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마육성 시물레이션-94화 (95/379)

94화. 달라진 상황 (2)

그녀는 자신의 이름을 하란(何蘭)이라고 밝혔다.

아버지 도박 빚으로 인해 주점으로 팔려나간 시기가 대략 열여섯.

외모가 워낙 출중한 탓에 유명한 기루로 재차 팔려나갔을 때가 열일곱이었다.

그런데 거기서 이류 기녀로 올라서는 데는 일 년이 채 걸리지 않았다.

그때가 열여덟, 자신을 주점에 팔았던 홍등가의 왈패들 눈에 띈 것도 그 시기였다.

두목 창식은 자신이 주점에 팔아버린 여인과 동일인물이란 걸 알아보았다.

그래서 호기심 때문인지, 아니면 수익성을 본 것인지, 다시 비싼 값을 치르고는 그녀를 자신들이 운영하는 영업장으로 데리고 온 것이다.

하지만 그들에게 접근한 건 사실 그녀가 의도한 것이었다.

뛰어난 미색을 이용해 이미 빚은 열여덟이 되기 전에 모두 갚은 하란은, 아버지가 왜 도박을 시작했고 돈을 빌렸으며 처참하게 죽게 되었는지 따로 조사했다.

곧 모든 게 두목 창식과 왈패들이 한 짓임을 알게 되었고, 의도적으로 창식에게 접근한 것이다.

그리고 그들의 돈을 빼돌린 뒤, 일면식이 있던 살수에게 청부를 맡기려 한 것이다.

“설마하니, 그가 당할 줄은 몰랐어요.”

매점(賣店)이란 음식점에서 그녀는 자신의 과거를 털어놓았다.

오는 도중 의원을 만나 상처를 치료해서인지 얼굴에 붓기가 많이 빠져 있었다.

“고용했던 살수가 창식이라는 두목에게 죽었다는 말이오?”

설휘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묻자, 그녀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에요. 제가 고용했던 살수의 표적은 그보다 더 위에 있는 자. 홍등가 자릿세를 걷고, 고리대금을 운용하는 자예요. 두목 창식을 죽이는 건 그다음에 하려고 했어요.”

“…….”

설휘는 말하지 않았지만, 누군지 대략 짐작했다.

금만중.

이 성도 주변의 홍등가는 그의 영향력이 닿지 않는 곳이 없지 않은가.

더욱이 대부업이라면 그가 원래 하던 사업이었고.

“아직 믿을 수 없어요. 분명 실패가 없는 살수라 들었는데 어느 날…… 온몸이 난도질당한 채 저잣거리에 버려져 있더군요.”

그녀는 그때의 충격이 떠오르는 듯, 목소리가 떨려왔다.

또한, 간간이 힘겨워하며 숨을 내쉬는 모습도 보였다.

“음.”

설휘는 잠시 입을 다물었다.

그녀의 판단을 보자면 나름 옳은 방법이라 할 수 있었다.

확실히 홍등가 두목 하나를 제거한다고 해서 일이 쉽게 해결되는 게 아니다.

이런 뒷골목 세계에서 위계질서라는 건 매우 엄격히 지켜지는 법.

창식 정도의 인물을 죽이게 되면, 당연히 추적이 들어온다.

암살한 자부터, 의뢰한 자를 색출하는 일은 너무도 흔히 있는 일이었다.

그러니 창식 위에 이들을 관리하는 실질적인 인물을 목표로 제거한 후.

차례로 창식을 제거하는 것이 맞았다.

‘다만, 그게 금만중이란 게 문제인 거지…….’

그도 그럴 게 살수는 금만중 주변의 고수에 대해서 많은 조사를 하진 못했을 거다.

최근에 금만중을 돕던 인물들도 홍마원 인물들로 바뀌었으니까.

그러다 보니 상대의 실력을 파악하지 못한 채 살행에 나서야 했고, 결과적으로 그들에게 죽임을 당했다.

“살수는 하오문을 통해 고용했나?”

“뭐, 그런 셈이죠.”

“꽤 자리를 잡았나 보군.”

“배신이 난무하는 곳이지만, 그렇기에 낭만도 있다고 하더군요.”

그녀는 자기 일을 마치 남 일처럼 얘기했다.

설휘는 그게 어색해 보이지 않았다.

시작은 아버지 빚 때문이긴 했지만 이런 뒷골목에서 몇 년씩이나 버텼다는 건.

여간내기가 아니라는 것.

“그런데…….”

하란은 잠시 고개를 들어, 설휘를 마주보며 물었다.

“하오문 분타주를 왜 보려고 하시는 건가요?”

그녀는 기억했다.

처음, 이 음식점에 도착했을 때 설휘가 말했던 것.

자신을 구해준 대가로 하오문 사람을 만나게 해달라는 것이었다.

이왕이면 가장 높은 직책을 가진 자를.

그래서 이유가 궁금해진 것이다.

“좀 알아볼 게 있어서.”

“아까도 한번 얘기했지만, 쉽게 만나주지는 않을 거예요. 알려지기로 분타주께서는 본인 스스로가 흥미를 느끼는 일이 아니면, 결코 나선 적이 없다고 들었으니까요.”

“그건 걱정할 필요 없다. 그는 반드시 나를 만나려고 할 테니.”

“네……?”

설휘가 대수롭지 않게 말하자 하란은 의아하게 바라봤다.

대체 당연하듯 말하는 저 자신감은 뭐란 말인가.

“뭐 그런 거 있지 않나. 조사를 해 보니 아무것도 나오지 않는 사람 말이지.”

설휘는 시선을 들었다.

그녀의 머리 위.

본래는 쓰여 있어야 할 글귀가 서서히 사라지고 있었다.

눈앞의 문구와 함께.

[우호적인 단체, ‘하오문’이 활성화되었습니다.]

하오문.

그녀와 동행하게 된 이유이자 그녀를 구한 이유. 이 모든 게 저것에서 비롯되었다.

하오문과 접촉하면 주변 상황을 제3자의 눈으로 정확하고도 빠르게 파악할 수 있었다.

정보를 사고파는 집단답게 당연히 시간을 줄여줄 것이고, 정보의 신뢰성을 높여줄 것이다.

태황각주 끄나풀이라는 상천장은 언제부터 금만중을 비호하게 된 건지.

혹은 아직 자신이 보지 못한 다른 녀석들이 언제, 어디까지 세력을 뻗은 건지.

또한, 그들과 화산파 이구명에 대한 관계는 어떻게 되는지.

금만중이 말했던 창룡문주와의 관계까지.

모든 상황에 대해 재조사가 필요했다.

‘하나씩 제거하며 움직인다.’

설휘가 무사 수행으로 사천에 온 이유.

그건 임무에 방해되는 녀석들을 미리 제거할 수 있다는 점 때문이었다.

설휘가 어렸을 적, 하오문에 관해 들었던 얘기가 많았다.

전국의 수많은 정보를 틀어쥔 개방.

하오문은 그들과 유일하게 비교할 수 있는 정보단체다.

어쩌면 특정 영역에서는 그들보다 더 뛰어난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하류 인생들이라 푼돈에도 목숨을 거는 자들이 월등히 많기 때문이다.

설휘는 지금 그녀가 알려준 방식을 그대로 따라 했다.

주로 하오문의 높은 직책에 있는 이들을 부를 때 쓰는 밀어.

찻잔을 뒤엎어놓고, 젓가락을 교차하여 올려놓고는 그 자리에서 한참을 기다렸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툭툭.

하란의 시선은 어느새 나타난 노파에게 옮겨졌다.

노파는 지팡이를 짚은 채, 설휘의 옆에 서서 그의 어깨를 툭툭 쳤다.

“따라오게.”

“…… 아!”

그녀는 신음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

무려 분타주와의 약속.

예전에 단 한 번, 먼발치에서 본 일밖에 없던 그분이 직접 보기를 원하고 있었다.

“너는 앉아 있거라.”

노파의 말에 하란은 고개를 끄덕였다.

분타주의 부름이다.

애초에 동행할 생각은 전혀 없던 그녀였다.

* * *

꽤 고급스런 전각이었다.

매점에서 빠져나온 뒤, 샛길로 걷기를 일각.

화려한 건물로 발길을 옮겨 방문을 열고 들어가 보니, 한 남자가 뒤돌아 서 있었다.

그리고 방 안에는 인공 연못이 설치되어 있었고, 물레방아가 돌아가고 있었다.

상당히 놀라운 광경이었다.

방 안에 이런 연못을 조화롭게 만들 수 있다는 것. 이런 화려한 전각을 가진 인물이 궁금해지는 순간이었다.

“오셨습니까.”

그렇게 천천히 고개를 돌리며 뒤돌아서는 남자.

상당히 젊었다.

분타주라고 하여 연배가 있을 줄 알았던 설휘로서는 확실히 놀라운 광경이었다.

거기다.

“이해합니다. 다들 그렇게 당황하시곤 하지요.”

웃는 미소는 가히 절세미남이라 할 수 있었다.

곤마보다도 더 잘생겼다기보다는 아름답다는 말이 어울릴 정도로 청수한 모습이었다.

“젊은 나이에 분타주에 오르려면 나름의 무기 하나 정돈 하나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

“앉으시지요.”

청년은 설휘를 연못 바로 옆에 비치된 탁자 쪽으로 안내했다.

그러고는 설휘가 앉자 곧장 물었다.

“이쪽 분은 아니시지요?”

“왜 그렇게 생각했소?”

“짧은 시간이지만, 조사를 해봐도 크게 나오는 것이 없기에…….”

그는 잠시 뜸을 들이다 말했다.

“관도를 통해 마차를 타고 이곳에 왔다는 정보만 있습니다. 그럼 이곳 사람은 아닐 것이고. 세외 쪽이란 건데…… 그쪽은 정보가 좀 미흡한 편이라서요. 그래서 말인데.”

“……?”

“주로 이럴 경우는 조사방식을 좀 다르게 가져가곤 합니다. 어디서 왔냐에 주안점을 두기보다, 이곳에 와서 무얼 했냐 하는 것을 파악해야 하겠죠.”

“그래서? 결과가 어떻게 나왔나.”

“이 근방에 있는 홍등가 두목 창식 패거리를 처리했다는 정보를 들었습니다. 표면적으로 하란이를 구하기 위함이었지만, 결과적으로는 우리를 만나기 위함이었겠지요. 그래서 제가 내린 답은 이겁니다.”

“뭔가?”

“저에게 어떤 걸 궁금해하는가에 따라…… 출신을 알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만.”

“호오.”

설휘는 턱을 쓸어내렸다.

재미있었다.

확실히 추론 과정이 이 근방의 모든 정보를 손에 쥔 분타주다웠다.

“그럼 말하지.”

상대가 이렇게 나온 이상, 설휘 입장에서 길게 끌 것 없다고 생각했다.

“금만중 주변에 있는 상천장이란 자에 대해 알고 있나?”

“……?!”

순간적으로 눈빛이 흔들렸다.

쉽게 흔들릴 것 같지 않던 그의 표정도 매우 경직되어 있었다.

당연한 반응이다.

적어도 중원에서 마교란 이름이 주는 무게는 절대 가볍지 않을 터.

“혹시, 당신은…….”

“그대가 생각하는 게 맞을 거요.”

청년은 여전히 표정 관리가 어려운 모양이었다.

그리고 그건, 마교 출신의 인물을 직접 마주하고 있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바로 자신이 상천장에 관해서 물어본 것.

마교인이 마교인에 대한 정보를 물어본다는 것.

달리 말해 마교 내에서도 이권 다툼이 있다는 걸 직감한 것이다.

그래서 처음보다 더 당황하고 있었다.

“당황스럽긴 할 거요. 괜히 입을 함부로 놀렸다가는 내분에 휩싸일 수도 있다는 판단이 들 거고.”

설휘가 상황을 정정해줄 필요가 있다 생각했다.

자신이 원하는 바를 얻기 위해서는.

“하지만 위험이 큰 만큼. 대가 역시 클 것이요. 적어도 금만중은 우리 쪽 사람이니까.”

“…….”

청년은 잠시 침묵했지만, 설휘는 기다려주었다.

알고 있었다.

지금의 침묵은 단순히 말을 아끼기 위함이 아니라는 걸.

그는 이미 원하든 원하지 않든 마교의 분란 한가운데 놓여 있었다.

청년이 어느 쪽을 택하느냐에 따라, 그의 운명 또한 완전히 바뀔 테니까.

“하하하. 제게는 늘 이렇게 좋은 운이 들어오는군요.”

갑자기 웃어 보이는 청년.

하지만 그것이 진실한 모습이 아닌 걸 설휘는 알고 있었다.

“한 가지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말해 보시오.”

“어디까지 알고 계신 겁니까?”

설휘는 그의 의도를 단번에 알아챘다.

얼마나 알고 있냐는 건.

본교 내 어떤 입지냐는 것을 묻는 것과 맞닿아 있는 것이다.

자신의 행동에 따라, 따르지 않을지를 결정하겠다는 의미도 내포되어 있었다.

“뭐, 구종명의 제자 이구명이 상천장과 함께 움직인다는 것 정도까진.”

“……예?!”

드륵.

청년은 눈을 부릅뜨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러고도 믿기 힘든지, 한참 동안 설휘를 보고 있었다.

“다…… 당신은 대체 누구십니까?”

이내 힘겹게 열린 입에서 나온 질문.

말투가 어느덧 더 공손하게 바뀌어 있었다.

그럴 만했다. 화산파 장로 구종명을 언급했다는 건, 결코 가벼운 인물이 아니라고 말한 것과 다름이 없었으니까.

“추격자 정도라고 해두지.”

그리고 그 반응에 설휘는 담담했다.

구종명과 제자 이구명.

창룡문주 자리를 차지하려는 음모와 더불어, 상천장과의 관계를 정확히 알 수 있을 테니까.

“어때? 내 쪽에 줄을 한번 서보겠나?”

그것을 위해 설휘가 정한 첫 번째 포섭할 자는 눈앞에 있는 하오문 분타주였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