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마육성 시물레이션-69화 (70/379)

69화. K-밀리터리 룩(3)

[호감도가 신뢰 단계에 올랐습니다.]

[앞으로 특별한 상황이 발생하지 않는 이상, 호감도가 줄어들지 않습니다.]

[적송에게 직접 임무를 내릴 수 있게 됩니다.]

눈앞에 뜨는 글자들.

호감도를 100으로 만들자마자, 수하들을 부려 임무를 내릴 수 있는 자격이 생겨났다.

설휘는 남은 조장들의 호감도를 떠올렸다.

그들 역시 적송처럼 신뢰 수준으로 채울 수 있다면, 드디어 고대하던 임무수행을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대장. 궁금한 것이 있으면 물어보십시오.”

‘……응?’

밝은 얼굴로 말하는 적송을 보며, 설휘는 잠시 머뭇거렸다.

물어보라니.

딱히 궁금한 것도 없는데 무엇을 물으란 말인가. 설휘가 그런 의문을 가질 때.

이미 준비해 뒀다는 듯, 눈앞에 선택창이 다시금 떠올랐다.

<적송에게 아래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 있습니다.>

▶ 마성 적합도가 불합격인 무인들의 미래

▷ 현재 태황각주와 은영단의 관계에 대해

▷ 장비, [무기]에 관하여

‘음…….’

뭔가 나름의 의미가 담긴 세 가지 지문.

다시 살펴보니 이번 선택창은 어떤 지문을 택하느냐가 중요한 게 아닌 듯했다.

위에 나온 ‘정보를 얻을 수 있다.’는 말은, 어떤 지문을 택하더라도 모두 확인해볼 수 있다는 것을 뜻했으니까.

설휘는 고민 없이 첫 번째를 선택했다.

<‘마성 적합도가 불합격인 무인들의 미래’를 선택하셨습니다.>

- 마성 적합도가 불합격인 무인들의 미래는…… 그야말로 끔찍합니다.

- 힘이 약하면 죽는다는 당연한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하지요. 정파 무사들이 본교보다 약할 수밖에 없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

설휘는 그의 대답을 듣고 말문이 막혔다.

그는 마성 적합도에서 불합격을 받은 무인이다. 당연히 저 말이 무슨 뜻인지 깨달은 것이다.

‘나중에 나도 그리될까?’

아직까지는 자신의 목적을 위해, 사람을 죽이는 데 주저함이 없다.

하지만 적송의 말을 들으니, 앞으로의 일을 확신할 수 없게 되었다.

‘생각할 게 많군…….’

설휘는 착잡한 기분으로 다시 선택지문을 보았다.

<적송을 통해 아래의 내용에 대해 정보를 얻을 수 있습니다.>

▶ 현재 태황각주와 은영단의 관계에 대해

▷ 장비, [무기]에 관하여

설휘는 두 번째를 선택했다.

<‘현재 태황각주와 은영단의 관계에 대해’를 선택하셨습니다.>

- 최근 태황각주를 정찰하던 은영단원, 정확히 말하자면 사황대 조장 여섯이 사라졌습니다. 아마 정체를 들키지 않기 위해 스스로 화골산을 뿌렸겠지요.

- 하지만 화골산을 쓸 상황이라면, 이미 꼬리가 밟혔다고 볼 수 있습니다. 태황각주도 이미 누군가가 자신을 감시했다는 걸 알 테고, 조금만 생각해 보면 그게 누구인지도 짐작할 수 있겠지요.

- 이는 은영단이 위험해졌고. 넓게 보면 곤마 님의 입지가 위태로워진 상황이라는 거지요.

- 역설적으로 우리 역할이 더욱 중요해졌습니다.

‘내가 준 여지도가 큰 문제를 일으켰구나.’

설휘는 일의 전후가 짐작이 갔다.

그는 예전에 태황각주의 약점을 곤마에게 알린 적이 있었다. 그랬으니, 곤마가 뒤를 감시하게 했을 터.

허나 약삭빠른 태황각주는 미리 자신에 대한 감시에도 대비한 듯 보인다.

‘앞으로 임무가 주어진다면…… 결코 쉽지 않겠군.’

설휘는 자연스럽게 적송을 쳐다보았다.

<적송을 통해 아래의 내용에 대해 정보를 얻을 수 있습니다.>

▶ 장비, [무기]에 관하여

설휘는 마지막 남은 하나를 선택했다.

<‘장비, [무기]에 관하여’를 선택하셨습니다.>

- 장비는 전투에 많은 도움을 줍니다. 대장만이 아니라 우리 조장들도 소지할 수 있는 것들이 있습니다. 원하는 걸 얻게 되면 전투력이 올라갑니다.

- 누가 어떤 무기를 쓰느냐에 따라, 그리고 사용하는 무기 중에서도 어떤 무기가 손에 더 익냐에 따라, 능력 역시 변화합니다.

- 대장께서 그런 무기를 조장들이 소지할 수 있게 만들어주신다면, 임무 수행 시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 무기를 얻는 방법? 뭐. 다양하게 구할 수 있습니다. 임무를 받는다든가, 의뢰를 받는다든가, 아님 무사수행을 통해서 말이지요.

- 혹 돈이 여유가 있으시면… 구매하실 수도 있습니다만. 가격이 엄청납니다.

‘무기?’

정리하자면, 조장들이 잘 쓰는 무기들이 따로 있다. 그리고 그걸 자신이 챙겨주면 큰 도움이 되는 것이고.

“그렇군.”

설휘는 정확히 이 부분을 머리에 새겼다.

아마 지금 그가 얘기한 것이, 앞으로 자신의 미래에 큰 도움이 될지 모르는 일이다.

아니, 오늘 나눈 이야기 모두가 어떤 식으로든 영향을 미칠 것이다.

<적송을 통해 더는 알아낼 것이 없습니다.>

다 끝난 건가? 설휘는 적송을 빤히 쳐다보았다. 그런데 이제 그는 자신을 쳐다보지 않았다.

그저 아래를 향해 눈을 돌린 채, 석상처럼 깊은 생각에 잠겨 있었다.

“음. 적송……?”

“저는 이만 여기까지만 말씀드리겠습니다.”

“어…….”

갑자기 뭔가에 홀린 것처럼 굳어버린 적송.

설휘는 혹시나 해서 몇 번 더 말을 걸어 보았지만, 적송은 역시나 같은 대답만 하고 그 자세로 서 있었다.

‘이렇게 보니 참 이상하군.’

더 할 것이 없어진 설휘는 고개를 내저으며 그 자리를 떴다. 뭐랄까. 이 상황이 현실 같지 않고 꿈처럼 느껴진 달까.

그렇게 적송이 거의 보이지 않을 무렵.

갑자기.

----!

시야가 멈췄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설휘 자신의 시야가.

적송의 시야로 나타난 것이다.

“응?”

그리고 사람이 보였다.

언제 적송을 향해 그토록 가까이 왔는지, 노인 하나가 뒷짐을 진 채 그를 보며 웃고 있었다.

“뭐하나 물으려고 왔는데…….”

‘이게 뭐야!’

꿈틀.

적송의 눈으로 상대를 본 설휘는 울컥하며 거세게 가슴이 뜀을 느꼈다.

이제껏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했던 모멸감. 가슴속에 묵혀두었던 응어리가 동시에 벌컥 튀어나왔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 적송에 앞에 선 놈은.

자신을 낭떠러지로 밀어 넣어, 그래서 더 약이 올라 삶을 붙들고 살게 하는, 그런 개새끼였으니까.

[State, 상태]

사마귀 [태황각주]

신체 정상

대체 무슨 연유인지 난데없이 사마귀, 태황각주가 적송에게 접근해왔다.

거기서 설휘는 이제껏 본 적 없는 엄청난 수치에 말문이 막혔다.

체력 3000만/3000만

내공 5000만/5000만

경지 초마(超魔)

가늠할 수 없는 체력과 내공.

초절정을 넘어서는 경지.

거기에다.

전투력 약 2천만

‘2천만…… 2백만도 아니고 2천만?’

보고도 믿을 수 없는, 어마어마한 전투력에 숨이 막혔다. 거기에 자신을 더욱 끓어 오르게 하는 것이 있었으니.

<어떤 선택을 하시겠습니까?>

▷ 좀 더 기다린다.

바로 이 순간에 나타난 두 가지 선택에 관한 질문이었다.

* * *

쉬이이익.

천천히 시야가 넓어지기 시작했다. 적송의 눈으로만 보이던 풍경이, 적송을 기준으로 나타난 두 명의 인상착의와 주변 환경을 볼 수 있게 바뀌었다.

나는 그중 한 노인에 시선이 머물러, 긴 한숨이 터져나왔다.

[State Summary, 상태 요약]

체력 3000만/3000만

내공 5000만/5000만

경지 초마(超魔)

전투력 약 2천만

이제껏 많은 이들의 상태창을 보았지만, 태황각주의 수치는 그들을 훨씬 상회하고 있었다.

체력과 내공이 무려 3천과 5천만.

경지는 초절정을 넘어선 초마, 거기다 전투력은 무려 2천만이다.

이게 대체, 천마에게 선택받은 직계제자도 아닌, 일개 각주가 도달할 수 있는 수치인지 의심이 될 정도다.

‘내가…… 이 녀석을 정말 죽일 수 있을까?’

조금 회의가 들었다.

그간 나는 정말로 노력했다. 사선을 넘은 적도 셀 수 없이 많았고, 어떤 수련도 마다하지 않고 최선을 다했다.

수많은 기연이 있었고, 숱한 싸움에서 얻은 경험도 갖추게 되었다.

하지만 정작 내가 넘어서야 할 태황각주. 나를 이렇게 궁지로 몰아넣은 이 개새끼는 내가 생각했던 범주를 넘어서 있었다.

‘이 녀석이 여긴 왜 온 거지?’

태황각주의 등장.

온갖 생각이 머릿속을 휘젓는다.

이곳은 은영단 내부다.

총단, 그리고 그 아래 지휘를 받는 홍마원 내 태황각과는 관련도 없을뿐더러, 목적 없이 접근해서는 안 되는 장소.

그런 이곳에, 그가 아무 생각 없이 왔을 리가 없다.

<어떤 선택을 하시겠습니까?>

▶ 싸움을 건다.

▷ 좀 더 기다린다.

설휘의 시선은 두 번째로 이동했다.

싸움을 거는 건 언제든 가능하다. 지금은 정보가 필요했다.

태황각주가 무슨 이유로 왔는지 지켜봐야 했다.

<‘좀 더 기다린다.’를 선택하셨습니다.>

“태황각주께서 여긴 어찌…….”

적송이 허리를 굽히며 노인에게 예를 차렸다.

서슬 퍼런 눈빛과 옆에 서 있기만 해도 느껴지는 위압감.

그는 그런 존재다.

홍마원의 5각 중 하나이지만, 실질적인 영향력은 홍마원을 통틀어서 손꼽히는 자.

본교에서 그를 모를 자는 없다고 봐도 무방했다.

“흠흠. 볼일이 있어서.”

미묘한 미소와 함께 태황각주가 고개를 끄덕이자, 적송은 다시 한번 의중을 물었다.

“어떤 일이신지…….”

“여기, 사령대장이란 자가 있는가?”

‘이건 뭐지?!’

잠시 나는 내 귀를 의심했다.

대체 어떻게 된 상황인 건가.

갑자기 태황각주가 나를 왜 찾는 거지?

이제껏 과거로 회귀했던 중에서, 내가 선택한 삶은 그와 아무 연관이 없다.

애초에 태황각주에게 임무를 받기 전에 천일관으로 이동했고, 거기서 곤마와 협상을 했었으니까.

‘가만, 혹시 사무관들을 죽인 것 때문일까?’

문득, 전투유형을 얻겠다고 제압했던 적이 떠올랐다.

그런 와중에 내 생각은 이어지는 대화에 빠르게 멈췄다.

“저희 대장을 찾으시는가 보군요. 지금 여기에 없습니다.”

“그래? 허면, 그를 보기 위해 어디로 가야 하나?”

“그게…….”

적송은 잠시 머뭇거렸다.

내 눈엔 태황각주가 무슨 의도로 묻는지 적송이 고민하는 듯 보였다.

‘이런. 아직 적송과 거리가 그리 멀지 않은데…….’

나는 이제 막 자리를 벗어나, 멀리서 적송의 얼굴이 보일까 말까 한 위치까지 가 있었다.

즉. 방향만 알면 바로 나를 쫓아올 수 있는 상황. 그런 상황에서 태황각주는 내 위치를 묻고 있다.

적송이 대답하지 않으면 난처한 처지에 몰릴 것이다.

그랬는데.

“죄송합니다.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놀랍게도 자세를 고쳐잡은 적송이 예를 표했다.

“사령대장은 얼마 전에 새로 부임한 인물입니다. 딱히 가까운 사이가 된 것이 아닌지라…….”

“음. 그렇군. 알겠네.”

태황각주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그렇게 물러서는 것 같았다. 좀 전에 던진 말은 정말로 별 뜻 없이 한 것처럼.

“가만.”

막 한쪽으로 걸어가려던 그가, 비스듬히 고개를 꺾더니.

입꼬리를 올리며 입을 열었다.

“이럴 때 보통은…… 직접 찾아보겠다고 해야 하지 않은가?”

“아, 예? 그게…….”

적송이 눈을 껌뻑였다.

당황했는지, 고개를 들던 그는 태황각주를 보자 재차 고개를 숙였다.

그렇게 어색한 분위기가 이어졌다.

“여긴 참…….”

피식.

미묘하게 웃어 보이는 태황각주.

그는 잠시 굽혔던 허리를 편 뒤, 돌아가던 걸음을 되돌렸다.

그리고 적송의 지척까지 다가가더니.

“교육이 안 된 녀석들이 많은가 보군.”

그대로 뺨을 후려쳤다.

뻐억!

강한 타격음과 함께 적송의 얼굴로 고개가 뒤로 홱 꺾였다.

“으으…….”

급히 얼굴을 부여잡은 그의 손 아래로 피가 뚝뚝 흘러내렸다.

방금 그 일격으로 코뼈가 부러진 것이다.

“……죄송합니다. 각주님.”

“죄송하다고?”

고통을 참으며 부복하는 그를 보며 태황각주는 또다시 씰룩하며 입꼬리를 올렸다.

그리고.

“죄송하다면 성의를 보여봐.”

적송 앞으로 그는 뭔가를 내던졌다.

툭. 쟁그랑.

폭이 넓은 검이었다.

<어떤 선택을 하시겠습니까?>

▶ 싸움을 건다.

▷ 좀 더 기다린다.

‘이 자식이!’

멀리서 놈의 행태를 지켜보던 나는 울화가 치밀어 올랐다.

태황각주의 저 짓거리가 무슨 의미인지 누구보다 내가 잘 알기 때문이다.

스스로 한쪽 팔을 잘라 불구가 되는 것.

놈은 여전히 더러운 수법으로 상대에게 모욕을 주고 있었다.

나에게 가했던 것과 똑같은 방법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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