실을…… 단장께서 알면 가만있을 것 같아?”
“네가 먼저 우리 수하들에게 상처를 입혔으니, 명분은 우리에게 있지. 그리고 은영단장께서는 이런 일에 개입하지 않아. 널 죽이지만 않으면 말이야.”
보통 은영단주는 은영단 내 부대 문제는 살인사건이 나지 않는 한, 개입하지 않는다.
이들이 기세등등한 이유는 여기에 있었다.
“……사령대장이 널 가만히 놔두지 않을 거다.”
‘…….’
갑자기 자신의 이름을 부름에 설휘는 감정이 묘하게 요동쳤다.
처음이었다.
태어나 누군가 위기에서 자신을 부르는 것은.
“뭐? 크큭…… 방금 뭐라고?”
“하하하. 크하하하하.”
갑자기 사령대장이 나오자 이들은 크게 웃기 시작했다.
노골적인 긴 비웃음.
그 웃음은 한참이나 이어지더니 이어 지켜보던 강석이란 조장이 나섰다.
“곤마께서 데려온 그 녀석 말하나 보군.”
이내 그녀 앞에 당도한 강석은 무릎을 굽혀, 소령의 시선을 맞춘 뒤 말을 이었다.
“그런데 그거 아나? 그놈이 원래는 천일관에서 잡일 하는 녀석이었다는 거?”
“……!”
소령의 눈이 커졌다.
당혹감. 의아함과 혼란스러움이 한 대 뒤엉킨 그런 표정이었다.
강석은 그녀의 놀란 반응이 재미있는지 속삭이듯 말을 이었다.
“이봐. 너희 대장들은 다 병신이야. 예전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래. 아무것도 할 줄 모른다고.”
“…….”
스윽.
그리고 천천히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는 강석.
“차라리 우리 부대 밑으로 들어와라. 그럼 우리가 너를…….”
퉷.
강석은 말을 멈췄다.
그리고 천천히 가져간 손끝에 끈적한 침이 느껴졌다.
“독방에 갇혀 평생 하늘을 보지 못한다고 해도, 너희들 밑으로는 못 들어가지.”
“이, 이년이…….”
강석 주변으로 피어나는 살기.
하지만 소령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당당히 말했다.
“조금 전에 말 잘했어. 내가 죽지 않으면 은영단주가 개입하지 않는다고 했지?”
“……뭐?”
“넌 이미 끝났어.”
핏.
희미한 웃음을 보이던 소령.
그 순간, 놀란 강석은 급히 그녀의 턱을 집었다. 상대가 자결하려는 걸 감지한 것이다.
그런데.
‘어……?’
오히려 소령이 당황했다.
분명 어금니에 걸어놓은 소량의 독을 풀었는데 놀랍게도 삼켜지지 않은 것이다.
“역시, 일개 조장답게 여간내기가 아니군.”
그리고 그 이유는 규연에 의해 알게 되었다.
“혹시나 해서 혈도를 집어 놓았는데, 그걸 눈치채지 못했나 보군.”
조금 전 공격해오던 여러 가지 기격들.
“혹시나 해서 혈도를 집어놨기에 망정이지. 십 년 감수했네.”
규연의 입꼬리에서 또다시 비웃음이 드러났고.
“팔 한 짝은 내려놔야지.”
그녀의 머리채를 잡으며 위협하는 강석의 목소리.
고통에 몸을 떠는 소령과 목소리.
그리고 눈앞에 뜨는.
▶ 싸움에 개입한다.
지문과.
<싸움에 개입한다를 선택하셨습니다.>
선택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