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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육성 시물레이션-64화 (65/379)

64화. Part 2. 사적대장의 등장(3)

한동안 침묵이 이어졌다.

설휘는 그 정적의 시간이 결코 긍정적으로 흘러가리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분명 비군은 수하들의 죽음을 목도했고, 가면을 쓴 자가 자신이라고 알고 왔을 테니까.

하지만 그럼에도 대답이 바로 나오지 않는 건, 확실히 단정 짓지 못한다는 의미였다.

우리가 소속되어 있는 은영단.

외부의 적은 늘 존재했고, 그 의심에 불을 지피기만 해도 충분했으니까.

“……누굴 말하는 겁니까?”

비군이 반응해온다.

대화에서 보듯, 뭔가 확신에 찬 듯한 표정은 불편한 감정으로 변해 있었다.

눈칫밥 인생만 삼십 년이다.

설휘는 이럴 때일수록 적의 심리를 이용해야 한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누구일까요?”

설휘는 그의 시선을 여유롭게 받으며 되물었다.

정답을 알고 묻는 게 아니다.

하지만 자신이 모르는 정답이, 그에겐 알 수 있는 일일지도 모른다.

오랫동안 은영단에 속해왔으니 가장 의심스러운 자들을 추려낼 터.

운이 좋다면 그의 입으로 직접 들을 수도…….

“태황각주를 말하는 거군요.”

‘……뭐?!’

순간, 설휘는 흠칫했다.

빠르게 눈을 내리깔아 속내는 들키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쉽게 진정되지 않았다.

과거에 나를 개처럼 부려먹던 녀석.

죽음으로 몰아넣었던, 반드시 몇 배로 갚아줘야 할 인물.

비군의 입에서 그놈이 언급된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움직일 이유가 없어 보이는데요.”

비군의 말에 설휘의 머리는 빠르게 돌아갔다.

대체 그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 수 없었다.

그렇지만 자신이 모르는 뭔가 있고 그에 관해서 좀 더 알아내야 한다는 건 반드시 필요한 일.

“……그건 모르죠.”

설휘는 다시 시선을 들었다.

가진 패가 없음에도, 대화를 자신 있게 유도했다.

다른 이도 아닌 태황각주라면, 본교 내 누구보다 자신이 가장 잘 알고 있었으니까.

“그가 감추고픈 비밀을, 제가 알고 있을 수도 있으니까요.”

“……!”

이번엔 당황한 표정을 의지대로 숨길 수 없나 보다.

비군의 눈썹 끝이 날카롭게 올라간 채 미미하게 떨리고 있었다.

그렇게 우리는 한동안 서로를 바라봤다.

그리고 천천히 시선을 내리던 비군의 입에서.

처음으로 본심이 흘러나왔다.

“하긴, 생각해 보면 좀 이상한 점이 많군요. 태황각 내에서도 소속도 없이 떠돌던 인물. 그런 그가 은영단 사령대장으로 들어온 것. 그리고 보고받았던 당신의 무위가 실제로는 훨씬 더 뛰어나다는 것.”

“……?”

“우리 조장들은 모두 실력자입니다. 당신 실력으로 이 둘을 쉽게 제압한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니까 말이지요.”

확실히 비군이란 인물.

보통내기가 아니다.

이렇게 직접적으로 모욕을 주면서도 반박을 하지 못하게 하는 대화 방식을 취하고 있다.

사적대 조장들보다 강하다는 걸 ‘인정’하게 만들어 결국 스스로 범인은 ‘너’라는 걸 시인하란 뜻이 담겨 있었다.

‘가소롭군.’

하지만 설휘에겐 우스웠다.

이런 교묘하게 주는 모욕은 태황각주 시절 숱하게 겪어왔다.

이 정도는 도발도 아니다.

“맞습니다. 태황각 내에 있었지만, 소속도 아니어서 떠돌이 신세였지요. 또한, 제 실력으로 둘을 쉽게 제압할 수 없습니다. 다만, 이왕 말이 나왔으니 말인데…….”

설휘는 슬쩍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그를 보며 말을 이었다.

“얼마나 한심하면, 기습해온 첩자 하나를 처리 못 해서 조장 둘이 뒈지는 건지. 소령을 건든 것도 조장들이 욕정을 못 이겼다는 얘기가 있던데 말입니다. 사적대는 원래 그런 곳인지요?”

“……뭐? 이 새끼가!”

쾅!

분노에 찬 비군이 책상을 내리치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어느덧, 그의 몸속에서 피어나오는 살기가 극도로 날카로워졌다.

‘밀리면 안 된다.’

설휘는 그의 분노에 맞서며 바라보았다.

상대는 예의를 차리는 듯 말하면서도 자신을 도발하고 있다.

더욱이 자신이 개입했다는 걸 확신하면서도 노골적인 모욕을 주는 것도 서슴지 않는다.

사령대의 입지가 바닥인 건. 바로 이런 인식 때문이었다.

비군 [사적대장]

체력 550만/550만

내공 420만/420만

전투력 637만(+격노 12%)

‘싸워도 해볼 만한 전투력이지만…….’

설휘 [은영단 사령대장]

체력 71만/71만

내공 121만/121만

전투력 591만

그럼에도 설휘는 굳이 전투의사를 보이지 않았다.

상대도 알 것이다.

먼저 공격한 자가 더욱 곤경에 처한다는 것.

자신과 비군, 둘 중 자신이 다치거나, 죽기라도 한다면 이겨도 큰 징계를 면치 못할 것이다.

“건방진 새끼.”

비군의 한숨 소리.

동시에 쏘아대던 살기도 점차 누그러졌다.

“혀 놀림을 보니, 곤마께서 왜 너를 사령대장으로 임명한 건지 알 것 같다만…….”

“…….”

“언젠가 그 혀가 네 명줄을 단축시킬 날이 올 것이다.”

분노를 쏟아낸 그는 뒤돌아섰다.

그와의 거리가 멀어질수록 송곳처럼 찔러왔던 살기도 점점 줄어들었다.

‘후우.’

설휘는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각오하고 있다고 해도, 직접 맞부딪히는 걸 바라지 않았다.

전투력이 서로 비등하다고 해도, 급작스럽게 올린 자신보다 경험 면에서는 월등할 것이다.

이 정도로 정리하고 헤어지는 게 여러모로 좋았다.

<‘비군’이 방을 나가려고 합니다. 이대로 보내시겠습니까?>

▶ 보낸다.

▷ 부른다.

‘뭐야?’

그가 방문을 지나치기 직전 뜬 문구.

모든 게 정리되었다는 시점에서 지문이 생성된 것이다.

‘왜 무슨 이유가 있는 건가?’

보낸다와 부른다 두 개의 선택.

웬만해선 이런 평범한 지문이 뜨지 않음에도.

대화 중에도 뜨지 않던 게 지금 나타났다는 건, 자신이 알지 못하는 뭔가 있다는 것.

‘뭘 고르지…….’

시간제한이 뜨지 않은 걸 확인했지만 설휘는 빠르게 판단하기로 했다.

이유 없이 갑자기 생성될 때도 있지 않았는가.

그렇게 고민한 끝에 설휘는 두 번째를 선택하기로 했다.

‘일단 부른다를 선택한 뒤, 다음에 이어지는 내용을 확인하는 것도 나쁘지 않으니까.’

설휘는 부른다 쪽으로 마음이 기울였다.

선택창이 나왔다는 것은, 그와 더 대화해야 하는 이유가 있다는 것.

운이 좋다면 태황각주와 관련된 얘기가 나올 수도 있다.

<‘부른다’를 선택하셨습니다.>

시간이 다시 흐름과 함께 느릿하게 돌아보는 비군.

설휘는 조용히 그를 바라봤다.

“할 말이 남았나?”

“…….”

별달리 눈앞에 나타나지 않는 선택창.

잠시 기다리던 설휘가 고개를 돌리며 뭔가 말을 하던 그때.

<아래 지문을 보고 선택하세요.>

기다리던 게 떴다.

▶ 비굴하게 고개를 숙이며 ‘가랑이 사이로 들어가겠습니다. 살려주세요.’ 한다.

‘이게 뭐야?’

어이가 없는 첫 지문.

하지만 두 번째 지문에 비하면 이런 건 얘깃거리도 안 된다.

▶ (´▽`)ノ

‘으악!’

자신에게 악몽을 안겨다 준 저 해괴한 문구.

그것이 뜬 것이다.

9…… 8……

그리고 이번엔 시간제한이 있었다.

▶ 비굴하게 고개를 숙이며 ‘가랑이 사이로 들어가겠습니다. 살려주세요.’ 한다.

▷ (´▽`)ノ

‘이건 이 저주 새끼가 일부러 싸움을 붙이려고 한 거다.’

그 이유밖에 없다.

굴욕을 감내할 것인지, 도발할 건지 고르라는 것 아닌가.

‘아니 근데 난, 저 문양이 뭔지도 모른다고!’

모르지만 이것 하나만은 알 수 있다.

이 문양을 선택하는 순간, 저놈은 날 죽일 거라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칼을 들이밀 것이다.

3……2……

‘아……씨!’

설휘는 속에서 부글부글 끌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첫 번째는 도저히 할 수가 없다.

조금 전, 그와 나눴던 대화와는 너무도 다른 선택사항이지 않은가.

‘젠장 될 대로 되라지!’

설휘는 결국 선택했다.

<‘(´▽`)ノ’를 선택하셨습니다.>

두 번째로.

그 순간 설휘는 자신의 바람대로 흘러가지 않을 수도 있다는 걸 느꼈다.

아니, 솔직히 말하면 그것을 월등히 뛰어넘었다.

“개새……!”

거품처럼 부풀어 오르는 비군의 얼굴.

챙.

재빠르게 뽑아 든 칼.

<상대가 ‘투기’를 발휘했습니다. 전투력이 소폭 상승합니다.>

전투력 713만(↑12%)

급속히 오른 전투력까지 겸비한 채, 달려드는 그의 모습을.

“죽어- 이-새끼야아아아아!”

광분 그 자체였다.

* * *

설휘 역시 당하고만 있지 않았다.

괴상한 문양을 선택하자마자, 설휘는 재빨리 전투방식을 변경했다.

전투방식 시뮬레이션

상대방이 괴성을 지르는 사이, 위협을 직감하고는 곧장 이 시스템을 곧장 작동시켰다.

그리고 잠깐 동안 시간이 멈췄다.

<설휘 님의 무공 개수를 분석합니다.>

이어지는 시뮬레이션의 분석.

<분석 완료>

완료 후, 눈앞에 나타나는 수많은 환영.

그것들은 달려드는 비군에 대응하는 최적의 수를 찾아내고 있었다.

‘가만. 지금 이자를 처리하게 되면…….’

점점 그림자가 사라지는 가운데, 설휘는 생각했다.

자신보다 월등히 강한 게 아니라면, 이 시뮬레이션은 이자를 없애는 최적의 경로를 알려줄 것이다.

만약 지금 이자를 죽이게 되면 어떻게 될 것인가.

분명 그 책임은 자신이 고스란히 지게 될 거다.

상대가 자신에게 싸우려 들지 않았던 것도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이 아닌가.

<우측 횡이동과 동시에 초열권마공 2초식 사용> <검을 꺼내, 좌측 방향으로 사선 베기(검기 사용)>

설휘의 생각이야 어쨌듯, 결과값이 나왔다.

두 가지 연계된 초식.

하지만, 적을 죽일 게 아니라면, 완벽하게 따라 해선 안 된다는 걸 알고 있었다.

<멈췄던 시간이 다시 흐릅니다.>

다시금 싸움이 재개되자, 저돌적으로 달려드는 비군.

설휘는 시뮬레이션에 나와 있는 동작으로, 옆으로 비켜서며 초열권마공 2초식.

화용섬(火龍閃)을 펼쳤다.

화아아악!

어깨부터 피어나오는 열기는, 손을 내미는 방향을 따라 뻗어갔다.

쩌어엉!

그리고 지근거리에서 터져 나온 큰 울림.

‘스쳤다.’

시뮬레이션이 보였던 영상 그대로다.

비군은 열기를 뒤집어쓴 채 휘청거리고 있었다.

곧장 반격하려던 그가, 자신이 쏘아낸 열기 때문에 주춤거리고 있는 것이다.

화용섬은 단순히 열기를 쏟아내는 것을 넘어, 거의 공간 한 면의 전부를 덮은 화력을 가지고 있었다.

협소한 공간 영향도 한몫했고.

챙.

설휘는 곧장 검을 꺼냈다.

그리고 시뮬레이션에 나와 있는 대로 지체 없이 검기를 뿌렸다.

다만, 상대를 죽일 생각이 아니라서 시뮬레이션이 보였던 위치가 아닌, 약간은 아래로 쏘아냈다.

“크윽!”

쩌저어엉!

설휘의 검기가 쏘아짐을 보자마자, 그는 벽을 부수며 필사적으로 탈출했다.

그럼에도, 타격이 있었다.

그가 흠칫하던 사이, 자신이 쏘아낸 검기가 그의 허벅지 한쪽을 베고 지나간 것이다.

“어, 어떻게 이런…….”

당혹감과 황당함이 뒤섞인 표정.

마당까지 밀려 나가, 주저앉은 그의 얼굴에 황당함이 깃들여 있었다.

아마도 자신이 이 정도로 강할지 전혀 예측하지 못한 듯 보였다.

<회심의 일격 적중! 설휘 님이 ‘비군’에게 70만의 피해를 입혔습니다.>

비군 [사적대장]

체력 480만(↓70만)/550만

확연히 줄어드는 상대의 체력.

이제 설휘는 전투방식을 자연스럽게 바꿨다.

시뮬레이션은 한 번 사용했기 때문에 이번엔 다른 방식으로 싸워야 했다.

가급적 자신이 통제할 수 있는 방향으로.

전투방식 턴제

“지금 상황에서 어울리는 질문은 아닌데 말이지.”

설휘는 부서진 벽으로 천천히 걸어 나갔다.

그리고 여전히 경직된 표정을 살피며 그에게 조심히 말을 걸었다.

“그래도 오해하지 말고 들었으면 좋겠다.”

솔직히 염치없지만.

이 상황에서 어울리지도 설득력이 있다고도 할 수도 없지만.

그래도 이 녀석밖에 없었다.

“방금 내가 무슨 말을 했는지 좀 알려줄 수 있을까?”

그 괴상하게 생긴 ‘(´▽`)ノ’이 모양의 뜻을 말해줄 사람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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