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7화. K-밀리터리 룩(1)
옷장에서는 크게 3가지.
가면, 복장, 신발을 선택할 수 있다.
<어떤 신발을 고르십니까?>
▶ 거죽신
▷ 실내화
▷ K-군화
그리고 세부 목록 역시 전부 3가지였다.
거죽신 처럼 흔히 신는 신발이 가장 눈에 띄었지만, 뜻을 이해할 수 없는 신발도 있었다.
그중에서 특히 군화에 눈길이 갔다.
“와…….”
군화를 선택하는 순간, 자연스럽게 생겨난 신발을 보고 설휘는 감탄을 내뱉었다.
훌륭한 착용감.
거기다 조금 걸어보니 편안함 또한 대단했다.
종아리 아래까지 올라오는 보호대를 슬쩍 만져보니 재질도 범상치 않았다.
가죽처럼 느껴지긴 하는데, 또 표면은 딱딱한 데다 말발굽 같은 단단한 받침대가 박혀 있다.
“내일은 이걸 한번 착용하고 가볼까…….”
설휘는 처음 선택으로 돌아간 뒤, ‘가면’을 선택했다.
그리고 3가지 중 밀리터리를 선택했고.
<밀리터리 가면을 착용합니다.>
“오오…….”
면경을 보자, 감탄이 새어 나왔다.
동물 그림의 가면이 아닌, 남색, 흑색, 황색으로 칠해진 가면이었기 때문이다.
“이거 쥑이는데?”
면경 앞에 선 설휘의 표정이 밝아졌다.
이 정도로 어둡고 눅눅한 색상이라면, 심야에도 활동하기 편할 것 같았다.
단순한 흑의(黑衣)보다는 이렇게 자연에 가까운 색이 더 눈에 띄지 않는 법이니까.
“그나저나 이건 어쩌냐…….”
설휘는 사람 크기만큼이나, 뚫려 있는 벽을 바라보았다.
비군과 싸우다가 부서진 벽.
난처하긴 하지만, 그렇다고 다른 거처로 옮길 수는 없는 상황이다.
“에이. 일단 한숨 자고 생각해 보자.”
설휘는 그대로 침대에 누웠다.
늘 그렇듯 ‘저장하기’가 떴고, 설휘는 두 번째 공간에 덮어썼다.
한 달에 한 번씩.
혹여 갑작스러운 죽음이 일어날 수 있으니, 바로 전 시점으로 돌리기 위한 대비 차원으로 시간을 기록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그날도 빠르게 눈을 감았다.
겨울이라 그런지 침구 속이 유난히 따뜻했다.
* * *
한숨 자고 일어난 설휘는 눈을 의심했다.
다짜고짜 시간이 정지되어 있었고, 몸을 움직일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잠시 뒤, 황당한 상황이 눈앞을 스쳐 갔다.
무사 수행 때 함께했던 목수, 석두가 한 손에 망치를 쥔 채 크게 웃고 있는 모습이었다.
[석두]
“형님. 새벽에 와보니 문짝이 부서져 있어 급히 보수했습니다.”
간단한 대화가 끝나자 멈췄던 시간이 다시금 흘러갔다.
그리고 다시 몸을 일으킬 수 있게 된 설휘의 눈에 들어온 것은 바로 보수된 벽면이었다.
사람 크기만큼 뚫려 있던 벽면이 본래대로 복구되어 있었던 것이다.
“하, 참…….”
뭔가 어이가 없는 현상.
하지만 또 나름 거기에 익숙해지다 보니 그다지 위화감이 느껴지지 않았다.
시간의 흐름이 제 마음대로 흘러가는 것 같다가도, 필요할 때는 또 평소처럼 흘러가니.
그래서 그런가.
눈앞에 다시 뭔가 뜨는데, 이번엔 괜히 궁금해진다.
[이른 아침, 사령대 조장들은 ‘설휘 님이 비군을 쓰러트린 소식’을 접합니다.]
누가 소문을 흘린 건지, 이런 게 떴고.
이후에 사령대 수하들의 모습과 각각 반응이 눈앞에 펼쳐졌다.
[용진]
“대장께서 비군 대장을 쓰러뜨렸다고?”
“좀 다르다고 생각하긴 했었지.”
“돌이켜보면, 우리와 싸울 때도 손속에 나름 사정을 두는 것 같았어.”
용진의 반응이 보인다.
누군가 그에게 보고한 것 같았고, 그는 약간 상기된 듯이 얘기했다.
[적송]
“소문이 확실한가?”
“놀랍군. 그 정도일 줄은.”
“정말 우리가 원하던 인물이 온 것일까…….”
적송은 나뭇가지 위에 앉아 있었다.
소식을 전해 들은 그는 놀라운 반응을 애써 감추려는지, 각진 턱을 꾹 닫고는 수련에 집중했다.
[요림]
“과연. 범상치 않다고 여겼지만…….”
“앞으로 사적대와는 큰 문제 없겠지?”
“잘 모셔야겠군.”
냇가에서 세안 중이던 그는 잠깐 동작을 멈추고 대답했다.
[소령]
“그래서…… 어쩌자고?”
“화가 난 게 아니라, 그냥…… 좀 당황스러워서.”
“우리에게 맞는 사람인지는 아무도 모르는 거야.”
현무관 교육실 안, 그녀는 창가에 앉아 있었다.
다른 이들과 달리 소령의 반응은 좋지 못했다.
그럴만했다.
다른 이들과 달리 자신에 대한 호감도가 극히 낮았으니.
피이이이이-
이후, 주변이 흰빛으로 변했고, 그리고 다시 설휘, 자신의 거처로 돌아왔다.
그리고 다시 나타나는 문구들.
[사령대 조장들의 호감도가 대폭 상승합니다.]
<호감도>
1조 조장 요림 60/100(↑45) [우호적]
2조 조장 적송 60/100(↑45) [우호적]
3조 조장 용진 75/100(↑50) [우호적]
4조 조장 소령 6/100(↑100) [호기심]
“오……!”
설휘의 눈이 번뜩였다.
사적대장과 싸움에 이겼을 뿐인데, 호감도 수치들은 대폭 올랐다.
더욱이 호감도 상태 역시 수준에 맞게 변경됐다.
어떻게 수하들의 호감도를 빨리 올려야 하나 고민하고 있던 설휘에게 큰 도움이 된 것이다.
“복장도…….”
설휘는 면경에 비친 자신의 복장을 다시 한번 살폈다.
밀리터리 룩.
특이하긴 해도 왠지 모르게 멋있어 보였다.
“오늘도 그럼 시작해볼까.”
설휘는 문 앞에 다가섰고, 늘 익숙한 문구가 자신을 맞이했다.
<천력 96년 11월 일정을 정해주세요. (15/36)>
▶ 가르치기
▷ 주변을 돌아다닌다.
변한 건 없었다.
늘 보던 지문들이었고.
넷 중 하나를 선택하려던 설휘는 잠시 고민에 빠졌다.
‘흠…….’
본래는 무사 수행을 할 계획이었지만, 막상 지문을 보니 생각이 달라졌다.
사적대장과의 싸움에서 승리했고, 수하들의 호감도가 대폭 오른 상황.
이런 상태에서 사령대 조장들이 자신에게 과연 어떤 반응을 할지 궁금해진 것이다.
▶ 사령대 조장들을 가르치기(가능)
▷ 사령대 조장들과 임무수행(불가)
‘그래. 우선 호감도부터 최대로 올려보자.’
설휘는 결정했다.
우선 첫 번째 목표는 수하들의 호감도 최대치로 올리는 것으로.
<‘사령대 조장들을 가르치기’를 선택하셨습니다.>
저번처럼 선택하자마자, 세부 질문이 날아들었고.
[어느 구역으로 가시겠습니까?]
▶ 조장 교육실
‘어? 이번엔 목록이 없네?’
설휘는 의아했다.
이전에는 몇 가지 장소를 고를 수 있는 선택이 있었는데, 이번에는 그런 것이 보이지 않았다.
‘뭐. 매번 뜨는 건 아닌가 보네.’
설휘는 별생각 없이 조장 교육실을 선택했다.
<조장 교육실로 이동합니다.>
문구와 함께, 주변에 새하얀 빛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오늘은 은영단 조장들에게 무공을 가르칩니다.>
곧바로 수업이 진행되지 않았다.
시간이 멈췄고, 자신을 바라보는 조장들의 반응이 눈에 보였기 때문이다.
[용진]
“오? 복장이 좀…… 어디서 구했습니까?”
“보면 볼수록 괜찮은 것 같습니다. 특히 야밤에 활동할 때, 적에게 거의 들키지 않겠는데요?”
“혹시…… 그거 남는 여벌은 없습니까?”
[적송]
“굳이 이런 복장을 한 이유가 있는지 묻고 싶군요.”
“솔직히 말하라면, 저는 별로입니다.”
“어디 갈 때는 제게 말씀해주십시오. 따로 걸으려구요.”
[요림]
“사람들은 저마다 취향이 있는 법입니다. 저는 그 취향을 존중하는 사람입니다.”
“평가를 해달라구요? 글쎄…… 본인이 좋다면. 괜찮지 않을까요?”
“뭐, 여튼 저랑 상관없으니 멋있다고 해두죠.”
[소령]
“이걸 의복이라고 입고 온 건가요? 예? 편하다구요?”
“그냥 좀 이상해 보여요. 제 개인적인 생각이에요.”
“계속 물어보지 마세요. 대답하기 싫으니까요.”
설휘의 복장을 본 조장들이 저마다 자신의 생각을 밝혀왔다.
환대하는 1조장, 불편해하는 2조장, 존중하는 3조장. 평가를 거부하는 4조장까지.
상당히 생경한 옷인데도 불구하고, 저마다 K-밀리터리 룩에 대한 모두 관심을 보였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건 뜻밖의 호감도로 나타났다.
<사령대 조장들의 호감도가 각각 변화합니다.>
<호감도>
1조 조장 요림 70/100(↑10) [우호적]
2조 조장 적송 60/100(-) [우호적]
3조 조장 용진 80/100(↑5) [매우 우호적]
4조 조장 소령 11/100(↑5) [호기심]
‘오오.’
조장들의 호감도가 즉시 변화했다.
요림은 10이 올랐으며, 용진은 5가 올랐다. 다만, 소령의 호감도가 여전히 낮다는 게 맘에 걸렸다.
어쨌든, 호감도 평가는 여기까지였다.
늘 그랬던 대로, 조장들의 가르치기가 진행되었다.
[1일. 은영단의 대표마공, 일원소마공 고급과정을 가르칩니다.]
[2일. 은영단의 대표마공, 일원소마공 고급과정을 가르칩니다.]
이번 달은 그다지 특별한 별일은 없었다.
조장들에게 대표마공을 가르쳤고, 시간은 매우 빠르게 흘러갔다.
그리고 시간이 끝나는 지점에서.
[31일. 은영단의 대표마공, 일원소마공 고급과정을 가르칩니다.]
이달의 평가가 마무리되었다.
[조장들의 은영단의 대표마공, 일원소마공의 이해도가 올라갔습니다.]
늘 보던 익숙한 문구와 함께.
* * *
조장들을 가르치다 보니 3개월이 지났다.
보통 이런 기간은 지루하기 짝이 없지만, 설휘는 달랐다.
그가 얻은 기연은 시간을 화살처럼 빠르게 이동시켰고, 당시에 보고 느꼈던 기억은 때론 단편적으로, 때론 입체적으로 분리되어 따라왔다.
다만, 3개월을 가르쳤음에도 불구하고, 원하던 성과가 미미했다.
<사령대 조장들의 호감도가 올랐습니다.>
<호감도>
1조 조장 요림 80/100(-) [매우 우호적]
2조 조장 적송 80/100(-) [매우 우호적]
3조 조장 용진 80/100(-) [매우 우호적]
4조 조장 소령 31/100(↑5) [호기심]
호감도가 80%에서 더는 올라가지 않는 것이다.
혹시나 하여 복장을 바꿔 입으면 어떨까 했지만, 시도는 하지 않았다.
괜히 올랐던 호감도까지 내려갈 수 있으니.
결과적으로 세 명의 조장은 80% 성공했고, 소령만 여전히 호기심 수준이었다.
일전의 사건(?)으로 인해 아직 많은 호감도가 필요했던 것이다.
사실, 뭐 그리 중요한 건 아니었다.
계속 가르치다 보면 어차피 호감도는 올라가게 되어 있으니까.
하지만 갑자기 문제가 생겼다.
<천력 97년 3월 일정을 정해주세요. (19/36)>
▶ 가르치기
▷ 임무 받기
▷ 무사 수행
▷ 주변을 돌아다닌다.
이전처럼 가르치기를 선택했는데.
▶ 사령대 조장들을 가르치기(불가)
▷ 사령대 조장들과 임무수행(불가)
목록에 불가란 것이 떴고.
선택을 해보니.
<사령대 조장들에게 가르칠 게 없습니다.>
▶ 가르치기
▷ 임무 받기
▷ 무사 수행
▷ 주변을 돌아다닌다.
다시 처음으로 되돌아왔다.
‘이걸 어쩐다.’
설휘는 고민에 휩싸였다.
조장들의 호감도를 빠르게 올리는 와중에 갑자기 길이 막힌 것이다.
‘가만.’
선택지를 보던 설휘는 문득 네 번째 지문으로 향했다.
주변을 돌아다닌다가 눈에 들어온 것이다.
‘이게 해결책이 아닐까.’
생각해 보니, 예전에 여기 선택 중에 사령대 조장들의 쉼터가 있었다.
임무 받기와 무사 수행은 사령대 조장들과 연관성이 없으니 답이 있다면 이곳에 있을 가능성이 크다.
설휘는 ‘주변을 돌아다닌다.’를 선택했다.
<어디를 돌아보시겠습니까?>
▷ 천마 넷째 제자의 가택
▷ 현무관 후원
▶ 사령대 조장들의 쉼터
‘역시.’
곧장 들어오는 세 번째 지문.
망설이지 않았다.
설휘는 빠르게 선택하고는.
<사령대 조장들의 쉼터로 이동합니다.>
새하얀 빛이 사라질 때까지 조용히 기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