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6화. Part 3 태황각주의 속내 (1)
<네 번의 목숨이 남았습니다.>
<‘천력 97년, 제4장-5. 조장들의 호감도 채우기’를 불러옵니다.>
이로써 세 번째다.
조장들 호감도 채우기를 목표로 삼은 건.
지난번에는 적송과 용진의 호감도를 끝까지 상승시켰다. 하지만 요림과 소령을 남겨둔 상황에서 예상치 못하게 태황각주에게 죽음을 맞이했다.
그러니, 이제 더는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아야 한다.
“우선 검부터…….”
설휘는 예오후검을 찾기 위해 문밖을 뛰쳐나갔다.
이전 삶에서 죽었을 때 이 근처에서 검을 떨어뜨렸으니, 당연히 이곳에 있을 것이다.
예상대로 예오후검은 한쪽에 떨어져 있었고, 설휘는 곧장 그것을 집어 들고 거처로 돌아왔다.
“좋아. 이번엔 반드시 성공한다.”
그리고 다짐했다. 더는 똑같은 실수를 하지 않겠다고.
네 개의 목숨.
강해지기 위해선, 하나라도 소중히 여겨야 했기에.
* * *
<적송을 설득시켰습니다. 적송의 호감도가 끝까지 상승합니다.>
<용진을 설득시켰습니다. 용진의 호감도가 끝까지 상승합니다.>
다음 날, 조장들이 머물던 곳으로 향했다.
방법을 알기에 이전처럼 적송과 용진을 설득시킨 후, 그들의 신뢰를 얻어냈다.
<‘천마 넷째 제자의 가택’으로 이동합니다.>
[사흘이 지납니다.]
그렇게 이동했던 넷째 제자의 가택.
“너희들, 대체 어디서 기어들어 온 거냐…….”
요림의 대사와 함께, 예전에 봤던 장면이 눈앞에 펼쳐졌다.
이후 소령이 한쪽으로 밀려 나갔고, 요림 역시 뒷걸음질 치다 벽에 부딪혔다.
그리고 난투전이 이어지던 그때. 예의 선택지문이 등장했다.
<어떤 선택을 하시겠습니까?>
▶ 싸움을 건다.
▷ 좀 더 기다린다.
“흥.”
이번엔 설휘도 주저하지 않았다.
이미 지난번의 죽음으로, 여기서 싸움을 걸어야 한다는 걸 학습했으니까.
<‘싸움을 건다.’를 선택하셨습니다.>
팟.
선택에 따라, 설휘가 배정받은 위치는 커다란 느티나무 중 하나였다.
위치는 허공. 자신은 나뭇가지를 밟고 선 채 싸움터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타앗.
설휘는 고민하지 않고 싸움터 한복판으로 달려들었다.
“……!”
확실히 실력자들이라 그런가? 도약하는 자신의 존재를 천밀영의 고수들이 눈치챘다.
하지만 상관없었다.
설휘는 곧장 시뮬레이션으로 돌렸고.
<어떤 시뮬레이션을 돌려드릴까요?>
곧장 외쳤다.
“일격에 천밀영 고수들을 모두 죽일 수 있는 방법!”
<분석 중……◇>
시뮬레이션은 빠르게 응답해왔고, 눈앞에 수많은 인영이 셀 수 없이 많은 동작을 구현했다.
<찾았습니다!>
▶ 60% 피해를 받으며 천밀영 소속 모두에게 치명적인 일격을 가함.
‘망할. 60%라니?’
뭔가 께름칙한 기분이었지만, 설휘는 곧장 실행했다. 어차피 이 상황에서 시뮬레이션의 도움을 받지 못하면 일격에 죽이는 건 불가능했기에.
핏.
시간이 다시 흘렀다. 천밀영 고수 하나가 뒤로 빠지며 곧장 반응해왔다.
그에 설휘의 눈에 투영된 건 천근추(千斤墜)였다.
몸을 가볍게도, 무겁게도 하는 경공술의 수법 중 하나.
그는 내기를 운용해 바로 몸을 뚝 떨어트렸다.
후욱!
‘……!’
일순, 도약하던 ‘천일영_3’은 타격하려던 지점을 놓치고 말았다.
갑작스레 설휘의 몸이 공중에서 뚝 떨어지는 상황을 예상하지 못한 것이다.
억지로 급하게 검을 휘둘렀지만.
휘잉!
아슬아슬하게 빗나갔다. 본인의 몸은 도약하고, 상대의 신형이 뚝 떨어지며, 서로 몸이 교차하는 시점에.
설휘의 검이 그의 허리를 정확히 베었다.
쇄애애액!
“컥!”
그리고 즉각 회수.
투욱.
땅을 밟자마자. 설휘는 눈앞에 투영되는 흐름을 읽었다.
지척에 한 명. 조금 뒤에 또 하나.
소령과 요림을 상대하던 두 복면인이 뒤늦게 움직이는 모습이 들어왔다.
패애애애액.
그들을 향해, 설휘는 첫 공격을 가했다.
눈앞에서 시뮬레이션이 펼쳐냈던 소신수마공의 소하개동(素下開動)이었다.
“헛?”
“으윽!”
강력한 냉기가 적의 몸을 감았다. 달려들던 네 명의 천밀영 고수들의 발이 일순 느려졌고.
파팟.
설휘는 무흔귀신보를 밟고, 대각으로 튀어 나가며 ‘천밀영_2’의 목을 삽시간에 베었다.
그리고 이를 악물었다.
‘제길. 한번 내어 준다.’
쉬익!
지척에 있던 천밀영 고수가 달려들었다.
설휘가 ‘천밀영_2’의 목을 베는 사이, 그 녀석은 틈을 타서 설휘에게 검을 찔러넣었던 것이다.
푸욱!
“큭!”
어깨에 맞았다. 설휘는 신음과 함께 주춤했다.
사사사삭.
하지만 그는 고통을 참고 그대로 동작을이었다.
이미 시뮬레이션이 눈앞에 펼친 동작들은, 남은 세 명을 모두 처리하기 위한 포석 중 하나였기에.
“뭣?”
“헉!”
설휘가 검을 반원으로 휘두르자, 검이 여러 개로 불어난 듯한 착란을 일으켰다.
그리고 그건 발이 느려진 상태로 조금 떨어진 두 명의 천밀영 고수들을 당혹하게 만들었다.
일원소마공의 9초식. 환영비검을 그들이 알 리가 없었다.
쩌엉 쩌엉.
두 번의 검기 발산.
검 동작에 현혹된 천밀영 고수들의 움직임이 거기서 멈췄다. 어떠한 저항도 하지 못하고 그대로 즉사해버린 것이다.
하지만 설휘 역시 무사하지 못했다.
콱!
“윽!”
지근거리에 있던 천밀영의 반격에, 이번엔 허리 한쪽이 깊게 베여버린 것이다.
‘이게 60%라는 거군.’
[State, 상태]
설휘 [은영단 사령대장]
체력 29만(↓42만)/71만
내공 101만(↓20만)/121만
경지 초절정
전투력 591만 이하
[State, 상태]
조과(趙戈) [천밀영(天密影)_1]
체력 285만/330만
내공 205만/220만
경지 초절정
전투력 440만
전투방식을 턴제로 바꾸자마자, 마지막 남은 자의 수치가 눈앞에 들어왔다.
설휘의 수치 역시 60% 감소한 듯 보인다.
거기다 순간적으로 신형이 무너짐을 느낀 상대는 곧장 공격해왔다.
‘여기서 마무리를…….’
“어? 대……!”
“조용히!”
요림이 부르는 소리에, 설휘는 신경질적으로 목소리를 높였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곧 태황각주가 온다. 아니, 이미 왔을 수도 있다.
기껏 이놈들을 처리해놓고, 자신의 신분을 여기서 들킬 수는 없었다.
키잉!
‘……!’
그런데 그게 실수였다.
시뮬레이션이 보여줬던 환영과는 다른 동작을 취하다 보니, 더 큰 위기 상황에 빠졌다.
쩌엉!
적의 공격 한 번은 쳐냈지만, 그 직후 파고드는 상대의 공격에 대한 대비가 미흡했다.
‘아……!’
상대의 검을 놓쳤다는 생각이 설휘의 뇌리에 파고드는 그때.
자신의 목젖까지 다가선 상대의 몸이 붉게 물들었다.
그리고.
쿠와아와앙!
그 즉시 폭발해버렸다.
‘뭐, 뭐야!’
설휘는 주저앉은 채로 멍하니 주변을 바라봤다. 그리고 그의 시야에 포착된 하나.
외의(外衣)를 축 늘어뜨리고 미묘한 시선으로 자신을 내려다보는 인물.
‘녀석이다.’
엄청난 무공. 그리고 압도적인 움직임.
태황각주가 등장한 것이다.
“거. 은영단을 공격하는 놈들이라니…….”
녀석은 다시 시선을 들어 주위를 둘러보며 말했다.
조금 전, 무공으로 인해 얼어붙은 조장들과 자신을 다시 한번 본 뒤.
검지를 스윽 올려보았다.
그러자.
쾅! 콰쾅! 쾅! 콰아앙!
폭발이 사방에서 일어났다.
이는 광범위한 폭발이 아닌, 그가 원한 위치의 폭발이었다.
설휘는 그 행동의 의미를 짐작했다.
‘이놈. 복면인들의 흔적을 지우려는 거야…….’
마지막 남은 복면인을 그가 죽였던 이유.
본래는 제 손으로 자신의 수하를 죽이던 녀석이다. 상황이 변하니 이런 식으로 대응하고 있었다.
그리고 늘 보이던, 벌레 보는 듯한 시선을 다시 자신에게 보내며, 씨익 웃어 보였다.
“여기에…… 꽤 재밌는 옷을 입고 있는 자가 있군?”
“…….”
“자넨 어디 소속인가?”
“…….”
설휘는 대답하지 않았다.
아니, 할 수 없었다. 여기서 목소리를 들으면 금방 탄로 날 것이 뻔했기에.
“……당신이 여길 왜?”
다행히 옆에서 요람이 한마디 내뱉었다.
“흐음.”
태황각주는 느긋하게 턱수염을 매만지며 그를 한 번 바라보았다.
하지만 이내 다시 자신에게 시선을 두며 말했다.
“그 가면을 한번 벗어보겠나?”
“……?!”
“그래도 내가 목숨을 구해준 거니…… 이참에 인사 정도는 받았으면 하는데.”
틀리지 않은 말이다. 설휘는 고민했다.
‘제길, 어찌해야 하나.’
본래 태황각주의 성정이라면, 조금 전 요림이 저리 묻는 것부터 바로 노갈을 터뜨렸을 터였다.
그런데 그 무례를 참아 넘기고 있다. 이쪽을 그만큼 수상하게 보고 있다는 것.
“왜 대답이 없지?”
가만히 있다간, 그냥 힘으로 벗겨질 수도 있었다.
태황각주가 추궁해 오자, 설휘는 전력을 다해 머리를 굴렸다.
뭐라도 해서 시선을 끌어야 할지.
아님, 이 자리를 벗어나야 할지.
“이봐. 지금 날 무시…….”
“먼 거리를 오셨군요.”
그때였다.
참으로 시기적절한 시점에 나타난 청년이 있었다.
‘어……?’
아니, 생각해보면 그가 여기에 나타나는 게 지극히 당연했다. 이곳은 그의 처소 바로 앞이었으니까.
“곤마 님…….”
태황각주가 예를 표했다.
천마의 제자 중 넷째. 곤마.
절체절명의 순간에 그가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그리고 마치 이 순간을 기다려왔다는 듯, 눈앞에 빛이 투영되기 시작했다.
* * *
Part 3 태황가주의 속내
눈앞이 다시 밝아졌을 때는 넷째 제자의 가택으로 보이는 방 안이었다.
그곳엔 마주 보고 앉은 태황각주와 곤마가 있었다.
쪼로록.
두 사람의 잔에 찻물이 채워지고, 시비가 조심스럽게 방문을 걸어 나갔다.
그리고 문이 닫히자, 곤마가 기다렸다는 듯 입을 열었다.
“제 거처 바로 앞에서 소란이 있었군요. 무슨 일인지 물어봐도 되겠습니까?”
“별일 아니었습니다.”
태황각주가 살짝 염두를 굴리고는 대답했다.
“은영단에 잠복해온 녀석들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사령조장들이 위험에 처한 것으로 보여서, 제가 손을 썼고, 바로 처리했습니다.”
“그래요?”
곤마가 미미하게 미소를 띠자, 태황각주는 오히려 꼿꼿한 자세로 말을 받았다.
“예. 공교롭게도 말입니다.”
“그렇군요.”
곤마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잠시 뜸을 들이다 탁자에 두었던 시선을 올리며 말했다.
“말씀대로 참 공교롭군요. 따로 기별을 주시긴 했지만, 때마침 태황각주가 직접 오셨을 때 그런 일이 발생했군요.”
“음. 그러게 말입니다.”
“그런데 정말. 더할 나위 없이 공교롭게 되었습니다. 어떤 놈들인지, 누가 무슨 생각으로 제 처소까지 왔는지 조사해야 하는데, 흔적이 남지 않아서 말입니다.”
“하. 하하. 당시엔 저도 좀 당황했나 봅니다. 은영단 식구들을 구하려다 보니 말입니다.”
네가 흔적을 다 지운 것이 아니냐? 라는, 가시 담긴 곤마의 말에, 태황각주가 너털웃음을 흘리면서 말을 이었다.
“그게……일단 기습한 자들을 쓰러뜨리긴 했지만, 아직 숨은 붙어 있었습니다. 그 상태로 혹여나 기습적인 암기라든지, 독이라든지, 그런 위험요소는 얼마든지 있을 수 있어서 제가 손을 좀 과하게 썼습니다.”
“손을 과하게 썼다.”
“예. 곤마께서도 아시겠지만, 최근 제 숙소에 침입한 간자들 때문에 조금 민감해져 있던 차였습니다. 혹여 불쾌하셨다면 다시 한번 사과드리겠습니다.”
태황각주는 깍듯하게 고개를 숙였다.
“……”
곤마는 한참 동안 그에게 날카로운 시선을 보내고 있었다.
태황각주는 고개를 숙인 채 그 시선을 받고 있었다.
그러기를 한참, 곤마는 눈길을 거둬들였다.
“아닙니다. 우리 사이에 뭐 그런 게 있겠습니까?”
곤마는 찻잔을 집어 들었다.
그러고는 한 모금 마신 뒤 말을 이었다.
“그래요. 따로 오늘 보자고 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첫째 제자이신 살마께서 전하란 말이 있었습니다.”
“뭡니까?”
“제 입으로 말씀드리기가 그래서 따로 적어왔습니다.”
태황각주는 품속에서 잘 말려진 양피지를 꺼냈다.
그리고 탁자에 내려놓고는 천천히 그에게 내밀었다.
곤마는 그것을 집어 들었다.
그곳에 이런 내용이 쓰여 있었다.
- 하는 일에서 손 떼라.
“……첫째 사형께서 정말 그리 말씀하셨습니까?”
“저는 들은 사실대로만 적었을 뿐입니다.”
“그래요?”
투욱.
순간적으로 태황각주의 얼굴이 굳어졌다.
곤마가 들고 있던 양피지를 그의 얼굴에 던져 버렸기 때문이다.
“저의 대답이 이거라면, 태황각주께서는 어찌하시겠습니까?”
예상치 못한 도발과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