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5화. 침입 (2)
“대장은?”
사삭.
소령이 요림에게 다가가 물었다.
대장이 시야에서 사라졌다.
갑자기 무슨 일인지 급히 초소까지 뛰어 올라간 뒤, 어디론가 도약해버린 것이다.
이는 원래 계획에서는 없었던 일이다.
“혼자 움직이신 듯해.”
“왜? 계획은 어쩌고.”
“글세……. 나야 모르지.”
요림은 손바닥을 들어 올리며 고개를 저었다.
소령은 다시금 대장이 사라진 방향을 바라보았다.
갑자기 사각으로 꺾어 들어가서, 눈 깜짝할 사이 거의 수십 장이나 멀어진 설휘.
예감이 좋지 않았다. 저러다 발각이라도 되면 어쩌려는 것인지.
“뭐. 이유가 있지 않을까.”
스륵.
역시 옆으로 다가온 적송.
그는 주변에 경비 무사들이 있는지 한번 살펴보고는 낮은 어조로 말을 이었다.
“계획과 다르게 움직이는 거라면 말야. 이를테면…… 더 빠르게 안전하게 가는 방법을 찾았다든지.”
“왜 그런 식으로 해야 하는데? 언질도 없이.”
스윽.
용진까지 이들이 있던 처마 위로 올라왔다.
당연히 그로서는 이해되지 않는 상황이었다.
“혼자 움직이는 것. 그리고 여럿이서 움직이는 것. 상식적으로 어느 쪽이 성공확률이 높다고 생각해?”
“…….”
“…….”
대답하는 이는 없었다.
혼자서 적지에 잠입해 암살까지 성공해내기란 지극히 힘들었다.
설휘가 무슨 가공할 무예를 익혔건, 남은 조원들에게 언질 정도는 해야 했다.
자칫 그가 암살을 성공시켜도, 아무 지시도 없이 내 버려진 대원들이 위험해지거나 다른 실수로 임무를 실패하게 만들 수 있으니까.
다들 그 생각 때문에 침묵을 지키고 있을 때.
“뭐. 봤나 보지. 백양천이 거처로 이동하는걸.”
“……?”
유일하게 태평한 목소리가 있었다.
그래서인지 조장들이 시선이 쏠렸다.
음무기. 언제부턴가 자신들에게 편히 말을 놓았던 새 인물이 지붕에 몸을 기대고 있었다.
“그게 무슨 말이냐?”
용진이 곧장 물었고. 음무기는 어깨를 으쓱하며 여유롭게 대답했다.
“아니. 너무 뻔하잖아. 우리도 여럿이 움직이는 게 낫다는 걸 아는데, 대장이라고 모를까?”
“…….”
“그럼에도 이토록 무리하게 빨리 갈 이유? 나는 그것 하나밖에는 떠오르지 않는걸. 본인이 본 게 아닐까 하고.”
“…….”
그 말엔 내심 표현은 안 했지만 다들 동의하는 분위기였다.
살수에게 요구되는 것은 고강한 무위가 아니라, 한없는 인내와 자기 절제다.
그리고 인내와 절제는 시간 앞에 속절없이 무너진다.
암살 임무는 시간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성공하기 힘든 종류였다.
“뭐…… 사람이 기관품도 아니고.”
예컨대, 원래 계획대로 설휘가 백양천의 거처로 들어가 잠복해있다 하더라도, 예측할 수 없는 일은 늘 생기기 마련이다.
갑자기 표적인 백양천이 마음이 바뀌어 술을 한잔하고 온다든가.
식사하고 온다든가, 혹은 기방에 가서 다음날 온다든가 하게 되면 임무엔 실패하는 것이다.
방금도 그런 경우가 아닐까 생각하는 건, 나름 합리적인 의문이었다.
그럼에도.
“그럼 그렇다고 말이라도 하면 될 것 아냐. 대장이 단독으로 움직이면서 표적 발견. 이 한마디도 하지 않은 건 대체 왜 그런 건데?”
끄덕끄덕.
소령의 질문에 모두가 동의했다.
물론 음무기는.
“난들 아나. 지금 내가 설명할 수 있는 일이었다면…….”
그 질문에 대답은 생각 외로 간단했다.
“대장이 저렇게 급히 달려가지 않았을 거 같은데?”
“…….”
우문현답이었다.
* * *
파밧. 탁.
설휘는 대문을 뛰어넘고, 또 다른 사합원의 중정에 들어왔다.
우우우웅.
기음과 함께, 흘러가던 시간이 극도로 느려졌다.
적이 출현했다는 걸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이번엔 셋!’
한 명씩, 설휘의 시야에 무사들의 존재가 드러났다.
제일 처음. 우측 상방(廂房)에서 누군가 문을 여는 모습이 포착되었다.
그다음. 정면의 조금 옆, 출입하는 대문(大門)을 누군가 여는 장면이 보였다.
그리고 위쪽. 초소에서 이곳으로 시선을 돌리는 한 명까지.
눈앞의 시뮬레이션은 모두 세 곳을 위험요소로 지목했다.
그리고 기다렸다는 듯 환영이 생겨났다.
피이이이-
생겨난 그림자 인영은 모두 넷.
그중 셋은 모두 우측 상방에서 장지문을 여는 인물 쪽으로 달려갔고.
그가 문을 열고 나오자, 재빠르게 그의 입을 막은 뒤 목을 비틀어 돌려버렸다.
그러고는 바닥 한쪽으로 밀어내는 동작, 여기까지는 동일했다.
그 이후 셋의 동작은 완벽히 갈렸다.
하나.
처마를 밟고 올라가, 다른 건물 지붕으로 이동. 대문을 지나치는 녀석들 뒤로 도약하는 장면까지.
둘.
벽 모서리에 기대어 대기하다, 경비들이 근처까지 다가오자 즉각 급습.
셋.
녀석들을 무시하고, 건물 벽을 밟고 달려나가는 모습까지.
셋 모두 직진하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초소에서 내려다보는 무사의 시야가 있기 때문이었다.
‘남은 녀석은…….’
설휘는 마지막 남은 환영에 눈길이 갔다.
홀로 남은 마지막 그림자.
그는 환영 셋과 달리 뒤돌아선 채 느긋한 걸음으로 걸어갔다. 그러다 보니 상방에서 문을 열던 녀석에게 먼저 발견되었고.
그의 의문스러운 눈빛이 채 가시기 전에, 대문을 열고 들어오던 사내들과 마주친다.
거기서 끝이 났다.
<아래의 선택을 고르세요.>
▶ 우측, 문을 열고 나오는 인물 제거. 그 후, 지붕 위로 올라간다.
▷ 우측, 문을 열고 나오는 인물 제거. 그 후, 기회를 보다 급습한다.
▷ 우측, 문을 열고 나오는 인물 제거. 그 후, 초소를 서는 무사들의 시야를 피해 대문으로 질주.
▷ 뒤돌아서서 느긋이 걷다가, 반격
‘여기서 승부를 건다!’
설휘는 고민하지 않았다.
시뮬레이션이 다 그려지지 않아 어떻게 이 상황을 벗어날지 모르지만, 그래도 도전해야 했다.
안전한 방법보다는, 훨씬 더 위험한 방식으로.
<‘뒤돌아서서 느긋이 걷다가, 반격’을 선택하셨습니다.>
설휘는 네 번째를 선택했다.
그러자 환영이 그렸던 똑같은 동작. 등을 돌린 채, 느긋하게 걸어서 움직이게 되었다.
“음……?”
끼이익.
그러자 역시, 상방에서 문을 열던 인물이 먼저 설휘를 보았다.
그러든 말든, 설휘는 일부러 느긋이 몇 발짝 걸었고, 그러던 차.
“어이. 잠깐.”
“멈춰봐. 너 누구야?”
등 뒤에서 무사들이 말을 걸어왔다.
막 설휘가 대답하려 하던 순간. 그의 눈이 크게 뜨였다.
“……?!”
상방에 있던 인물이, 다른 곳으로 시선을 돌린 것이다.
그 순간 설휘는 직감했다.
지금이 기회라는 걸.
타악!
즉각 몸을 도약시켜, 가까이에 있던 사내의 목을 날렸다.
쉭!
다음으로 몸이 지면으로 내려오기 전, 두 번째 사내의 입을 막으며 가슴에 검을 찔러넣었다.
투욱. 투욱.
순식간에 제거해 버린 무사 둘.
하지만 그 와중에 발생한 인기척 때문일까.
“……엇!”
조금 전, 상방에서 문을 열던 인물이 설휘 쪽을 바라보았다.
그의 얼굴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눈이 커지고 입이 벌어지려던 순간.
휘리리릭! 콱!
그대로 엎어졌다.
설휘가 자신의 검을 암기처럼 던져, 그의 가슴을 꿰뚫은 것이다.
<시간이 줄어들었습니다. -2초>
‘아! 시간이!’
검을 회수하려던 설휘의 눈에 남은 시간이 들어왔다.
32…… 31……
<예상시간 25초>
운 좋게 시간이 줄었음에도 여전히 아슬아슬한 시각. 그는 순간적으로 고민했다.
던진 검을 회수해서 갈 것인가.
아니면 무시하고 갈 것인가.
‘안 돼. 능력을 최대한 발휘하려면…….’
설휘는 결국 시체 셋을 어두운 곳에 놓고, 검까지 회수했다.
그리고 다시 대문으로 이동하자.
<예상시간이 늘었습니다. +6초>
25…… 24……
<예상시간 24초>
예상시간과 남은 시간이 정확히 일치했다.
‘이 문만 넘으면…….’
그렇게 안도하려는 순간.
우우우웅!
갑자기 시간이 다시 느려졌다.
‘적? 누군가 있다!’
대문 너머에 흐릿한 그림자가 투영되었다.
두 명이다.
그리고 조금 전 일어난 약간의 인기척을 들을 정도의 고수.
지금 위치는 백양천의 처소 바로 옆 건물이었다.
하여 저 너머엔, 어쩌면 그를 지키는 호위무사일 수도 있을 터.
스르르륵.
이번에도 시뮬레이션은 반응했다.
세 개의 환영이 나타난 것이다.
첫 번째.
대문 위를 올라탔다. 그리고 내려가며 적들을 급습했다.
그런데 적들은 곧장 죽지 않았다.
두 무사와 몇 번의 교전. 그러다가 한 명을 죽이긴 했는데.
<시간 초과>
환영이 끝까지 사라지지 않았지만, 실패해버렸다.
두 번째.
천천히 열리는 문 옆에서 기다리기. 이번에는 한 명이 들어서는 순간 급습을 가했고, 단번에 쓰러트리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남은 이의 반격에 뒤로 몇 번 밀렸고. 다시 수세를 잡고 그를 제압하는 와중에.
이게 떴다.
<시간 초과>
‘제기랄.’
마지막이 남았다. 이번에는 열린 문으로 급습하는 장면이었다.
하지만 이번 저항은 더욱 거셌다.
이미 준비 중이던 무사들 둘이 동시에 달려들었고. 몇 번의 교전 후. 상대측 한 무사가 쓰러짐과 함께.
시간이 멈췄다.
<시간 초과>
모든 환영의 끝이 시간 초과로 끝났다.
그리고.
<아래의 선택을 고르세요.>
▶ 본인이 알아서 한다.
남은 선택은 단 하나.
‘뭐 이런 어이없는……?’
설휘는 기가 찼지만, 의미는 대략 이해했다.
시뮬레이션은 딱히 방법을 찾아내지 못한 것.
설휘가 가진 무위나 무예로 어떻게 할 방법이 없다는 뜻이다.
이래도 저래도 실패이니, 본인이 알아서 하라는 뜻일 터.
파앗.
‘어떻게 하지?’
시간 정지가 풀렸다. 설휘는 일단 활짝 열린 대문으로 향했다.
이 뒤에 무사가 둘. 이제껏 만났던 적 중에서 가장 강한 놈들이 뒤에 서서 기다리고 있다.
‘어떻게 한다?’
찰나 간, 수많은 무공이 그의 머릿속을 스쳐갔다.
은밀하고, 적에게 기습을 가할 수 있는 것들이.
하지만 그 모든 것은.
‘아!’
싸울 것을 전제하는 것이었다.
일순 벼락이 치듯, 설휘의 뇌리에 한 인물의 얼굴이 떠올랐다.
조금 전 그가 죽였던 자가.
“어이. 문 뒤에서 뭐 해?”
그래서 설휘는 기습적인 공격을 하는 대신, 말을 걸었다.
“……!”
“……!”
흠칫.
대문 쪽으로 모습을 보인 두 명의 무사는 눈을 부릅뜨는 게 보였다.
당연히 놀랄 것이다.
지금 설휘는 역용술을 펼쳐, 조금 전 자신에게 죽은 자의 얼굴을 하고 있는 거니까.
“조금 전에 칩입자가…….”
스윽.
뽑았던 검을 내리며 무사 둘 중 좀 더 체구가 큰 자가 물어왔고. 설휘는 피식 웃었다.
“있었어.”
파아아앗!
바로 그의 목젖에 꽂아 넣으며 뒤에 있는 자에게 달려들었다.
휘이익!
“헉?!”
상대가 급히 저항했지만, 이미 늦었다.
찰나의 망설임. 그건 설휘에게 절호의 기회를 주었고.
퍼억! 퍽!
복부와 턱을 강타한 뒤. 두 손으로 목을 한 바퀴 돌려버렸다.
우드득! 투욱. 툭.
쓰러지는 두 무사.
<시간이 8초 줄었습니다.>
그리고 뜨는 글자들.
설휘는 쓰러진 무사에게서 자신의 검을 뽑아 들었고, 이들을 한쪽으로 치운 뒤.
붉은 선을 따라 곧장 도약했다.
10…… 9……
그리고 이제 더는 시간이 필요 없었다.
처마 밑, 들보 위로 기어들어 가자, 마치 기다렸다는 듯 글귀가 눈앞에 우수수 떠버렸으니까.
[침입에 성공하셨습니다.]
[타임어택 임무를 완수했습니다.]
[성공으로 제3자의 눈, 1개를 드립니다.]
‘허억…… 헉…….’
눈앞에 뜨는 수치들. 그리고 이해할 수 없는 ‘제 3자의 눈’이라는 항목.
하지만 설휘는 성공에 기뻐할 새가 없었다.
끼이이익.
마침 문을 열고 들어오는 인물이 눈에 포착되었기 때문이다.
‘백양천……!’
그리고 여전히 떠오르는 글귀들.
[설휘 님에게 주어질 시간을 계산 중입니다.]
‘적이 쓰러진 위치, 경계무사들의 동선, 특정 무사들의 임무교대 시간, 숫자…….’
[분석 중……◇]
계속해서 흐르는 시간들.
그사이 백양천은 방석으로 보이는 곳 위에 앉아 가부좌를 틀었다.
예상대로 운기조식을 하려는 모습이었다.
그렇게 조금 더 시간이 흐르자.
[분석 완료]
시간 : 212초.
<앞으로 212초 뒤에 창룡문 무사들은 침입자의 존재를 알아챕니다.>
<설휘 님은 백양천을 212초 안에 쓰러뜨려야 합니다.>
‘212초!’
그제야 설휘의 눈앞에 뜬 정보창들.
그리고 지금껏 상황이 제대로 이해되기 시작했다.
300초.
그 안에 백양천의 거처로 와야 했던 건, 잠입에 성공하기 위해서였다.
이유는 그의 이동. 본래의 계획보다 빠르게 백양천이 거처로 이동했기 때문에.
그리고 그 과정에서 어쩔 수 없이, 설휘와 그의 수하들에게 죽임을 당했던 무사들.
그 시신이 누군가의 눈에 띄는 데 걸리는 시간이 바로 212초라는 것이다.
‘시간이 없다. 빨리 공격해야 해.’
설휘는 급히 전투방식을 바꿨다.
전투방식 <턴제>
기다렸다는 듯 표적의 능력이 드러났다.
그리고 또다시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State Summary, 상태 요약]
백양천 [창룡문주]
체력 933만/999만
내공 922만/999만
경지 초절정
전투력 1,222만
‘무슨 전투력이…… 천만이 넘냐고!’
적은 알려진 것보다 강했다.
그래도 설휘에게는 방법이 없었다.
이 싸움.
여기까지 왔으면 어떻게든, 이겨야 하는 싸움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