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7화. 설계 (2)
견장 차림의 무사 여섯이 저잣거리를 걸어가고 있었다.
간단한 시찰을 위해 들린 그들은, 가게들을 둘러보며 이런저런 대화를 나눴다.
그러다 꽤 근사한 객잔 앞에 섰을 때쯤.
한 중년인이 가게를 가리키며 말했다.
“이왕 여기까지 온 거, 식사부터 하는 게 어떻습니까?”
호위무사 중 서열 2위인 가홍(佳弘)이었다.
마침 배가 출출한 점심때이기도 해서 자연스럽게 말이 나온 것이다.
창룡문주 백양천의 오른팔이며 호위장인 광세웅(廣世雄).
그가 별다른 대답을 하지 않자, 옆에 있던 호위무사 하나가 서글서글하게 말을 받았다.
“전 좋습니다. 사실, 여기 이 객잔은 이 근방에서도 유명하다 하더군요. 마파두부가 그리 맛있답니다.”
그 말에 다른 무사들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하나둘씩 무사들이 동조하는 가운데, 한 사내가 불쑥 끼어들었다.
“헌데, 대장. 이 객잔은 금만중이 관리하는 곳이지 않습니까? 괜히 식사하다 오해를 살 필요는 없지 않습니까?”
그러자 가홍이 인상을 쓰며 즉각 반박했다.
“무슨 소리냐. 이 근방의 치안 대부분은 우리가 담당하고 있거늘. 우리가 오고 나서부터 왈패들도 보기 힘들어지지 않았느냐?”
“그건 그렇지만…….”
“가홍의 말이 맞다.”
그러던 그때, 호위장 광세웅이 드디어 입을 열었다.
그는 거대한 객잔 현판을 올려다본 뒤 말했다.
“적당히 예우를 해주다 보니, 이 지역의 주인이 바뀐 줄도 모르는 녀석들이 있지. 이참에 한번 각인시켜 줄 필요가 있겠군.”
그는 그렇게 한마디를 내뱉고는 객잔 안으로 들어섰다.
촤르르륵.
주렴구슬이 흔들리며 일행들이 내부로 들어섰다.
곧 점심 식사 때라 그런지, 객잔 안은 군데군데 인원들이 들어차 있었다.
“저기…….”
호위무사들의 눈에 딱 들어오는 곳이 있었다.
객잔의 중심에 있는 원탁.
의자도 그렇고, 나무 재질도 그렇고, 상당히 고급스러운 느낌 때문인지 다들 그쪽으로 걸어가 앉기 시작했다.
“주문 받으시오.”
호위무사 하나가 소리치자, 점소이 하나가 부리나케 다가와 고개를 숙였다.
“무엇을 가져올까요?”
“이 객잔에서 제일 자신 있는 음식 내오게.”
“예?”
“말 못 들었나? 이 객잔에서 자신 있는 음식 전부 내오라고.”
한 사내의 엄포에 점소이의 시선이 이들의 복장으로 향했다.
회색 무복. 그리고 복장 오른쪽 가슴팍에 용(龍)이라는 자수가 놓인 글귀를 보고는 어느 쪽 사람인지 눈치를 챈 것이다.
“알겠습니다.”
점소이는 그 모습에 급히 머리를 숙였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수많은 음식이 원탁을 가득 채웠다.
* * *
“꺼억. 맛있군요.”
“배터지게 먹었습니다.”
탁자에 놓인 음식들이 대부분 비워졌다.
창룡문의 호위무사들은 저마다 배를 두들기며 만족감을 표했다.
“오. 역시 유명 맛집이라 다르군요.”
서열 2위 가홍도 흐뭇한 표정으로 대장을 쳐다보았다. 슬쩍 눈치를 주고 있는 것이다.
“자, 그럼 갈까.”
호위장 광세웅이 일어나자 호위무사들은 재빨리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들어온 문 쪽으로 걸어가는데.
“손님. 음식값을 계산하지 않으셨습니다.”
점소이가 급히 앞을 막으며 다급히 말했다.
“뭐라고?”
일행 중 가장 덩치가 큰 사내.
호위무사가 매섭게 노려보자, 점소이가 고개를 쑥 집어넣으며 읊조렸다.
“음식값을…… 컥!”
그 순간, 그는 자신의 키보다 더 높게 몸이 떠올랐다.
사내가 멱을 틀어쥐고 자신의 키 높이만큼 집어 든 것이다.
“우리가 누군지 몰라? 엉?”
“헉. 커억.”
얼굴이 점점 붉어지며, 뭐라 입을 열지 못하는 점소이.
그때쯤 그를 광세웅이 제지했다.
“그만해라.”
쿵.
사내가 손을 놓자, 점소이는 바닥에 떨어지며 몸을 비틀었다.
허리 쪽으로 떨어졌는지, 몸을 떨며 신음을 흘리고 있었다.
“곧 이 가게에서 걷을 자릿세 중 한 달치는 빼주도록 하지.”
광세웅은 그를 슬쩍 내려다보고 이내 주변을 한 번 둘러봤다.
한쪽에 점원으로 보이는 자와 주인장으로 보이는 장년인이 서 있었지만, 그저 지켜볼 뿐 나서지 않았다.
그는 그런 그들을 비웃으며 고개를 돌렸다.
“가자.”
그렇게 한두 발을 딱 뗐을 때쯤이었다.
“어딜 가나 시정잡배로 보이는 패거리들은 늘 있구만.”
“……뭐?”
천천히 돌아본 광세운.
그리 떨어지지 않는 곳에서 의자에 앉은 채 탁자에 다리를 올린 사내가 보였다.
그런데 그 사내의 얼굴이 언제고 본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래서 한번 물었다.
“너 혹시…….”
“그래. 금만중 어르신을 모시지.”
“……!”
광세운의 표정이 굳어졌다.
다른 이도 아닌, 금황상단의 최고 고수. 금만중을 지척에서 보좌하는 무사가 여기에 와 있다는 걸 알아챈 것이다.
“……뒤를 밟은 건가.”
그래서 확인차에 물었다.
우연이라면 그냥 넘어갈 수 있을지 몰라도, 의도적이라면. 싸움이 불가피하다.
“밟았다면. 어쩌겠나?”
그런데 결과는 후자였다.
결국, 광세웅은 눈에 불을 켜고 물을 수밖에 없었다. 그만큼 저 자와 싸운다는 건 위험부담이 컸다.
“지금 우리와 싸운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알고 있나? 전쟁을 의미하는 거다.”
“전쟁?”
설휘는 피식 웃었다.
갑자기 급히 경고하는 모양새가 우습게 여겨졌기 때문이다.
“그래. 그렇다면 우리 이렇게 하지. 지금 당장 너희들은 금 사백 냥을 내놓아라. 그럼 너희들을 살려 집에 보내주겠다.”
“미쳤군.”
“건방진!”
협상이 결렬됐다는 걸 알아챈 걸까.
창룡문 호위무사들은 강한 적의를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대장.”
그리고 광세웅 옆, 가홍이 다가오며 조용히 말을 붙였다.
그 모습에 광세웅은 잠깐 망설이듯 침묵했고.
이내 무리 중 이탈하여, 적의 뒤로 움직인 무사 한 명을 보고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였다.
팟.
호위무사 하나가 순식간에 설휘를 향해 검을 뻗었다.
의자에 앉은 채 탁자에 다리를 올린 상대.
누가 봐도 그가 한 번에 제압할 수 있는 상황으로 보였다.
그런데.
호위무사의 검이 상대의 등허리에 닿던 그때, 사내의 몸이 거짓말처럼 사라졌고.
“컥!”
검을 뻗은 호위무사의 머리가 꺾이며 그 자리에서 주저앉았다.
‘기격(技擊)이다!’
광세웅은 순간 경악했다.
손의 한 면으로 내리치는 권법의 일종.
주로 치고 때리고 차는 살상기술을 가리키는 수법이었다.
다만, 그 움직임.
정확히는 그를 제압하는 움직임을 제대로 보지 못한 것이다.
“싸움이다!”
“도망쳐!”
눈앞에서 죽음을 목도한 사람들이 죄다 밖으로 뛰쳐나가기 시작했다.
졸지에 몇 명만 남은 가게 안에서.
“이번 싸움은 좀 재미있겠군.”
상천장으로 변신해 있던 설휘가 나긋하게 입꼬리를 올렸다.
확실히 이놈들은, 본교에서 보낸 상천장의 수하들보다 실력이 좀 더 뛰어나 보였다.
“쳐!”
때마침 큰 외침이 터졌다.
광세웅이 설휘를 죽이기 위해 달려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들의 무공은 설휘와는 너무도 차이가 났다.
쇄쇅!
한 번의 칼질.
그 공격만으로도 선두에 서 있던 무사 하나의 목을 날려버리는 데는 충분했다.
그러자, 남아 있던 네 명.
그중 서열 2위인 가홍은 거기서 동작을 멈췄다.
그는 직감적으로 눈앞의 상대를 이길 수 없다는 걸 깨달은 것이다.
하지만, 그와 달리 그의 뒤에 있던 수하들은 거침없이 적을 향해 나아갔다.
“안, 안 돼!”
그의 경고에도 수하들은 멈추지 않았다.
이번엔 단단히 대비를 한 듯, 검을 꺼내 양옆으로 설휘의 목을 겨냥해 검을 휘두른 것이다.
허나, 그는 그 속에서 눈을 의심할 장면을 목격했다.
거짓말처럼 두 개의 칼날 공세를 막아냄과 동시에 뻗은 장법.
콰아아앙!
그로 인해 온몸이 터져나가는 수하 한 명과 어느새 머리채를 잡힌 호위무사 하나.
그의 몸은 서서히 불길로 뒤덮이고 있었다.
그리고 그 무공은, 다들 기억 속 한자락에 남겨져 있는 끔찍한 마공을 떠올리게 만들었다.
“……혈수마공.”
가홍의 입에서 무공명이 흘러나왔다.
극양의 마공.
마교의 출신만이 쓸 수 있는 그것을 금만중을 호위하는 무사가 펼쳐낸 것이다.
거기다, 앞서 형체도 없이 몸체를 날려버린 사내의 무공은 대체 무엇인지 알 길도 없었다.
스윽.
설휘는 남은 창룡문 호위무사 두 명을 보며 입을 열었다.
“너희 둘은 꽤 실력자군.”
단순히 띄워주기 위해서 한 말은 아니었다.
[State Summary, 상태 간단 요약]
가홍 [창룡문주 일선 호위무사]
체력 55만/55만
내공 32만/32만
전투력 120만
[State Summary, 상태 간단 요약]
광세웅 [창룡문주 일선 호위장]
체력 188만/188만
내공 99만/99만
전투력 201만
이 둘만큼은, 일개 문파의 호위무사로도 보기 힘들 정도의 실력을 가지고 있었다.
“매화칠선(梅花七線)을 펼친다.”
철컥.
광세웅이 가홍을 향해 지시를 하며 검을 뽑아들었다.
“역시…… 그 방법밖에 없겠습니다.”
가홍 역시 검을 꼬나쥐며 고개를 끄덕였다.
본디 절정의 매화검수가 되기 위해선 매화 다섯 개를 동시에 피워야 한다고 알려져 있다.
광세웅은 4개가 한계다.
가홍이 3개.
둘이 연합하여 모두 일곱 개를 만든다면, 절정 이상의 무력을 사용할 수 있을 터.
그리하면 적을 제압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 것이다.
“나름의 한 수인가?”
설휘는 그들 전술의 의미를 이미 짐작하고 있었다.
매화검법에 나와 있는 내용대로라면, 매화칠선이라면 한 호흡에 일곱 방향으로 펼쳐지는 극도의 쾌검.
내력도 상당히 실린 검초일 테니 만만히 볼 수는 없었다.
“그럼 나도 간만에 좋은 걸 펼쳐 보여주지.”
설휘가 검을 사선으로 세웠다.
그렇게 팽팽한 긴장감이 객잔 안을 가득 메우는 그때.
서로 눈을 맞춘 광세웅과 가홍이 움직였다.
‘……!’
설휘의 눈이 커졌다.
머릿속에 있던 매화검법과 조금 달랐다.
저들이 펼쳐내는 검의 방향은 직선이 아닌, 고리처럼 휘어져 들어오는 것이다.
더욱이 속도는 예상을 벗어날 만큼 빨랐다.
패애애애액!
좌우측.
누구의 검부터 대응할까 망설이는 그 지점에서.
‘아!’
그의 예측을 벗어난 상황이 펼쳐졌다.
[경고! 광세웅이 ‘설휘’ 님의 빈틈을 발견했습니다. 어떻게 대응하시겠습니까?]
[경고! 가홍이 ‘설휘’ 님의 빈틈을 발견했습니다. 어떻게 대응하시겠습니까?]
이해할 수 없었다.
충분히 대응할 수 있는 상황에서 왜 이런 게 뜨는 것일까?
‘설마.’
혹시나 하여 설휘의 시선이 상대의 머리 위로 움직였다.
그리고 낯선 광경을 목도했다.
전투력 220만(↑100만)
전투력 301만(↑100만)
그들의 전투력이, 갑자기 증가하다니.
이런 경우도 있단 말인가.
‘흠.’
설휘의 고민은 잠깐이었다.
빈틈을 발견했다고 해도.
예측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해도.
저들과 자신의 무력 사이에는 이미 채울 수 없는 벽이 있었다.
그래서.
[‘맞대응한다’를 선택하셨습니다.]
번쩍임과 함께 구불구불한 칼날이 뻗어 나왔다.
그리고 광세운의 검은, 설휘의 몸에 정확히 적중되었다.
“이겼……?!”
하지만 그들의 환호는 길지 않았다.
자신들의 검이 설휘의 몸을 관통하지 못했다.
빙원결갑.
소신수마공의 호신공을 통한 방어에 성공했으니까.
그 순간 설휘는 자신의 칼을 놓고는, 두 무사의 칼을 부여잡았다.
그 순간 손끝에서 화염이 일었다.
화르르르륵!
“……!”
“……!”
검을 타고 그들의 몸에 화공이 옮겨 붙었다.
그들이 검을 놓을 시간도 없었다.
너무도 빠르게 파고든 불길이 그들의 온몸을 완전히 잠식해버린 것이다.
“크아아악!”
괴성과 함께 서서히 움직임이 느려지는 그들.
투욱.
그렇게 둘은 무릎을 꿇은 채로 더는 움직이지 않았다.
그것이 그들의 마지막이었다.