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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육성 시물레이션-92화 (93/379)

92화. 다시 도전 (3)

그날 밤. 설휘는 3층 침소에서 잠을 청했다.

그리고 얼마나 지났을까.

웅웅거리는 소리와 쑥덕대는 사람들 목소리에 설휘는 잠에서 깨어났다.

“…….”

눈을 뜬 설휘의 시야는 어두웠다.

빛이 군데군데 보이긴 했지만, 눈이 아직은 어둠에 적응하지 못했다.

더욱이 쾌쾌하고 습한 그리고 꿉꿉한 냄새도 느껴졌다.

그래서 지금 상황이 뭔지, 잠시 가늠하지 못했다.

‘시스템이 개입한 걸까?’

그쪽을 의심해보긴 했지만, 눈앞에 여전히 정보가 떠오르지도 않는 것.

그리고 자신이 누워있지 않고, 의자에 묶여 앉아 있는 것.

무엇보다 누군가 어디에 대고 보고하는 목소리가 자신이 정상적이지 않은 상황에 놓였다는 걸 알려주고 있었다.

“큰 형님, 깨어난 듯합니다.”

익숙한 사내의 목소리 때문이었을까.

설휘는 잠을 청하기 전에 있었던 몇 가지 기억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간단한 요깃거리를 해결한 후 자리에 일어섰다.

칠득이란 점원의 안내를 받고는 3층 침소로 들어섰다. 그리고 갈증 때문에 방 안에 있던 물을 마신 뒤 곧장 누웠다.

그 이후 이렇게…….

밧줄에 포박당한 모습으로 의자에 앉아 있었다.

쫙쫙!

때마침 누군가 자신의 뺨을 후려쳤다.

그 이후, 환한 각등을 들이밀며 얼굴을 비추는 사내.

상대방의 얼굴이 또렷이 보이기 시작했다.

“이봐, 정신이 들어?”

설휘는 그제야 상황이 어찌 흘러갔는지 알 수 있었다.

지금 자신을 때린 이 녀석이 처소를 안내했던 이 가게의 점원, 칠득이란 것을.

“……눈 떴습니다!”

천박한 목소리와 함께 점원은 누군가에게 보고했고, 뒤쪽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설휘가 어둠에 적응됐을 때쯤 세 남자가 걸어오는 모습이 포착됐다.

거대한 덩치의 장한 둘.

그리고 적당한 체격에 긴 머리를 한 사내가 입에 뭔가를 질겅질겅 씹으며 다가오더니, 자신 앞에 의자를 내려놓고 거기에 앉았다.

“반가워. 무명소졸씨. 난 행아(杏兒)라고 한다.”

사내는 친절하게 말을 건네며 자신의 볼을 두 번 툭툭 쳤다.

“뭐, 좀 물어볼 테니 성심성의껏 대답해 줬으면 해. 그럼 죽이지는 않을 테니.”

“…….”

“이 검 말이야. 상당히 좋아 보이는데…… 어디서 구했나?”

설휘의 시선은 사내가 검을 들어 보이는 곳으로 옮겨졌다.

예오후검. 녀석은 화려한 금빛 문양이 검집에 새겨진, 그걸 가리키고 있었다.

설휘는 천천히 고개를 들어 녀석 머리 위에 능력치를 바라보았다.

행아 [명빈관 행동대장_42]

체력 240/440

내공 80/80

전투력 980

‘…….’

수치를 보던 설휘는 잠깐 혼란스러워했다.

하지만 이내 수치 중 ‘만’이란 글자가 없다는 걸 뒤늦게 깨닫고는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간 매번 강한 적들과 상대하다 보니, 이런 낮은 수치는 오래간만이었다.

“이봐. 말만 잘하면 살려준다니까?”

계속 이어지는 상대의 경고에 설휘는 경직된 표정이 차츰 풀어졌다.

이쯤 됐으면, 이제 대화를 해볼 상황이었다.

그래서 물었다.

“저기, 명빈관이라면…… 내가 갔던 가게의 뒤를 봐주고 있는 곳인가?”

“……뭐라고?”

“그냥 궁금해서.”

“캬…… 이 자식. 아주 대단한 녀석이네.”

그는 재밌다는 듯 옆에 수하들을 보며 웃었다. 그러고는 다시 자신과 눈을 맞추며 말했다.

“너, 지금 어떤 상황인지 잘 몰라?”

“……밧줄에 묶여 있지.”

“그래. 그게 뭘 의미하는지는?”

“잘 알지. 그래서 매우 기뻐하는 중이었어.”

설휘는 점차 굳어지는 상대의 얼굴을 보며 배시시 웃었다.

“생각보다 일이 잘 풀릴 것 같군. 마침 명빈관에 갈 일이 생겼는데…… 적당히 너로 변장해서 들어가면 손쉽겠다 싶었거든.”

“하…… 이 새끼가…….”

말이 안 통한다는 듯 고개를 연신 돌리는 행아.

그는 이내 자리에서 일어나, 뒤에 서 있던 장한 둘과 칠득이를 보며 말했다.

“반쯤 죽여놔.”

“예.”

그 말을 듣고 온몸이 근육으로 덮인 장한 둘이 즉각 반응했다.

그리고 그중 하나가 설휘 앞에 다가서더니 주먹을 말아쥐며 내려다보았는데.

“……?”

그는 눈을 의심했다.

어떻게 풀었는지, 의자에 완벽히 묶여 있는 설휘가 손과 발이 자유롭게 움직이고 있었다.

“잠영투체술이라고 알라나?”

“……이익!”

장한은 급하게 주먹을 내질렀지만, 설휘의 움직임이 몇 배는 더 빨랐다.

아니, 몇십 배는 더.

뻑!

한 방에 장한은 그대로 바닥에 엎어졌다.

뒤쪽에서 급히 달려들려 하던 장한 역시.

뻑!

주먹 한 방에 그대로 바닥에 나뒹굴었다.

그리고 멍하니 바라보던 칠득이.

“컥!”

단숨에 설휘의 손에 목을 잡힌 채, 온몸을 부들댔다.

“……?”

그때쯤, 이들의 수장인 행아가 뭔가 이상함을 느끼고 몸을 돌렸다.

그리고 이내 기함했다.

모두 쓰러져버린 수하들.

그리고 목이 잡힌 채, 애절하게 자신을 쳐다보는 칠득이가 있었다.

“우리 대화 좀 하지?”

“…….”

행아는 그 모습을 보고 직감적으로 느꼈다.

자신은 상대도 안 되는 녀석이라고.

* * *

설휘는 저녁 거리를 걷고 있었다.

행아라는 녀석을 장시간 조사하고, 간단한 요깃거리를 먹고 움직이니 벌써 하루가 지나버렸다.

녀석들은 사지를 꽁꽁 묶어, 가게 지하실에 내버려 뒀다.

나중에 발견되더라도 하루가 지난 후일 테니, 거사에는 영향을 주지 못할 것이다.

설휘는 행아의 옷을 입고, 역용술을 펼쳐 그의 얼굴로 변신한 상태였다.

그리고 명빈관을 찾아가던 도중 녀석이 말해준 것들을 하나하나 복귀하고 있었다.

“저는 홍등가 주변을 돌며 소란을 일으키는 손님이나, 혼자 오는 손님들 상대로 돈을 갈취하는 역할입니다.”

“모든 돈은 명빈관 두목을 찾아가 상납하고 일정 부분 수수료로 받습니다.”

“명빈관 두목은 창식(倉食)이라는 자로, 이 근방 홍등가 일대를 장악한 분입니다. 수하들은 대략 이백 명이 있고…….”

“여기가 명빈관이군.”

설휘는 3층 전각의 건물 앞에서 멈춰섰다.

건물 곳곳에 환한 불빛이 보이는 거로 보아, 꽤 장사가 잘되는 모양이었다.

“어?”

문 앞을 지키고 있는 건장한 체격의 남성. 그는 설휘를 보자 씨익 웃었다.

“행아, 벌써 여길 찾다니. 오늘 장사가 괜찮았나 보지?”

“뭐, 조금.”

“마침 두목께서 와 계시니, 올라가 봐.”

“그래.”

설휘는 그와 간단히 인사를 하고 입구로 들어갔다.

“…….”

1층 안에는 각종 연초 냄새가 가득했다.

연죽을 들고 피어대는 사내 녀석들. 그리고 다른 한쪽에는 화장을 고쳐 입은 여인 내까지.

퇴폐적인 기운이 가득한 그곳에서 설휘는 이동하지 않고 잠시 자리에 서 있었다.

“어이? 왔는가?”

그때, 자신을 향해 웃어오는 한 남성이 있었다.

빼빼 마른 녀석이었는데, 얼굴에 거멓고 안색이 좋지 않은 걸 보아 꼭 주독에 빠진 사람 같았다.

머리 위를 보니 공야(空野)라는 이름이 적혀 있었다.

“좋은 건수라도 생긴 건가?”

“뭐…….”

“역시. 네가 맡은 가게들은 전부 노다지라니까. 외부인이 오면 주로 거기에 내리거든.”

그는 씨익 웃어보였다.

그러고는 조심히 주변을 둘러보다 귓속에 대고 속삭이듯 말했다.

“두목께서 오시긴 했는데…… 오늘 분위기가 별로 좋지 않아 보이더군.”

“왜?”

“뭐겠나? 요즘 창룡문 때문에 그러시지. 금만중 어르신께서 적당히 타협하려고 하는데 잘 안 되나 봐. 그렇다고 대놓고 싸울 수도 없고.”

창룡문과 금만중이란 말에 설휘의 눈에 이채가 서렸다.

생각해보니 성도 근처의 홍등가.

이곳을 관리하는 건 금만중이며 결국, 그 뒤를 봐주는 건 자신들이 아닌가.

“어차피 높으신 분들께서 잘 수습할 테니. 그보다 자 어때? 두목 뵙고 내려오면, 우리도 같이 즐길까?”

공야는 뒤에 여인들을 가리키며 말했다.

설휘가 시선을 돌리자, 비단옷을 입고 화장을 짙게 칠한 여인들이 보였다.

“괜찮…….”

거절하려던 설휘의 눈에 때마침, 익숙한 여인이 포착되었다.

어제 가게에서 봤던, 여인. 그녀가 가죽옷을 입은 무사들과 함께 계단을 올라가고 있었다.

“아, 저 아이?”

공야가 뭔가 아는체하자, 설휘가 되물었다.

“아는 여인인가?”

“물론. 이번에 새로 들어온 애들이지. 듣기로 아버지가 도박 빚으로 자식들을 하오문에 팔아넘겼다고 하더군. 우리 두목이 거래소에서 큰돈을 들여 이곳으로 데리고 온 거고.”

“……!”

하오문.

그제야 설휘는 그녀의 머리 위에 뜬 우호적인 단체가 무엇인지 짐작할 수 있었다.

만약 그게 사실이라면, 그곳과 저 여인은 어떤 연관이 있는 것일까?

아니, 그 우호적인 단체가 자신에겐 어떻게 적용되는 것일까?

“헌데, 왜?”

공야가 되물었지만, 설휘가 별다른 대답하지 않았다.

그 모습에 그는 고개를 저었다.

“아서라. 저런 것들은 우리 같은 애송이들이 탐낼 수 있는 게 아니야. 오래 살고 싶다면.”

그의 경고에도 설휘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잠깐, 주변을 둘러보고는 다시금 재차 질문했다.

“공야.”

“어.”

“두목은 3층에 있는 거지?”

“그렇지.”

“다른 손님들은 없고?”

“……그건 왜?”

그의 물음에 설휘는 그제야 웃음을 내보였다.

“왠지 알아두면 좋을 것 같아서.”

그러고는 이내 3층으로 올라가기 위해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 * *

3층으로 올라서자, 입구 문이 가로막고 있었다.

복도식 회랑처럼 사방이 뚫린 식이 아니라, 완전히 밀폐된 공간으로 보였다.

문 앞에 서 있던 사내 한 명이 설휘를 보고는 간단히 아는 척하며 문을 열어 주었다.

끼이이익.

문을 열고 들어서자, 연초 냄새가 강하게 풍겨왔다.

한쪽 구석에는 노랫소리.

금을 타는 여인이 보였고, 다른 구석에는 탁자 앞에서 도박을 즐기는 이들도 보였다.

왈패들은 병기를 어깨에, 허리에 혹은 바닥에 올려놓고 놀이에 집중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가운데.

“……!”

설휘의 표정이 굳어졌다.

그녀였다.

조금 전 이곳으로 올라간 여인이, 어떻게 된 건지 지금은 얼굴에 피가 가득했다.

더욱이 그 옆에는 긴 칼을 들고 그녀를 죽일 자세를 취하던 장년인도 보였다.

“어?”

칼을 쥔 장년인이 자신을 보자 잠깐 움찔했다.

그러다 이내, 검을 거두며 밝아진 얼굴로 자신에게 다가왔다.

“행아! 왔느냐!”

설휘는 그가 이곳의 두목이라는 걸 쉽게 알아챘다.

정보에도 그렇게 나와 있었으니까.

창식(倉食) [성도 3지역 홍등가 두목]

체력 1만/1만

내공 1만/1만

전투력 11만

격세지감이라 할까.

나름 홍등가를 주무르는 두목이라도 해도 전투력이 고작 11만뿐이다.

한편으론 이해가 간다.

당시 목숨을 걸며 싸웠던 첩자, 거운의 전투력이 11만 정도이지 않았는가.

“예.”

설휘는 간단히 인사를 했다.

“그래. 이번에는 어떤 걸 받아왔느냐?”

“괜찮은 녀석 하나 짚어 왔습니다.”

설휘는 기다렸단 듯, 자신의 검. 예오후검을 내밀었다.

“오우!”

그는 자신에게 검을 받자마자 황홀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도 그럴 것이, 본교에서도 넷째 제자 곤마가 소지하던 검.

중원에서는 당연히 최고의 보검 중 하나이지 않을까 생각되는 것이니 당연한 반응이다.

“끌끌끌.”

놀라워하던 창식의 미소가 조금 의아하게 변했다.

자신이 한 여인을 바라보고 있는 걸 눈치챈 것이다.

“아. 그년 곧 죽일 거야.”

그는 예오후검에 시선을 두면서 재미있다는 듯 말을 이었다.

“큰돈 들여 사 왔는데 말이야. 알고 보니 이년이 뒷돈을 챙기고 있더라고. 뭐, 그건 눈감아줄 수 있다곤 해도…….”

그는 예오후검을 스윽 꺼내며 말했다.

“챙긴 돈으로 살수를 고용하려는 정황도 목격했지. 왜 그런 줄 알아? 저년 아비를 내가 죽였거든. 저 영악한 년. 그걸 알고 내게 접근했던 거야.”

“…….”

설휘는 고개를 끄덕했지만, 별다른 감정은 없었다.

사정이 그렇게 되었나보다 할 뿐.

“그래.”

전붕은 시선을 돌려 예오후검을 자신에게 건넸다.

설휘가 의아한 표정을 짓자.

“네가 죽여라.”

그는 이내 살의에 번들거리는 눈빛을 하고선 입꼬리를 올려 보였다.

“이 검. 잘 드나 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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