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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육성 시물레이션-70화 (71/379)

70화. 목숨+4(1)

부들부들.

손이 떨렸다. 할 수 있다면 단매에 쳐 죽이고 싶다.

하지만 나는 선뜻 선택할 수 없었다.

‘안돼, 내가 여기서 개입해선…….’

상대는 태황각주.

초고수다.

초(超)월적으로 마(魔)공을 다루는 자를 무슨 수로 이길 수 있단 말인가.

싸움을 걸어서는 결코 살아남을 수 없다. 하지만 그랬다간 적송이…….

9…… 8……

심각하게 고민하던 내 눈앞에 제한 시간이 떴다.

찰나의 순간, 나는 파바박 소리가 나도록 머리를 굴렸고, 그리고 판단을 내렸다.

‘아니. 괜찮아. 생각해 보면 무리야.’

상대가 제아무리 태황각주라도.

현재 적송과 나는 은영단원 신분이다. 그리고 적송은 내 직속수하다.

분명 본교가 강자존이라고 해도, 무리한 요구에는 그만한 명분이 따라야 하는 법.

우려할만한 상황은 쉽게 일어나지 않을 것 같았다.

<‘좀 더 기다린다.’를 선택하셨습니다.>

나는 기다리기로 했다. 내시야 아래, 적송은 땅에 떨어진 검을 보며 입술을 깨물었다.

그 역시 잘 알 것이다.

상대가 어떤 의미로 검을 던져줬는지를.

“흘흘흘흘.”

태황각주는 잔혹한 구경거리를 기대하는 얼굴로 웃고 있었다.

스윽.

천천히 느린 동작으로 검을 잡으려던 적송이 동작을 잠깐 멈췄다.

“제게 굳이 이러시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내려다보는 태황각주를 보며 그가 입을 열었다.

“뭐라?”

잠깐의 정적.

어이없다는 얼굴이 된 태황각주. 그를 향해 적송이 천천히 말을 이었다.

“저는 은영단원이고, 제 소속은 곤마 님 휘하입니다. 제 행동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정식으로 절차를 밟고 항의하시면 됩니다.”

“...”

“제 직속상관이 어디 계신지, 말하지 않았다고 저를 압박하시다니. 이번 일을 곤마께서 알면 가만있지 않으실 텐데요.”

‘그거다.’

적송의 말에 나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대의명분. 지금으로서는 은영단원이 반박할 수 있는 최선의 수다.

분명히 본교에서 서열이 높은 자의 말을 따르는 건 당연하지만, 은영단은 넷째 제자 곤마의 직속 부대.

태황각주의 행동에는 분명 지나침이 있었다. 아무리 그가 대단하다 해도, 곤마를 들이받을 수야 없지 않은가.

“크흐. 흐흐흐흐!”

직급체계를 거론하며 조용히 경고했기 때문일까.

태황각주가 웃는다.

하지만 그 웃음이 결코, 기분 좋은 웃음이 아니란 건 누구나 알 수 있었다.

“흑비. 나와라.”

타악.

웃음이 그치는 순간, 그의 옆에 그림자 하나가 드리워졌다.

태황각주의 가신. 엄청난 은형술이다. 대체 어디에 숨어있었는지 조금 전만 해도 보이지 않았는데.

“주변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래?”

태황각주는 씨익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흑비가 적송 앞에 놓인 검을 집어 들었다.

꿀꺽.

그 모습을 보던 적송의 목울대가 울렸다. 눈빛이 흔들렸다.

나 역시 그랬다.

태황각주의 반응과 흑비의 행동을 도저히 예측할 수 없었기 때문에.

스으윽.

그렇게 흑비는 들고 있던 검을 태황각주에게 건네주었고 곧이어, 나는 눈을 의심할 정도로 충격적인 일을 목격하게 되었다.

푸욱!

태황각주가 흑비의 몸에 검을 깊게 찔러넣은 것이다. 검을 건네준 자신의 수하에게!

‘뭔, 미친!’

단번에 욕설이 튀어나왔다.

자기 가신의 몸에 칼을 찔러넣어? 나는 지금 눈앞의 미친 짓거리가 현실이 맞는지 의심이 갈 정도로 당혹스러웠다.

쓰윽.

태황각주가 찔러 넣은 검을 뽑아냈다.

“……쿨럭.”

흑비는 가슴 한쪽이 관통당해 핏물이 흘러내렸음에도, 꼿꼿이 선 부동자세 그대로였다.

“자.”

턱.

태황각주는 흑비의 가슴에서 뽑은 칼을 재차 건넸다.

그리고 이어진 당부.

“죽여.”

그의 살기 어린 목소리가 주변을 잔잔하게 울렸다.

* * *

파밧!

분위기가 일변했다.

적송은 급히 발을 박차 물러서며, 자신의 애병을 꺼내 방어자세로 돌입했다.

그도, 나도, 방금 전 태황각주가 흑비의 가슴을 왜 검으로 찔렀는지 알고 있었다.

놈은 지금 적송을 죽일 명분을 만든 것이다.

<어떤 선택을 하시겠습니까?>

▷ 좀 더 기다린다.

‘빌어먹을…… 이 개 같은 새끼가!’

거기까지 생각이 들자, 나는 깨달았다.

내가 왜 태황각주를 증오했는지를.

사람을 사람으로 보지 않는다. 이놈은 그런 놈이다.

조금 전 적송을 죽이려고 마음먹은 것도 마찬가지. 제 명령을 거부해서, 권위에 상처를 받아서가 아니다.

그냥 마음에 안 들어서.

그냥 죽이고 싶어져서다.

생각해 보면 나와의 악연도 그랬다. 애초에 태황각주는 자신이 태황각에 들어와 떠돌아다닐 때, 제 집무실에 신경도 쓰지 않았다.

그러다 내가 그의 집무실을 뒤지다 발각되면서부터, 집요하게 나를 괴롭혔었다.

‘나도 처음에는 내가 잘못해서 처벌이 내려지는 건 줄 알았지.’

감히 상관의 집무실을 뒤졌으니 벌을 준다? 그런 단순하고 당연한 이유가 아니었다.

그냥 내가 눈에 보이니까.

밟아버리고 싶어진 거다.

어이없지만 그게 다였다. 정말로 그가 나를 벌할 생각이었다면, 태황각주는 손 한번 휘둘러서 나를 죽일 수 있었다.

그럼에도 나에게 일부러 임무를 맡겨 정파고수의 손에 죽게 만드는 번거로운 짓을 했다.

이유는 간단하다. 그게 더 치욕스러우니까.

태황각주는 그냥. 정말로 그냥, 누군가를 괴롭히고, 그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을 보며 흐흐 웃는 놈이다.

왠지 지금 나를 찾아 여기에 온 것도, 벌레 죽이듯 짓밟기 위해서인 것 같았다.

9…… 8……

‘제기랄. 빌어먹을!’

나는 선택의 순간에서 고민했다.

개입하는 것이 맞는가?

가만히 두면 적송은 죽을 것이다. 그건 확실하다.

하지만, 내가 나선다고 해도 상황은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전력의 차는 너무 명백하니까.

[State Summary, 상태 요약]

흑비 [태황각주 가신]

체력 500만/700만

내공 700만/700만

경지 초절정

Coin 목숨+4

전투력 870만

태황각주는 고사하고, 그의 가신인 흑비만 해도 무려 870만이다.

조금 전, 주인의 공격으로 체력이 200만 줄긴 했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엄청난 전투력을 가지고 있었다.

‘제기랄. 무슨 놈의 가신이…….’

이제껏 수많은 기연과 노력. 그리고 반복된 수련을 쌓았음에도 나는.

태황각주는 물론이고, 그의 가신 하나 이기기에도 버거웠다.

4…… 3……

알고 있다.

최선의 선택은 나서지 않는 것임을.

적송은 이래도 저래도 죽을 것이고, 거기에 내가 끼어 들어봐야 개죽음만 더할 뿐이다.

‘미안하다…… 적송.’

그러므로 나는.

결국, 비겁한 선택을 해야 했다.

<‘좀 더 기다린다.’를 선택하셨습니다.>

다시금 시간은 흘러갔다.

검을 꺼낸 적송은 비장한 표정을 짓고 있었고, 이에 반대로 흑비는 큰 상처를 입은 사람답지 않게 너무도 여유롭게 서 있었다.

복면 위로 눈만 내놓은 그녀가 묘한 눈웃음을 보일 뿐.

그렇게 잠깐의 정적이 이어졌고.

패애애애애액.

거리가 한순간에 좁혀지는 건, 정말 창졸간이었다.

“커억!”

방어도 하지 못하고 적송의 쇄골이 부서지며 어깨에 검이 박혔다.

푸욱! 푹! 푹!

거기다 흑비는 저항할 새도 없이 칼을 빼내 무려 세 번이나 복부, 허벅지에 꽂아 넣었다.

크읍.

보고 있자니 이가 갈린다.

하지만 그저 감탄만 나올 수준의 압도적인 무위다.

‘실력 차이가 너무 나.’

적송 역시 사령대 수십 명을 이끄는 조장인데도, 태황각주 가신에게는 무력했다.

“크윽! 컥! 컥!”

이 정도 싸움의 수준이라면, 대적하는 게 사실상 불가능했다. 계속된 공격에 적송은 단 한 번도 맞받아치지 못했다.

심지어 방어도 하지 못해, 거의 무방비로 당하고 있었다.

‘개자식들!’

지켜보는 나는 점점 애가 탔다.

사악! 사각! 촤아악!

흑비는 당장 일검에 적송을 죽일 수 있음에도, 살수를 취하지 않았다.

마치 사람을 포를 뜨듯, 얇게, 적송의 살점을 잘라내고 있었다.

극심한 고통을 유발하고, 상처 부위에 출혈을 일으켜 사람이 스스로 무너지게 만드는 것이다.

말 그대로 일방적인 사냥.

이렇게 단순히 보고만 있는데도 피가 끓게 만들고 있었다.

“거기까지.”

척.

그 어느 순간, 태황각주가 입을 열자 흑비의 동작이 멈췄다.

“크윽! 커허억…….”

적송은 이미 반쯤 실성해 있었다.

급히 치료받지 않으면 죽음에 이를 수 있는 상처였다.

그런 적송에게 태황각주는 느긋하게 다가갔다.

“너 그거 아느냐?”

쓰러진 적송을 위에서 내려다보며, 이성이 붙어 있는지 없는지 모를 그에게 이죽거렸다.

“네가 그렇게 충성하는 사령대장이란 놈. 실상은 수하들을 버린 녀석이란 걸.”

“……?”

약간의 떨림.

태황각주의 말에 적송의 몸이 반응했다.

“설휘라는 녀석. 본래는 우리 태황각 안에서 떠돌던 시답잖은 잡졸이었다. 그 정도는 너도 알 것이다.”

“…….”

“녀석은 비객조라는, 인원이 몇 안 되는 조직을 가지고 있었지. 녀석이 임무를 받았을 때 어땠는지 아나? 위험하다 싶으니 수하들에게 떠넘기고 넷째 제자님에게 붙어버렸지.”

“……!”

“결국, 그 밑에 녀석들은 모두 죽게 되었다. 그리고 녀석은 출세해서 지금 사령대장이 되었지. 그런 식으로 운 좋게 발탁돼 등용된, 그런 놈이야. 어떠냐. 아직도 너희 대장을 따를 생각은 여전하냐?”

‘……이런. 개자식.’

나는 이제야 확신했다. 이 녀석은 모든 걸 알고 왔다.

내가 넷째 제자 곤마와 손을 잡은 것.

그가 사람을 보내 태황각주를 감시하기 시작할 때, 태황각주는 자신이 가지고 있던 여지도가 없어진 걸 알았을 터.

“상처가 좀 위중하군. 빨리 치료받지 않으면 너는 죽을지도 모른다. 우리도 시간이 없으니 짧게 말하마. 이것만 말해주면 넌 살 것이다.”

태황각주의 웃음이 짙어졌다. 그의 음험한 시선이 한층 강해졌다.

“사령대장 놈은 어디 갔느냐? 거처는 어디냐?”

“…….”

정신을 차린 것일까. 적송의 가늘게 떴던 눈이 점점 커지는 게 보인다.

그는 심각한 상처 속에서 몸을 힘들게 일으켰다.

“생각……났소…….”

“오? 그래?”

상기된 표정으로 변한 태황각주. 그에게 적송은 실낱같이 가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에…있…….”

“아니. 뭐라는 거야?”

까닥.

소리가 잘 안 들리는 건가. 태황각주는 조금 더 그의 얼굴 앞으로 다가갔다.

바들바들…….

그러자, 적송은 간신히 몸을 일으켰고. 주저앉은 채 입을 열었다.

“설렜냐?”

“……?”

“늙은 새끼. 이게 내 대답이다. 카악- 퉷!”

철퍽!

걸쭉한 가래침. 그 침은 태황각주의 눈썹에 붙어서 쭉 늘어지다, 턱에 탁 붙으며 조금씩 흘러내렸다.

씨익.

적송은 조소를 머금었다.

이내 핏물로 가득한 입가를 드러내며 낄낄 웃어 보였다.

“내가 이 새끼야. 원래 백정이거든. 너 같은 귀한 놈들이 파리보다 못하게 보던 목숨이었거든.”

부들…… 부들……

경련하는 손으로 검을 든 적송. 이미 무기는 의미가 없다. 휘두를 기력도 없다. 그럼에도 놓지 않는다.

끈덕지게, 검을 붙잡은 채로 그는 말을 이었다.

“그래서 좋은 거다. 꼭 나 같은 작자가. 한때는 나보다 못했던 작자가. 지금은 나보다 강할 수 있다는 게. 얼마나 존경스러운지. 네까짓 놈이 알 리가 있냐?”

반면, 이해하지 못할 헛소리를 늘어놓는 상대를 보던 태황각주는 분노했다.

눈이 이글거릴 정도의 살기가 새어 나왔다.

하지만 적송은 신경 쓰지 않았다.

아는 것이다.

지금이 마지막이라는 것을.

“대장……. 그 말은 참 좋았소.”

바르르르. 꾸욱.

검이 떨린다. 그래도 놓치지 않는다. 그건 적송의 마지막 남은 자존심. 혹은 고집이었다.

“간절함이라는 말. 그 말은…… 참 듣기 좋았소.”

풀썩.

적송의 몸이 땅에 엎드려진다. 그럼에도 그는 검을 놓지 않는다.

마지막까지. 시야가 흐려져 천천히 눈이 감김에도 그는 검을 놓지 않는다.

그 모습은 단어 그대로의 간절함이었다.

그리고 그때.

글귀가 나의 눈 앞을 가렸다.

<어떤 선택을 하시겠습니까?>

▶ 싸움을 건다.

▷ 좀 더 기다린다.

몇 번의 지문이 나왔고 결단을 미뤄왔던 나였지만, 이제는 고민되지 않았다.

뭐든 적당해야지.

비겁한 것도, 어느 정도여야지.

살겠다고, 살아보겠다고 수하를 앞에 내세우는 짓거리를 하고 있단 말인가.

머리 위에 목숨을 2개나 붙여놓고 있는 새끼가 말이다.

<‘싸움을 건다.’를 선택하셨습니다.>

개입합니다.

그래. 간다.

태황각주 이 씹새끼야.

내가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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