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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육성 시물레이션-75화 (76/379)

75화. 시뮬레이션 Lv2 (3)

“빌어먹을!”

상황이 어찌 흘렀는지 이제야 이해가 된다.

태황각주는 자신의 수하들을 보내 소령과 요림을 공격하게 했다.

그래서 그들이 절체절명의 순간에 처했을 때, 제 손으로 제 수하들을 죽였다.

그걸로 사령대 조장들의 환심을 샀고, 자신의 거처를 알아내 곧장 이곳으로 온 것이다.

‘하필 가면을 쓰지 않아서.’

말 몇 마디 나누기도 전에 태황각주는 다짜고짜 공격을 시도했다.

자신을 발견했으니 아마 일단 패서 반쯤 죽이고 볼 의도인 걸로 보인다.

6……5……

줄어드는 시간 속에서 설휘는 선택해야 했다.

방어에 집중할 것인지.

아니면 여기서 틈을 만들어 반격할 것인지.

‘제기랄. 어차피 이리된 거. 한 번 제대로 싸워 보자.’

정황상 이 싸움을 피할 구석은 없어 보인다.

그렇다면 죽더라도, 자신이 어느 정도까지 태황각주를 상대할 수 있는지, 이참에 알아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때마침, 이 녀석을 곤경에 빠트릴 수 있는 능력도 하나 얻었으니까.

전투방식 <시뮬레이션 Lv2>

새로워진 시뮬레이션 방식이 그것이었다.

<설휘 님의 무공 개수를 분석합니다.>

……

<분석 완료>

시간이 멈췄고. 시뮬레이션은 설휘의 모든 신체능력을 분석했다.

그리고 어떤 최적의 수를 찾을지 물어왔다.

<어떤 시뮬레이션을 돌려드릴까요?>

‘반격? 상대에게 치명상을 가하기?’

여러 가지 방식이 떠올랐지만, 결국 설휘의 선택은 이것이었다.

“태황각주의 숨통을 끊을 방법을 알려줘!”

정적 속 설휘의 외침이 울렸다.

그리고 기다렸다.

<분석 중……◇>

‘어. 시작한다.’

설휘는 기대했다.

어떤 결과가 나올까 하고.

그런데.

<죄송합니다. 설휘 님의 능력으로는 태황각주를 이길 방법이 없습니다.>

<대신 아래 두 가지 선택은 가능합니다.>

▶ 적의 공격을 1회성으로 피하는 움직임.

▷ 다소 부상을 당하더라도, 적을 문밖으로 밀어내는 방법.

‘제길.’

전투력 차이가 너무 극심해서일까.

시뮬레이션으로도 좁힐 수 없는 격차가 나타났다.

단지 적에게 피해를 주기도 쉽지 않다는 것.

‘어차피 빈틈을 보인 상황이다. 적을 밀어내야 해.’

▶ 다소 부상을 당하더라도, 적을 문밖으로 밀어내는 방법.

설휘는 판단은 두 번째였다.

피이이이-

선택하자마자, 눈앞을 뒤덮는 수많은 인영.

곧이어 마지막에 남은 녀석이 동작을 펼쳤고, 고스란히 설휘의 눈에 각인되었다.

파앗!

시간이 흐르자마자, 태황각주는 거의 쏘아지듯 다가와 설휘의 턱 아래를 겨냥해 왼손을 뻗었다.

“……!”

한 박자 늦게 반응한 설휘의 왼손이 그의 공격을 빠르게 쳐냈고.

패애액!

동시에 다른 한 손이 태황각주 가슴을 향해 장법(掌法)처럼 내력을 방출했다.

하지만 상대는 초마에 오른 고수.

창졸간에, 움직임이 몇 배는 빨라졌다.

사악. 팍!

자세가 무너진 가운데서도, 설휘의 일격을 한 손으로 낚아채고 곧장 빠르게 출수 동작을 취했다.

찢고 뚫고 감고 낚아채는 장법의 기술 중 하나인 변화장(變化掌)이다.

그리고 그 움직임까지 설휘 역시 정확히 알고 있었다.

“흡!”

휘릭!

손을 아래서 위로 훑듯이 올리며 상대의 공격을 막아내고, 동시에 몸통 하단을 공격했다.

또한, 몸을 반쯤 비틀었다.

“……?!”

그 순간, 태황각주는 자신의 판단이 잘못된 걸 깨달았다.

그는 황급히 출수 동작을 거두며, 설휘의 장법과 부딪쳤다.

쩌어어엉!

설휘가 뒤로 두 장 밀려났고, 태황각주는 주춤거리며 자리에 서 있었다.

그는 심각하게 얼굴을 굳혔다.

분명 상대보다 월등히 높은 내력을 가지고 있음에도, 기습적인 공격 때문에 제대로 발휘하지 못한 것이다.

“……네놈이 대체 어떻게 이런 무공을?”

태황각주는 놀라움보다도 의문이 더 컸다.

전력을 다하지 않기도 했지만, 고작 잡졸 따위, 제대로 된 소속도 없이 돌아다니는 놈이 자신의 공격을 막아내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한 모습이었다.

“왜요? 저는 익히면 안 됩니까?”

쿨럭!

설휘는 시뮬레이션이 예고한 것처럼 약간의 내상을 입은 상태.

오히려 그 점이 더 좋았다.

왠지 놈에게 한 방 먹인 것이 실감 났으니까.

“언제까지 당신 따까리만 하면서 살 수 없지 않습니까?”

뿌드득.

이를 갈던 태황각주의 눈빛이 변했다.

진심으로 싸울 의지를 보인 것이다.

꾸욱!

하지만 공격을 하기에 앞서, 그는 상대에게 묻고 싶은 게 있었다.

“너…… 설마, 이 모든 것을 계획한 것이냐?”

“하고 싶은 말이 무엇입니까?”

“…….”

태황각주는 잠시 뜸을 들인 후 입을 열었다.

“네놈이 내 집무실에서 어떤 물건을…….”

“거, 말 빙빙 돌리지 마시고.”

설휘는 그를 노려보며 말을 이었다.

“여지도. 그게 없어져서 여기로 왔다고 그냥 얘기하면 안 됩니까?”

“……!”

태황각주의 눈이 휘둥그레 커졌다.

의표를 찔린 사람처럼.

“크흐흐. 크하하하하!”

그리고 이내 미친놈처럼 웃기 시작했다.

한 각을 맡은 수장답게 중후한 웃음이었다. 하지만 확실히 기분 나쁜 웃음이기도 했다.

“그래……. 확실해졌군. 이제야 알겠다.”

태황각주의 입가에 묘한 웃음이 내걸렸다. 마치 목에 걸린 가시가 빠진 사람처럼.

“내 오늘 여기서 너를 죽여야 한다는 걸.”

“저도 확실해졌습니다.”

설휘는 녀석의 조롱을 받아주었다.

이렇게 눈앞에 서 있는 것 자체가.

이놈과 싸워 볼 수 있는 용기가 있는 것 자체가.

자신에겐 희열이고 복수였다.

“너 같은 개새끼를 죽이지 않고선, 평생 내게 달린 혹을 빼지 못한 거란 걸 말이야.”

그 순간, 설휘의 시선은 하늘로 향해 있었다.

어차피 죽는 걸 알고도 싸울 거라면.

미치도록, 후회 없이 싸울 거라면.

전투방식

이 녀석이 제일이었다.

* * *

스르르륵.

시야가 차츰 올라가더니, 태황각주와 AI설휘를 바라보는 지점에서 멈췄다.

그리고 난 AI설휘가 내뱉는 말에 귀를 기울였다.

“아. 참. 씨발 진짜. 좆같네.”

그 녀석은 욕부터 내뱉었다.

솔직히 이번엔 나도 미안했다.

이런 싸움을 저 녀석에게 맡겼다는 것 자체가.

“진짜 이 새끼는 뭐 하나 제대로 할 줄 아는 게 없어…….”

혼자 주저리 떠드는 모습에 내가 괜히 찔린다.

미친 듯 혼자서 소리치는 모습 때문에 태황각주가 의아하게 그를 바라보았다.

그러다가.

“뭘 봐. 인성 말아먹은 새끼야.”

AI설휘는 역시나 그 성격대로 대차게 반응했다.

그 말에 태황각주의 입꼬리를 슬며시 올리더니.

서서히 표정이 굳어졌다.

‘온다.’

나는 직감했다.

한 번 당한 게 있기 때문에, 태황각주는 이제 제대로 싸움을 걸어올 거다.

그러니 이번 한 번의 공격을 막느냐 못 막느냐에 내 관심이 쏠렸다.

파아아앗.

일순, 문밖에 있던 AI설휘를 향해 엄청난 속도로 질주하는 태황각주.

그렇게 거리가 반쯤 좁혀질 때였다.

‘뭐야!’

나는 눈을 의심했다.

갑자기 시간이 멈췄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움직이고 있었지만, 극도로 느린 속도로 움직이고 있었다.

‘시뮬레이션이다!’

진심으로 놀랐다.

내가 아닌 AI설휘의 시뮬레이션이라니?

본래 1회밖에 사용하지 못하는 건데, 아마 이 녀석도 1회 사용을 할 수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근데 움직임이…….’

수많은 환영이 AI설휘 주변을 뒤덮는 가운데, 그 행동이 어딘가 조금 이상했다.

보통 시뮬레이션은 적의 가상한 움직임을 예측하고 움직인다.

그런데 이번 환영들은 AI설휘 본인의 동작을 시험해보는 것처럼 보였다.

‘시뮬레이션 Lv2라서 그런 건가?’

어떤 명령을 했는지는 모르는 상태.

하지만 내 생각은 거기서 정확히 멈췄다.

갑자기 시간의 흐름을 빨라지는 순간, 설휘의 검에서.

“---!”

쩌어어엉!

엄청난 속도의 풍신검이 쏟아져 나온 것이다.

콰콰콰쾅!

그리고 그 공격에 건물이 박살이 나며, 태황각주의 몸이 거의 밀려나다시피 했고.

패액!

오히려 이번엔 AI설휘가 전력으로 달려들고 있었다.

솨아아아아-

파편이 튀는 가운데 설빙 가루들이 사방으로 휘날리고 있었다.

소신수마공.

더욱이 굉장히 높은 공력을 사용하는 대빙운하(大氷運河)를 펼친 것이다.

빙그르르.

그런데 일격을 맞은 태황각주의 반응 역시 놀라웠다.

팟! 팟! 팟!

충격을 받은 가운데서도, 그는 손짓 하나에 무공을 펼쳤고.

엄청난 열기들이 얼음가루들을 녹이며 완전히 잠재워버렸다.

그런데 그게 완벽한 방어는 아니었다.

어차피 대빙운하는 허초였다. 일격을 가하는 것보다 상대의 눈을 속이기 위한 초식.

그 틈을 놓치지 않고 AI설휘가 지근거리까지 태황각주와의 거리를 좁혔다.

‘또 풍신검이다!’

쩌엉! 쩡! 쩡!

바람의 폭풍. 거기에 뇌전의 힘까지.

AI설휘는 거의 시간의 간격 없이 연속 세 번이나 풍신검을 펼쳤다.

이건, 태황각주라도 절대 막아낼 수 없는 기의 폭풍이었다.

AI설휘가 공격을 멈추고.

스스스스슥.

부서진 건물 잔해와 나무 파편, 그리고 얼음과 그을린 자갈들이 잠잠해질 때쯤.

뿌연 연기가 사라짐과 함께 AI설휘가 중얼거렸다.

“시발-- 것. 좀 하네.”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는 태황각주.

다만, 이전과 달리 이번엔 꽤나 피해를 본 듯했다.

찢어진 옷들이 그 모습을 대변해주고 있었으니까.

* * *

‘정말 미친, 대단한 놈이다. 몇 배나 차이 나는 전투력을 이렇게…….’

나는 전투를 보고 기함했다.

이 정도로 상대를 밀어붙일 줄은 정말이지 상상도 하지 못했다.

어쩌면 AI설휘는 무공과 전투력에 큰 영향을 받는 듯했다. 나 자신의 능력이 올라갈수록 AI설휘 또한 능력이 비약적으로 상상하는 것처럼 보였다.

“이, 잡것이…….”

이글거리는 눈으로 바라보는 태황각주.

그에게선 이제껏 견지하던 여유가 이제 없어 보였다.

그런 가운데 AI의 시선이 하늘로 향했다.

정확히는 나를 보고 있었다.

“이 병신아. 이런 신병이기를 얻었으면, 봉인 좀 풀어놔라!”

나를 향해 AI설휘가 욕을 해왔다.

‘봉인이라면……. 아, 그 검에 있는?’

“아, 저 병신같은 놈…….”

그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고, 다시 태황각주를 노려보았다.

그렇게 잠깐의 침묵 뒤.

팟.

이번에도 태황각주가 움직였다.

‘뭐야! 더 빨라졌잖아!’

이전 움직임도 빨랐지만, 이번에는 정말 눈 깜짝할 사이에 상대에게 접근했다.

“흡!”

AI설휘가 급히 방어를 해보는 것 같았지만, 이미 늦었다.

태황각주의 화온마공이 설휘의 복부를 강타한 것이다.

“크아아악!”

일격을 맞자 설휘가 거의 수 장이나 뒤로 밀려났고.

자세를 고쳐잡을 시간 없이 AI설휘가 멈췄다.

거의 미친 속도로 이동한 태황각주가 또다시 복부를 때린 것이다.

퍼억!

“크악!”

괴성을 지르며 다시 밀려난 설휘.

하지만 다시 자리에 일어섰을 땐, 맞지 않았다.

검을 던지다시피 하며, 상대의 움직임을 잠시 멈추게 했고. 두 손에 열기를 담아, 그의 공격을 막아냈으니까.

그렇게 마주 본 AI설휘와 태황각주.

“이 새끼…… 좀 치네.”

AI설휘는 헉헉대며 비릿하게 웃어 보였다.

“장난은 여기까지. 그만 죽어라.”

태황각주가 냉소를 지었다.

점점 부풀어오르는 화온마공. 하지만 내기에 밀렸음에도, AI설휘는 눈은 여전히 빛났다.

“지랄. 내 목숨은 내가 선택한다.”

쾅!

일격에 다시 한 번 밀리는 순간, AI설휘는.

파파팟!

급히 자신의 혈도를 짚기 시작했다.

‘이 녀석……?’

콰악!

그리고 다시 달려와 머리채를 잡는 태황각주. 그는 무표정한 얼굴로 짧게 말했다.

“끝이다.”

그런데, AI설휘는 웃고 있었다.

마친 미친놈처럼.

“말했지? 내 죽음은 내가 선택한다고.”

“……?”

그 순간. 나는 보았다.

눈가에 실핏줄이 그어지며, 머리 위로 열기가 증기처럼 피어오른 장면을.

AI설휘가 자신의 몸에 담긴 내공을 모두 격발시킨 것이다.

콰아아아앙!

그리고 터졌다.

지축을 흔드는 거대한 폭발과 함께, 눈앞에 시야가 완벽하게 어둠으로 멈춰 버렸다.

AI설휘. 이 미친놈은 기어코 동귀어진으로 태황각주에게 회심의 일격을 날렸다.

<다섯 번의 목숨이 남았습니다.>

그리고 다시 시작되었다.

▶ 처음부터 시작한다.

▷ 계속 이어서 한다.

▷ 저장한 지점을 불러온다.

또 다른 나의 삶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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