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마육성 시물레이션-95화 (96/379)

95화. 달라진 상황 (3)

천장에 화려하게 음각된 용무늬가 보이는 방.

금만중은 커다란 서랍 안에 설치된 금고를 열어, 금원보를 정리하고 있었다.

그는 금고 안을 차곡차곡 쌓아 가득 채운 이후에야 입을 열었다.

“들어오십시오.”

끼이익.

그의 허락이 떨어지자, 한 사내가 문을 열고 성큼성큼 걸어들어왔다.

보호 명목으로 그를 일선에서 호위하던 상천장이었다.

“어찌 되셨습니까?”

“방금 얘기하고 오는 길이오. 영업장 다섯 곳을 주는 것으로 잠정 합의를 봤소.”

“아, 그렇습니까.”

금만중의 안색이 굳어졌다.

그도 그럴 것이 저잣거리 내에 있는 포목점을 포함한 가게 몇 곳의 자릿세를 창룡문에 넘기기로 한 것이다.

더욱이 이번 한 번으로 그치지 않을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불과 한 달 전에도 한 구역을 통째로 넘기길 요구하지 않았던가.

“너무 상심하진 마시오. 지금은 싸울 때가 아닌 것을. 어차피 그들은 오래가지 못할 거요.”

“그건, 압니다만…… 언제쯤 도움의 손길이 올지. 본교에 연락한 지도 시간이 꽤 흘렀습니다.”

은영단 내에 도움을 요청하기를 벌써 반년이 지났다. 그럼에도 아직 어떤 소식이 들려온 건 없었다.

그에 반해 최근 들어 부쩍 거대해진 창룡문.

창룡문주의 영향력은 일대를 넘어 자신들이 관리하는 영업장에까지 손을 뻗고 있었다.

더욱이 최근 들어 홍등가의 보호비도 문제 삼고 있는 실정 아닌가.

“기다려 보시오. 어찌 됐든 은영단원이 파견된다면, 모든 일은 쉽게 해결될 테지요.”

“예. 그러길 바라야지요.”

금만중은 짧게나마 한숨을 내쉬었다.

그도 믿고 있었다.

은영단 고수들이 얼마나 강한지를.

그렇게 잠시 뭔가를 생각하듯 시선을 올리다 말을 이었다.

“그건 그렇고, 어제 그 인물에 대해서는 알아보셨습니까?”

금만중의 물음에 상천장은 어떤 뜻인지 알아듣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창룡문 소속은 아닌 거로 보였소.”

“그럼 정말 화산파 무사란 말입니까? 사인에서 화산검법이 발견되었다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그것 역시 염두에 두고 있소. 다만, 조사해보니 중원에서 건너온 녀석은 아니었소.”

“그럼 새외에서 온 겁니까?”

“아마도. 그보다는 알려진 바 없는 무사 하나가 계집 한 명을 구하기 위해 그 행패를 부렸다는 것이 납득이 가지 않긴 하오.”

“하아.”

금만중은 한숨을 내쉬었다.

창룡문으로 인해 이리저리 복잡한 상황에서 갑작스럽게 끼어든 인물.

자신의 영업을 방해한 것을 넘어, 사상자도 십여 명이 넘었다.

그로서는 몹시 불편한 상황이었다.

“걱정하지 마시오. 그럴 줄 알고, 녀석의 뒤를 캐내 위치를 알아냈소.”

“아…….”

금만중의 얼굴이 밝아지자 상천장은 별것 아니라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쯤 내 수하들이 그 녀석 목을 가지러 갔을게요.”

* * *

천수위(天守位).

상천장을 따르는 홍마원 출신 무사들로 모두 11명으로 구성된 조직이다.

그중 건장한 체격의 부대장 철사후(鐵獅候)는 대장의 지시를 듣고, 홍등가 가장자리에 위치한 주점으로 향하고 있었다.

“오셨습니까. 저곳에 있습니다.”

입구에 서자, 점소이 하나가 마중 나와 인사했다.

철사우는 자신의 죽립을 슬쩍 들어 주변을 훑어보았고, 이내 고개를 끄덕이며 발걸음을 옮겼다.

아홉의 호위무사 역시 그의 뒤를 따랐다.

사박사박.

주점 중심부에 자리하고 있는 남자 하나와 여자 하나.

그 외에는 없었다.

자신들이 올 걸 예상해, 점소이가 이미 손을 써놓았다.

스윽.

손을 들자, 뒤따라오던 수하들이 멈췄다.

그는 뒤를 한번 흘겨본 후, 남녀 앞으로 성큼성큼 다가갔다.

그리고 여인 옆에 섰을 때, 짧게 물었다.

“이름.”

“…….”

여인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정면을 보며 말없이 앉아 있을 뿐.

“흠.”

그러자 철사후는 품속에 있던 양피지를 꺼냈다.

거기에 그려진 용모파기를 재차 살핀 뒤, 여인과 사내의 얼굴을 비교한 후에야 새하얀 이빨을 드러냈다.

“둘 다 맞군.”

스르릉.

기다렸다는 듯, 옆에 마인 하나가 검집에서 칼을 꺼냈다.

스산한 소리와 함께 은색의 시퍼런 날이 주변의 은은한 등불과 맞물리며 묘한 기운을 풍겨냈다.

“사내는 죽이진 마라. 생포하라 하셨다.”

“옙.”

명령과 함께 양피지를 품 안에 넣은 철사후.

그는 자연스럽게 뒤돌아서며 그들과 거리를 벌렸다.

“상천장이 보냈나.”

“……!”

그때, 여인의 맞은편에 앉아 있던 사내가 말을 걸어왔다.

철사우의 시선이 천천히 그에게로 향했다.

다리를 꼬고 앉아, 공허한 바닥을 내려다보는 인물.

그리고 차례로 입을 떼는 여인.

“이길 수 있을까요?”

한없이 겁에 질린 목소리였다.

그에 반해 사내의 말투는 한없이 거만했다.

“한 줌도 안 되는 녀석들이다. 생각한 것보다 전투력도 많이 떨어지고…….”

철사후는 뭔가 섬뜩했다.

순간적으로 상대에게 느껴지는 기운이 자신의 전신을 옭아매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그는 자세가 한점 흐트러짐 없이 정연함을 유지하고 있었다.

거기서 철사후는 직감으로 위험하다고 느꼈는지, 자신도 모르게 다급히 외쳤다.

“어서 처리해!”

파파팟.

명령을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천수위 넷이 사내에게 비호처럼 달려들었다.

허나, 그들은 딱 거기까지였다.

뭔가 바람이 쉭 하고 철사후의 귀를 때리더니, 거짓말처럼 죄다 바닥에 고꾸라져버린 것이다.

“……!”

철사후의 눈이 커졌다.

이건 강력한 경파(勁派)와 다름없었다.

눈으로는 감히 쫓지도 못할 정도의 내공 발현으로 네 명의 마인이 손도 써보지 못하고 죽어버렸으니까.

투욱.

그때, 사내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러고는 철사후를 향해 천천히 걸어오며 말을 걸었다.

“홍마원 소속인가?”

“……뭐?!”

“뭐 그리 놀라나. 홍마원 내에 있는 천수위(天守位)란 부대. 태황각주의 명을 받고 상천장과 함께 움직인 거 아닌가?”

철사후의 눈이 커졌다.

자신의 소속과 구체적인 조직도를 듣고는 상대가 본교 소속이라는 걸 눈치챈 것이다.

“오해 말게. 내 출신은 화산파니까.”

“그걸 믿으라고?!”

“믿기 싫으면 믿지 않아도 돼.”

스윽.

설휘는 주변을 한번 바라본 후 말을 이었다.

“어차피 너희들은 여길 더는 살아나가지 못할 테니까.”

* * *

설휘가 제대로 싸우기로 마음먹자, 수많은 빈틈창이 눈 앞을 가렸다.

그 많은 빈틈창에 대한 그의 선택은 오로지 ‘공격하기’였다.

이유가 있었다.

3초 전으로 돌아간다는 장점.

그 장점을 이용해 매화검술을 펼칠 생각이었던 것이다.

주검에는 검흔이 남는다.

이들을 모두 처리한 후에, 상천장이 온다면.

매화검술은 분명 그에게 혼란을 심어줄 수 있을 것이다.

이구명에게 의심을 향하게 하기 위해서라도.

촤악! 촤아아악!

피분수가 쏟아졌다.

주점 내에 있던 무사들이 단 한 번의 대항도 하지 못하고 목과 팔이 날아갔다.

어떤 이는 설휘의 공격에 수십 번이나 칼에 찔린 뒤 쓰러진 이도 있었다.

그중에서 가장 눈에 띄었던 건.

쾅!

폭발과 함께 형체도 알아보지 못하고 죽어간 이였다.

매화검수인지 아니면 이게 무공인지도 가늠하기 어려운 공격.

그 중심에는 설휘가 서 있었다.

뚝뚝.

검신을 타고 흘러내리는 피를 보며 다시 물었다.

“갈 때 가더라도 저항은 좀 해봐야 하지 않나?”

“…….”

철사후는 내렸던 고개를 들었다.

여러 감정이 뒤섞인 눈빛이었지만, 확실한 건.

싸울 의지가 보인다는 것이다.

[State Summary, 상태 간단 요약]

철사후 [홍마원 천수위 소속 부대장]

체력 31만/31만

내공 41만/41만

전투력 45만(+신병이기{귀검})

‘저건가?’

설휘의 눈이 철사후가 집어 든 검으로 향했다.

척 보기에도 뭔가 특이한 검.

싸움 도중에 울음소리가 들린다고 했더니, 저 검에서 나는 소리였다.

철사후의 귀검.

피를 볼 때면 칼이 귀울음을 낸다고 알려진 신병이기.

그때 칼을 휘두르면, 기존보다 몇 배는 더 강해지고 파괴적으로 변한다고 했다.

철사후는 자신의 검에 자부심이 대단했다.

이 칼만 있으면 강호에 나와서 누구에게도 지지 않는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와봐. 얼마나 대단한지 견식 해보지.”

설휘가 슬쩍 검을 내리며 도발하자 철사후의 미간이 좁혀졌다.

그리고 상대의 태도에서 ‘혹시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방심하는 그 한순간을 노린다면 어쩌면 이길 수도 있다는 판단을 한 것이다.

스으으윽.

철사후는 귀검을 이용해 자신의 손목과 팔등을 그었다. 그리고 새어 나오는 피를 날에 적신 뒤, 혀로 맛을 보았다.

우우우웅.

그러자 검은 다시금 울어댔다.

한밤중 건물 외벽을 스치는 바람 소리처럼 귀검의 울음소리가 설휘의 귀에 또렷하게 들릴 정도였다.

“후회하게 해주마.”

단 두 장의 거리.

짧은 거리 탓인지, 눈 깜짝할 사이에 귀검이 설휘의 목젖을 겨냥해 찔러 들어왔다.

그리고 다시 우편으로 꺾어, 슬쩍 고개를 돌려 피해내는 설휘의 목을 향해 다시 파고들었다.

슈슈슉!

몸을 돌리며 뒤로 빠지자, 그는 계속 달라붙었다.

몸을 내던지는 듯한 저돌적인 공세가 마치 작은 틈을 주지 않으려는 듯 보였다.

그 모습 때문인지 움직이는 형태가 설휘의 눈엔 철사후의 의지가 아닌 검의 의지처럼 느껴졌다.

‘한번 맞아볼까.’

몸을 반쯤 틀며 뒤로 계속 움직이던 설휘는 한 지점에서 오히려 몸을 낮추며 달려들었다.

그 모습에 철사후는 당연히 설휘의 몸을 쪼개려는 듯 수직으로 귀검을 내리그었고.

설휘는 급히 횡으로 돌며 적의 첫수를 피한 뒤, 그대로 검끼리 맞받아쳤다.

쩌어어엉!

‘억!’

그런데 놀랍게도 설휘가 밀렸다.

예오후검 역시 어디에서도 떨어지지 않긴 하지만, 상대의 검 또한 신병이기.

특히 진동이 느껴지는 검의 힘은 일반 검과는 전혀 다른 힘을 내포하고 있었다.

그 순간 설휘가 놀란 틈을 상대는 놓치지 않았다.

쩌어어어엉!

놀랍게도 검기가 세 방향으로 쏘아져 나온 것이다.

전혀 피할 수 없는 가까운 거리.

거기다 진동하듯 움직이는 세 개의 검기.

그럼에도 설휘의 눈앞에 빈틈창은 발현되지 않았다.

그 정도로는 결코, 좁힐 수 없는 실력 차이가 있었기에.

촤아아아악!

설휘의 검이 사선으로 올라갔다. 그리고 그 동작이 채 바뀌기도 전에 바닥에 뭔가가 툭 하고 떨어졌다.

철사후의 팔이었다.

“매화검법은 이래서 좋아.”

설휘는 담담한 목소리로 말을 걸었다.

상대가 내기 발현을 하던 그때, 매화검술도 동시에 펼쳐졌다.

그 속도가.

상대가 펼치는 속도보다 몇 배나 더 빨랐기에 가능했다.

“큭.”

한쪽 팔을 잃은, 철사후는 잠시 머뭇거리다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한 가지 묻자.”

“미안하지만.”

설휘의 말을 그는 거부했다.

철사후도 아는 것이다.

이게 자신의 마지막임을.

“부디 내 마지막은 명예롭게 죽여다오.”

설휘는 뭔가 말을 하려다 그만두었다.

이 정도로 나온다면 더는 말을 거는 건 예의가 아니었다.

촤아아아악!

그렇게 그는 목이 날아갔고, 무릎을 꿇은 자세로 운명을 맞았다.

“…… 대체 당신은.”

입을 가린 채 놀란 그녀가 물어왔다.

경천동지할 무공을 가진 무사들을 너무나 쉽게 제압한 사내.

설휘는 무미건조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이제 넌 자유다. 다만 여길 떠나는 게 좋을 거다. 곧 이놈들의 대장이 올 테니.”

“당신은…… 당신은 피할 곳이 있나요?”

“피하다니. 뭔가 오해를 하는군.”

설휘는 피를 털어내며, 칼을 검집에 집어넣었다.

그러고는 이내 다시 시선을 들어 그녀에게 말했다.

“사냥은 이제부터 시작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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