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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육성 시물레이션-88화 (89/379)

88화. 건곤일척 (3)

설휘는 경고창이 나타날 걸 알고 있었다.

창룡문 무사들을 제거하다 보면, 어느 순간 상천장이 자신의 빈틈을 노릴 테니까.

물론 그가 수하들을 목표로 싸울 가능성 또한 배제할 수 없었다.

그럼에도 설휘는 그가 그런 선택은 하지 않을 거라고 판단했다.

그는 구종명 제자인 이구명보다 실력이 떨어진다.

자신보다 약자에게 도움받는 걸 상대도 그다지 달가워하지 않을 터.

거기다 설휘 수하들의 능력을 생각했을 때, 이구명 혼자 충분히 제압 가능하다고 판단했을 터.

그뿐만 아니라 창룡문 무사들의 환심을 사기에는 자신을 노리는 게 더 낫겠다는 판단도 했을 것이다.

▶ 맞대응한다.

▷ 방어한다.

▷ 도망간다.

솔직히 두렵진 않았다.

자신보다 높은 전투력이지만, 백양천과 싸워본 결과 그 정도 수준은 충분히 극복할 수 있다고 믿었다.

더욱이 설휘에겐 그를 상대할 나름의 비책이 있었다.

<‘방어한다’를 선택하셨습니다.>

지이이잉!

조금 떨어진 곳에서 강력한 검기가 생성되는 모습이 보였다.

이 선택은 상대의 몸이 번쩍이며 위치를 알려주는 '도망간다'와는 다른 선택이지만, 이 선택은 등을 보이지 않고, 나름대로 대응할 수 있었다.

그렇게 설휘는 순간적으로 몸을 틀었지만, 적의 공격이 더욱 빨랐고.

검기는 자신의 어깻죽지를 스치며 지나갔다.

“큭!”

뒤로 크게 밀려난 설휘가 급히 자세를 고쳐잡았다.

그리고 일격을 맞은 부위를 쳐다본 설휘의 얼굴에, 이내 옅은 미소가 감돌기 시작했다.

설휘 [은영단 사령대장]

체력 32만(↓1만)/120만

내공 218만(↓22만)/240만

‘이게 되는구나.’

설휘는 소신수마공의 호신공인 빙원결갑.

그것으로 방어하자, 체력이 아닌 내공이 줄어들며 피해를 분산했다.

그뿐만 아니라, 내공 소모로 몸을 보호하자 치명상도 입지 않으면서 훨씬 더 피해를 줄이는 효과까지 보였다.

“뭐냐, 방금…….”

상천장은 충격을 받은 듯, 잠시 동작을 멈추며 물었다.

그도 그럴 것이, 검기가 정확히 적중하진 않았다고 하더라도 신체 일부에 맞았다면 관통했어야 했다.

그런데 검기가 파고들지 않고 튕겨 나가자 이해하지 못한 것이다.

“태황각 서열 3위면 어느 정도인가?”

설휘는 담담하게 그를 노려보며 물었다.

“……뭐?”

“뭘 그리 놀라나. 다 알면서 묻는 건데.”

그 말에 상천장은 표정이 급격히 굳어졌다.

이내 싸늘한 말투로 변한 그는 다짐하듯 말을 내뱉었다.

“……각주께서 위험인물이라 하더니, 역시나. 살려두면 안 되는 놈이었군.”

그 말에 설휘는 피식 웃어 보였다.

“이봐. 혹시 내가 너의 꾀에 당했다고 생각하는 건가?”

“……?”

“그랬다면 잘못 짚었어. 난 그저 네놈이 파놓은 함정을 들여다보고 싶었을 뿐이다. 그로 인해 네 녀석의 배후에 누가 있는지……. 그리고 금만중과 창룡문주와의 관계가 어떤 식으로 연결되어 있는지 말이야.”

설휘는 시선을 들어 주변을 포위한 창룡문의 무사들을 바라보았다.

이는 단순한 동작이 아니었다.

바로 턴제 발동.

상천장이 아닌, 무사들에게 사용할 턴제를 발동을 위한 포석인 것이다.

“그런데 생각지도 못한 정보도 얻었군. 구종명 제자가 여기에 온 걸 보면……. 이 역시 구종명과 내통해온 태황각주가 설계한 일이겠군.”

“뭐?!”

일순, 눈을 부릅뜬 상천장.

설휘는 굳이 그의 대답을 듣지 않고 움직였다.

이미 저편에 있던 무사들에게 턴제 발동이 뜬 것이다.

팟.

순간적으로 설휘가 모습을 감췄다.

적어도 상천장이 보기엔 그렇게 느껴졌다.

그를 찾아 급히 주변을 돌아본 그곳에.

콰르르릉!

강력한 기의 폭풍이 진동하며 창룡문 무사들이 여기저기 치솟아 올랐다.

‘무슨…….’

콰르르릉! 콰르르릉!

기의 폭풍은 엄청나게 빨랐다.

더욱이 강력했다.

자신이 전력을 다해도 생성할 수 있을지 모를 풍검을 너무도 쉽게, 계속해서 펼쳐내고 있었다.

상천장은 설휘의 무공을 보면서 계속 자신이 아는 것과 흡사하다고 생각했다.

지금 펼쳐진 무공이 다른 것도 아닌, 사대극마공 풍이라는 것을 말이다.

‘어떻게 저 힘을…….’

이해할 수 없는 상황.

그렇게 잠시 넋을 놓던 그는, 그 행동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는 곧 알게 되었다.

[절호의 기회! 설휘 님이 상천장의 빈틈을 발견했습니다. 어떻게 대응하시겠습니까?]

‘예상대로야!’

설휘의 눈에 이채가 서렸다.

혹시나 턴제를 이용한 공격 시도를 해봤는데, 이게 이런 식으로 흘러가게 될 줄은 몰랐다.

균열은 상천장이 스스로 유발했다.

몇 마디 대화 후 느슨해진 경계로 인해 그가 아닌 다수의 적에게서 빈틈창이 생겨났다.

그리고 순간적으로 이동이 가능해졌고, ‘지척까지 다가간다’를 선택하자 거의 순간이동처럼 상대에게 접근할 수 있었으니까.

그렇게 몇 번을 거쳐 움직이던 설휘의 눈에, 원하던 대상이 나타났다.

상천장의 빈틈창이 떠오르는 걸 확인한 것이다.

▶ 공격한다.

▷ 무공을 쓴다.

▷ 도구함을 사용한다.

▷ 상대의 지척까지 다가간다.

‘공격한다를 선택해야 해.’

이번에 설휘의 선택은 첫 번째였다.

이유가 있었다.

풍신검을 쓰기에 가장 최상의 공격 형태.

이동 중에 풍신검의 동작을 미리 준비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공격한다’를 선택합니다.>

-3초 전으로 되돌립니다.

느리게 고개를 돌리는 상천장이 보였고.

순간적으로 도약하던 설휘는 공중에서 고개를 숙였다.

그의 지척까지 다가가기 전에, 이미 풍신 기술의 연결 동작을 펼쳐야 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도약한 상태에서 우하단 동작과 함께 머리를 내미는 동작까지 구현했다.

물론 머리를 움직이는 바람에 그의 지척까지 다가가지 못했지만.

<풍신검을 사용합니다.>

그럼에도 원하던 목적은 이뤘다.

콰아아앙!

설휘의 눈앞에서 풍신검이 작렬했고, 앞으로 쭉 뻗어 나가며 상대의 몸에 적중되었다.

쭈우욱 말려 들어가는 상천장.

풍압에 휘말려 거의 하늘로 날아가다시피 했고, 바닥에 떨어지며 구르는 모습까지 설휘의 눈에 잡혔다.

‘뭐야?!’

투욱.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그는 곧장 자리에서 일어섰다.

일격을 받았는데도 불구하고, 그는 막심한 피해를 보진 않은 모습이었다.

상대의 능력치도 그걸 증명해주고 있었다.

상천장(桑天長) [태황각 서열_3위]

체력 320만(↓120만)/440만

‘거리가 조금 짧았나.’

설휘는 아쉬워했다.

삼분지 일에 해당하는 체력을 날려버렸음에도 만족할 수 없었다.

나름 전투방식의 ‘턴제’를 활용한 공격방법.

그리고 방금 일격은 일회성에 가까운 방식이라 다시 한번 피해를 주기도 쉽지 않기 때문이다.

“크읍. 이 녀석…… 그래, 인정하마. 태황각주께서 말씀하셨던 것과 달라 보여 내 너를 가볍게 보았다.”

상체가 찢어지고, 선혈이 온몸에 흐르는 상태로 설휘를 향해 걸어오는 상천장.

내상을 입은 것과 달리 그의 눈빛은 매우 침잠해져 있었다.

“이젠 그에 걸맞은 대우를 해주겠다. 크으읍!”

곧 그의 괴성이 들렸고.

외침과 함께, 점차 붉어지는 얼굴.

그리고 그 붉은 기운은 점차 손으로 이어지더니, 이내 검신을 타고 불길이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화르르륵.

‘이건…….’

검신에 이는 불길.

그건 설휘의 눈에 결코 가볍게 보이지 않았다.

샛노란 빛을 품으며 끈적끈적해 보이면서도 도도하게 흐르는 불길.

저것이 바로, 이벤트의 보상으로 얻게 되는 혈수마공일 것이다.

‘이거…… 빙원결갑으로도 막아낼 수 없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상대의 혈수마공으로 인해 큰 문제가 생겼다.

빙정의 호심공으로 보호하는 빙원결갑.

당연히 불과는 상극인 무공으로, 오히려 피해가 더 커질 수도 있었다.

“자, 다시 해볼까?”

섬뜩한 상대의 발언에 설휘는 모골의 송연해졌다.

본격적인 싸움은 이제부터였다.

* * *

혈수마공.

본교를 대표하는 것 중 하나로 극양의 무공으로 분류되는 마공이다.

불을 기반으로 펼치는 마공은 여러 개가 있지만, 마교를 대표하는 것은 오직 이것 하나다.

특히 상급, 최상급 마공은 대부분 혈수마공을 기반으로 만들어졌다.

태황각주가 익힌 화온마공도 그리고 설휘가 익힌 초극마공도 모두 그 기초는 혈수마공이었다.

쩌어어엉!

“큭!”

일격을 주고받은 설휘가 뒤로 밀려 나갔다.

표면적으로는 내력 대결에서 밀린 것처럼 보였지만, 엄밀히 말해서 마공의 순도에서 밀린 것이다.

‘제길, 하필 극양의 무공이…….’

설휘는 입술을 깨물며 생각했다.

물과 불은 상극이다.

서로 상극인 무공을 운용하고 있지만, 질적인 면에서는 혈수마공이 더 강했다.

아마도 그건 전투력 차이에서 오는 문제. 혹은 깨달음 때문일지도 몰랐다.

그리고 그로 인해, 설휘가 느끼는 피해는 몇 배나 더 커졌다.

화르르륵!

콰지직!

또다시 몇 번의 교전.

그리고 그 싸움에서 설휘는 점점 내공을 소비하게 되었다.

동시에 일반적인 방법으로는 그를 쓰러트릴 수 없음을 깨닫게 되었다.

설휘 [은영단 사령대장]

체력 30만(↓2만)/120만

내공 116만(↓102만)/240만

상천장(桑天長) [태황각 서열_3위]

체력 319만(↓1만)/440만

내공 414만(↓36만)/450만

“하아. 하아.”

수치에서도 극명하게 나타난다.

빙원결갑의 호심공은 혈수마공의 작은 공격에도 더 큰 피해를 받고 있었고.

그에 반해 상대는 그다지 피해를 보지 않았다.

더욱이 지금까지는 내력 대결만 했을 뿐, 일격이라도 몸에 맞게 되면 더 큰 내공 소실로 이어질 것이다.

“……생각보다 별거 아닌데?”

반면, 그는 배시시 웃고 있었다.

당황했던 조금 전과 달리, 직접 싸워보니 충분히 이길만한 싸움이라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제길……. 여기서 AI를 사용해야 하나.’

이 순간, 설휘는 갈등할 수밖에 없었다.

사실 이 전투방식의 능력은 구종명 제자인 이구명에게 쓰고 싶었다.

AI설휘라면, 전투력이 두 배가 차이가 나더라도 충분히 이길 수 있는 능력이 있으니.

하지만 이 녀석을 제압하지 못하면, 어차피 저쪽으로 갈 수도 없었다.

‘시간이 없어…….’

슬쩍 바라본 수하들의 상황 또한 점점 위험수위를 넘어서고 있었다.

그럴 것이다.

제아무리 다섯이란 숫자로 목표 타격을 하더라도, 전투력 차이가 몇 배나 나는 무인을 제압하기란 불가능할 터.

“쯧쯧. 은영단 녀석들이 아무리 날고 기어봤자, 네놈들의 한계는 명확하다. 본교의 정수가 담긴 마공을 하나라도 익히지 못한 것들이 아니냐?”

그는 노골적으로 비웃고 있었다.

그것이 설휘의 분노를 자극했다.

“……다 지껄였나?”

“아직 입은 살았나 보군.”

“고작 입뿐일까?”

설휘는 시선을 들었다.

결국, 최대한 빠르게 이 녀석을 쓰러뜨릴 방법은 이것밖에 없었다.

“경험해봐라. 싸움이란 게 어떤 것인지.”

전투방식

선택하자마자 시야가 달라졌고, 곧장 AI설휘와 상천장이 내려다보였다.

그리고 자신을 대신한 AI설휘의 첫 반응은 비웃음.

“크크큭. 크크큭.”

노골적인 웃음이었다.

“왜 그렇게 웃는가?”

그 모습에 상천장이 반응했다.

“주둥이 닫아라. 곧 뒈질 새끼가 말이야.”

“뭐라?”

발끈하는 상천장.

하지만 AI설휘의 시선은 어느새 자신을 향하고 있었다.

“너 인마, 잘 새겨들어.”

나와 눈을 맞춘 AI설휘는 또박또박 말을 이어갔다.

“무공을 습득하는 걸로 만족하면 안 돼. 그렇게 배워선 절대로 이 시스템을 벗어날 수 없거든.”

“…….”

“무공을 제대로 익혀라. 시스템이 아니라 기본부터 말이야. 무공, 더 넓게는 무학의 묘리를 이해해야 한다. 단순히 초식을 익히는 게 아닌, 왜 그런 초식이 나왔는지. 그 배경, 그들의 삶과 생각을 이해해야 해.”

‘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거지?’

나는 당황스러웠다.

무학의 묘리를 이해해야 한다니……. 더군다나 그들의 삶을 이해해야 한다는 말은 곧장 이해가 되지 않았다.

“잘 들어! 무의 격차는 거기서 차이가 난다. 그걸 이해하고 깨달으면 더 높은 걸 창조해낼 수 있지. 이를테면…….”

“이 새끼가!”

더는 지켜보지 못하고 달려드는 상천장.

하지만 AI설휘는 그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그렇게 눈 깜짝할 사이, 지근거리까지 상천장이 다가왔고.

“이렇게 할 수 있다.”

스걱.

둘의 간격 사이로 반듯한 검의 선(線) 하나가 사선으로 그어졌다.

그리고.

“크아아악!”

바닥에 처박히며 바닥을 데굴데굴 구르는 상천장.

조금 전 일격으로 몸이 완전히 반으로 분리되어 있었고.

AI설휘는 너무도 편안한 자세로 서 있었다.

“시스템에 잡아먹히지 말란 말이다.”

한 마디를 내뱉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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