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화. Part 2. 사적대장의 등장(1)
어떠한 부름이 없이도 소령이 되묻는 이유는 바로 이것이었다.
<아래의 보기를 고르세요.>
바로 이것을 고르기 위한 것.
그런데 문제는 바로 보기라는 선택창이었다.
▶ 입맞춤(가능)
어떤 계기도 없이 다짜고짜 입맞춤하라니.
그녀를 능욕했던 이들과 대체 뭐가 다른가.
▷ 포옹(가능)
‘그렇다고 포옹도 고를 수 없다.’
그동안 그녀를 품에 안은 상상을 하지 않은 건 아니다.
하지만, 이제 겨우 위기에서 벗어난 그녀를.
미친놈처럼 안아버리는 행동을 할 수는 없다.
만약 일이 잘못되어 그녀가 나를 경멸하는 눈으로 쳐다본다면 어찌할 것인가.
‘가만 혹시 이게 옳은 답이 아닐까?’
▷ 입맞춤(가능)
▷ 포옹(가능)
▶ ----(가능)
▷ /-//--(불가)
▷ /=/!
!##(절대 불가)
그러다 보니 세 번째에 눈이 간다.
어찌 보면 제일 위험한 것일 수도 있지만, 아닐 가능성도 있어 보인다.
그 이유는 첫 번째가 입맞춤이고 두 번째가 포옹이기 때문이다.
입맞춤보다는 포옹이 낫다는 건 너무나 명약관화다.
그러니 순서 기준을 보더라도 세 번째가 제일 나은 선택일 수 있다.
글자는 보이지 않지만 한번 예상해본다면, 포옹보다 한 단계 낮은 ‘팔짱’이나 ‘관심표현’ 같은 뜻이 담겨 있을 터.
‘그렇다면 왜 네 번째와 다섯째는 불가인 거지?’
웬만하면 입맞춤과 포옹을 피하고자 세 번째를 선택하는 게 순리이지만, 그마저도 섣불리 행동에 옮기지 못하는 이유가 있었다.
팔짱이나 관심표현이 세 번째라면 네 번째는 더욱 가벼운 호감 표현을 해야 하지 않는가.
그런데 여기선 왜 불가라고 쓰여 있는가.
더욱이 다섯 번째는 ‘절대’라는 글이 뭔가 불쾌한 기분을 들게 했다.
‘뭐야? 시간이 갑자기 왜!’
고민하던 설휘의 눈이 아래로 향했다.
생각할 시간을 넉넉히 줄 것 같던 선택창에서 시간이 나타난 것이다.
그리고 시간은 극히 짧았다.
5……4……
‘아아아.’
이젠 어떻게든 선택해야 했다.
첫 번째를 제외한 ‘포옹’이냐. 아님 ‘----(가능)’이냐.
‘포옹은 도저히 못 하겠다아아아!’
<‘----’을 선택하셨습니다.>
설휘는 재빨리 소령의 표정을 살폈다.
자신이 어떤 선택을 했는지, 그녀의 반응을 봐야 알 수 있었다.
처음엔 소령의 몸이 미미하게 흔들렸다.
그리고 조금씩 작아지는 눈빛.
“지금 뭐라고 하셨나요?”
“…….”
당연히 설휘는 알 길이 없었다.
그저 바라볼 수밖에.
“진심이신가요?”
재차 물어보는 소령의 표정.
어떤 감정인지 지금으로선 알 길이 없었다.
대체 자신이 뭘 선택한 걸까?
저벅저벅.
소령이 다가온다.
그리고 눈앞까지 다가와 멈추더니, 말없이 자신의 눈을 쳐다보았다.
‘별일이야 있겠…….헉!’
쫘악!
설휘의 고개가 홱 꺾였다.
소령이 자신의 뺨을 냅다 후린 것이다.
뭐냐.
뭐가 어떻게 된 거야?
“어떻게 그런 상스러운 말을 입 밖에…….”
어느샌가 변한 그녀의 냉소적인 말투.
아니, 그것보다 좀 더 나아간, 혐오에 가까운 불편함이 스며 있었다.
“정말로 실망했어요.”
“자, 잠깐만.”
소령은 뒤돌아섰다.
“내가 뭐라고 했는지는 알려주고…….”
자신의 거듭된 부름에도 그녀는 더는 돌아보지 않았다.
그렇게 멀어져 가는 소령을 급히 따라가려 할 때였다.
<소령의 호감도가 76↓ 하락했습니다.>
<안타깝네요. 여인 소령의 호감도가 ‘흠모’에서 ‘불편함’으로 변경되었습니다.>
어이가 없었다.
기껏 쌓아 놓았던 호감도는 개입하기 전, 처음으로 돌아가 있었다.
아니, 그것보다 더 아래로.
“나도 몰라! 모른다고!”
자신의 분노에 찬 외침에도 눈앞의 선택 결과는 변하지 않았다.
<소령의 호감도>
66%[↓-10%], 흠모[↓불편함]
“내가 무슨 말을 했는지!!! 나도 모른다고오오오오---!”
오로지.
선택에 대한 책임만 남았을 뿐이다.
그리고 이제 남은 건.
[어느 구역으로 가시겠습니까?]
▶ 조장 교육실
할 수밖에 없는 임무였다.
* * *
눈앞이 거멓게 변할 때, 나는 걱정이 앞섰다.
무공을 가르칠 때, 소령의 얼굴을 어떻게 봐야 한다는 말인가.
적어도 자신이 뭐라 했는지 알려주고 뺨을 때리면 억울하지 않지.
그 때문인지, 그저 시간이 빨리 지나가기를 바랐다.
이전에도 보였던 것처럼.
눈 깜짝할 사이 한 달이 순식간에 지나갔으면 하고 생각했다.
‘어?’
그런데 눈앞이 환해질 때쯤 전혀 예상치 못한 장면이 보였다.
눈앞에 조장들은 보이지 않고, 두 명의 중년인이 보인 것이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생성되는 문구.
[Part 2. 사적대장의 등장]
예상치 못한 흐름 속 인물에 나의 시야는 확 하고 확장되었다.
중년인 두 명이 보인다.
그리고 그들의 시선이 향한 곳에는 놀랍게도 나, 설휘와 소령이 서 있었다.
인기척을 느낄 수 없는 거리, 하지만 이곳 현무관 내 6층 건물에서는 우리 둘뿐만 아니라, 쓰러진 3조, 4조 조장들도 보였다.
‘이곳에서 나와 소령을 지켜보고 있었던 건가.’
시점의 흐름이 달라짐에 따라, 이들과 설휘, 소령을 보고 있는 나는 묘한 기분을 느꼈다.
거기다, 소령을 구하기 전부터 그녀를 주시하던 이들에 대해서도 알게 되었다.
“늦었습니다. 대장. 제가 막 나서려던 참에 뜻밖의 인물이 나타나서…….”
네모난 얼굴에 조금은 작은 체구의 이 남자.
그가 누구인지는 머리 위에 있는 정보를 통해 쉽게 알 수 있었다.
부영(浮英) [사적대 부대장]
체력 301만/301만
내공 240만/240만
전투력 490만(+특수기술 7%)
“뜻밖의 외인(外人)이 등장한 것이 자네 탓은 아니지.”
칼자국이 얼굴에 가득한 인물.
긴 수염에 반달의 눈은 뭔가 불쾌하기 짝이 없었다.
그의 상세정보를 보고는 이해했다.
이 사건을 꾸민 그 중심에는 이 녀석이 있었다는 것을.
비군(蜚珺) [사적대장]
체력 550만/550만
내공 420만/420만
전투력 637만(+격노 12%)
‘고수다.’
엄청나게 높은 체력과 내공.
무엇보다 전투력 역시 자신보다 좀 더 높았다.
과연 한 부대를 이끌 대장의 자격은 충분했다.
“그보다 한심스럽군. 적당히 겁박한 뒤 돌려보내란 명령을 저따위로 이행하다니. 더욱이 갑자기 등장한 외인 때문에 우리가 나서지도 못한 형국이 돼버렸어.”
‘자신이 나서려 했다고?’
나는 그 말을 듣고 곧바로 이해하지 못했다.
추정해보자면, 단순히 소령을 겁박하려고 괴롭힌 게 아니란 말인가.
거기다 도와주려고 했다고?
왜 무엇 때문에?
“제 불찰입니다. 이 정도로 미련한 녀석들일지 몰랐습니다. 이번 일은 제게 끝까지 맡겨주시면…….”
“아서라. 이제는 소령이란 저 여인도 우리가 더는 회유하지 못할 거다. 저런 비루한 부대에서 재능을 썩히는 꼴이라니. 쯧쯧.”
이제는 알 것 같았다.
이들은 사령대에 있는 소령을 사적대로 회유할 생각이었던 거다.
사령대의 무능함을 알리려 했던 계획이 통제되지 않는 조장 몇 놈 때문에 일이 꼬인 듯 보였고.
“증거는 남기지 않는 게 좋겠지?”
비군의 말에 부영의 눈이 커졌다.
“대장. 굳이 조장을 처리할 필요까지는…….”
비군은 돌아보지도 대답을 하지도 않았다.
그러자 부영은 이내 포권을 해 보였다.
“……알겠습니다.”
그렇게 한 놈은 내려갔고.
난간 위치에 홀로 남아 있던 비군이 조용히 읊조렸다.
“그나저나…….”
천천히 그의 시야에서 사라지는 호랑이 가면.
내가 사라지자, 이들의 대화도 여기서 끝이 났다.
“적당한 때 한번 인사나 하러 가야겠군.”
비군의 마지막 말과 함께.
* * *
화면이 다시 어두워지고 밝아지자마자, 시간의 흐름이 빨라졌다.
[1일. 은영단의 대표마공, 일원소마공 고급과정을 가르칩니다.]
운이 좋았다.
소령의 얼굴을 어떻게 볼까 고민했었지만, 빠르게 흘러가는 시간 때문에 위기를 잘 넘길 수 있었다.
[2일. 은영단의 대표마공, 일원소마공 고급과정을 가르칩니다.]
[3일. 은영단의 대표마공, 일원소마공 고급과정을 가르칩니다.]
……
점점 밝아지는 몇몇 조장들의 표정과 문득문득 노려보는 표정을 짓는 소령의 표정이 각인되었지만, 상관없었다.
어차피 시간은 눈 깜짝할 사이 흘러갔고. 난처한 상황도 뭔가 곤혹스럽다는 느낌은 아니었으니까.
……
……
[30일 차. 은영단의 대표마공, 일원소마공 고급과정을 가르칩니다.]
[31일 차. 은영단의 대표마공, 일원소마공 고급과정을 가르칩니다.]
[이번 달의 모든 과정이 끝났습니다.]
<한 달간의 성과>
요림의 호감도가 6% 상승했습니다.
적송의 호감도가 5% 상승했습니다.
용진의 호감도가 4% 상승했습니다.
소령의 호감도가 15% 상승했습니다.
‘어? 소령이 무려 일 할 오 푼이나!’
설휘의 반응을 확인해주듯 아래 문구도 함께 떴다.
<사령대 조장들의 호감도>
요림 20%[관심(↑)]
적송 21%[관심(↑)]
용진 19%[호기심(-)]
소령 5%[호기심(↑)]
그리고 좋아하기도 전에 눈앞이 거메졌고 다시 환해졌을 때쯤.
“뭐지?”
설휘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여긴 현무관 후문이다.
날도 저물어 하늘엔 별들이 가득했다.
본래 한 달이 지나면 거처에서 정신을 차리는 게 맞는데, 왜 자신이 여기 있는 것인가.
“빨리 거처로 돌아가야겠다.”
설휘는 주변의 외벽 위로 몸을 날렸다.
생각해 보니, 가면을 쓴 몸으로 어기적거리다가 사적대에게 발각되면 난처한 상황이 만들어질 것 같았다.
그렇게 담벼락을 몇 번 박찬 후 지붕을 뛰어넘으며 이동했다.
“가만.”
이동하려던 설휘가 잠시 동작을 멈췄다.
오늘따라 밤하늘의 별이 그의 시선을 사로잡은 것이다.
“참 오랜만에 보는구나.”
정신없이 흘러가는 삶.
눈앞에 뜬 문구가 생성되고 나서부터는 정말이지 하루도 편한 날이 없었다.
어떻게든 삶을 연명해야 했기에.
그런데 최근의 삶은 좀 다르다.
처음으로 여유가 생겼다.
물론 곧 크나큰 위기가 닥치리란 걸 잘 알고는 있지만.
그래도 이런 삶을 살고 있다는 게 어딘가.
“수하가 보는데 기도 좀 살았고.”
통쾌했었다.
힘으로 누굴 짓밟는 쾌감을 말하는 게 아니다.
자신도 이제 더는 눈치 보지 않고 싸울 수 있는 상황이라는 게. 그 점이 너무 좋았다.
“석두는 잘살고 있으려나.”
최근에 제일 좋았던 점을 꼽으라면 무사 수행이었다.
목수 출신으로 무식하게 생긴 녀석과 같이 돌아다닌 게 좋은 기억으로 남았다.
“이리된 거 다음 달은 수업 건너뛰고 무사 수행이나 해야겠다.”
임무를 받기에도 머리가 아프고, 괜히 나섰다가 죽을 수 있었다.
이리된 거 무사 수행을 골라 중원에서 즐기면서 한 달 정도 지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따뜻한 물에 푹 담그고 몸 좀 지지면서…….”
“여기서 뭐 하시는 건가요?”
“……엑?!!!”
갑자기 느껴지는 인기척.
설휘는 너무나 놀라 화등잔만 하게 커진 눈으로 뒤돌아보았다.
“소, 소령? 네가 어떻게 여길?”
그녀가 인기척도 없이 자신에게 접근한 것이다.
“제가 온 게 아니라, 대장이 온 거예요. 전 여기에 원래 있었구요.”
“아.”
급히 움직이다 보니 잠시 주변을 살피는 걸 잊었다.
아니, 솔직히 말하면 지붕 위에 누군가 앉아 있을 거라곤 생각하지 못했던 게 더 맞는 말이다.
“무사 수행은 또 뭔가요?”
“아, 그게 말이지. 아! 아, 안 돼.”
“……예?”
그녀가 의아한 표정을 지었지만, 설휘는 신경 쓰지 않았다.
지금 그따위 것이 눈에 들어올 리가 없었다.
눈앞에 뜨지 말아야 할 그 잡것이.
<아래 보기에서 고르시오.>
“아, 안 된다고!”
떠오르고 있었다.
▶ (´▽`)ノ(가능)
▷ ˘◡˘(가능)
▷ 입맞춤(가능)
▷ /-//--(불가)
▷ /=/!!##(절대 불가)
개 같은 선택창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