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마육성 시물레이션-91화 (92/379)

91화. 다시 도전 (2)

설휘가 감정을 추스르고 창가를 바라봤을 때는 꽤 시간이 흐른 뒤였다.

어스름한 새벽빛을 보며 자리에서 일어난 설휘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러다 시선이 서탁에 머물렀고, 이내 성큼성큼 거기로 걸어갔다.

생각해보니 거처에 있을 때만 할 수 있는 매우 중요한 작업이 남아 있음을 상기한 것이다.

드르륵.

의자에 앉은 설휘는 붓을 들고선, 무언가를 빠르게 써 내려가기 시작했다.

‘과연 이게 될까?’

혈수마공과 매화검법서.

그중 혈수마공서의 구결을 글로 옮겨 적기 시작했다.

이유는 초극마공과의 무공 조합 때문이었다.

그저 단순한 추론일지 모르지만, 설휘가 느끼기엔 이 무공은 초극마공과 마기를 다루는 방식부터 기운을 통제하는 것까지 매우 닮아 있었다.

하여 무공을 조합할 수 있는 옥함에 넣어 볼 요량으로 이렇게 집필하기 시작한 것이다.

‘본디 정(精), 기(氣), 신(神)이란 의념을 통해 몸의 힘을 단전 부위에 머무르게 하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몸의 힘은 기화(氣化)하여 무수한 형태로 변형되며…….’

불꽃.

혈수마공과 초극마공이 추구하는 화기(火氣)는 바로 몸의 힘을 기화시키는 것에서 비롯된다.

몸속의 내공을 무공에 기술된 방식을 통해 기를 태우는 것이다.

터억. 스사사삭.

설휘는 머릿속에 떠오르는 혈수마공서의 내용을 모두 적은 뒤, 이번엔 초극마공서의 비급도 만들기 시작했다.

두 가지의 무공을 동시에 넣어야만 무공 조합이 가능해지니까.

그렇게 조금 더 시간이 흘렀을 무렵.

완성된 두 비급을 아래에 있는 옥함 안에 집어넣고는 뒤로 물러섰다.

예상대로 조합할 것인지에 대한 질문이 떴다.

<무공을 조합하시겠습니까? 승낙/거부>

‘제발…….’

설휘는 심호흡했다.

두 개의 무공이 조합된다면 어떤 무공이 나올 것인가.

아니, 그 전에 이 두 가지 무공이 정말 합쳐질 수 있긴 한 걸까?

잔뜩 기대한 눈으로 승낙하던 그때.

[화온마공(火蘊魔功)이 완성되었습니다.]

“이, 미친!”

설휘는 자신도 모르게 소리를 내질렀다.

화온마공이라니.

태황각주가 쓰는, 본교에서도 손에 꼽는 최상승마공이 여기서 나타난 것이다.

대체 이 옥함은 어떻게 생긴 것이기에 이토록 대단한 무공을 만들어주는 것일까.

끼---익.

설휘는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옥함을 열었고, 동시에 눈이 휘둥그레졌다.

방안을 가득 메우는 영롱한 붉은빛과 푸른빛이 뒤섞인 비급서가 그 안에 들어있었다.

설휘는 그걸 천천히 집어 들었다.

[화온마공을 익혔습니다.]

“……!”

사아아아아-

설휘의 눈앞에 수많은 그림자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림자는 이제껏 본 녀석 중 가장 덩치가 컸고, 온몸이 불꽃을 끼얹고 있었다.

이후, 내공심법의 혈도들.

그리고 동시에 수많은 초식이 펼쳐지며 머릿속에 각인되기 시작했다.

‘아!’

실로 황홀했다.

사대극마공을 익혔던 당시보다 더 충격이 컷다.

높게 솟은 자가 더 멀리 본다고 했던가.

그도 그럴 것이, 사대극마공을 익혔던 당시와 현재 설휘의 무공 성취에는 큰 차이가 있었다.

그것이 무학(武學)을 이해하는 데 의미 있는 차이를 가져오고 있었다.

그렇다 하더라도, 설휘는 쉽게 진정되지 않았다.

눈앞엔 수많은 불꽃이 보였다.

붉고 또는 푸른, 그중에는 정염(情炎)이라 할 수 있는 순도가 극도로 높은 불꽃도 보았다.

그리고 그림자가 펼친 마지막 초식의 불꽃은 또 달랐다.

그건 붉지도 푸르지도 않았다.

‘이건, 이 세상의 힘이 아니다!’

설휘는 단정했다.

이건 이계의 불꽃이라고.

저 자주색 불꽃은 지옥불처럼 감히 다스리기도 통제하기도 불가능한 불꽃이었다.

그렇기에 손에 넣는 것도 어려웠다.

아마도 화온마공 극성을 깨우쳐야만 펼칠 수 있는 기운일 터.

‘나의 전투력은 얼마나 되지?’

설휘는 본인의 능력이 궁금했다.

과연 어느 정도 성장을 했는지 확인하기 위해서 능력치를 바라보았다.

설휘 [은영단 사령대장]

체력 120만/120만

내공 240만/240만

Coin 3 [세 번의 목숨]

경지 초절정

전투력 799만

‘상당히 올랐구나!’

과거와는 달리 거의 200만이 넘는 수치가 상승했다.

이 모든 게 화온마공 때문은 아닐 것이다.

당시 이구명과 상천창을 죽일 시 보상으로 ‘전투력 증가’란 게 있었다.

그건 능력을 임의로 올려주는 게 아닌, 혈수마공과 매화검법을 얻음으로써 반영되는 능력일 터.

자신은 이미 두 비급을 갖고 있으니, 지금 전투력은 그 당시 전투력 증가라는 보상이 포함된 수치로 바라봐야 했다.

‘……허나, 전투력이란 게 모든 걸 나타내는 게 아닐지도 몰라.’

언제부터인가 그런 의심은 있었다.

곤마의 전투력이 고작 백만도 되지 않는 것도, 은영단주인 흑구의 전투력이 천만을 넘지 않는 것도.

뭔가 수치가 제대로 반영되지 않는다는 느낌을 받았다.

무엇보다 화산파 이구명과 싸울 때 느꼈던 힘.

전투력이 천만에 달하는 수치보다 훨씬 더 강력해 보였기 때문에.

‘뭐, 언젠가 알게 되겠지.’

설휘는 다시금 손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혈수마공과 초극마공의 비급서를 만드는 것이 끝이 아니었다.

앞으로의 일을 대비하기 위해선 다른 무공도 미리 이렇게 집필해 놓아야 했다.

그렇게 점차 날이 밝아올 때쯤.

설휘는 두 가지 비급서를 들고 문밖을 나갔다.

그리고 인근에 머물러 있던 음무기의 거처를 찾았다.

“무슨 일이십니까?”

마침 잠이 깼는지 음무기가 부스스한 모습으로 방문을 열었다.

“이거 받거라.”

“이게 무슨…….”

설휘가 내민 비급서를 음무기가 받아들었다. 그리고 앞에 적힌 비급서의 이름을 본 그가 눈을 부릅떴다.

“대장, 이건…….”

“그래, 소신수마공과 화온마공이다.”

“아, 이것을 왜…….”

상당히 당황하는 음무기.

그도 그럴 것이 소신수마공은 소수마공의 상승무학이며, 화온마공은 본교를 대표하는 최상승 마공.

절대비급에 가까운 무공서를 건네주는 게 이해되지 않았던 것이다.

아님, 애초에 그걸 가지고 있다는 게 이해되지 않거나.

“나는 한동안 밖에 나가 있을 것이다. 그러니 너는 이것을 필사하여 너를 포함한 사령대 조장들에게 나눠 익히게 하거라. 내 일을 마치고 돌아오면 얼마나 연습했나 확인해 볼 테니.”

“대장은 어디로 가시는 겁니까?”

“나중에 알려주마. 그럼.”

설휘는 멍하니 서 있는 음무기를 뒤로하고 거처로 돌아갔다.

자신이 없는 동안, 이 비급들은 이들에게 도움이 될 것이다.

특히 화온마공은 매우 큰 도움이 될 터였다.

미래에 들이닥칠 태황각주를 상대하기 위해서는 더더욱 필요한 것이니까 말이다.

* * *

그렇게 아침이 밝아왔을 때.

<천력 98년

1월 일정을 정해주세요. (28/36)>

문 앞에 서자, 늘 익숙한 문구가 눈앞에 나타났다.

그런데 설휘의 선택은 임무 받기가 아니었다.

▶ 무사 수행

바로 이것.

이유는 하나였다.

강해지기 위한 또 다른 방법.

거기다 교육관주에게 임무를 받지 않고도, 임무를 수행할 방법.

예전과 달리 직접 움직이며, 금만중의 호위무사인 상천장을 상대하겠다는 의도였다.

<수행지역을 어디로 결정하시겠습니까?>

▷ 청해

▷ 감숙

▶ 사천

그래서 설휘는 사천으로 정했다.

<사천의 성도로 이동합니다.>

목록이 눈앞에서 사라지며 환한 눈부심이 일었다.

* * *

눈부심이 채 사라지기 전.

사천으로 이동하는 가운데, 조장들의 반응이 떠올랐다.

[음무기]

“전, 이런 걸 원했습니다. 이 비급이라면…… 확실히 강해질 자신이 있습니다.”

[요림]

“세상에! 대체 이걸…… 어디서 구하신 겁니까? 정말 엄청난 도움이 될 듯합니다.”

[적송]

“놀라운 비급입니다. 이걸… 정말 저희에게 주시는 겁니까?”

[용진]

“이럴 때가 아니지. 곧장 수련에 들어가겠습니다! 대장! 만족하실 만한 결과로 보답하겠습니다!”

[소령]

“이걸 어떻게 대장께서……. 할 수 있는 한, 노력을 다하겠습니다.”

각자 한마디와 함께 각오를 다지는 반응들이 보였고.

<8일째 밤. 성도에 도착했습니다.>

어두운 저녁.

규칙적으로 심어진 나무 위에 내걸린 각등이 눈앞에 보였다.

그리고 들려오는 마부의 목소리.

“다 왔습니다.”

설휘는 사천의 성도 부근에서 마차에서 내렸다.

* * *

은은한 분홍빛이 새어 나오는 입구.

주렴에 달린 구슬이 흔들리며 외인이 들어서는 소리를 들은 사내 하나가 한곳을 보며 외쳤다.

“칠득(七得)아, 손님 받아라.”

“예.”

점원으로 보이는 중년인 하나가 부리나케 입구로 걸어갔다.

그리고 사내 앞에 서서 냅다 머리를 숙였다.

“찾으시는 손님이 있으십니까?”

“…….”

사내는 말하지 않았다.

그저 뭔가 주변을 두리번거릴 뿐, 어색함이 가득했다.

‘이거, 신출내기군.’

영업 오 년 차에 들어선 칠득이는 사내를 단번에 파악했다.

딱딱하게 굳은 몸과 이리저리 움직이는 눈동자.

그리고 어색한 동작.

웬만해선 돌려보낼 그였지만, 그는 한 번 더 인내심을 발휘했다.

사내의 허리춤에 찬 검이 예사롭게 보이지 않았다.

“혹, 이런 곳은 처음 오신 겁니까?”

그렇게 친절히 묻자, 사내는 화제를 돌렸다.

“저기, 앉아서 먹어도 되는가?”

그는 한 곳을 가리켰다.

일반 객잔과 달리 이곳은 홍등가.

더욱이 여긴 서역의 문화를 받아들여, 중앙에 한데 모일 수 있는 공간이 있었다.

사내가 거길 가리킨 것이다.

“물론입니다. 따라오시지요.”

점소이는 신출내기를 이곳 중앙으로 안내했다.

어중이떠중이가 아니라면, 이렇게 모시는 게 이득이었다.

‘고급스러운 검도 그렇고, 생김새를 보아하니…….’

돈이 꽤나 있어 보였다.

한편, 설휘는 그의 안내를 받아 건물 중앙으로 걸어갔다.

애초에 홍등가인지는 알고 있었으나, 객잔을 찾는다는 게 어쩌다가 주점을 찾아 들어왔다.

분위기가 낯설었지만, 돌아서긴 어색해서 그냥 안으로 들어간 것이다.

“무얼 드시겠습니까?”

자리에 앉아 술을 제조하는 중년인이 물어온다.

이렇게 십여 명이 앉을 수 있는 공간도 있었고, 따로 탁자도 마련되어 있는 곳이었다.

“손님?”

거듭 물어오는 말에도 설휘는 대답하지 않았다.

한쪽에, 정확히는 한 여인에게 시선이 쏠린 것이다.

<우호적인 단체 +1>

‘저게 뭐지?’

여인의 머리 위에 떠 있는 문구.

이제껏 나왔던 것과는 완전 궤를 달리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더 궁금해진 것이다.

‘우호적인 단체라고?’

“저 손님 말입니까?”

때마침, 술을 제조하던 숙수가 말을 걸어왔다.

“꽤 비쌀 겁니다. 뭐, 사실 돈이 있어도 워낙 사람들이 예약이 많아서…….”

“무슨 말이오?”

설휘가 고개를 들어 물었다.

“아, 모르셨습니까? 여기서 전문적으로 일을 나가는 여인입니다. 나이가 어릴수록 돈도 많이 들지요.”

“…….”

설휘는 그 의미를 대충 알았다.

아마도 몸을 파는 일을 하는 여인이라는 것일 터.

“그나저나 무슨 술을…… 손님?”

숙수가 불렀지만, 그곳엔 설휘는 없었다.

이미 성큼성큼 그녀 앞으로 다가갔으니까.

“어머, 뭔가요?”

간단히 약주를 마시고 있던 여인이, 시선을 들어 물어왔다.

“뭐, 딴 건 아니오. 그냥 여기 앉고 싶어졌소.”

“풋…….”

이렇게 정면으로 보니, 미인이었다.

아니, 조명 때문인지 모르지만 아름답다기보다는 퇴폐적인 느낌이 강했다.

마치 세속에 찌는 미녀의 모습이 그러할까 싶은, 그런 느낌.

그렇게 설휘가 다시 무엇을 말하려는 그때.

“이제 가시지요.”

옆에 사내들이 다가왔다.

척 봐도 평범해 보이는 자들이 아니었다.

쇠사슬을 어깨에 멘 장한과, 키는 조금 작지만 살기 띤 눈빛과 허리춤에 칼을 찬 사내.

“아쉽군요. 시간이 다 됐어요.”

그렇게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잠시 머뭇거리던 그녀는 한 가지를 내밀었다.

명패였다.

“관심 있으면, 여기로 오세요.”

그렇게 지나갔다.

설휘가 명패를 바라보자, 거기엔 이렇게 쓰여 있었다.

명빈관 십오호(明嬪館 十五呼)

십오호.

아마도 명빈관이란 곳에서 그녀를 부르는 호칭인 듯했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