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마육성 시물레이션-71화 (72/379)

71화. 목숨+4 (2)

화아악!

환한 빛이 눈앞에 떠오르고, 설휘의 움직임이 멈췄다.

시간 정지다. 적송 바로 뒤에서 시야가 고정된 채로, 눈앞에 선택지가 떠올랐다.

<2명 이상의 적대적 대상 발견>

<공격 대상을 정할 수 있습니다. 누굴 공격할까요?>

▶ 태황각주

▷ 흑비

‘이건 또 뭐야?’

단단히 긴장하며 마음의 준비를 하던 설휘.

거기서 난데없이 세부 문구가 뜬 것이다.

‘대상을 정할 수 있는 거였어?!’

읽자마자 온몸이 감각이 살아나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일회성으로 기습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긴 거라면.

당연히 이길 수 없는 태황각주보다, 일말의 가능성이 있는 상대가 더 나을 게 아닌가.

그리고 운이 좋다면, 망한 도박판의 판도를 뒤집을 수 있다.

<‘흑비’를 선택하셨습니다.>

화악!

눈앞에 퍼지는 새하얀 빛.

과거 경험을 비추어볼 때, 멈춰버린 시간의 틈에 들어가는, 설휘가 개입하는 걸 알리는 신호였다.

‘……?’

그런데 이게 웬걸.

자신의 존재가 드러나기 전에, 주변 사물이 천천히 일그러진다.

그 정체는 바로 소용돌이였다.

이제껏 없던 기류가, 자신의 등장과 함께 태황각주와 흑비를 향해 쏟아진 것이다.

마치 자신에게 유리한 지점을 선점하게 하려는 것처럼.

“……뭣!”

“……엇!”

그리고 정말로 그렇게 진행되었다.

주춤!

갑작스러운 기류로 인해 태황각주가 몇 걸음 뒷걸음질 쳤고, 흑비는 거의 밀려나다시피 했다.

타악!

그리고 드디어 땅을 밟고, 지면의 탄력으로 뛰쳐나가려던 설휘 앞에.

[절호의 기회! 흑비의 빈틈을 발견했습니다. 어떻게 대응하시겠습니까?]

‘좋아!’

우선권이 주어졌다. 이제껏 상대했던 가장 최악의 상대들에게서, 기습에 성공했던 때처럼.

▶ 공격한다.

▷ 상대의 지척까지 다가간다.

가장 최상의 기회가 주어졌다. 설휘는 즉각 판단을 내렸다.

‘이왕 이렇게 된 거.’

어차피 싸울 거, 이런 턴제 전투는 오히려 유리하다.

네 가지의 선택 중, 설휘는 두 번째 선택지로 시선을 내렸다.

▶ 무공을 쓴다.

무공 사용. 상대의 능력이 압도적으로 높거나 가늠할 수 없을 때.

이럴 때는 스스로 답을 내려주는 방식이 더 효율적이다.

다만 문제는 무공의 종류인데.

<어떤 무공을 쓰시겠습니까?>

▶ 일원소마공(완벽)

▷ 소신수마공(중급)

▷ 초열권마공(중급)

▷ 사대극마공 ‘풍’(초급)

‘이번엔 네 가지구나.’

사적대장과의 전투와는 달리, 이번엔 설휘가 가진 모든 내공을 활용할 수 있었다.

선택지가 네 개나 되자, 설휘는 고민했다.

어느 무공을 쓰는 것이 가장 좋은 선택일까?

‘굳이 초열권마공은…….’

무기가 있는데 굳이 권공을 쓸 필요가 없다. 권공을 제외하니 남은 것은 셋.

위력만 놓고 보면 사대극마공이다. 제일 강한 무공이다.

하지만 아직 제대로 익히지 못했으니, 능력을 십분 발휘할 수 없다.

‘그럼 소신수마공?’

아니다. 이 또한 강한 공격력을 발휘할 것 같지만, 숙련도가 아직 중급이다.

상대에게 위력만큼의 공격을 입힌다는 보장이 없다.

그렇다면 다음으로 일원소마공.

위력은 다소 약할 수 있다. 하지만 기존 무공 중에 가장 완벽히 익힌 상태.

‘가장 확실한 공격을 선택한다!’

▶ 일원소마공(완벽)

그런 연유로 설휘는 일원소마공을 택했다.

한동안 주력으로 사용해 본 적 없지만, 자신의 기억대로라면.

이 무공은 상대가 누구라도 일정 수준의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

<일원소마공을 선택하셨습니다.>

피이이잇!

시야가 조금 흔들린다.

자신이 이동해서가 아니라, 주변의 형태가 일그러지고 있었다.

‘이건, 일원소마공 9초식?!’

턴제 전투에서 무공을 쓰면, 그 무공의 초식은 상황에 따라 임의로 선택된다.

일원소마공의 초식은 모두 아홉 개.

그중 8초식과 9초식은 최강의 초식이라 할 수 있었다.

9초식 환영비검(幻影飛劍).

동작이 크다는 단점이 있긴 하지만 강한 내력을 발하기에, 반경 1장 내외로 주변이 일그러지는 특징을 지닌다.

그리고 이 순간에 설휘가 그걸 펼쳤다는 방증이었고.

촤아아악.

강맹한 기운과 함께 검 끝에서 쏘아지는 서너 개의 환검(幻劍).

“……큭!”

실체가 없는 환영은, 목표인 흑비의 시선을 한순간에 분산시켰고, 다급히 물러서는 그녀의 위치를 정확히 포착하자마자 검기가 쏘아져 나갔다.

쉬익! 퍽!

공격은 완벽히 적중했다.

[회심의 일격 성공! ‘흑비’에게 100만의 치명적인 피해를 입혔습니다.]

흑비 [태황각주 가신]

체력 350만(↓150만)/700만

“크윽!”

흑비는 이미 태황각주에게 가슴을 꿰뚫려 체력이 200만이 줄어있었다.

거기에 설휘의 일격을 받자 순식간에 체력이 반까지 내려앉았다.

그리고 공격이 성공하자마자, ‘턴제’는 또다시 그녀의 빈틈을 찾아냈다.

[절호의 기회! 흑비의 빈틈을 발견했습니다. 어떻게 대응하시겠습니까?]

▶ 공격한다.

▷ 상대의 지척까지 다가간다.

‘붙어야 한다.’

빈틈을 찾아냈지만, 흑비와의 거리가 처음보다는 조금 더 멀어졌다.

그리고 설휘는 이번의 경험으로, 턴제 전투의 경우 빈틈을 발견하더라도 다양하게 나타난다는 걸 깨달았다.

▶ 무공을 쓴다.

이걸 선택해보니.

<어떤 무공을 쓰시겠습니까?>

▶ 일원소마공(완벽)

▷ 소신수마공(중급)

이렇게 무공의 선택이 두 가지밖에 되지 않는 상황이 발생했다.

설휘는 다시 목록을 처음으로 되돌렸다.

▶ 공격한다.

▷ 무공을 쓴다.

▷ 도구함을 사용한다.

▷ 상대의 지척까지 다가간다.

그리고 공격한다를 선택했다.

경험을 몇 번 해봤다.

시간을 3초 전으로 되돌리는 것이, ‘상대의 지척까지 다가간다.’보다 적을 더욱 수세에 몰 수 있다는 걸.

<공격한다를 선택하셨습니다. 시간을 ‘3초 전’으로 되돌립니다.>

쉬익! 퍽!

“크윽!”

환영비검의 검기가 쏘아졌고, 일격은 맞은 흑비의 몸이 휘청이던 그때.

설휘의 눈이 번뜩였다.

굳어 있던 움직임의 제약이 풀리자마자, 전력을 다해 흑비에게 달려든 것이다.

“하압!”

지근거리까지 간격을 좁힌 설휘가, 검을 사선으로 내리그었다.

그 순간, 검을 따라, 지면과 허공에서 빙사(氷紗)의 기운이 몰려들었다.

쇄액!

소수마공이 소신수마공으로 상승한 까닭일까.

3초식 소빙개동(素氷開凍)이, 소하개동(素下開動)으로 변경되었다.

그로 인해 기존보다 몇 배는 더 강력하고, 적에게 피해만 주는 게 아니라 동작을 묶는 효과를 보였다.

[회심의 일격 성공! ‘흑비’에게 40만의 피해를 입혔습니다.]

흑비 [태황각주 가신]

체력 310만(↓40만)/700만

[특수효과 ‘빙결’이 적용됩니다. 흑비의 움직임이 20% 느려집니다.]

[절호의 기회! 흑비의 빈틈을 발견했습니다. 어떻게 대응하시겠습니까?]

[경고! 태황각주가 설휘 님의 빈틈을 발견했습니다. 어떻게 대응하시겠습니까?]

‘……!’

빙결 효과로 또다시 기회를 잡았지만, 운은 거기까지였다.

바로 태황각주의 개입이 있었기에.

8…… 7……

설휘는 주변을 살폈다.

정면에서 앞쪽. 다섯 보 거리에 흑비가 있었다.

그리고 태황각주는, 설휘에게서 3장이 넘게 떨어져 있었다.

‘확실히 초마에 오른 고수다.’

흑비보다 네 배 이상이나 거리가 있는데, 거기다 어떤 준비 동작을 취하지도 않았음에도 빈틈창이 뜬 것이다.

이대로라면 공격받아 치명상을 입는다.

하지만 설휘는 운 좋게 얻은 기회를 절대 놓치고 싶지 않았다.

전투방식 <시뮬레이션>

그는 급히 전투방식을 바꿨다.

그러자 턴제 목록은 사라지고, 눈앞에 글귀들이 나타나 시야를 가득 메웠다.

<설휘 님의 무공 개수를 분석합니다.>

<설휘 님의 무공초식을 분석합니다.>

……

<분석 완료>

그리고 이전에서는 볼 수 없었던 장면.

<피해를 입힐 대상을 선택해주세요.>

▶ 태황각주

▷ 흑비

‘태황각주의 기습 때문이구나.’

눈앞에서 물러서는 적을 상대할지, 아니면 멀리서 공격해오는 적을 상대할지 정하라는 것으로 보였다.

설휘는 다시 선택했다.

<‘흑비’를 공격합니다.>

사사사사삭.

눈앞에 나타나는 수많은 설휘의 환영.

그들은 셀 수 없이 많은 동작을 펼치며 눈앞을 가득 메웠고.

모두가 태황각주의 공격을 피하며, 흑비를 상대하는 움직임을 보였다.

그리고 이제껏 지냈던 시간보다 더욱 많은 시간을 기다리게 했다.

좌---아아악.

그렇게 줄어드는 환영.

그런데 이전과 좀 달랐다.

하나가 아닌, 제각기 다르게 움직였던 세 개의 환영이 없어지지 않고 그대로 서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세 가지 길을 찾았습니다. 아래에서 원하는 걸 고르세요.>

이어진 종료 문자.

그런데 적이 강한 탓인지, 아님 복잡한 상황 탓인지 무려 3가지 길을 제시했다.

▶ 아무런 피해 없이 흑비에게 일격을 가함.

▷ 30% 피해를 받으며 흑비에게 강한 일격을 가함.

▷ 90% 피해를 받으며 흑비에게 치명타를 가함.

‘음.’

이것도 선택인가?

시뮬레이션은 최적의 경로로 적을 상대하는 전투방식이다.

여기서 나온 세 개의 환영은, 각기 나름의 방식으로 설휘에게 결정을 요구했다.

‘이거다.’

▶ 90% 피해를 받으며 흑비에게 치명타를 가함.

설휘는 과감하게 선택했다.

싸움에 개입할 때부터, 그의 목표는 무조건 흑비를 죽이는 것이었다.

그럴 만한 이유도 있었다.

‘목숨+4개.’

명령이든 뭐든, 그녀는 적송을 사냥에 가깝게 괴롭혔다.

그러니 그에 대한 보상, 죽더라도 이것만은 가지고 가야 했다.

<‘90% 피해를 받으며 흑비에게 치명타를 가함.’을 선택하셨습니다. 다시 한번 시뮬레이션을 보여드립니다.>

두 명의 인영이 사라지고, 마지막 남은 인영이 서 있었다.

사아아아-

그리고 한순간.

눈앞에 칠흑같은 어둠이 찾아들었다.

‘뭐지?’

의문을 갖던 설휘의 시선이 한곳에 머물렀다.

새카만 어둠 속에서 유일하게 앞을 비추는 곳이 보였기 때문이다.

‘나뭇잎?’

적송 옆에 있던 당나무 아래, 떨어지는 나뭇잎이었다. 그런데 조금 특이한 것은 평소와 달리 너무도 느리게 떨어졌다는 사실이었다.

화아아악-

그리고 다시 주변이 밝아졌고. 재차 어둠이 찾아들자, 이번엔 흑비만 보였다.

‘방어자세다.’

그녀는 방어를 위해 순간적으로 몸을 틀고 있었다. 그 모습이 나뭇잎 떨어지는 속도처럼 매우 느리게 움직였다.

‘느려졌다는 의미인가?’

그리고 다시 어둠.

이내 밝아졌을 땐, 설휘의 후방. 대략 세 장(9m)의 거리에서 태황각주가 포착되었다.

‘……무슨!’

그런데 일순 움직이던 태황각주의 속도가 비정상적이었다.

흡사 먹이를 발견한 표범처럼, 흑비의 움직임과 대조적으로 너무 빨랐다.

그리고 설휘와의 거리가 일장까지 좁혀졌을 때.

스륵.

이제껏 설휘 모습을 하고 있던 가상의 인영이 그제야 움직였다.

‘어?’

그런데 그는 앞이 아닌, 뒤를 바라보고 있었다.

거기다 태황각주가 자신의 장기인 화염마공을 뽑아내는 걸 목격하고도, 초식으로 반격하지도 않았다.

가상인 환영이 한 건, 그저 검을 어깨높이로 길게 뻗는 동작이었다.

‘차, 착식(着式)?!’

설휘는 눈으로 보고서 기함했다.

검법의 기술 중 하나인 이것은 상대의 검을 빼앗는 수법이다.

너무 기본적인 검법이라 무공이라고도 하기에도 민망한 그것을 펼친 것이다.

쩌어엉.

설휘의 예상대로 일부는 가상의 인영 몸속으로 침투했다.

그런데 태황각주의 손에서 뻗은 화염이 몸을 파고들었음에도 가상의 설휘는 눈 하나 꿈쩍하지 않았다.

그저 검을 뻗은 자세를 유지한 채, 몸을 반쯤 비트는 동작이 전부였다.

휘릭!

그 순간 믿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났다.

일부, 화염마공의 열기가 흑비를 향해 정면으로 날아간 것이다.

그리고 시뮬레이션은 거기서 끝이 났다.

설휘는 눈앞이 캄캄해졌다.

‘이거, 도가무공 아냐?’

들은 적이 있는 무공이다.

아니, 무공이라 하기에도 그런 어폐가 있는 게, 마교에 입문했던 천향소에서 접했던 얘기일 뿐이었다.

사량발천근(四量發千斤).

착식(着式) 같은 기초검술을 배울 때 교관이 이 기술을 연마하면 사량발천근 같은 걸 쓸 수 있다고 딱 한 번 언급했던 수법.

여기서 이게 왜 나왔는지 모르지만 어쨌든 시뮬레이션의 답은 이것이었다.

‘이걸 어떻게 따라 하라는 거야…….’

사량발천근은 그렇다 하더라도, 화염마공의 열기를 몸으로 받으면서 일부 공격 여파를 튕겨 내는 것.

섬세함이 생명이다.

고통 때문에 잠시라도 몸이 흔들리거나 찰나의 시기를 놓치면, 공격은 그대로 실패하고 허무하게 죽을 수 있었다.

더욱이 시간의 흐름도 있었다.

나뭇잎, 흑비로 이어지는 체감시간과 태황각주의 체감시간은 족히 열 배는 넘을 것이다.

하지만 방법이 없었다.

‘한다. 어떻게든!’

<곧장 우측으로 돌아, 검을 어깨높이만큼 뻗는다.(평소의 움직임에 비교해 5배 빨라야 함)>

<태황각주의 검에 닿자마자, 소원공(小原功)을 운용하며 착식 시도>

<(들숨의 시간 100이라면)들숨 호흡 4의 순간, 몸과 검을 반쯤 비틂>

시작합니다.

기왕 이렇게 된 것, 어떻게든 정확히 구현해내야 했다.

개죽음을 당하지 않으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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