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5화. Part 2. 사적대장의 등장(4)
어쩌면 기대하고 있었는지 모른다.
사적대장 비군과 싸움을 피할 수 있었음에도 그를 붙잡은 건, 설휘 스스로의 힘을 시험하고 싶어서였다는 걸.
600만, 지금은 700만을 넘는 전투력.
자신과 비교해 과연 어느 정도인지, 얼마나 차이가 나는지를 말이다.
“가, 감히 날…….”
오히려 몹시 붉어진 얼굴로, 굉장한 적대감을 드러내는 게 보인다.
서로 능력을 확인했으니, 이쯤에서 ‘화해하지 않을래?’라며 말을 건네고 싶었지만, 비군은 전혀 그럴 의사가 없어 보였다.
‘그러니까 그게 대체 뭔데!’
이상한 문양이 가리키는 것.
소령도 굉장한 거부감을 느끼던 그게 무엇을 뜻하는지 궁금했다.
하지만 분위기상 더는 물을 수 없었다.
‘이리된 거, 먼저 선공을 날려야 하나.’
막상 싸우려고 하니 비군은 자신에게 껄끄러운 상대였다.
그는 체력, 내공, 전투력 등. 자신에 비해 뭐하나 떨어지는 게 없다.
더욱이 나름 일격을 날렸음에도, 비군의 전투력 역시 줄지 않았다.
타타탓.
‘온다.’
상대의 움직임을 확인하며 설휘의 시선이 옆으로 움직였다.
쩌어어엉!
일순, 설휘의 검신에서 불꽃이 튀었다.
다가온 비군의 검을 가까스로 막으며, 방어해 낸 것이다.
빨랐다.
상대의 움직임이 자신의 예상을 뛰어넘는다.
허벅지가 베였음에도, 눈으로 좇기 힘들 정도의 움직임을 냈다.
“반드시…… 널 죽여주마.”
서로 검을 맞댄 사이에서 일그러진 비군의 표정이 보였다.
안 그래도 부담스럽게 생긴 얼굴이, 더 흉물스럽게 느껴진다.
“그 전에 내가 뭐라 말했는지 좀 알려줬…… 읍!”
캉!
간단한 대꾸를 하기도 전에 설휘의 신형이 뒤로 밀려 나갔다.
상대의 강한 내력에 밀려난 것이다.
사사삭.
호흡을 가다듬을 새 없이, 비군은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자신을 중심에 두고 횡으로 움직이던 그는, 의도적으로 발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탓. 타닥. 탁.
발소리는 그의 움직임에 따라 가변적으로 들려왔다.
보통은 보폭의 이동거리에 따라 소리도 일정해야 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비군은 그걸 이용하고 있었다.
파파파팟.
빠른 움직임과 달리 발소리는 늦게 들렸고, 움직임이 느려졌을 때는 오히려 발소리가 빠르게 들렸다.
체공 시간과 속도를 이용한 수법으로.
보이는 시각과 들리는 청각의 불일치로 혼란을 주는 경공술이었다.
그렇게 상대를 좇던 한순간.
쇄애액!
예상치 못한 찌르기가 비군의 검을 타고 펼쳐졌다.
기습적인 검기(劍氣)였다.
“흡!”
이미 예상하던 설휘가 피해내자, 그사이 비군은 허공에 떠 있었다.
“……?!”
곧장 검기로 반격하려던 설휘의 눈이 껌뻑였다.
비군은 디딜 게 없는 공중에서도 어디론가 사라진 것이다.
‘무슨 저따위 경신술이…….’
설휘는 마냥 당황하고 있을 여유가 없었다.
이미 적의 움직임이 지각되기도 전에 이번엔 반대쪽 공중에서 검기가 날아왔으니까.
팟.
가까스로 대응해, 검기를 피해낸 설휘.
뭔가 잘못됐다는 건, 바로 그때쯤이었다.
‘이런!’
[경고! ‘비군’이 설휘 님의 빈틈을 발견했습니다. 어떻게 대응하시겠습니까?]
▶ 맞대응한다.
▷ 방어한다.
▷ 도망간다.
‘충분히 맞받아칠 수 있다.’
눈앞의 문구에 설휘는 자신했다.
재빨리 허공에서 허공으로 이동했지만, 그가 어디에 있는지 알고 있었다.
이럴 때는 물러서는 것보다 맞대응하는 편히 더 나았다.
괜히 방어하거나, 도망갔다가 적에게 또 다른 기회를 줄 수도 있었으니까.
<‘맞대응한다’를 선택하셨습니다.>
멈춘 시간이 다시금 흐르기 시작했다.
상대가 세 번째 검기를 날리던 순간이었고, 설휘 역시 동시에 맞받아치는 선택을 했다.
쩌어어엉!
강력한 기의 공명.
하지만, 내력에서 밀린 설휘의 신형이 뒤로 쭉 밀렸다.
어지러움에 머리를 한 번 흔드는 그때.
또 그것이 떴다.
[경고! ‘비군’이 설휘 님의 빈틈을 발견했습니다. 어떻게 대응하시겠습니까?]
‘제길.’
설휘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이번엔 상대의 움직임을 놓쳐 맞받아치기엔 위험했다.
최대한 안전한 대응을 해야 했다.
<도망간다를 선택하셨습니다.>
눈앞에서 번쩍임과 함께 잠깐이나마 상대가 검을 휘두르는 장면이 보였다.
그래서 충분히 피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거리감과는 달리, 너무도 빠른 그의 찌르기에 연속으로 어깨와 허리를 베이고 맞았다.
<일격 적중! ‘비군’이 설휘님께 일부 피해를 입혔습니다.>
체력 68만(↓3만)/71만
“큭.”
아파할 시간이 없었다.
연속 공격을 해대는 상대의 공세를 막아내기에도 버거웠다.
예상대로 한번 내준 기회는.
계속된 위기를 불러왔다.
<일격 적중! ‘비군’이 설휘 님께 일부 피해를 입혔습니다. 5만!>
<일격 적중! ‘비군’이 설휘 님께 일부 피해를 입혔습니다. 4만!>
“크읍.”
상대로부터 연속적으로 쏟아져 들어오는 검기와 마공.
이는 단순히 검기를 뿜어내는 속도 때문만이 아니었다.
상대 역시 운용하는 무공은 설휘와 같은 일원소마공.
무공 특성상, 같은 무공을 쓴다면 기선을 누가 잡느냐에 따라 유리함을 가져올 수 있다.
일원소마공은 상대의 반응에 따라 대응한다는 것이 오히려 더 낭패로 이어질 수 있기에.
<일격 적중! ‘비군’이 설휘 님께 일부 피해를 입혔습니다.>
체력 35만(↓33만)/71만
‘큰일이다.’
설휘는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전투력이 비슷한 탓에, 상대의 움직임이 예측을 벗어나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이렇게 따라가기에도 버거운 건, 바로 저놈의 보법 때문이다.
‘대체 무슨 보법인 거지?’
느려졌다가 빨라지고, 지면을 딛지 않아도 방향전환을 빨리한다.
체공 시간도 제멋대로 조율할 수 있어, 자신의 호흡을 뺏고 정신을 흔들었다.
“큭!”
<일격 적중! ‘비군’이 설휘 님께 일부 피해를 입혔습니다.>
이번에도 당했다.
치명상을 피했지만, 계속된 자상이 점점 많아지고 있었다.
“별것도 아닌 게 설쳐댔느냐!”
승기를 잡았다고 생각했는지, 비군이 노골적으로 비웃었다.
처음엔 질지 모른다고 생각했으나, 직접 싸워보니 별 것 아니게 느껴진 것이다.
‘방법을 바꾸자.’
설휘는 심법을 운용하며, 끌어올린 내공을 손과 발로 보냈다.
그러자, 밟고 있는 지면과 손에 든 검신을 타고 새하얀 한기가 퍼져 나왔고.
쩌저저적. 콱!
지면이 쪼개지다 튀어 오르며, 희미한 안개가 형성됐다.
경화(硬化).
소신수마공의 숙련도가 초급단계에 들어서 사용하게 된 기술이다.
몸과 검을 통해 나온 미세한 결빙조각들이 공기 중에 투과된다.
어떤 대상이라도 오 장 이내에 휘말리게 되면, 일시적으로 굳어버리는 효과를 가지고 있었다.
내공소모가 극심하지만, 비군같은 특수한 경공술을 사용하는 자를 잡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었다.
‘빙원결갑.’
쩌저저적.
설휘의 가슴 주위로 생성되는 또 다른 희미한 결계.
소신수마공의 또 하나의 능력이라 할 수 있는 호신강기였다.
“제대로 할 마음이 생겼나 보군.”
심상치 않은 설휘의 기운을 느껴서인지, 비군은 멀찍이 떨어져 입을 열었다.
그리고 그 역시 이전과 다른 방식의 싸움을 준비하고 있었다.
‘화공인가.’
화르르르.
설휘의 눈에 그의 변화가 감지되었다.
비군의 검 끝에서 피어나온 불.
그런데 보통의 화공과는 좀 느낌이 달랐다.
일반적으로 붉고 새파란 색을 띠는 데 반해, 그의 화공은 푸른빛을 내고 있었다.
또한, 검신을 타고 팔과 어깨로 이동하고 있었다.
마공의 성취가 높다는 방증이었다.
‘이거 진짜 쉽게 끝나진 않겠는데…….’
확실히 비군은 초절정에 오른 고수다웠다.
은영단의 무공뿐만 아니라, 괴이한 무공들을 알고 있는 걸 보면.
“이쯤 되었으면 솔직히 말해보시지.”
일촉즉발의 상황.
일정 거리까지 걸어온 비군이 말을 걸어왔다.
“……뭘 말이냐?”
“굳이 이렇게 나에게 도발을 건 이유가 무어냐?”
비군의 말에 나름대로 설득력이 있었다.
그가 자신을 만나러 온 것이긴 했지만, 사실 도발한 건 설휘 그 자신이었기 때문에.
물론 설휘에게는 굳이 찾지 않아도 나름 합당한 이유가 있었다.
다만, 그 변명은 선택창이 나와서 어쩔 수 없었다고 납득시키기엔 불가능할 터.
“다들 만만히 보더라고.”
“……?”
“우리 사령대를 말이지. 그래서 이번에 교육 좀 해주려고.”
“……결국, 수하들의 열등감 때문이란 말인가?”
“편할 대로 생각해.”
쩌저저저적.
설휘는 소신수마공의 힘을 검 끝에 집중시켰다.
이전과 달리, 이번엔 자신이 먼저 움직일 생각이었다.
“앞으로 우리 애들을 건드리면…….”
비군의 거리를 가늠한 그는, 뒤이어 한마디를 남기고.
“다, 뒈지는 거야.”
파파팟.
움직였다.
떨어져 있는 그의 방향으로 재빨리 다가갔다.
비군은 이전과 같이 횡으로 이동했고, 이번엔 설휘가 쫓아갔다.
‘무흔귀신보.’
교육단주가 준 은영단의 독문무공.
비군도 당연히 알고 있을 법한 보법이다.
하나, 알고 있다고 해서 파훼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이 보법 역시 속도를 제어할 수 있기에.
“하앗!”
상대가 근처에 있다는 걸 감지한 순간, 설휘의 검이 세차게 바닥을 내리쳤다.
그저 단순한 휘두르기가 놀라운 공격으로 변하기 시작한 건, 극히 짧은 시간이었다.
퍼퍼퍼퍽!
검을 따라, 지면과 허공에서 빙결의 기운이 사방으로 비산했다.
빙사(氷紗)의 기운이다.
한기가 극도로 발현된 탓에, 그저 검을 휘두르기만 해도 검기와 유사한 효과가 발현된 것이다.
아니, 훨씬 더 광범위하고 강력했다.
“쳇.”
화공을 운용하던 비군은 급히 물러섰다.
직감적으로 주변에 흩날리는 미세한 가루들이, 자신의 움직임을 묶어 버릴지 모른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리고 그건 설휘의 눈에 정확히 포착됐다.
‘잡았다.’
“하앗!”
쩌저저저저적!
설휘는 빠르게 한기 어린 빙사의 기운을 비군에게 뿜어냈고, 비군 역시 불을 머금은 검기를 쏘아내며 대응했다.
<일격 적중! ‘비군’이 설휘 님께 큰 피해를 입혔습니다.>
<일격 적중! 설휘 님이 ‘비군’에게 큰 피해를 입혔습니다.>
서로 큰 피해는 받았고.
[기회! 설휘 님이 ‘비군’의 빈틈을 발견했습니다. 어떻게 대응하시겠습니까?]
[경고! ‘비군’이 설휘 님의 빈틈을 발견했습니다. 어떻게 대응하시겠습니까?]
경고와 기회도 동시에 얻었다.
▶ 무공을 쓴다.
‘어? 하나네?’
공방이 치열해서 그런 걸까.
예전과 달리 이번에 선택할 수 있는 건 무공을 쓴다, 이것 하나였다.
<어떤 무공을 쓰시겠습니까?>
▶ 일원소마공
▷ 소신수마공
또한, 검을 들었기 때문인지, 하위 선택의 종류는 두 가지였다.
이런 경우 고민할 필요는 없었다.
소신수마공이 일원소마공보다 훨씬 더 강력하니까.
<소신수마공을 사용합니다.>
일 초식, 빙하월을 씁니다.
안내와 함께 자신이 의도하지도 않았는데도 소신수마공 1초식.
빙하월(氷河月)을 쏘았고.
동시에 상대의 화공을 맞았다.
<회심의 일격! 설휘 님이 ‘비군’에게 큰 피해를 입혔습니다.>
<일격 적중! ‘비군’이 설휘 님께 큰 피해를 입혔습니다.>
비군 [사적대장]
체력 180만(↓300만)/550만
설휘 [사령대장]
체력 18만(↓41만)/71만
“컥!”
신음소리와 함께 설휘와 비군의 몸은 크게 휘청였다.
서로의 공격을 정통으로 맞고서도 쓰러지지 않은 까닭이다.
하지만 정신을 차렸을 땐, 비군보다 설휘의 표정이 훨씬 더 어두웠다.
바로 월등하게 높은 상대의 체력 때문이었다.
자신이 상대보다 훨씬 더 강력한 피해를 줬음에도 체력에서 그리고.
비군 [사적대장]
체력 180만(↓300만)/550만
내공 348만(↓77만)/420만
설휘 [사령대장]
체력 18만(↓41만)/71만
내공 7만(↓114만)/121만
내공에서도.
차이가 극명하게 두드러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