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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육성 시물레이션-66화 (67/379)

66화. Part 2. 사적대장의 등장(5)

그동안 하나 간과했던 게 있었다.

생존을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이 전투력이라는 믿음이었다.

하여 모든 역량을 전투력을 올리는 데 집중했고, 상대적으로 체력과 내공은 조금 등한시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 보니 이런 결과가 나타났다.

상대와 체력만 비등했다면 충분히 이길 수 있는 싸움이 오히려 불리하게 진행되고 있었다.

적에게 훨씬 더 큰 피해를 줬음에도, 오히려 자신이 위기에 봉착해버린 것이다.

‘겨우 7만…….’

많은 내공을 요구하는 소신수마공을 거듭 사용한데다, 인위적으로 생성한 방어갑옷인 빙운결갑 역시 내공을 갉아먹었다.

그러다 보니 100만이 넘던 내공이 7만으로 뚝 떨어져 버렸다.

“뭔가 문제가 생긴 모양이군.”

설휘가 펼치던 소신수마공의 힘이 약해진 탓일까.

비군은 설휘의 상태를 한눈에 알아보았다.

그리고 더는 대화를 걸지 않고, 매섭게 달려들었다.

‘제길.’

파파파팟.

설휘는 다시금 경신술을 펼치는 비군을 보며 이를 악물었다.

체력이 떨어지니 집중력도 약해졌다.

이전에는 간헐적으로 보이던 그의 보법이, 지금은 전부 흐릿하게 변하고 있었다.

<일격 적중! ‘비군’이 설휘 님께 일부 피해를 입혔습니다. 1만>

“큭!”

<일격 적중! ‘비군’이 설휘 님께 일부 피해를 입혔습니다. 1만>

“읍!”

계속되는 적의 맹공.

설휘는 조금씩 무너지고 있었다.

처음엔 집중력.

다음은 반응속도.

그다음은 대응 자세까지.

‘한 번…… 한 번으로 끝낸다.’

위기에 몰린 설휘의 생각은 결국 한 곳으로 향했다.

이 순간을 단번에 역전시킬 수 있는 무공.

절대적인 힘이며 동시에 내공을 사용하지 않는 무공이 있었다.

풍신(風神) : → N(중립) ↓↘, A <4.5배속>

자신이 펼칠 수 있는 최고의 기술.

성공만 한다면, 일격에 이 녀석을 제압할 수 있을 것이다.

허나, 문제는.

제대로 펼칠 기회와 성공확률이 그리 높지 않다는 것.

‘불러들여야 해. 좀 더. 좀 더 가까이…….’

<일격 적중! ‘비군’이 설휘 님께 일부 피해를 입혔습니다. 0.3만>

<일격 적중! ‘비군’이 설휘 님께 일부 피해를 입혔습니다. 0.7만>

설휘는 계속된 피해를 입으면서도 이 기술을 제대로 펼치는 데 집중했다.

훈련대로만 한다면, 기술 성공 가능성은 절반 이상.

이 정도라면 한 번 도박을 걸어볼만 했다.

쾅!

한 번의 격돌.

쾅!

또 한 번의 격돌.

“……!”

세 차례 격돌하던 그 순간, 설휘에게 원하던 기회가 찾아왔다.

아니, 사실 의도적으로 만들어냈다.

비군을 향해 들고 있던 검을 냅다 던져버렸기 때문이다.

‘기회.’

그 순간, 설휘는 빠르게 몸을 굽히며 앞으로 전진했다.

이제껏 연습했던 풍신 기술.

머리를 아래로 숙이면서 부드럽게 앞으로 나가면서 오른 주먹을 뻗은 것이다.

그러자.

“…….”

“…….”

적막이 흘렀다.

황당함과 어이없음에 물드는 비군의 얼굴.

그리고 난감하게 변한 설휘의 얼굴이 한번 교차하였고.

“너 뭐하냐?”

“하하…….”

설휘의 멋쩍은 웃음은 길지 않았다.

콰아앙!

불에 휩싸인 맹렬한 검기가, 설휘의 몸을 정통으로 강타해버렸다.

<회심의 일격! ‘비군’이 설휘 님에게 치명적인 피해를 입혔습니다.>

설휘 [사령대장]

체력 3,200(↓12.8만)/71만

“크악!”

설휘의 몸이 바닥에 뒹굴었다.

가슴을 보호하던 빙원결갑이 부서졌고, 강한 충격에 자리에서 일어나지도 못했다.

풍신권(風神拳)은 완벽히 실패한 것이다.

“…….”

말없이 다가오는 비군.

느긋한 발걸음이 마치 승리를 확신하는 듯 보였다.

‘제기랄.’

설휘는 후회했다.

오로지 강해지기 위해 노력했던 지난 나날들.

전투력에 모든 걸 쏟다 보니, 결국엔 체력과 내공이 없는 이런 사태가 일어난 것이다.

조금만 더 있었으면 필시 이길 수 있는 상대를 두고.

“김새는군.”

비군은 쓰러진 자신을 보며, 비웃고 있었다.

“명색이 사령대를 대표하는 녀석이 검을 던지는 추태라니. 수하들에게 부끄럽지도 않은가?”

“…….”

“하긴, 부끄러움을 아는 녀석이라면 가면을 썼겠나. 쯧쯧. 참으로 한심한 녀석을 상대하군.”

그의 비아냥에 설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상대의 지적이 아니더라도 이번엔 진심으로 부끄러웠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런지 혀를 차며 돌아선 비군의 목소리가유독 크게 들렸다.

“어?”

그렇게 뒤돌아서던 비군의 걸음이 멈췄다.

어느새 누워있던 녀석이 다시 자리에서 일어서 있었다.

“아서라. 깜냥도 되지 않는 녀석이 뭘 할 수 있단 말이냐.”

설휘는 이를 악물고 있었다.

꺼내기 싫었지만 할 수 없었다.

저놈을 지금 완벽하게 박살 내지 않으면, 두고두고 후회할 것 같으니까.

“할 수 없군. 천마 제자님을 봐서 죽이지는 않겠지만…….”

비군이 검을 고쳐잡았다.

어느새 그의 검 끝에서 마기가 몰려들고 있었다.

“한쪽 팔이라도 불구로 만들 수밖에.”

전투방식 AI제

전투방식을 선택하자마자, 눈앞에 있던 비군이 사라졌다.

자신이 따라붙기 힘든 속도의 경공술.

그리고 어느새 눈앞에 와 있었다.

멀어졌던 거리가 단숨에 좁혀진 것이다.

그리고.

<인공지능이 개입하여 전투를 시작합니다.>

쩌적.

인공지능이란 글이 나오자마자, 설휘가 느낀 건 지축의 흔들림이었다.

가가가각.

딛고 있던 땅에서도 균열이 생겼다.

뇌전의 힘이 같이 동반되어 생겨난 현상이었다.

콰아앙!

동시에 굉음과 함께 생성된 일대폭풍이 수십 장 높이로 치솟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눈앞에 모든 것을 휘감아 날려버렸다.

“아…….”

설휘는 진심으로 놀랐다.

풍신.

자신은 실전 상황에서 쓰기도 버거운 기술을.

인공지능이 깨어나자마자,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발현되었다는 걸.

단 한 방에, 비군을 끝내버린 것이다.

“뭘 시답잖은…….”

인공지능의 첫마디 말과 함께.

* * *

<‘비군’을 어떻게 처리하시겠습니까?>

기절과 살인.

인공지능이 두 가지 선택을 제시하지 않았더라면, 분명 그를 죽였을 테지.

언뜻 정신을 돌아온 비군.

자신의 옆에 설휘가 있다는 걸 깨닫자, 흠칫 몸을 떨었다.

“내가 당한 건가…….”

하지만 발작은 곧 사그라들었다.

조금 전, 상대의 경천동지한 무공을 상기하자 형용할 수 없는 무력감이 느껴진 탓이다.

“뭐, 그런 거지.”

설휘는 상대를 쓰러뜨려도 그다지 즐겁지 않았다.

자신의 능력으로 쓰러뜨린 게 아니다.

AI가 개입해서 이긴 것이 아닌가.

“자네가 마지막에 썼던 무공. 혹 그거 사대극마공이 아니었나?”

비군의 말에 설휘는 고개를 끄덕였다.

“뭐, 비슷하지.”

“아…….”

비군은 여전히 바닥에 대(大)자로 뻗은 채로 누워있었다.

여러 감정이 들 것이다.

사대극마공을 익힌 사령대장이 있다는 것. 상대가 얼마나 강할지 모른다는 것.

그리고 그건 설휘, 자신도 마찬가지였다.

AI 능력에 도움을 받지 않는 자신의 수준은 어느 정도인가.

아니, 언제까지 이런 능력에 기대서 싸워야 하는 건가.

AI와 자신의 격차는 과연 어느 정도 차이가 나는 걸까.

그 생각에 빠져 있던 설휘는 자신도 모르게 한마디 내뱉었다.

“운이 좋았다.”

“위로인가?”

“맘대로 생각해.”

설휘는 왠지 모르게 마음이 가벼워졌다.

조금 전 상대가 자신에게 했던 모욕적인 말들도, 그다지 생각나지 않았다.

“태황각주에 대해서 좀 듣고 싶군.”

설휘가 묻자 비군은 갑자기 입을 닫았다.

조금 시간이 흐른 후, 설휘가 다시 한번 질문하려는데, 의외로 그가 먼저 답했다.

“뭐, 그건 이미 다 아는 내용 아닌가? 최근 주시하던 우리 쪽 애들이 몇 명이 죽은 거.”

‘......뭐?!’

당했다니?

벌써 태황각주와 전쟁이 일어난 건가?

설휘는 이어진 비군의 말에 좀 더 집중했다.

“뒷얘기를 더 해보자면, 좀 더 조사해보려 했지만 곤마께서 막으셨다. 우리 쪽 희생이 있었음에도 깊게 관여하는 걸 거부하셨다면, 분명 나름의 고충이 있었을 터. 난 그렇게 짐작할 뿐이지.”

‘보통 일은 아니군.’

아마도 이건 자신과 관계된 일일 것이다.

곤마에게 태황각주의 약점을 알려준 사람이 자신이니까.

그런데 무슨 일이기에, 사적대원들을 투입한 거지?

자신이 이런저런 생각에 빠져 있자, 비군이 날 쳐다보며 말했다.

“솔직히 말하지. 사실 난 네가 어떤 녀석인지를 알고 싶었다. 쓸모없는 녀석이라면 네 부대원들도 흡수하고 싶었고. 그래서 소령이란 네 조장을 도발했지. 다만 내 수하들이 그런 추잡한 짓거리를 하리라곤 생각지 못했다. 그 점은 사과하마.”

“…….”

설휘는 비군이 어떤 의미로 얘기하는지 궁금했다.

그냥 솔직한 말로 사과하려는 건지, 아니면 그때 가면의 주인이 너라는 걸 스스로 밝히라고 유도하려는 의도인지 말이다.

그렇게 한참을 고민하던 설휘가 말했다.

“뭐, 나도 잘한 일이 아니니.”

“……!”

비군의 눈이 커졌다.

설마하니 스스로 밝힐 줄은 몰랐던 듯, 누운 자세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다.

“모른 척했어도 됐을 텐데?”

“비군. 우리의 적은 이 주변에 있지 않다.”

“…….”

잠시 대답이 없는 비군.

설휘는 착용하고 있던 가면을 천천히 벗었다.

“너…….”

당황한 비군의 얼굴이 보인다.

굳이 왜 자신의 얼굴을 드러내냐는 뜻일 거다.

사실, 얼굴을 숨길 생각은 없었다.

가면을 쓴 이유 중 첫 번째는 소령과 마주치지 않기 위함이었고, 멀리 본다면 미래에 있을 태황각주에 대비하기 위함이었으니.

‘어?’

그런데 가면을 벗자, 눈앞에 정보창이 떠올랐다.

<‘비군’의 관심도가 올랐습니다.>

점수 : 50점/100점 (우호적)↑

‘좋은 건가.’

호감도가 아닌 관심도라는 게 조금 의아하지만, 그래도 긍정적이다.

그와 친하게 지내서 나쁠 것 없으니까.

설휘는 이왕 이런 게 떴으니 내친김에 한번 물어보기로 했다.

“오해하지 말고 들었으면 하는데…….”

“……?”

“자네가 내 거처로 찾아온 후, 처음 나가려고 했을 때 기억나는가? 그때 내가 했던 그 말 말이지. 그게 어떤 뜻인지…….”

“뭐?! 대체 날 어디까지 희롱할 셈이냐!”

<‘비군’의 관심도가 하락했습니다.>

점수 : 30점(조금 우호적)

‘아이 씨.’

얼굴에 역력하게 드러난 분노.

설휘는 그걸 보고 급히 말을 돌렸다.

“아니, 그게 미안하다고. 내 뜻이 아니란 말일세!”

“당연히 그래야지. 맞다면 자넨 나와 생사결을 하게 될 테니.”

‘……뭔지 몰라도 끔찍하군.’

설휘는 다짐했다.

이제부터 그와 관련된 말을 꺼내지도 않겠다는 걸.

으윽.

자리에서 힘겹게 일어서는 비군.

그는 잠시 자신을 보며 고개를 갸웃했다.

“가면은 그렇다 하더라도…… 다음엔 복장을 좀 바꿔입게.”

“대장복이라 따로 받은 건 없는데?”

“옷장 있지 않나? 한번 열어보게. 거기에 여벌의 복장이 있을 걸세. 원하는 걸 선택할 수도 있고.”

‘선택할 수 있다고?’

무슨 뜻으로 말한 건지 이해하지 못한 설휘.

갑자기 옷장이란 말이 왜 나오는 것인가?

그런데.

그때 눈앞에 뭔가가 뜨기 시작했다.

<축하드립니다. 거처의 옷장에서 여러 물품을 선택하실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걸 보자 설휘는 한 가지를 알게 되었다.

방금 비군과 나눈 마지막 대화.

‘옷장에 있지 않나?’라는 그 대답은 통상적인 그의 생각이 아니라, 알 수 없는 존재가 개입된 대답이었다는 걸.

* * *

‘옷장. 옷장에 무엇이 있는 건가?’

비군과 헤어지자마자, 설휘는 거처의 옷장부터 찾았다.

직감적으로 그가 했던 말이 자신에게 어떤 길을 알려주려는 것 같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아…….’

그리고 그 생각은 정확히 들어맞았다.

이전에 아무런 반응도 없던 옷장.

그곳에 갑자기 이런 문자가 튀어나왔으니까.

<어떤 옷을 고르시겠습니까?>

▶ 가면

▷ 복장

▷ 신발

처음 보는 유형의 질문.

그래서 더 호기심이 일었다.

저것들은 무엇을 뜻하는 걸까?

고민하던 설휘는 첫 선택은 ‘가면’이었다.

<어떤 가면을 고르시겠습니까?>

▶ 해골

▷ 호랑이

▷ 밀리터리

가면에도 세 종류가 있었다.

특이한 지문을 눈에 담은 설휘는, 다시 첫 지문으로 돌아왔다.

그러고 나서 이번엔 ‘복장’을 선택하자.

<어떤 복장을 고르십니까?>

▶ 사령대장 복장

▷ 노랑 쫄쫄이 츄리닝

▷ K-밀리터리 룩

이런 세 개의 지문이 떴다.

‘쫄쫄이, 츄리…… K-밀리터리?’

설휘의 시선은 두 번째와 세 번째 지문에 머물렀다.

무슨 뜻인지 모르지만, 뭔가 더 호기심이 가는 복장.

전혀 의미를 알 수 없는 세 번째, ‘밀리터리 룩’을 선택해보았다.

<착용합니다.>

그리고 눈앞이 환하게 밝아짐과 함께 자신의 복장이 변했다.

“와 이거…….”

생경한 색감. 입고 있던 옷.

아니, 옷이라 하기엔 뭔가 초록색 무늬와 화강암처럼 죽죽 그어진 연녹색 표식들이 시선을 사로잡았다.

더욱이 허리에 복대처럼 뭔가 단단히 매어져 있는 건 또 뭔가?

“이거…….”

면경 앞에 선 설휘는 입을 쩌억 벌렸다.

흡사 자연색을 몸에 두른 것처럼, 태어나 한 번도 경험해본 적 없는 독특한 복색을 하고 있었다.

자신의 옷을 한참 바라보던 설휘는 심각한 얼굴로 한마디를 내뱉었다.

“생각보다 괜찮은데?”

그리고 씨익 하며 웃어보였다.

왠지 모르지만, 괜스레 기분이 좋아지는 복장이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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