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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육성 시물레이션-93화 (94/379)

93화. 달라진 상황 (1)

금을 타던 여인의 악기 소리가 멈췄다.

예오후검을 집어든 설휘는 잠시, 주변을 돌아보았다.

뭔가 재미난 상황으로 보였는지, 도박하던 이들이 동작을 멈춘 채 자신 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두목 주변에 있던 왈패들 역시 낄낄거리며 자신을 주시하고 있는 게 느껴졌다.

그런 놈들을 보고 있자니, 그들의 휘황찬란한 병기들이 눈에 들어왔다.

대표적인 게 곤봉이었고 철퇴도 있었다.

낫처럼 생긴 쇄겸도(鎖鎌刀)도 보였다.

톱니바퀴를 연상케 하는 륜(輪)과 곤봉 끝에 칼날을 수십 개 박아넣은 낭아봉(狼牙棒)까지.

그저 보기만 해도 위협적인 무기들이 눈에 들어왔다.

‘재밌는 녀석들이군.’

설휘는 속으로 혀를 찼다.

평범한 사람들이야 저런 병기를 보면 위축되겠지만, 자신에겐 그렇지 않았다.

사실 저런 요란한 살상 병기는 고수와의 싸움에서 거의 쓰지 않기 때문이다.

마교의 첫 집합교육소인 천향소에서 느꼈던 교훈 하나.

겉만 번지르르한 병기들을 사용하던 녀석들은 꼭 초반에 탈락한다는 것이었다.

본교에서도 암기를 제외한 검이나 도(刀) 또는 두 손만을 주로 사용하는 이유가, 바로 그런 것들이 전투에 가장 효율적이기 때문이다.

“뭐해?”

가만히 서서 주변을 일별하던 자신의 모습이 거슬렸던 걸까.

얼굴에 칼자국이 가득한 두목, 창식이 재촉하듯 말했다.

그 말에 설휘는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구석진 곳에서 주저앉아 있는 여인.

코뼈가 주저앉았는지, 얼굴을 두 손으로 감싼 여인은 고개를 늘어뜨린 채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저벅저벅.

그렇게 여인 옆으로 다가간 설휘가 그녀를 내려다보았다.

그리고 잠시 뜸을 들이다 물음을 건넸다.

“무모한 짓이란 걸 알았을 텐데?”

“…….”

“고작 하나뿐인 목숨을 이런 일에 허비하다니. 어리석군.”

설휘는 그녀의 행동이 참 바보처럼 보였다.

그래서 더 궁금했는지 모른다.

그녀의 머리 위에 있는 ‘우호적인 단체’라는 문구보다도, 무리한 선택을 했던 그 이유가.

왜냐면, 자신은 절대로 저런 행동을 하지 않았을 테니까.

“저 녀석 왜 저럽니까?”

뒤에서 볼멘소리가 터져 나왔지만, 설휘는 아랑곳하지 않고 기다려주었다.

그녀의 대답을 듣고 싶었기에.

“당신들 같은 짐승들 눈엔 그렇게 보이겠지.”

약간 진정이 됐는지, 아님 자포자기한 심정인지 그녀가 입을 열었다.

“나는 아비의 억울한 죽음을 보고도 그냥 넘어가는 금수는 아니다. 힘없는 아녀자라고 할지라도 복수의 칼날은 절대 무디지 않아.”

“그게 네 명을 재촉한 거다.”

설휘는 그 점을 지적했다.

결국, 그런 절제되지 못한 감정이 스스로 죽음을 초래한 것이다.

“후회하지 않는다. 후회라면…… 너무 일찍 들킨 것이 한탄스러울 뿐. 과거로 돌아간다고 해도 똑같이 그러할 것이다.”

“이봐. 자꾸 뭐 하는 거야!”

뒤쪽에서 불만스러운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상태창에 양봉(梁蜂)이라 적힌, 두목 옆에서 계속 껄렁한 태도를 보이던 더벅머리의 사내였다.

“어서 죽여!”

그러자 이번엔 여인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그녀와 시선이 마주친 설휘는 잠깐이지만, 여인의 얼굴을 보고 당황스러움을 느꼈다.

‘이런…… 감정을 숨겨왔던 것인가.’

불과 하루 전이다.

주점에서 만났던 그때, 그녀의 눈빛과는 전혀 달랐다.

마치 그때가 상처받은 소녀의 눈빛이라면, 지금은 목숨을 건 결의가 느껴질 정도의 감정이 담겨있었다.

그래서 맘에 들었는지 모른다.

결의에 찬 눈빛.

무모한 짓이란 걸 알면서도 달려든 그녀의 의지가, 마치 과거의 자신을 보는 듯했으니까.

“얼마에 살수를 고용하려 했나.”

설휘는 진지하게 물었다.

“아비의 복수를 하려면, 꽤 비싼 청부 값을 쳐줘야 했을 텐데…….”

“……?”

결연한 눈빛에 약간의 혼란스런 균열이 보였다.

당연한 반응이다.

갑자기 이런 얘길 꺼내는 의도를 그녀는 모를 테니까.

“뭐, 차차 얘길 나누도록 하지. 어차피 난 선금에 목메는 사람이 아니니까. 다만, 상황이 상황이니만큼.”

휘리릭.

설휘는 검자루를 한 바퀴 돌리며, 온몸에 경직된 근육을 풀었다.

그러자 체구와 얼굴이 변했다.

좀 더 커졌고, 이전의 자신의 얼굴로.

“……!”

그 모습을 본 그녀가 눈을 크게 떴고, 그때쯤 설휘는 뒤돌아섰다.

그리고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서는 왈패들의 능력치를 보며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전부 다 처리해야겠어.”

저들이 노골적으로 살기를 뿜어내고 있었음에도 턴제는 발동되지 않았다.

그럴 만했다.

발동될 정도로 대단한 놈들이 아닌 것이다.

“죽여!”

“내가 처리할게!”

외침과 함께 접근하는 왈패들.

‘대략 스물다섯인가…….’

두목인 창식 주변에 여덟.

그리고 도박판 탁자 주변에 모인 열여섯의 괴한들.

그들은 제각기 살상 병기를 집어 들고 있었다.

“얘기는 잘 들었겠지?”

그래서 설휘는 웃으며 손짓했다.

“내가 갈까? 너희들이 올래?”

“…….”

모두들 너무나 황당한 상황인지 잠시 머뭇거렸고.

창식의 눈짓과 함께 한 괴한이 재빨리 달려나갔다.

몽둥이 끝에 촘촘히 날이 박힌, 낭아봉으로 설휘의 머리를 때렸다.

그리고 그대로 적중했다.

그의 일격이 대상을 향해 그대로 내리꽂힌 것이다.

“…… 간지러운데?”

하지만, 상대는 쓰러지지 않았다.

오히려 맞고도 멀쩡했다.

쇄액 퍽!

그리고 이어진 반격.

설휘의 주먹이 그의 복부에 박히자마자, 그는 반대쪽 벽까지 날아가며 축 늘어졌다.

그때쯤이었나.

휘리리릭! 우우웅! 쇄애액!

동시에 달려드는 네 명의 괴한들.

그와 함께 사방에서 살상 병기들이 휘몰아쳤다.

머리 위로 날아드는 낭아봉.

정면에 휘두르는 곤봉과 쇄겸도.

그리고 뒤쪽에서 조그마한 틈을 비집고 날아오는, 줄에 쇠못을 단 유성추(流星鎚)도 있었다.

투욱.

설휘는 약간 뒤로 움직였고, 가장 빨리 당도한 유성추, 쇠못을 한 손을 낚아챘다.

그리고 곧장 사선 방향으로 날려버리자, 도약하며 낭아봉을 휘두르던 왈패 하나가 그대로 고꾸라졌다.

터억.

그사이 두 방향에서 곤봉과 쇄겸도가 날아들었다.

설휘는 피하지 않았다.

하나는 한 손으로 막고, 다른 손으로는 검을 이용해 곧장 내리그었다.

그러자, 한숨에 공간이 갈라졌다.

그 공간 안에 있던 낫 모양의 기형도인 쇄겸도. 그걸 휘두르던 왈패의 몸이 그대로 갈라졌다.

“크아아악!”

설휘는 멈추지 않았다.

한 손으로 막았던 곤봉을 쥔 왈패의 몸에 손을 대고 외쳤다.

“풍신장.”

쿠와아아앙!

자그마치 사대극마공의 풍신장.

적의 몸 내부에서 거대한 풍압이 폭발처럼 터져나왔고, 온몸이 찢겨나간 왈패의 시체가 객잔 안을 피로 물들었다.

“……!”

그것이 지켜보던 이들의 발을 멈추게 했다.

설휘는 뒤돌아섰다.

“자, 지금까지는 몸풀기였고.”

그리고 경악에 찬 눈빛을 보내는 여인을 향해 말했다.

“이제 숫자 열을 세봐.”

“……?”

“그쯤 되면, 한 놈만 남고만 모두 제거될 거라 약속하지.”

여인은 대답하지 않았음에도.

자신도 자각하지 못하는 사이 본능적으로 숫자를 세고 있었다.

“뭐하는 거야! 고작 한 놈이라고!”

두목의 외침이 들려왔지만, 수하들은 얼어붙은 것처럼 움직이지 않았다.

숫자의 우위가 있다고 생각함에도, 잔혹한 죽음 앞에서 공포가 꺼지지 않고 있었다.

“이번엔 안 오는건가?”

휘익!

설휘는 검 끝에 묻은 피를 털어내고, 짧게 말을 내뱉었다.

“그럼 내가 가지.”

팟.

순간적으로 저들 무리 사이를 뛰어드는 설휘.

그때부터였다.

“크악!”

“악!”

“맞추라고!”

비명과 함께 사방에서 피보라가 몰아쳤다.

우수수 떨어지는 왈패들의 목.

어디서 공격이 들어오는지, 어디로 이동했는지 설휘를 제대로 본 이는 없었다.

그저 온몸이 찔리고, 칼에 베이며 나가떨어졌고.

“크아아아!”

어떤 이는 몸이 불로 뒤덮이며 괴성을 질렀다.

새로 익힌 화온마공을 쓴 것이다.

“무슨…….”

하지만, 더 충격적인 건 그다음 이어진 검술이었다.

마치 전광석화처럼 허공에 수많은 선이 그어졌고.

설휘가 동작이 멈췄을 때쯤, 무려 열 명의 목이 거짓말처럼 허공에 날아갔다.

매화검술.

설휘는 이구명에게서 얻은 검술을 펼쳐낸 것이다.

“이제 숫자 열쯤 됐으려나.”

설휘가 검을 멈췄을 때는 두목인 창식만이 살아남아 있었다.

저벅저벅.

그를 향해 천천히 다가가는 설휘.

얼어붙어 버린 그에게 친근하게 말을 건넸다.

“어때? 칼이 잘 드는 것 같은가?”

“아…….”

그는 천천히 주변을 한 번 둘러보더니 이내 무릎을 꿇었다.

“살려주게나. 내 자네가 이리 대단한 자인지 몰랐네.”

“…….”

의아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설휘.

하지만 상대는 아랑곳하지 않고 비굴하게 두 손으로 싹싹 빌었다.

“귀인을 몰라봤어. 내 살 수 있다면 뭐든 하겠네. 저 여인을 데려가도 아무 말 하지 않겠네. 아니, 이 일을 모두 불문에 부치겠네.”

“…….”

“내가 죽으면, 자네를 쫓는 이들이 분명 있을 거네. 물론 자네를 이길 상대가 있겠냐만…… 굳이 긁어 부스럼을 만들 필요가 있겠는가? 이렇게 빌겠네.”

‘흐음.’

설휘는 예상과는 다른 상대의 행동에 잠시 당황했다.

그러다 잠시 생각해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일리 있는 말이다.

홍등가 두목을 죽이면, 당연히 연관된 세력이나 방파 혹은 돈을 받아야 하는 협력단체에서 자신을 쫓아올 것이다.

그러다 보면 그의 말대로 귀찮은 일에 휘말릴 가능성이 있었다.

“저 여인은 네가 죽었으면 하는데?”

“그거야 그렇겠지. 그런데 생각해보게. 내가 아니었다면, 다른 이가 저 여인의 아비를 죽였을 걸세. 그게 나일 뿐이니까.”

그것도 말이 되는 얘기였다.

눈앞에 창식이란 녀석이 아니더라도 그와 비슷한 녀석이 작업했을 터.

애초에 도박판에 발을 들인 아버지란 자의 잘못도 있지 않은가.

“그럼 일단 저 여인에게 물어…….”

그때였다.

[경고! 창식이 설휘 님의 빈틈을 발견했습니다. 어떻게 대응하시겠습니까?]

고개를 돌리려던 그때, 갑자기 이게 떴다.

아마도 녀석이 나름의 한 수를 숨기다 기습하려 한 듯 보였다.

‘바보 같은 놈.’

설휘는 고민하지 않고, 이것을 선택했다.

[‘맞대응한다’를 선택하셨습니다.]

콰앙!

폭발이 터졌다.

그것도 설휘의 지근거리에서.

어떤 도구를 쓴 것인지, 창식이 손에서 열기와 폭발이 직선으로 뻗어 나갔고.

그걸 설휘는 정면으로 맞아버린 것이다.

“하하하하! 이 멍청한…….”

창식은 해맑게 웃었다.

개량된 벽력탄. 만약에 대비해 품속에 숨겨둔 것을 기습적으로 펼쳐낸 것이다.

위력은 검기, 아니 그 이상.

가까이서 맞으면 무조건 즉사하는 벽력탄이었다.

“감히 여기가 어디라…… 아……아…….”

연기가 걷히고, 목이 날아갔을 거라고 생각했던 그때.

“……!”

새하얗게 얼어있는 손 하나가 보였다.

설휘가 소신수마공을 운용하여 얼굴을 막은 것이다.

“상식적으로 이런 게 통할 리가 있겠나?”

“하…… 아…….”

[창식의 공격에 설휘 님은 1의 피해를 입었습니다.]

그것이 끝이었다.

촤아아악.

설휘의 검에 그의 목은 너무도 쉽게 날아가 버렸다.

뚝뚝.

수많은 사내들을 벤 설휘의 검.

검신에 피를 머금은 채로, 설휘는 그녀를 바라보았다.

“저…….”

그녀는 힘겹게.

차마 나오지 않는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돈 없어요.”

너무도 강한 사람.

그녀는 이 정도 압도적인 무인을 본 적이 없었다.

“있는 돈은 다 빼앗겨서…….”

“돈은 됐고.”

설휘는 그녀의 말을 가로막으며 물었다.

“뭐, 좀 알려줬으면 하는데.”

“……무엇을 말인가요?”

“자네가 몸담았던 곳.”

“…….”

“하오문에 대해서 말이야.”

그 말과 함께.

설휘는 입꼬리를 올려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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