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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육성 시물레이션-74화 (75/379)

74화. 시뮬레이션 Lv2 (2)

타다닥!

붉은 선을 따라 맹렬히 질주하던 설휘. 그는 안도감보다는 걱정이 더 앞섰다.

흑비와 거리는 대략 5장.

가깝다면 충분히 가까운 거리다.

태황각주의 호위이자 그림자로 움직이는 그녀이니, 암기나 원거리 투척에 장기가 있을지도 모른다.

그 때문에 직선으로 전력을 다해 달리기도 꺼려졌다. 언제 어느 순간 뒤통수에 단검이 박힐지도 모르는 일이니까.

타닥. 타닥.

‘……어?!’

그래서 지붕을 밟고 불규칙하게 이동하던 설휘는, 순간 눈앞에서 특이한 지점을 발견했다.

반짝.

길게 뻗은 붉은 선. 자신이 가야 할 방향을 알려주던 선이 갑자기 처마 아래로 확 꺾인 장면을 포착한 것이다.

‘일단…… 따라야 한다!’

팟.

설휘는 붉은 선이 그려진 대로 충실히 이행했다.

탁. 휘릭!

처마 아래로 몸을 내던지다시피 한 그는 지면 아래에서 대문짝만하게 적힌 글귀를 발견했다.

<무흔귀신보(無痕鬼神步) 4절, 허면(虛面)>

“……? 하앗!”

고민할 시간도 없었다. 설휘는 즉각 눈앞의 지시대로 따랐다.

파밧!

지면을 밟자마자 무흔귀신보를 펼쳤다. 그러자 설휘의 몸은 앞으로 튕기듯 한곳으로 쏘아져 나가기 시작했다.

파앗!

나름 은영단을 대표하는 경공술을 펼친 것이다.

파팟. 팟! 타앗!

그리고 이어지는 전력돌파.

띠링!

이후, 왼쪽으로 그어진 붉은 선을 지났고 직선 모양이 좌우로 꺾인 지점을 지나는 그때.

또 다른 글귀가 눈에 들어왔다.

<무흔귀신보(無痕鬼神步) 3절, 종횡로(縱橫路)>

“흡!”

파팟!

일렬로 펼쳐진 건물을 눈앞에 두고, 갈지(之) 자 모양으로 좌, 우로 번갈아 가며 신영을 이동했다.

팟.

그렇게 내달리던 그는 표시된 어느 지점에서 다시 도약했고, 조경으로 심어진 나무들 사이로 몸을 날렸다.

“뭐야?”

“누구지?”

투욱.

설휘가 땅을 딛자마자 주변에 있던 무사들이 반응해왔다.

사적대원들이다. 무슨 일로 모였는지 모르지만, 자신의 등장으로 그들은 당황스러워하는 모습이었다.

그리고 그들 가운데, 한 사내가 자신을 보며 물었다.

“누구냐? 넌.”

“……헉. 헉…….”

눈앞이 노랗게 보인다. 설휘는 그를 쳐다보지 않아도 누군지 알았다.

선택지문에 따르면, 목적지에 도착한 이상 상대는 당연히 사적대장 비군일 터.

“……후우.”

설휘는 숨을 몰아쉬며 저편의 건물 위로 시선을 돌렸다.

그곳엔 흑비가 있었고, 잠깐 그를 바라보던 그녀는 이내 어둠 속으로 몸을 숨겼다.

뚜두뚜둑.

설휘는 그제야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런 뒤 겨우 진기를 돌려 역용술과 잠영투체술을 해제시켰다.

“이놈. 정체를 밝혀라!”

자신이 대답이 없자, 주위를 경계하며 접근해오는 사적대원들.

원래라면 바짝 긴장해야 할 터이지만, 지금의 그로서는 그런 그들의 행동이 반가웠다.

“오랜만이야. 비군.”

스윽.

설휘는 가면을 천천히 풀었다.

그리고 기분 좋은 얼굴로 비군을 바라보았다.

“……사령대장?”

“그렇네.”

설휘는 하핫, 하고 밝게 웃어 보였다.

용진을 위기에서 구해냈다는, 그리고 도움을 준 그에 대한 기쁨의 표시였다.

“…….”

그렇게 잠깐의 침묵이 일었고.

사적대장이 무슨 말을 꺼내려고 하던 중에 자연스럽게 시점이 다른 곳으로 이동되었다.

- 놓쳤다고? 웬만해선 실수가 없던 네가…….

- 그런가. 역시 주변에 있는 이목까지 피하면서 녀석을 사로잡긴 쉽지 않았겠지.

- 되었다. 이렇게 된 이상, 좀 다른 방법을 써야겠다.

태황각주의 목소리가 들렸고.

[어디를 둘러보시겠습니까?]

▶ 천마 넷째 제자의 가택

자연스럽게 눈앞에 이 글귀가 떴다.

‘이제 마지막인가.’

새로 생성된 선택지문에 설휘는 시선을 올렸다.

아마도 이 선택창이 조장들의 호감도를 신뢰로 올릴 수 있는 마지막 선택지일 것이다.

<‘천마 넷째 제자의 가택’으로 이동합니다.>

결심이 선 설휘의 선택에 익숙한 문구가 떴고.

[사흘이 지납니다.]

새하얀 빛이 눈앞을 강하게 감쌌다.

* * *

“음…….”

시야가 밝아졌다. 설휘는 잠깐 주변 상황을 인식하는 데 어려움이 있었다.

조금 전의 새하얀 빛 때문이 아니었다. 지금은 오히려 낮이 아닌 한밤중이다.

“하아. 하아.”

“큽. 흐으읍.”

등을 맞댄 두 남녀. 그리고 그들을 둘러싼, 복면을 쓴 다섯 괴한.

갑작스럽게 전개된 상황과 얼핏 보아도 위기에 처한 두 인물이 눈에 들어왔다.

‘소령? 요림? 저들은 누구지?’

두 남녀는 설휘의 수하인 요림과 소령.

그리고 이들을 에워싼 정체불명의 인물들.

검은 복면에 온몸을 감싼 흑풍의. 이후에 뜬 정보창이 아니었으면, 누군지 계속 알 수 없었을 것이었다.

[State, 상태]

조과(趙戈) [천밀영(天密影)_1]

체력 285만/330만

내공 205만/220만

경지 초절정

전투력 440만

[State, 상태]

양극(楊極) [천밀영(天密影)_2]

체력 277만/310만

내공 184만/200만

경지 초절정

전투력 395만

………

‘천밀영?!’

선택지문으로 상대의 소속을 확인하자, 설휘는 머리끝이 쭈뼛 서는 기분이었다.

천밀영. 태황각주의 비밀임무를 수행하는 12인의 공작부대원.

소문으로만 전해 들었던, 실제로 있는지 없는지도 몰랐던 조직이 이곳에 출현한 것이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이지?’

설휘가 긴장해서 살피던 중에, 요림의 입에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너희들, 대체 어디서 기어들어 온 거냐…….”

쿨럭.

입가로 피를 흘리는 요림. 척 봐도 심한 내상을 입은 상황으로 보인다.

“하아…… 하아…….”

하지만 그보다 등을 맞댄 소령의 처지가 더 안 좋아 보였다. 그녀는 안색이 잿빛이었고 한쪽 무릎이 반쯤 굽혀져 있는 것이 지금 서 있는 것도 위태로워 보였다.

“그건 알고 없고. 우리가 묻는 말에 대답만 해.”

요림의 말에 복면인 하나가 입을 열었다.

“사령대장은 지금 어디에 있느냐?”

“시발. 그걸 우리가 어찌 알아?”

“역시 말로 해선 안 되는 놈이로군.”

주변을 포위한 복면인들이 서로 눈을 맞추었다.

스윽.

무기가 들려지고, 복면인들의 몸에 힘이 들어가는 듯했다.

“제길, 갑자기 곤마께서 찾으신다기에 뭐 좋은 무공이라도 알려주는지 알았더니…….”

요림이 투덜거리자 소령이 말을 받았다.

“애초에 그것부터가 이들이 꾸민 일일 거야. 직접 구두로 전해 들은 게 아니잖아?”

“하긴…… 우리가 섣불렀군.”

그리고 더는 말하지 않았다. 적들이 행동을 개시했던 것이다.

파파팟.

그림자가 날뛰고, 몇 번의 교전이 일어났다.

챙! 챙! 카캉!

복면인들 하나하나가, 모두 자신들보다 실력이 앞섰다.

“악!”

그렇게 두세 번의 교전 끝에, 방어하던 소령이 한쪽으로 밀려 나갔고.

“윽!”

요림 역시 뒷걸음질 치다 벽에 부딪혔다.

카카카캉!

두 사람은 최후까지 안간힘을 다했다.

자세가 무너지는 가운데서도 소령은 온몸을 이용하여 방어해냈고. 오히려 한 명의 어깨에 암기를 꽂아 넣기까지 했다.

“크윽! 으아아아!”

챙! 챙!

요림 역시 외상을 입은 상태에서도, 치명적인 공격은 계속 피하고 있었다.

<어떤 선택을 하시겠습니까?>

▶ 싸움을 건다.

▷ 좀 더 기다린다.

때마침 설휘의 눈에 뜬 선택창.

하지만, 전투를 보던 설휘의 입장은 아까와는 생각이 달라졌다.

‘이놈들. 죽이는 게 목적이 아니다?’

처음에는 다급했다. 전투력도 그렇고, 복면인 다섯 모두가 월등히 사령대 조장들의 실력을 앞서고 있었으니까.

그럼에도 이들은 계속 싸움을 길게 끌고 가고 있다. 실력을 다 발휘했다면 길어질 수 있는 싸움이 아닌데도.

‘뭐지? 죽이는 게 목적이 아니라면…….’

설휘의 생각은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놈들이 두 사람을 계속 공세로 압박하는 게, 뭔가 이상했다.

정확히는 왠지 지금 개입하기가 꺼려졌다.

‘일단은…… 조금 더 상황을 보자.’

잠시 고민하던 설휘는 결국 판단을 내렸다.

살기는 분명히 넘치지만, 복면인들은 사령대 조장들을 당장 죽일 것 같지 않다.

그렇다면 그 이유.

놈들이 뭘 노리고 있는지를 파악해야 하는 것이다.

<‘좀 더 기다린다.’를 선택하셨습니다.>

멈췄던 시간이 다시 이어지고.

격렬하게 싸우던 이들은 어느 순간, 동작을 멈췄다.

정확히 말하자면, 복면을 쓴 괴한들이 더는 싸우려 들지 않은 것이다.

“……뭐냐?”

잠잠한 대치되는 상황에서 요림이 물었다.

그리고 바로 그때.

파아아앗.

“……!”

그들의 몸이 거짓말처럼 갈가리 찢겨나갔다.

한 명도 아니고, 일거에 다섯 모두가.

“아……?!”

소령은 그저 입을 쩌억 벌렸다.

눈앞에 괴한들이 거짓말처럼 사라져버렸고, 그들 앞에는 한 노인이 서 있었다.

그리고 그 얼굴은 소령과 요림도 모를 수 없는 인물이었다.

“허어. 꽤 고초를 겪고 있었구나?”

‘사마귀!’

설휘는 눈을 의심했다.

태황각주는 자신의 비밀요원, 그것도 비밀리에 키운 소중한 무사들을 너무도 쉽게 죽여버렸다.

“……태황각주께서 여긴 어떻게?”

요림이 입이 느리게 움직였다. 그 역시 당황하긴 매한가지였다.

“곤마 님을 만나러 왔지. 오늘 아침, 직접 연통도 넣었고…….”

“그, 그러셨습니까.”

풀썩.

요림은 주저앉은 몸을 세우고, 이내 예를 표했다.

“헌데, 이들은 누구인가? 왜 그대들을 공격하는 건가?”

그런 그를 내려다보던 태황각주가 물었다.

“저희도 모르겠습니다. 난데없이 나타나서 사령대장이 지금 어디에 있느냐고…….”

“그래?”

태황각주는 묘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러고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뭐, 어쨌든 마침 내가 와서 다행이군. 곤마 님의 소중한 부대원을 잃을 뻔했어.”

“……아. 감사합니다.”

요림과 소령은 예를 표했다.

태황각주가 평소 은영단과는 사이가 좋지 않은 관계였지만, 지금 당장은 확실히 그가 목숨을 구해준 은혜를 베푼 것이다.

“그럼, 수고하게.”

태황각주는 가볍게 눈인사를 하고는 돌아섰다. 그리고 몇 걸음 걷다가 말고.

투욱.

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돌렸다.

차분한 눈빛 너머 알 수 없는 묘한 표정을 지으면서.

“그런데 사령대장의 거처는 어디에 있느냐?”

여기서 시간이 멈췄다.

<거처로 돌아갑니다.>

눈앞에 글귀와 함께.

* * *

휘잇!

시야에 들어온 것은 자신의 거처였다.

어떻게 된 건지 설휘는 다시 이곳으로 이동한 것이다.

“대체 이게 어찌 된 거지?”

뭐가 어떻게 된 건지 이유를 알 수가 없었다.

선택지문이 뜨지 않고, 갑자기 자신을 이곳으로 보낸 것. 대체 무슨 일일까.

“음. 개입할 상황이 아니긴 했지만…….”

영문 모를 일이다.

뭔가 흉계가 있다는 생각은 들었는데 그래서 조심하다 보니 요림과 소령의 호감도를 올릴 기회도 얻지 못했다.

이건 원래 이렇게 진행되는 일일까.

아니면 자신이 뭔가를 놓친 것일까.

“그냥, 원래 특별한 일이 일어나지 않는 건가?”

아직은 알 수는 없었다.

요림도 소령도 일단 죽지는 않았다. 그래서 여기에 온 거라면 그렇게 나쁜 일만은 아니다.

‘다만, 문제는.’

마지막에 자신의 거처를 묻는 태황각주의 말이 거슬린다는 거다.

“혹시 모르니, 일단 저장을 하는 게…….”

불안한 생각 때문인지, 왠지 시간을 기록해두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밖에 누가 왔습니다. 거절할 수 없습니다.>

‘뭐야!’

불안은 곧 현실이 되었다.

드르르륵.

문을 열고 들어오는 노인.

조금 전 보았던 그 망할 놈의 태황각주였다.

“크크크. 여기 쥐새끼처럼 숨어 있었나.”

대화 따위는 이미 없었다.

눈을 부라린 태황각주는 매우 분노하고 있었다.

그리고 설휘는 그제서야 깨달았다.

[경고! 태황각주가 설휘 님의 빈틈을 발견했습니다. 어떻게 대응하시겠습니까?]

▶ 맞대응한다.

▷ 방어한다.

▷ 도망간다.

마지막 기회였던 ‘좀 더 기다린다.’를 선택한 게, 이번에는 잘못되었다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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