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1화. 후기지수 (1)
29일 차가 되던 날, 적송이 돌아왔다.
“꽤 쓸 만한 걸 얻었습니다. 사실, 오래전부터 교류해온 곳이 있어서 그곳에 소검 제작 의뢰를 넣던 중이었습니다. 그런데 때마침 낯선 이들이 가게로 들이닥치는 겁니다. 보아하니 인근의 왈패들인 것 같기에…… 이것저것 조사해보았고, 꽤 근사한 물건들을 발견했습니다.”
설휘는 적송의 ‘이것저것 조사해봤다’라는 중의적인 표현을 조금 늦게 이해했다.
죽도록 두들겨 패고, 적의 본진까지 쳐들어가서 고문한 뒤 물건을 갈취했다는 얘길 말이다.
[적송이 건령패(乾靈牌)와 귀소검(鬼小劍)을 얻었습니다.]
[적송의 전투력이 22% 상승합니다.]
‘방패?’
귀소검 같은 작은 단검은 그렇다고 해도, 건령패는 누가 봐도 방패처럼 보였다.
보통 보호구라면 몸에 걸친 갑주를 주로 착용하는데, 적송은 되레 손에 들 수 있는 방어구를 가지고 온 것이다.
꽤 덩치가 있는 체구이니 왠지 모르게 어울릴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긴 했지만.
‘자기가 원하는 걸 사용하는 것도 뭐…….’
설휘는 적송의 전투력이 올라간 걸 보고 그가 느낀 감정을 이해하려고 노력했다.
확실히 스스로에 맞는 장비들이 있는 것 같았다.
이게 앞으로 어떻게 활용될지는 좀 더 지켜볼 일이지만, 일단 수긍했다.
그렇게 30일차 때, 유일하게 남은 조장인 요림이 돌아왔다.
그는 매우 감격에 북받친 얼굴로 설휘를 보자마자 황급히 말을 쏟아냈다.
“너무 흥분됩니다. 우연히 양씨세가 출신의 대장장이를 만난 게 큰 행운이 되었습니다. 이토록 고급 창을 얻을 줄은 생각지도 못했습니다.”
창? 요림이 창술을 쓸 수도 있었던가.
설휘는 검을 사용하던 요림의 다른 면을 볼 수 있었다.
뿐만 아니라.
[요림이 벽력신창(霹靂神槍)을 얻었습니다.]
[요림의 전투력이 44% 상승합니다.]
‘와!’
설휘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병기 하나를 얻었을 뿐인데, 전투력이 폭발적으로 증가한 모습.
확실히 그러했다.
자신의 손에 맞는 병기는 그 능력을 극대화시켜준다는 것.
그리고 조장들이 각자 추구하는 병기들이 있다는 것.
이번엔 그간 몰랐던,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마지막 제자 겸 하인. 또는 짐꾼.
음무기도 31일차에 돌아왔다.
그 역시 요림처럼 얼굴이 밝았기에, 본 설휘는 내심 기대했다.
“하핫. 대장! 31일 동안 정말 즐거웠습니다.”
“…….”
잠깐이나마 자신은 어이없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 뭔가 얻어온 게 있느냐?”
잠깐의 정적이 흐른 후.
음무기는 해맑게 대답했다.
“있지요. 물론 있지요. 대신 전 눈에 보이는 물건이 아닌, 훌륭한 인품을 가진 사람들의 소중한 정보를 들고 왔습니다.”
“……?”
의아함은 점점 불안감으로 변했다.
그리고 그때쯤 설휘는 눈에 이런 게 떴다.
[음무기는 사천 지방 내 ‘아름답기로 유명한 규수들의 연락처’를 얻었습니다.]
[음무기는 사천 지방 내 ‘옥안서생(玉顔書生)’으로 이름을 날렸습니다.]
“하……?”
설휘는 눈앞의 이게 뭔지 한참을 이해하려고 노력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때려죽일 분노를 인내하기 위해 애썼다는 표현이 맞았다.
백혼 장로가 왜 자신에게 이 녀석을 맡겼는지 알게 되는 순간이기도 했다.
“이게 말입니다. 보통 구하기 어려운 게 아닙니다. 저라서 가능한 겁니다. 정말로요. 그러니 대장께서도 연락을 원하시면 언제든 제가 주선을 하겠습니다.”
“음무기…….”
“아, 인물이 신경 쓰여서 그런 겁니까? 허허허. 있죠. 당연히 있죠. 그려온 용모파기는 여기에…….”
딱 여기까지였다.
그의 얘기를 들었던 건.
설휘에게 강제된 시간의 흐름이 아니었으면 음무기는 완전히 박살 났을 테지만, 아쉽게도 지금 그는 그곳에 없었다.
시각은 31일째 밤.
설휘의 거처에서 시간이 멈췄다.
* * *
설휘는 거처의 마당에서 간단한 동작을 반복하고 있었다.
과거 최고의 비기라는 풍신을 쓰기 위한 몇 번의 노력이 있었다.
하지만, 백혼 장로에게 신발을 얻은 후에는 완전히 달라졌다.
간단히 한 번 시연을 해봤을 뿐인데.
콰르릉!
사방을 뒤흔드는 기의 폭풍이 하늘 높이 솟구쳤다.
거의 시간의 간격이 없다고 해도 무방할 정도의 속도.
압도적으로 강력한 일격.
거기다 내공 소모는 일절 없는 기술.
풍신(風神) : → ↓ ↘, A<4.5배속>
고작 중립 하나를 지웠을 뿐인데, 이 정도로 쉽게 발동할 수 있다니.
백혼 장로가 준 신발은 정말이지, 엄청난 기연을 가져다준 격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검을 들고 있다면.’
철컥.
설휘는 검집에서 예오후검을 꺼냈다.
그리고 다시 한번 신병이기의 능력을 확인했다.
<기본 능력>
일반 무공시 파괴력 70% 증가
극음 무공시 파괴력 50% 증가
극양 무공시 파괴력 50% 증가
사대극마공 사용시 파괴력 30% 추가 증가
<추가 능력>
전투방식(턴제, AI, 시뮬레이션) 능력 증가
<특별 능력>
추혼기(追魂氣)(봉인된 저주)
모든 능력은 오 할 이상 상승하며, 풍신 사용 시 파괴력이 무려 삼 할이나 증가한다.
설휘는 풍신권이 풍신검으로 변했을 때 반응을 다시 한번 보고 싶었다.
쿠아아아앙!
거대한 기의 폭풍이 다시 한번 설휘의 눈앞에서 발현되었다.
그걸 본 설휘는 차이를 직접 발견할 수 있었다.
소용돌이처럼 퍼져나가는 바람이 칼날처럼 예리해졌고, 더 거셌다.
뿐만 아니라, 간헐적으로 뇌전의 힘까지 더해지는 장면도 있었다.
‘주먹으로 썼을 때와 이런 차이점이 있구나.’
풍신권을 사용했을 때는 지반까지 흔들릴 정도로 상당히 광범위하게 퍼져나갔다.
전방뿐만 아니라, 좌우로도 상대를 밀어내는 풍압(風壓)이 발현되었다.
그에 반해 풍신검은 더욱 예리하고 강했지만, 광범위하진 않았다.
거기다 손으로 펼치는 것보다는 수월하지 못하다는 단점도 있었다.
“이 정도면 언제든 사용할 수 있겠어. 좀 더 전투력을 늘린다면, 누구와 싸워도…….”
설휘는 만족스러웠다.
상대를 향해 달려갈 때 고작 고개를 밑으로, 다시 앞으로 내미는 동작만으로도 구현할 수 있었다.
이렇듯, 풍신권이나 풍신검을 자유자재로 사용할 수 있다면.
자신보다 더 강한 녀석을 쓰러트리는 데도 문제없을 것 같았다.
그렇게 성장하다 보면 언제고 태황각주도 이길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왜…… 계속 불안한 거지?’
최근 설휘가 고민하는 것 중 하나.
점차 강해지는 건 확실했다.
각종 능력과 기연으로 이제는 당당히 누구와 싸워도 이길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데도 갈수록 뭔가 공허한 기분.
뭔가 놓치고 있다는 불안감, 그런 감정이 점점 생겨나고 있었다.
“잘 가고 있는 게 맞겠지?”
그건 알 수가 없다.
자신에겐 제대로 된 사부는커녕, 누구 하나 지도해준 이가 없었으니.
그저 눈앞에 놓인 현실.
오로지 생존을 위한 싸움만을 해오지 않았는가.
‘AI설휘 녀석처럼은 될 수 없을까.’
그래서 이런 생각도 해보았다.
사실 이 불안감의 근원은 그 녀석의 싸움을 본 후에 생겨났다고 해도 맞는 말이었다.
AI설휘 녀석은 늘 자신의 예상을 벗어났고, 이길 수 없는 싸움을 극복해왔다.
특히 적재적소에서 펼치는 그의 움직임은 설휘에게 한 차원 높은 전투를 선사해주었다.
그래서 고민이 된 거다.
그처럼 강해지기 위해선 어떤 수련을 해야 하는 건지.
그가 가진 전투능력은 어떻게 가질 수 있는 것인지.
‘지금으로선 이게 최선이다. 눈앞에 있는 기연을 잡기에도 급급한 게.’
그럼에도 설휘가 더는 신경 쓰지 않았던 건, 현실의 삶 때문이다.
바로 지금, 이 순간도 언제 죽을지.
기회를 놓칠지 몰라 불안해하면서 살고 있었으니까.
다만, 언젠가는 이 문제에 대해 깊게 고민해야겠다는 생각은 하고 있었다.
그리고 현재 수하들의 능력을 향상시켰으니, 이제부터는 앞으로 나아가야 함을 느꼈다.
기연이든 영약이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강해져야 했다.
그러다 보면 언젠가 보일 것이다.
지금의 자신이 미처 보지 못한 것들이.
* * *
다음 날.
<천력 98년 1월 일정을 정해주세요. (28/36)>
문 앞에 선 설휘의 눈앞에 이번 달 일정이 나타났다.
대충 계산을 해보니 월별 실행은 아홉 번.
그것으로 일정은 마무리된다.
그 후, 자신의 예상대로라면 곤마에게 결코, 가볍지 않은 임무를 받게 될 터.
그리되면 이곳 거처도 쓸 수 없고, 시간을 기록도 하지 못할 것이다.
그 시간이 다가오기 전에, 설휘는 자신의 능력을 최대한 키워야겠다고 생각했다.
▷ 조장들과 임무수행[곤마의 임무 받기]
▷ 수하들의 일정 정하기
▶ 임무 받기
▷ 무사 수행
그리하여 선택한 것은 세 번째.
강해지는 방법의 하나를 선택했다.
<누구에게 임무를 받으시겠습니까?>
▶ 곤마(천마 넷째제자)
▷ 흑구(은영단주)
▷ 적파(은영단 교육관주)
본래 있었던 네 번째 선택지는 바로 설휘를 고쳐주던 홍 의원.
고작 그의 의뢰 때문에 두 번이나 목숨을 잃었던 적이 있다.
결과적으로 예오후검이라는 신병이기를 얻긴 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출혈이 너무도 컸다.
그러니 각오는 단단히 해야 했다.
만약을 위해 수하들을 이토록 성장시키지 않았는가.
▶ 적파(은영단 교육단주)
이제는 선택의 일만 남은 것이다.
<적파(은영단 교육단주)에게 임무를 받으시겠습니까?>
설휘는 승낙했고, 기다렸다.
과거에는 없던 이런 질문이 나타났다.
<수하들과 함께 움직이실 건가요?>
▶ 함께 간다.
▷ 혼자 간다.
설휘는 고민하지 않았다.
임무를 수행하는 데 있어 수하들이 있으면 여러모로 도움이 될 것이다.
특히 다들 수백만에 달하는 전투력을 가진 자들.
웬만한 위기는 스스로 극복할 능력을 갖추고 있었다.
<수하들과 함께 간다를 선택하셨습니다.>
선택과 함께, 눈앞의 시야는 거멓게 변했다.
그리고 다시 밝아짐과 함께 교육단주, 적파의 얼굴이 보였다.
[적파]
“잘 왔네. 마침 자네에게 말하고 싶은 게 있었지.”
[설휘]
“하명하십시오.”
[적파]
“자넨 우리 은영단 자금줄이 어디에서 충원 되는 줄 아나? 총 세 곳이야. 그중 가장 큰 곳이 사천의 성도와 금당(金堂) 지역을 관리하는 지부야. 은영단의 활동비는 주로 그곳에서 충당되네.”
[설휘]
“헌데 어떤 일 때문에…….”
[적파]
“그게 말이야. 문제가 생겼네. 심각한 일이 아니기에 곤마 님께는 알리지 않았지만, 생각 외로 골치 아프게 생겼어. 금만중(金萬重)이라고 우리 쪽 사람인데, 주로 고리대업과 임대 사업으로 은영단에 돈을 대고 있었지. 그런데 그에게 최근 자릿세를 명목으로 협박하는 녀석이 있네.”
[설휘]
“그가 누굽니까?”
[적파]
“조사하기로 이름은 백양천(白量天). 창룡문주(蒼龍門主)라고 하더군. 요즘 그 일대에 가장 이름을 날리는 자이기도 해. 젊은 나이에 삼백 명의 문도들을 데리고 있다는 것만 봐도 알 수 있지.”
[설휘]
“제가 어찌하면 됩니까?”
[적파]
“두 달의 시간을 주겠네. 우선 금만중에게 먼저 접촉해보게. 어떤 상황이며 대화로 풀 수 있는 문제인 건지. 일정 부분 자릿세를 용인하는 것도 괜찮겠지만…… 과하게 요구하면 어쩔 수 없지.”
[설휘]
“어쩔 수 없다는 말씀은…….”
[적파]
“제거하란 뜻이야. 아무도 모르게.”
[설휘]
“……알겠습니다.”
[적파]
“조심하게. 자넬 믿네만, 그 역시 만만치 않은 상대야. 강호를 대표하는 후기지수인 칠룡(七龍) 중 하나로 평가받을 만큼 무공 역시 출중하단 말일세. 내 말 알겠나?”
그 말을 끝으로 설휘의 눈앞은 다시금 환한 빛으로 뒤덮였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펼쳐진 풍경.
‘어?’
설휘는 화들짝 놀라 주변을 돌아보았다.
그 순간 뜨는 문자들.
<사천의 성도의 제일 큰 유객객잔으로 이동했습니다.>
<6일이 지났습니다.>
이미 사건의 현장이라 할 수 있는 사천의 성도 중심에 와 있었다.
더욱이 자신의 옆에는 같이 앉아 있던 네 명의 조장들이 있었고.
탁자 앞에는 다양한 음식들이 즐비하게 놓여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